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 16세의 목을 베지 말아야 했나?”
  • 최정민│파리 통신원 ()
  • 승인 2013.08.0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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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국의 모태 프랑스, 영국 로열 베이비 탄생에 부러움 가득

“진정 프랑스는 루이 16세를 참수하지 말았어야 했나?” 영국 왕실의 경사를 두고 열광하는 프랑스인들을 보며 프랑스 일간지 르 피가로의 막심 파르고 기자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7월22일 세계의 시선을 집중시킨 로열 베이비에 대한 관심은 프랑스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프랑스의 케이블 채널 BFM TV와 I-TELE는 실시간 생중계를 했다. 트위터에서도 로열 베이비에 관한 메시지가 분당 2만5300건을 넘어서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2011년 윌리엄 왕세손과 케이트 미들턴 비의 결혼식 중계를 지켜본 프랑스 국민이 900만명이었으니 왕가에 대한 관심은 늘 뜨거웠던 셈이다.

(위) 로열 베이비의 탄생 소식은 영국 모든 신문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 AP 연합. (아래)7월23일 세인트메리 병원을 나오며 조심스럽게 아들을 안고 있는 영국의 윌리엄 왕세손. ⓒ PPA 연합
파리 백작의 왕정복고 노력

고운 시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시사주간지 <누벨 옵세르바퇴르>의 미디어 분석가인 프랑수아 조스트는 이런 현상을 두고 “구역질 나는 프랑스 미디어들의 보도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민영방송인 TF1조차도 출산 소식을 간단히 전하고 다른 심각한 사안을 다루고 있는데 공영방송인 France2는 로열 베이비 출산 보도에 20여 분이나 시간을 할애했다”고 강도 높게 비판하며 프랑스 미디어들의 이번 취재 경쟁을 ‘총체적인 실패작’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프랑스는 공화국의 모태다. 그런데 이번 사례에 비춰보면 왕가에 대한 관심도 높다. 질문을 던졌던 막심 파르고 기자는 자신의 기사에서 “프랑스인들은 공화제 지지자들이지만 그렇다고 왕에 대한 반감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앙리 4세와 같은 왕에 대해선 여전히 우호적이다”라는 역사학자 베르나르 코르테의 말을 인용했다.

왕가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열광을 ‘상징적 결핍’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있다. 현 대통령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영부인 자격을 지니고 있는 발레리 트라이바일러와 정식 부부가 아닌 동거 관계다. 과거 시라크 대통령 때만 해도 그럴듯한 ‘지도자의 풍채’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이 사라졌다는 뜻이다. 직전의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혼을 두 번이나 했고, 대통령 재임 기간 중에 재혼해 화제가 됐다. 당시 사르코지는 프랑스 역사상 처음으로 엘리제궁에서 딸을 출산하는 경사를 누렸지만 환대는커녕 지지율조차 오르지 않았다.

프랑스에도 왕정복고를 꿈꾸던 때가 있었다. 왕정복고에 가장 근접했던 인물은 앙리 도를레앙이다. 그는 프랑스의 마지막 왕 루이 필립의 직계 후손이었는데 공식적으로 ‘파리 백작’이라는 칭호를 가졌던 사람이다. 1999년 6월19일 90세로 사망할 때까지 프랑스 왕가의 비공식적인 왕위 계승자였다. 그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던 파리 남쪽의 드로 왕실 성당에는 당시 모나코의 국왕 레니에 3세와 지금은 국왕이 된 알베르 왕자를 포함해 유럽의 왕족 100여 명이 참석했다. 그의 적통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파리 백작으로 유명했던 앙리는 1886년 프랑스에서 ‘왕의 장자는 프랑스에 머무를 수 없다’는 법이 제정되면서 벨기에·모나코·스페인 등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하지만 1950년 이 법이 폐지되면서 프랑스로 돌아와 왕정복고를 꿈꿨다.

왕실 전문가인 스테판 베른은 “당시 왕실에 우호적이었던 샤를르 드골 대통령은 자신의 재선 불출마를 약속하며 앙리에게 대선에 출마할 것을 권했다”고 전했다. 합법적인 권력을 잡은 후 국민투표를 통해 왕위를 되찾으라고 드골이 조언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드골의 암묵적인 후원 속에 앙리는 야심차게 왕정복고를 준비했다.

실제로 당시 그의 가족은 전 국민의 사랑까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영국 왕실과 같은 정도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2차 대전 직후 앙리의 재산은 당시 화폐로 10억 프랑 정도로 추정됐다. 특히 프랑스 고성으로 유명한 관광지 뚜르의 앙부아즈 성과 그의 장례 미사를 지낸 드루의 왕실 성당을 비롯해 포르투갈 퀸타의 가족별장, 루이 14세 때부터 내려온 각종 유화, 진귀한 보석 등 추정이 불가능할 정도의 재산을 지녀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대부호로 유명했다.

앙리는 이러한 재력을 통해 왕정복고를 실행에 옮겼다. 일주일에 2차례씩 40여 명의 각계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연회를 베풀었고, 11명의 자식들과 함께 전형적이며 이상적인 프랑스 가정상을 보여주려고 애썼다. 텔레비전과 방송의 중요성도 인식했다. 왕실과 자신의 이미지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자신의 성에 전문 스튜디오를 만들고 그곳에서 텔레비전 연설을 연습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이러한 노력은 수포로 돌아간다. 드골이 약속을 깨고 재선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후 ‘파리 백작’이 꿈꾸던 왕정복고도 백지화됐다.

유럽 사회가 왕실에 대해 갖는 관심은 오래됐다. 필립 샤센 교수(몽텐 드 미셀 대학·현대사)는 “우리는 이미 1990년대 이후 스타 시스템 사회에 들어왔는데 왕실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케이트 미들턴이 영국 왕실의 일원이 되자 여동생인 피파 미들턴이 덩달아 스타덤에 올랐다. 모나코 왕족 일가를 비롯해 유럽 주요 왕실 가족은 미디어의 주요 관심 대상이다. 오히려 왕가의 인물이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경우도 있다. 영국 왕족인 알렉산드리아 공주는 프랑스의 리얼리티쇼에 출연했고 칸 영화제 때마다 플래시 세례를 받는다.

왕실에 대한 호불호는 군주국가에서 더 민감

왕실에 대한 호감과 반감은 공화국보다는 현재 왕실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 더 민감하게 작동한다.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대표적이다. 공교롭게도 두 나라는 왕과 여왕이 올해 들어 왕위를 양위했다. 벨기에 알버트 2세는 필립 왕세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네덜란드의 베아트릭스 여왕의 자리는 빌렘 알렉산더 왕세자가 계승했다.

왕실의 존재가 정치적으로 어떤 효력을 나타내는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경제 위기 땐 왕실이 정부나 국민의 눈치를 본다는 점이다. 벨기에의 경우 왕실 예산을 삭감하는 법안이 통과됐고, 네덜란드는 즉위식 비용을 700만 유로에서 500만 유로로 감축했다. 때로는 왕실 행사들이 지역 경제나 소비 지출에 쏠쏠한 촉매제가 되기도 한다. 네덜란드 국왕이 즉위할 때 전통 모자와 새로운 국왕의 모습이 그려진 머그잔 등 다양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번 영국의 로열 베이비 역시 4000여 억원의 경제 효과를 창출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베이비노믹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유형의 경제적 이익보다 계산할 수 없는 무형의 자산이 왕실을 더욱 돋보이게 할 때도 있다. 국민들 마음속에 왕실의 존재는 퍼레이드 같은 구심점이다. 영국 로열 베이비 탄생이나 벨기에·네덜란드의 즉위식 때 온 나라가 들썩이는 경험은 국가의 소중한 자산이 된다.

스펙터클하고 멋진 왕실의 모습이 부러운 것일까. 로열 베이비에 열광하는 프랑스인들을 보면 ‘왕의 목을 벤 나라’라는 프랑스인들의 자부심이 퇴색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르 피가로 기자는 또 묻는다. “진정 루이 16세의 목을 베지 말았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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