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 절벽’ 뚫을 묘수가 안 보인다
  • 박일한│헤럴드경제 경제부 기자 ()
  • 승인 2013.08.0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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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 정부 닮아가는 부동산 정책…시장 내성만 키워

8월1일 오후, 서울 지하철 3호선 도곡역 주변 A공인중개사무소. 이 지역 중개업소 모임 대표인 김 아무개 사장과 몇몇 중개업자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중개업자는 “며칠 전 정부가 ‘취득세 영구 인하’ 방침을 발표한 이후 전화 문의조차 사라졌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 이렇게 모여 푸념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개업자는 “매매 상담을 하던 고객조차 물건 보는 걸 중단하고 취득세 인하 계획이 확정된 후 진행하자고 했다”며 울상을 지었다. 김 아무개 사장은 “이 지역 분위기는 다 똑같다. 취득세를 내려주겠다고 예고한 마당에 지금 누가 주택을 사겠느냐”며 “당분간 매매 계약은 포기해야 할 것”이라며 답답해했다.

정부가 7월22일 주택시장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취득세율을 영구적으로 인하한다고 발표하자 ‘거래 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가뜩이나 7월 비수기에 접어들어 매수 심리가 바닥인데 취득세 감면 계획까지 발표됐으니 주택 수요자들이 굳이 앞서 집을 살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서울 개포동 우정공인 김상열 사장은 “최근 급매물도 다시 늘어나는 추세여서 매수자들은 더 느긋해졌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반포동의 반포자이아파트 전경. ⓒ SH공사 제공
■ 불확실한 정책, 거래난 부채질

정부는 취득세율 영구 인하 방침을 굳혔지만 아직 인하 폭, 소급 적용 여부 등은 확정하지 않았다. 정부는 8월 말 세부 방안을 정해 9월 국회에 상정할 계획이지만 세수 감소를 우려하는 지자체의 반발 등 걸림돌이 많다.

전국 시·도지사협의회는 정부에 취득세율 인하 논의를 즉시 중단하라고 요구한 상태다. 정부가 취득세 인하 세부 방안을 계획대로 9월 국회에 상정한다고 해도 쉽게 통과될지 미지수다. 여당과 야당 모두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 재정이 악화할 것을 우려해 취득세 인하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여당 일각에서는 뒤늦게 지방세인 재산세와 국세인 종합부동산세(종부세)를 합쳐 ‘종합재산세’를 신설해 지방세로 돌리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결국 증세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와 함께 오히려 주택 거래를 더 위축시킬 것이라는 비판이 나와 시행 여부가 불확실하다.

불확실한 정책 방향은 가뜩이나 얼어붙은 시장을 더 위축시킨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취득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수요자가 움직일 리 없다”며 “매매 대기자 일부가 전세 시장을 기웃거리면서 올가을 전세 부족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8월2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거래량(신고일 기준)은 1871건으로 전달(9030건)의 5분의 1에 불과했다. 지난해 동기(2783건)와 비교해도 33%나 적다. 특히 강남권 아파트 거래량은 폭락 수준이다. 강남구(93건), 서초구(52건), 송파구(56건)는 모두 두 자릿수 거래량을 기록했다. 강남권 아파트 거래량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인 2008년 12월 이래 처음이다.

주택 거래가 급감하면 급매물이 쌓이고 시세는 하락하기 마련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4월부터 6월까지 상승세였던 전국 주택 시세는 7월 -0.07% 변동률을 기록하면서 하락세로 돌아섰다. 특히 수도권 집값 하락 폭이 컸다. 지난 7월 서울 집값은 0.43% 떨어졌고 경기도도 0.24% 빠졌다.

단지별로 최근 한두 달 사이 1억원 가까이 급락한 곳도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101㎡형은 올 초 7억2000만원에 거래되다 4·1 부동산 대책 발표 직후 8억2000만원까지 올랐으나 6월 말부터 급매물이 다시 늘어나더니 현재 7억3000만원에도 매물이 나와 있다.

전세금은 지난 7월에도 0.3% 상승하는 등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수도권은 0.39% 뛰었다. 기존 전세 거주자는 주택 구입을 미룬 채 재계약을 하고 있고, 신혼부부 등 신규 주택 수요자도 매매보다 전세를 찾으면서 전세 수요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취득세 감면 시행 시기가 늦어지면 주택 거래량이 급감하는 반면 전세금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며 “정책 집행 시기를 놓치면 시장 침체가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 후속 대책이냐, 추가 대책이냐

7월24일 정부는 2016년까지 4년간 수도권에서 주택 약 18만 가구의 공급을 축소하는 ‘수도권 주택 공급 조절 방안’을 내놓았다. 우리나라 정부 출범 이래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주택 공급을 줄이는 대책이다.

2016년까지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이 짓는 11만9000가구의 공공분양주택 사업을 축소 또는 연기하고, 민간 건설사가 짓는 주택도 사업 승인을 까다롭게 하며 대한주택보증이 정하는 분양 보증 수수료를 높이는 등으로 공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지난 4월 주택 시장 활성화를 위한 방안으로 내놓은 ‘4·1 부동산 대책’의 ‘후속’ 대책이라고 강조했다. 새로운 부동산 정책이 ‘추가’된 추가 대책이 아니라 지난 4월 발표한 대책의 연장선에 있는 후속 대책이라는 것이다.

정책을 내놓는 정부 입장에서는 후속 대책인지, 추가 대책인지가 매우 중요해 보인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추가’적인 부동산 정책을 수시로 내놓으면서 정책의 신뢰를 잃었다는 비판이 많았기 때문이다.

도태호 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장은 “주택 거래 활성화를 위한 4·1 대책은 정부가 추진하려는 종합적인 대책이었고, 후속 조치에 대한 논의가 분야별로 정부 부처 간에 계속 진행되고 있다”며 “이번에 공급 축소와 관련한 후속 방안으로 세부 계획을 내놓은 것일 뿐 추가 대책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정책의 일관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달랐다.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낸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대책을 내놓느냐” “4·1 대책이 3개월여 만에 약효를 잃자 부랴부랴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가 대책을 또 내놓았는데 중·장기 효과만 있는 주택 공급 축소 방안에 불과해 당장 시장에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시장에선 이번 정부의 대책을 그저 새로운 추가 대책으로 보고 당장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니 또 다른 추가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곽창석 ERA코리아 부동산연구소장은 “시장 참여자의 입장에서 정부가 내놓은 것이 후속 대책인지, 추가 대책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다만 시장에 영향을 미칠 만한 효과적인 대책을 적기에 제대로 내놓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승환 국토부장관을 비롯해 관련 부처 차관들이 4월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 주거 안정을 위한 주택 시장 정상화 종합대책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명박 정부 실책 답습?

4·1 대책과 7·24 대책 발표로 박근혜정부가 다시 과거 정부가 저질렀던 부동산 정책의 실수를 답습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후속 대책이건 추가 대책이건 부동산 대책을 수시로 내놓으면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성은 떨어지고 부동산 시장은 관망세가 짙어져 얼어붙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우 2008년 6월부터 2012년 5월까지 2개월에 한 번꼴로 대책을 발표하는 등 큰 것만 22건의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매번 “추가 대책은 없다.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안정될 것”이라고 했지만 금세 또 다른 대책을 내놓길 반복했다. 특히 여러 규제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처방을 내리지 않고 1~2개 규제를 조금씩 풀어 시장 참여자들이 “다음에 뭐가 또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시장은 정책에 대한 내성이 커져 관망세만 키웠다.

이런 방식은 박근혜정부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는 당장 4·1 대책의 후속으로 부동산 정책을 수시로 발표할 계획이다. 도태호 국토부 주택토지실장은 “정부 부처 간 협의와 국회 법안 통과 속도에 따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을 담은 후속 대책은 계속 나온다. 취득세·양도소득세 등 각종 부동산 세제 완화 방안이 빠르면 8월에 나오고, 수직 증축 리모델링 활성화 계획, 하우스푸어·렌트푸어 지원 방안 등도 계속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 정부, 입법 과정 좀 더 신중해야

부동산 정책을 입법하는 방식도 과거의 실책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국회나 지자체의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미리 대책을 발표한 후 입법을 강제하는 과정이 잘못됐다는 것이다.

취득세 영구 인하 계획을 무작정 발표부터 한 후 지자체와 국회의 반발을 야기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이재국 서일대 교수는 “아무런 협의 과정 없이 정책부터 발표하고 시장에서 거래가 안 되니 빨리 통과시켜달라고 국회나 지자체에 압력을 행사하는 것은 위험한 입법 추진 방식”이라며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분양가 상한제 폐지, 수직 증축 리모델링 허용, 목돈 안 드는 전세 제도, 정비 사업 조합원의 2주택 소유 허용 등을 담은 관련법을 국회에 상정해놓았지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한 상태다. 국회와 지자체가 반발할 사안이 많기 때문이다.

발표부터 하고 국회를 압박했지만 계획대로 안 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사례는 이명박 정부 때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분양가 상한제 폐지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관련법이다. 2009년부터 매번 정부 추진 규제 완화 계획에 포함돼 정부 발의로 국회에 상정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관련법이 통과되지 못해 건설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시장 침체가 심화한다고 주장했다. 지규현 한양사이버대학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국회나 지자체와 협의 없이 부동산 규제 완화를 추진하다가 좌절된 사례가 계속 생기면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다”며 “박근혜정부에선 상시 협의체를 만들어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신뢰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시장은 당분간 심각한 ‘거래난’에 빠지고 ‘전세 부족’에 시달릴 게 불 보듯 빤하다. 취득세 인하 시행 시기가 빠르면 10월, 늦으면 내년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김동수 한국주택협회 진흥실장은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규제 완화에 대한 세부 계획을 최대한 빨리 확정하고 국회에서 법제화를 서두를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며 “정책에 대한 불안이 없도록 소급 적용 방침 등을 명확히 하지 않으면 시장의 혼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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