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공기업에선… ‘낙하산’ 내려가거나, 일손 놓거나
  • 안성모 기자·조수영 인턴기자 ()
  • 승인 2013.08.07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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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명된 공기업 수장 30명 중 8명 행복추진위 출신…인사 늦어지며 줄서기 극심

“휴가철이 지나면 정리가 될 것이다.” 최근 여권의 한 핵심 인사가 ‘공기업 인사’와 관련해 기자에게 한 말이다. 그는 “이전 정권에 비해 많이 늦어졌다. 좀 서두를 필요가 있다”면서 휴가철 이후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했다. 여권 내에서는 아직도 “우리가 집권한 것 맞느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대선 승리 이후 “논공행상이 제대로 안 됐다”는 불만이 여전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럴까.

<시사저널>은 공공기관의 경영 공시 자료를 통해 현재까지 기관장 인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실태 파악에 나섰다. 또 현 정권 출범 이후 새롭게 자리를 차지한 기관장은 어떤 인물인지도 꼼꼼히 살폈다. 수장이 공석이거나 교체를 앞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사실상 일손을 놓고 있는 공공기관의 현주소도 점검했다.

ⓒ 시사저널 포토
안택수 신용보증기금 이사장은 7월17일 임기를 끝냈다. 하지만 안 이사장은 여전히 이 기관의 수장으로 있다. 아직까지 후임자가 정해지지 않은 탓에 5년간 ‘장기 집권’한 그가 일일 이사장으로 일하는 해프닝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후임 인선이 늦어지면서 정책 금융 지원 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온다. 신용보험 사업의 경우 상반기에는 5조원을 집행했는데 하반기에는 3조원이 더 많은 8조원을 지원해야 한다. 새 이사장 인선이 계속 늦춰지면 자칫 사업도 지체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퇴임 기관장 17곳, 기관장 공석 21곳

현재 신용보증기금과 같이 기관장이 임기가 끝난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공공기관은 17곳이나 된다. 7월에 임기가 만료된 기관장으로는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 신영철 근로복지공단 이사장, 조성균 전략물자관리원 원장, 김학소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원장, 김풍식 농업정책자금관리단 단장, 이세섭 한국문화재보호재단 이사장 등이 있다.

이에 앞서 6월에는 김승환 (재)우체국시설관리단 이사장, 이성범 별정우체국연금관리단 이사장, 주덕영 한국로봇산업진흥원 원장, 정대종 코레일유통㈜ 사장 등의 임기가 만료됐다. 그 외에 김성태 한국정보화진흥원 원장과 김용근 한국산업기술진흥원 원장은 5월, 김문덕 한국서부발전㈜ 사장은 4월, 강윤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과 최형규 축산물품질평가원 원장은 3월, 김기학 한전원자력연료주식회사 사장은 1월에 임기가 끝났다. 기관장의 임기가 곧 만료되는 곳도 널려 있다. 8월에 5곳, 9월 3곳, 10월 6곳, 11월 10곳, 12월 8곳 등이다.

교체가 확실시되는 수장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공공기관의 경우 기관장의 영이 제대로 서지 않는 것은 물론, 직원들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황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 자원 개발업체 관계자는 “해외 사업의 경우 사실상 중단 상태에 있다. 예비 타당성 검토 얘기만 자꾸 꺼내는데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공기업만 쳐다보고 있는 민간 기업 입장에서는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아예 수장이 자리를 비운 공공기관도 21곳이나 된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국토연구원, 그랜드코리아레저㈜, 대한석탄공사, 여수광양항만공사, 한국거래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한국기상산업진흥원, 한국농어촌공사, 한국법제연구원,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한국산업단지공단,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한국지역난방공사, 한국철도공사, 한국해양과학기술진흥원, 한국수자원공사 등이다.

이 중에서 김현태 전 대한석탄공사 사장은 실적 부진을 이유로 사퇴를 권고받아 사임했고, 김경수 전 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은 새 정부 인사에 부담을 주지 않겠다며 스스로 물러났다. 강승철 전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도 임기 도중에 사퇴했다. 원전 위조 부품 파문으로 인해 김균섭 전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면직됐고, 안승규 전 한국전력기술주식회사 사장은 해임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MB)의 고려대 인맥으로 분류되는 김봉수 전 이사장이 수장 자리에서 물러난 한국거래소의 경우 한때 친박계 중진인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이 이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흘러나왔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소문이 확산되자 청와대는 6월10일 “사실무근”이라며 관련 내용을 일축했다. 그런 후 곧바로 ‘기관장 선임 잠정 중단’ 지침을 각 부처에 내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한국거래소는 전산 장애에 이어 야간 선물시장 거래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사장이 공석이라서 기강이 해이해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국가미래연·행복추진위·인수위 인사 ‘낙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공기업·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인사들을 낙하산으로 보낸다는 얘기가 많이 들린다. 이는 국민과 다음 정부에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MB를 직접 겨냥해 낙하산 인사를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그렇다면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후에는 공기업 인사에서 낙하산이 사라졌을까. 조사 결과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3월부터 8월1일 현재까지 기관장 인사가 단행된 공공기관은 모두 30곳이다. 이 중에서 8명이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개발 기구인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활동한 인사들이다. 당시 캠프 내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산하에는 17개 추진단이 있었다. 3월에 임명된 고학찬 예술의전당 사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 자문위원으로 일했다. 윤당아트홀 관장인 그는 박 대통령의 어머니 고 육영수 여사 헌정 공연으로 불리는 뮤지컬 <퍼스트레이디>를 공연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이다.

5월에 임명된 유현석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과 곽병선 한국장학재단 이사장, 옥동석 한국조세연구원 원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에서 외교통일 분야 추진위원과 행복교육추진단장, 정부개혁추진단장을 각각 맡았다.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유 이사장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의 외교통일 특보로 활동했다. 한국교육개발원 원장을 역임한 곽 이사장은 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교육과학분과 간사를 맡았다. 역시 국가미래연구원 출신인 옥 원장도 인수위원회 국정기획조정분과 인수위원으로 활약했다.

국토해양부(현 국토교통부) 차관 출신인 정창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지역발전추진단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사)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을 역임한 정현욱 (재)명동·정동극장 극장장과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출신인 박계배 (재)한국공연예술센터 이사장은 국민행복추진위원회 문화가 있는 삶 추진단 추진위원으로 활약했다. 정 사장과 정 극장장, 박 이사장은 모두 6월에 임명됐다. 7월 말에 임명된 손양훈 에너지경제연구원 원장도 국가미래연구원에서 환경에너지 분야를 담당했으며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지속가능국가추진단 추진위원으로 활동했다.

홍기택 산은 회장, 박 대통령과 ‘특별한 인연’

박근혜정부는 7월8일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 주재로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개최하고 ‘공공기관 합리화 정책 방향’을 심의·의결했다. 500조원에 육박하는 공공기관의 부채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기관장 선임에서 임원추천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정부가 공공기관 쇄신에 시동을 걸었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전망이 많다.

공공기관 개혁 방안은 정부가 바뀔 때마다 매번 나왔다. 김대중 정부 때는 공기업 민영화를 강도 높게 추진했고, 노무현 정부 때는 투명성을 높이고 경영 평가를 강화했다. 이명박 정부 때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낙하산 인사와 방만한 경영 등 고질적인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새 정부의 약속은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정권 초기에는 국민의 눈치를 보는 듯하지만, 중·후반기가 되면 대놓고 측근 보은 인사와 부실 방만 경영을 되풀이했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인사 잡음이 잦았다. 특히 금융 공기업과 일부 금융회사의 수장에 잇따라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이 선임되면서 ‘관치 인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한국가스공사의 새로운 수장으로 내부 인사인 장석효 사장이 임명된 것은 이러한 관료 출신 등용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 사장은 가스공사 공채 1기 출신이다. 앞으로도 공공기관의 수장은 관료보다 내부 출신이나 외부 전문가를 앉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모피아’와는 별개로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산업은행장 인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뒷말이 나온다. 물론 산업은행은 현재 공공기관이 아니다. 2012년 1월 공공기관 지정에서 해제됐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회 예산정책처는 별도의 보고서를 통해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고 있는 산업은행을 공공기관으로 다시 지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 회장은 박 대통령과 인연이 깊다. 박 대통령의 서강대 동문인 그는 박 대통령의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민행복추진위원회 정부개혁추진단 추진위원을 맡았던 홍 회장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경제1분과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MB의 경제 스승인 강만수 전 회장 후임으로 그가 인선되자 ‘MB 낙하산’이 물러난 자리에 ‘친박 낙하산’이 내려앉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낙하산의 꽃’ 감사 자리 경쟁 치열   


감사는 흔히 ‘낙하산의 꽃’으로 불린다. 기관장처럼 전면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대우는 그에 못지않게 좋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일은 편하고 급여는 많다는 인식이 강하다. 실제로 한전KPS의 경우 지난해 감사 연봉이 2억154만원이나 된다. 한국가스공사(1억9469만원)와 카지노를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GKL·1억7819만원)도 연봉이 2억원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정치권 주변에서는 공공기관 감사 자리를 노리는 이들이 줄을 섰다. 문제는 고액 연봉을 챙기는 감사 대다수가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감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정치권이나 관계 기관에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온 상당수 감사는 경영진 감시라는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오히려 기관장과 유착해 견제 기능 자체를 상실한 곳도 적지 않다.

아직까지 ‘감사 인사’는 본격화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현재까지 12명의 감사가 새롭게 임명됐다. 기관장 교체 시기가 늦춰지면서 감사 인사 역시 뒤로 밀리고 있는 것이다. 감사가 공석인 공공기관도 10여 곳 된다. 향후 감사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공공기관 쇄신의 성패가 좌우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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