“좋은 아빠 되는 게 떼돈 버는 일”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7.31 15: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녀 교육 지침서 펴낸 권오진 ‘아빠학교’ 교장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 가?>가 탄생한 ‘비화’가 알려져 눈길을 끈다. ‘좋은 아빠, 멋진 아빠를 만드는 아빠학교’의 권오진 교장(53)이 주인공이다.

2012년 겨울, 일하느라 바쁜 중년 아빠와 어린 자녀가 소통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PD와 방송작가 5명이 권 교장의 사무실을 찾았다. 그들은 권 교장이 계속해오던 ‘무인도에서 탈출하기’라는 온 가족 소통 프로그램 현장 사진에 큰 관심을 보였다. 권 교장은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할 만한 활동으로 12년 동안 해온 무인도 체험 프로그램을 들려줬다.

“무인도에 가면 아이가 낯선 환경에 당황한다. 극한 상황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이가 아빠에게 의지하게 되는데,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이와 아빠가 대화를 하면서 가까워진다.”

그의 말에 힌트를 얻은 방송 제작진은 여행 콘셉트를 ‘낯선 환경 속에서 아빠와 아이가 함께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트게 한다’로 수정해서 <아빠! 어디 가?>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권 교장의 저서 <행복한 아빠학교>가 제시하는 교육 철학을 바탕에 깔았다고 볼 수 있다.

ⓒ 시사저널 전영기
하루 1분만 놀아줘도 좋은 아빠

경기 용인시 기흥구 언남동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15년여 세월 동안 쌓인 자료들의 창고 같았다. 국내 언론과 인터뷰한 기사와 기고한 칼럼, 그의 활동상이나 언론과 공동 진행한 프로그램을 소개한 기사가 사무실 벽면과 천장을 빼곡히 장식하고 있었다. 그가 ‘아빠학교’라는 것을 만들고 교장이 된 건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1997년을 전후해 딸이 네 살 되던 때 ‘아빠와 추억 만들기’라는 가족 답사 모임을 만든 것이 계기였다. “딸아이를 위해 또래들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자는 생각을 했다. 딸의 친구 다섯 명의 가족이 만나 모임을 만들었다. 그런데 거기서 ‘매직’을 발견했다. 아이들은 모르는 사이라도 세 명만 모이면 부모가 없어도 잘 노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아빠가 나서서 아이들을 잘 놀게 해주는 것이 관건이었다.”

권 교장은 아이들을 위해 아빠가 나서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자체로도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가 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동네에 소문이 나면서 3년 만에 100가족이 ‘아빠와 추억 만들기’에 동참했다. 주간·월간 계획 짜고, 프로그램을 만들면서 ‘아빠놀이학교’가 자연스럽게 탄생했다.

권 교장은 영락없는 ‘딸바보’다. 딸이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며 일러스트레이터로 이름을 얻게 된 경위를 설명할 땐 어릴 적 딸의 그림을 보여주며 살짝 들뜨기도 했다. 한번은 딸이 자신이 쓴 칼럼에 삽화를 그렸는데, 해당 신문사에 보냈더니 좋다며 게재를 허락했다. 그것이 재능을 키우게 된 계기가 되었단다.

“내가 아빠로서 한 역할이란 아이를 끌고 가는 게 아니라 아이의 재능을 사회적인 활동과 연결시켜주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하루 두 시간 정도 그림을 그리던 아이가 다섯 시간씩 그리더니 실력이 확 늘었다. 결국 대학도 그 재능을 살려 가게 됐다.”

권 교장은 “좋아하는 것을 했을 때 그것이 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딸이 좋아하는 것을 하도록 배려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네이버 카페(cafe.naver.com/swdad)를 운영하며 수백 명의 좋은 아빠를 양성했다. 카페에는 수십 명의 엄마들이 보낸 감사 편지가 눈길을 끈다. 권 교장은 엄마들이 편지를 보낸 이유에 대해 ‘좋은 아빠로 만들어준 것’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고 덧붙였다.

“맞벌이를 하는 가정에서도 엄마의 가사 분담률이 80%를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아빠들이 아이와 놀아주지 않는다면 그 집안은 콩깍지나 마찬가지거든. 아내가 여유가 없으면 남편을 챙겨줄 시간이 없다. 그렇게 되면 남편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증오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러면 부부 관계가 갈등과 불화로 치닫게 된다.”

권 교장은 이력서를 한 번도 안 써본 사람이다. 그는 스스로를 ‘뭐가 필요하다면 머리가 깨져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무인도 체험 프로그램을 하면서 콩가루 집안이 참여해도 찰떡 집안이 되는 것을 수없이 봤다. 화난 얼굴로 들어와서 웃으면서 나가는 것이다”라며 해온 일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좋은 아빠 되기는 평생 해야 할 일

권 교장은 지금도 대학 3년생인 딸과 놀이를 한다. 대학생이 된 딸에게도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좋은 아빠가 되는 일은 평생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세대를 막론하고 좋은 아빠가 되기 위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를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그중 세 가지를 정리했다.

첫째, 일주일에 한 번 외식을 나가라. 단, 메뉴는 자녀가 좋아하는 것으로 정하라. ‘식구’란 사랑하는 사람들이 식사를 같이하는 것임을 확인시켜라.

둘째, 원격 인증 놀이를 하라. 용돈을 일괄 지급하지 말고 어떤 보람 있는 행위를 했을 때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내오면 그것에 대한 보상을 하는 놀이다. 용돈을 주는 일이 일방적인 행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자녀가 쌍방향 소통까지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셋째, 한 달에 한 번 서점에 같이 가라. 권 교장은 “책을 오프라인 서점에서 사면 공짜다. 아이와 교감하는 시간을 갖게 해준 대가를 내고 책은 덤으로 얻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같이 가서 이야기하고 밥 먹고 차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서점을 가족의 축제 장소로 이용하라는 말이다.

권 교장은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떼돈 버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자신의 경험상 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게 훨씬 많다”며 늘어놓는 그의 논리를 곱씹어보면 정말 그것이야말로 큰돈을 버는 일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하게 될 것 같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