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름, 물회의 추억이 떠오른다
  • 황교익│맛 칼럼니스트 ()
  • 승인 2013.07.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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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쪽 해안에선 ‘끼니의 생선 음식’…갖은 양념 넣은 막회도 생각나

내 고향은 마산이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아란 물~”의 그 마산이다. 바다의 도시이니 생선이 밥이었다. 고기를 ‘괴기’라 발음했는데, 그 괴기는 소나 돼지의 고기를 뜻하지 않았다. 생선이 괴기였다. 생선찌개며 구이는 항상 상에 올랐고 하루가 멀다 하고 생선회를 먹었다. 집에서는 생선 음식용 막장을 따로 담갔는데 된장에 고춧가루가 조금 들어간 것이었다. 이는 생선회와 매운탕에나 쓰는 것이지 다른 음식에는 응용되지 않았다. 뭉툭뭉툭 썬 회를 이 막장에 찍어 먹거나 잘게 썬 채소에 회를 올리고 막장으로 척척 치대어 먹었다. 요즘 말로 ‘막회’다. 여기에다 물을 부으면 물회가 된다. 예전에는 생선회를 다 이렇게 먹었다.

제주의 자리돔물회. 원래는 된장이 베이스였으나 요즘은 고추장도 첨가된다. ⓒ 황교익 제공
아버지는 낚시광이었다. 어린 자식들을 데리고 낚시를 다녔는데 그때 막 잡은 생선을 회쳐서 막장에 찍어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가을이면 아버지는 마산에서 진해로 넘어가는 길에 있는 봉암다리 횟집으로 식구들을 데리고 갔다. ‘꼬시락’이라 불리는 망둥어를 뼈째 썰어 각종 채소를 넣고 비벼 먹었는데, 내 최초의 가족 외식 기억은 이 봉암다리 횟집에서다.

고향에는 아직 친지 어른들이 계신다. 가끔 들르면 먼 곳에서 왔다고 회를 내놓는데, 이때도 막회다. 커다란 양푼에 상추, 깻잎, 당근, 부추, 당파, 양파, 풋고추 등을 채쳐 넣고는 초고추장이나 막장에 비벼 낸다. 여기에 밥을 함께 넣고 비비기도 하는데 이렇게 하면 별식이라기보다는 끼니에 가깝다. 그 많은 양에 남기기라도 할 듯하면 어른들에게 한 소리를 들어야 한다. “사내가 그거 한 그릇 못 비우고 힘쓰겠냐?”

삼면이 바다이니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생선회를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생선의 싱싱한 살 맛 그 자체를 즐긴 건 아니었을 것이다. 우리는 가끔 잊는다. 한반도 역사상 온 민족이 굶지 않게 된 것이 기껏 4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논밭이 없는 어촌은 더 가난했다. 선주가 아니고서는 끼니 때우는 일도 버거웠다. 그러니 생선회를 먹어도 맛으로 먹은 것이 아니라 끼니로 먹었다. 그래서 고향 어른들이 생선회를 남긴다고 한 소리 하는 것은 밥 먹는 양이 적다고 야단치는 것과 같다.

생선회를 미친 듯이 먹었던 시대

우리가 본격적으로 밖에서 음식을 사먹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들어서다. 고도 경제 성장으로 주머니 사정이 나아지면서 외식 산업은 크게 번창했다. 보너스라도 탄 날이면 온 가족이 ‘가든’으로 몰려가 갈비를 뜯었고 켄터키프라이드치킨을 배달시켜 아이들에게 먹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생선회는 아직 대중적인 음식이 되지 못했다. 양식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횟감이 무척 비쌌고 고급 일식집에서나 회를 먹을 수 있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사정이 확 달라졌다. 광어와 우럭 양식이 일반화하고 물고기를 살려 보관하는 기술이 발달하면서 대중 횟집들이 도시에 생겨났다. 이때 우리는 ‘미친 듯이’ 회를 먹었다. 대형 횟집에 앉아 두툼한 광어와 우럭을 쌈 싸먹는 가족의 모습이 일상화됐다. 그런데 음식 내는 스타일은 일식을 따랐다. 그래야 고급스러워 보인다고 횟집 주인들은 생각한 모양이다. 그렇다고 온전히 일식을 따른 것도 아니었다. 생선을 넙데데하게 썰어 무채 위에 얇게 깔고 고추냉이와 간장을 함께 내놓는 것은 같았다. 그런데 그 옆에는 막장과 초고추장을 올려 우리식의 맛을 볼 수 있게 했다. 또 상추, 깻잎, 풋고추, 마늘을 내놓아 일식에 우리의 쌈 방식을 가미했다.

도시의 횟집과 달리 바닷가 횟집에서는 예부터 내려오던 생선회 먹는 방식을 유지했다. 생선을 잘게 썰어 장류에 비빈 막회와 여기에 물을 더한 물회를 꾸준히 먹었다. 도시인들은 바닷가 피서지에서 이 막회와 물회를 별미로 먹었다. 2000년대 들어 이 막회와 물회가 도시에 진출했다. 그러면서 이런 말이 생겼다. “막회니 물회니 하는 음식은 어부들이 조업 중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조리해 먹던 음식이다.” 조업 중에 먹었을 수는 있으나 꼭 그때에 먹었던 것은 아니다. 일상 음식이었다.

이 말에는 ‘내륙의 도시 사람들은 예부터 생선을 두툼하게 썰어 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먹었다’는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착각이다. 옛날에 내륙의 도시 사람들은 그 어떤 생선회든 꿈도 꾸지 못했다. 막회와 물회는 오래전부터 이 땅에 존재했던 전통의 생선회다.

여름이면 막회보다는 물회다. 물회로 먹을 수 있는 생선은 가자미·광어·우럭·쥐치·도미 등 다양하다. 비린내가 심하고 살이 무른 꽁치·갈치·고등어 등의 생선 외 거의 모든 생선을 물회로 조리해 먹을 수 있다. 생선뿐 아니라 해삼·멍게·오징어·전복·성게소 등 어떤 해산물이든지 물회로 먹을 수 있다. 최근에는 생선과 각종 해산물을 섞어서 만드는 물회가 유행하고 있다.

물회의 양념으론 고추장 또는 된장을 쓴다. 동해안 지역에서는 고추장이 강세이고 제주도와 남해 일부 지역에서는 된장을 주로 쓴다. 내륙의 도시에서는 고추장 물회가 많다. 여기에 식초와 설탕 등을 더해 맵고 달고 시큼한 맛의 물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각 지역별 물회 중 소비자 인지도가 가장 높은 것은 제주 물회다. 제주에서는 전통적으로 된장을 푼 물에 자리돔·전복·오징어 따위를 넣고 말아서 먹었다. 최근에는 고추장과 식초를 기본으로 하는 물회로 그 맛이 많이 바뀌었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미감

강원도 속초·고성·강릉 지역에도 물회 식당이 많다. 한때 오징어 물회가 주종이었는데 최근 오징어 흉어로 인해 가자미 물회가 대부분이다. 고추장에 비벼 맹물에 말아 내는 것이 기본이며 과일을 갈아 넣어 만든 ‘고급 맛국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식당도 최근에 생기고 있다.

입안에 가득 찰 만큼 큼직하게 생선살을 발라내고 여기에 고추냉이와 간장만으로 먹는 일식 회는 생선살 그 자체의 맛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한다. 생선의 그 여린 생살 맛을 제대로 보려면 일식만 한 것이 없다. 여기에 비하면 막회나 물회는 무지막지한 음식으로 보인다. 맵고 달고 신 양념에 풋고추며 양파, 마늘 등 향신 채소까지 듬뿍 들었으니 이 안에서 생선살의 맛을 느낀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고 이 음식을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싶다. 한국인만의 독특한 미감(味感)이 막회나 물회에 작동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비빔밥이 그 좋은 예인데, 나물 하나하나를 간 맞추어 요리해놓고는 대접에 썩썩 비벼 먹는 민족이지 않은가. 입안에서 온갖 맛 요소들이 요동을 치게 해 그 맛의 충돌을 즐기는 것이다. 우리 민족의 미각은 낱낱의 맛 요소를 제각각 즐기려는 일본인들의 미각과 큰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05년 가을, 내 아버지는 고향 바닷가 문중 납골묘지에 묻히셨다. 그 자리에서는 바다가 내려다보인다. 창포라고 불리는 조그만 바다다. 행정구역으로는 창원통합시 진동면에 든다. 이 창포 앞바다 생선 맛은 전국에서 알아준다. 보통 남해안 생선 중에 전남 여수 앞바다에서 진해 앞바다까지의 생선을 맛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창포 생선을 으뜸으로 친다.

창포는 내가 코흘리개일 때 아버지를 따라 낚시하러 갔던 곳이기도 하다. 아버지가 서울 인근의 천주교 묘지나 현충원 묘지를 마다하고 그 먼 고향에 당신의 자리를 잡은 까닭은, 자식들이 성묘 핑계로 창포에 들러 맛난 막회나 물회를 먹게 하려는 뜻이 아니었나 싶다. 입맛 전통은 그렇게 물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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