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없는 굴, 기회 엿보는 여우들
  • 서상현│매일신문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08.0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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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계 분화 속 당·청 곳곳에서 권력 다툼 징후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다. 국민대통합과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던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대한 점수를 자신에게 얼마나 주고 있을까. 최근 정치권에선 이런 말이 나돈다. “2007년 이전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이어져온 최대 계파 ‘친박(親朴)’이 집권 여당을 점령하고 있음에도 박 대통령의 국정 동력에 시동조차 걸지 못하고 있다. 친박은 사실상 ‘괴물 계파’와 같다. 국회 과반 이상의 여당 내에서 절대다수다. 그럼에도 전략, 응집력, 조직적 대응 측면에서 단일대오가 ‘전혀’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7월2일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 황우여 대표(오른쪽)와 홍문종 사무총장의 뒤로 최경환 원내대표가 지나가고 있다. ⓒ 뉴시스
존재감 잃거나 혹은 키우거나

친박계의 현주소를 알려면 이제 가지를 봐야 한다. 한 지붕 한 가족의 한 줄기에서 청와대, 당, 국회로 뻗었기 때문이다. 살림 규모가 늘어나고 인적 자산도 불어났지만 그만큼 화합하기 힘들어졌고 소통도 어려워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친박 내부에서도 명암이 엇갈린다. 청와대는 지난 대선 캠프를 옮겨놓은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허태열 비서실장, 이정현 홍보수석, 김선동 정무비서관 등이 모두 캠프 사람이다. 이재만·안봉근·정호성 등 박근혜 의원실 출신의 친위부대도 모두 청와대에 있다. 유명 대학교수와 관료 출신 수석들이 이들의 ‘백업 요원’, 즉 정책 부대다. 청와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정부 출범과 동시에 기용된 이른바 신신박(新新朴)은 정책 외인부대다. 정치·정무는 모르고 정책만 아는 전문가들이다. 그런데 한 5개월 한솥밥을 먹더니 국가의 정책을 주도하겠다는 큰 뜻이 희석되는 모양이다. 점점 박 대통령의 훈시와 재가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돼가고 있다.” 신신박은 존재감이 없다. 문고리 권력으로 통하는 의원실 출신을 만났다는 정치부 기자들은 요즘 찾기 어렵다. 청와대 사람들, 그러니까 청와대의 친박들이 얼마나 박 대통령 눈치를 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박 대통령이 청와대 관저에서 ‘새롬이’와 ‘희망이’라는 진돗개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친박 사이에서 진돗개 구하기 전쟁이 벌어졌다. 진돗개 체취가 있으면 새롬이·희망이가 짖지 않는 이유에서란다. 박 대통령의 애완견에까지 친밀함을 나타내려는 촌극을 두고 씁쓸하다는 평이 많다.

당으로 가보자. 18대 국회에서 친박 성향을 드러낸 신박(新朴) 황우여 당 대표는 존재감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5월 말 새누리당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충남 당진에서 모내기 봉사와 병행하자고 했지만 그날 당진을 찾은 최고위원은 한 명도 없었다. ‘나 홀로 모내기’는 ‘휘청 리더십’의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정국에서는 아예 종적을 감췄다. 부산시장 자리에 뜻이 있어 물러난 서병수 당 사무총장의 바통을 홍문종 사무총장이 받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선 요즘 “새누리당 총장이 누구야?”라는 말이 회자된다. 가뜩이나 ‘대타 총장’인 데다 그 스스로 과거 ‘수해 골프’ 전력이 있어 당에서 정치력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당 3역(원내대표·사무총장·정책위 의장)으로서의 무게감이 없다는 것이다.

김재원 당 전략기획본부장은 그나마 잦은 구설, 즉 실점을 하고도 차근차근 득점을 올리고 있다. 일각에선 새누리당의 ‘청와대 안테나’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NLL 정국에서 빨리 헤어 나오자”는 말도 그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그나마 친박 중에선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19대 국회가 출범한 지 1년이 지났지만 ‘건강한 친박 초선’이 없다는 데 있다. 당 지도부와 중진이 제 역할을 못 하면 누군가 쓴소리를 날릴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후배가 없다는 것이다. 한 여권 관계자는 “15~18대 때는 초선부터 중진의원들까지  당 개혁파·쇄신파 등의 역할을 자처하며 쓴소리를 냈고, 정부와 당 지도부에 딴죽을 걸며 신랄하게 싸웠다”며 “연구 모임, 포럼 등을 만들어 공부도 하고 세력화도 하는 모습을 19대에서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일명 ‘근혜 키즈(kids)’로 불리는 이들 초선 대다수가 무감각하고 무기력하다는 소리다.

당이 제 기능을 못 하는 판국이어서 2014 지방선거를 위해 조기 전당대회를 열자는 목소리가 조금씩 새나오는 모양이다. 4월 부산 영도 재선거로 국회에 돌아온 김무성 의원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분석도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재선거 때 금배지 중에서 영도를 가지 않은 사람이 없다더라. 전형적인 줄서기 아니냐”며 “이번 NLL 정국에서도 김 의원은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았고, 몇몇 실수에 대해선 언론도 상처를 주지 않겠다는 쪽으로 움직였다. 그가 바로 새누리당 절대 실세”라고 평했다.

국회에 있는 친박 중 구심점은 최경환 원내대표다. 박근혜정부에서 첫 비서실장, 경제부총리, 미래창조과학부장관 등 각종 설(說)을 달고 다닌 그는 결국 집권 여당 원내 수장을 택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의중을 국회에서 펼치는 역할에 적임자”라고 평했다. 하지만 지난 5월 이주영 원내대표 후보에 8표 차의 힘겨운 승리를 거둔 이후 당내 ‘최경환 비토 그룹’이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의원들의 협조가 그만큼 둔한 것도 결국 최 원내대표가 그만큼 대표성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굵직한 현안이 밀어닥쳤음에도 최 원내대표의 공간은 비좁기만 하다. 청와대에선 최 원내대표에 실망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6월24일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가 국회 정론관에서 ‘NLL 대화록’ 공개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연합뉴스
권력 틈새 노리는 잠재 실세들

그 틈을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가 비집고 들어가고 있다. 한겨레는 7월29일자 신문에서 ‘새누리당은 ‘윤상현당’? 대표보다 힘센 실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윤 수석부대표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건에 대한 새누리당의 단독 검찰 고발을 주도했다는 것이 요지다. 국회 출입을 오래한 한 정치부 기자의 분석이다. “사실 원내수석부대표 자리는 원내대표 부재 시 대타 역할을 하거나, 원내대표가 차마 하지 못할 궂은일을 물밑에서 조율하거나 진행하는 자리다. 그런데 윤(수석부대표)은 기삿거리가 없는 일요일마다 출근해 기자간담회를 열고 언론과 만난다. 최고위원회의, 원내대책회의 때 모두발언은 원내대표 선에서 그치는데 윤은 좀 다르다. 스스로 치고 나가는 경우가 많다. 새벽에 최 원내대표에게 전화한 적이 있는데 ‘잠 좀 잡시다’라며 짜증을 내더라. 윤은 그런 일이 없다.”

18대 국회에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 역할을 했던 이학재 의원은 인천시장 출마를 저울질하며 물러선 상태다. 반면 대구시장 출마를 염두에 둔 조원진 의원은 정보위원회 간사이자 당 제2정조위원장으로 NLL 정국과 대북·외교·국방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다. 서병수·유기준·정갑윤 의원과 이혜훈 전 의원 등 친박 실세들은 차기 지방 정권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같은 친박이지만 그 명암은 크게 엇갈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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