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은밀한 침투를 차단하라
  • 김윤태 | 고려대 교수·사회학 ()
  • 승인 2013.08.07 13:24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립적인 규제 기구 설립 시급…‘공공기관 예비 타당성 자문회의’ 신설해야

동독은 공산권 가운데 가장 발전한 나라였다. 소련식 국영기업을 모방한 동독 통일사회주의당(SED)은 동독이 ‘노동자의 천국’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동독 노동자는 서독 텔레비전을 보고 서독 노동자가 더 잘산다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자동차를 갖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지만, 서독에는 집집마다 자동차가 있었다. 동독에는 은밀한 농담이 퍼졌다. “자동차를 신청하면 16년 후에 배송된다. 그때 주문한 모델 그대로다.” 물론 이런 농담을 하다 들키면 노동수용소로 끌려갔다.

1970년대까지 영국의 주요 산업도 국영기업 중심이었다. 1945년 노동당 정부에 의해 철도·전기·수도·가스·철강·석탄 등 기간산업 국유화가 이뤄졌다. 놀랍게도 보수당조차 국유화에 반대하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자본주의 경제에서 국영기업이 가장 많은 나라였다. 그러나 국영기업인 브리티시텔레콤(BT)에 전화를 신청하면 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전화기는 다이얼을 사용하는 검은색 한 종류였다. 이는 소련의 국영기업을 연상시켰다.

1979년 집권한 보수당의 대처 총리는 국영기업을 매각하고 민간 기업처럼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처는 국영 탄광 매각에 반대한 노조와 타협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결국 1년에 걸친 파업 끝에 노조는 패배하고 대처의 ‘자본주의 혁명’은 승리를 거두었다.

검찰은 6월20일 한국수력원자력 본사와 고리·월성원자력본부 사무실 등 9곳을 압수수색했다. ⓒ 연합뉴스
모든 국영기업은 실패했는가

한국에서도 공기업이야말로 ‘비효율성’의 대표적 사례이고, 민영화를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세력이 생겨났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김대중 정부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경제 관료들은 대처의 개혁이 곧 자기들의 목표라고 공언했다.

소련과 공산권의 붕괴를 자유 시장·자본주의의 승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공기업이야말로 ‘거대한 실패’라고 규정했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 제프리 삭스도 당시 탈공산주의 이행을 위해 ‘충격 요법’으로 국영기업의 전면 매각을 주장했다. 동독에서는 공기업이 매각되면서 실업률이 40%로 치솟았다. 대처 시대 영국에서도 실업률이 12%를 넘어섰다. 그러나 ‘자본주의 혁명가들’은 실업은 ‘혁명기’의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치부했다. 그런데 과연 모든 공기업이 비효율적인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철강기업으로 평가를 받는 포스코(포항제철)는 국영기업이었다. 1968년 포항제철을 설립할 당시 일본의 대형 철강기업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이고 철강 산업의 원자재도 없는 나라가 제철소를 만들겠다니, 도대체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포항제철은 일본의 제철기업보다 월등한 조강 능력을 가지고 경쟁력에서 우위를 보였다. 당연히 철을 쓰는 자동차와 조선 산업 경쟁력도 강해졌다. 포항제철이라는 공기업이 설립될 당시 최대 재벌인 삼성은 설탕과 밀가루를 만들고 있었다. 

물론 포항제철의 사례가 모든 공기업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개발도상국 공기업 가운데 부실한 경영으로 수익성이 낮은 기업도 있다. 또한 상당수의 개발도상국 정치인들이 정치적으로 선호하는 집단에 대한 특혜를 주는 수단으로 공기업을 이용하기도 한다. 정치인들이 공기업 경영진 임명, 직원 채용, 외주 계약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정치인과 특수 이익집단이 특혜와 정치적 지지를 교환하는 ‘후견주의’가 민주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나라에서 심하다.

한국에서도 정치권과 공기업의 후견 정치가 심각한 폐해를 만들고 있다. 정권 교체 때마다 나오는 낙하산과 관치 인사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았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공기업 감사의 전문성이 경영 성과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치권의 후견 정치가 공기업 감사 자리에 무능한 인사를 대거 임명하는 관행에서 나타나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기업 경영은 부실해지고 있는데 급여와 상여금만 챙기는 내부 이기주의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장치도 중요하다. 정부가 공기업의 주인인 국민을 대신해 대리인으로서 공기업 경영진을 통제해야 한다. 공기업이 무책임하게 상여금을 인상하지 못하도록 경영 성과와 연동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 원전 비리가 불거진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의 경우처럼 비리가 드러나면 일벌백계해야 한다.

심각해지는 공기업 부채

최근 공기업 경영에 빨간불이 켜졌다. 특히 공기업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2006년 117조7000억원이던 공기업 부채는 2010년 292조원, 2011년 329조5000억원 등 기하급수로 증가했다. 공기업 부채가 크게 늘어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세종시와 혁신도시 건설, 이명박 정부가 벌인 4대강 사업, 보금자리 사업 등 대규모 국책사업의 영향이 크다. 그 외에 전기 등 공공요금 인상의 억제도 부채 누적에 악영향을 미친다. 박정수 이화여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공기업에 지원되는 정부 예산은 2012년 36조9000억원으로 총 예산의 11.3%에 달한다.

공기업의 부채 위험성이 곧 공기업의 파산 가능성을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한국전력공사, 대한석탄공사, 한국철도공사는 부채 위험 진단 결과 ‘매우 위험’으로 나타났다. 심각해지는 공기업 부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적극적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공공기관의 예비 타당성 조사 범위를 확대하고 실효성을 제고해야 한다. 둘째, 경영평가 제도를 개선해 상시적인 평가와 조기 경보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셋째, 공기업 부채를 국가 관리 대상 부채와 공기업 자체 부채로 나누어 구분 회계를 적용해야 한다.

특히 정부의 입김에 의해 제대로 타당성 조사도 없이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동안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어떻게 비용을 정의할 것인지, 어디까지 편익에 포함시킬 것인지의 기준이 분명하지 않았다. 1999년부터 예비 타당성 조사가 시작됐고 2006년에는 국가재정법이 도입됐지만 새만금 개발, 용산 역세권 개발 등 비용 대비 편익이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된 국책 사업들이 그대로 진행됐다.

게다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면제되는 대행 국책 사업이 큰 문제를 야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명박 정부가 벌인 4대강 사업이다. ‘쑥대밭’이 된 4대강을 보는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이러한 정치권의 부당한 영향력을 차단하는 독립적인 규제 기구의 강화가 시급하다. 예비 타당성 조사 단계에서 다양한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해야 하며, ‘공공기관 예비 타당성 자문회의’를 신설해 평가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치권과 결탁해 무리한 사업을 벌인 경영진은 책임을 져야 한다. 결국 공기업의 실적 개선은 기술적 문제나 경제학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다. 당연히 공기업 경영이 잘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치 개혁이 필요하고 공공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 공기업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