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음료’란 말에 깜박 속았네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8.07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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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카페인 음료에 취한 10대 심장마비·골다공증 등 부작용 우려

전성훈군(세종과학고 1년)은 카페인이 식물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실험했다. 전군은 “카페인 농도를 각각 달리한 토양에 상추 씨앗을 심었는데, 카페인 함량이 많을수록 발아가 잘 안 되고, 발아돼도 잘 자라지 않은 것으로 보아 카페인이 식물 성장을 방해한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또 한 여고생은 고(高)카페인 음료 회사의 꼼수를 지적했다. 최근 청소년을 대상으로 고카페인 음료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던 조수연양(대원외고 1년)은 “고카페인 음료의 위해성에 대한 인식이 낮아 놀랐다”며 “음료회사가 고카페인이라는 말 대신 에너지라는 표현을 쓴 것이 그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고카페인 음료란 ㎖당 0.15㎎ 이상의 카페인을 함유한 음료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한 캔에 60~200㎎의 카페인이 들어 있다.

고카페인 음료의 주소비층인 10대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고카페인 음료의 위해성을 알리기 시작했다. 고카페인 음료 회사들이 고카페인이라는 용어 대신 에너지 음료라고 홍보하고, 과즙을 조금 섞은 고카페인 음료에는 과즙 음료라는 글자를 크게 표시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성분 표기에도 카페인 대신 과라나 추출물이나 천연 카페인이라는 용어를 쓴다. 건강에 큰 해를 주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풍긴다. 황태영 중원대 한방식품공학 교수는 “고카페인 음료가 에너지·과즙·천연이라는 이름을 달고 마치 건강에 도움을 주는 음료로 인식되는 점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카페인에 빠진 10대, 구토·수면 장애 호소

2010년부터 쏟아진 고카페인 음료는 2011년 300억원에서 2012년 1000억원 규모로 시장을 키우며 박카스로 대변되는 피로회복제 시장을 앞질렀다. 이 시장은 올해 2000억원대로 커질 전망이다. 레드불(오스트리아)·몬스터(미국) 등 외국산 고카페인 음료가 국내에 상륙했고, 국내 음료회사와 제약사, 심지어 한국인삼공사까지 제품을 내놓았다. 한국인삼공사 관계자는 “제품을 출시했지만 외국산 제품이 득세해서 (우리는) 앞으로 더 생산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시장이 커진 데는 카페인 성분이 한몫했다. 적당량의 카페인 섭취는 졸음을 쫓고 피로를 풀어줘 정신을 맑게 한다. 그러나 카페인은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하는 향정신성 물질이다. 카페인 중독(caffeinism)이라는 용어가 엄연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카페인의 위해성은 니코틴(담배)이나 알코올(술)만큼 주목받지 못했다. 신체와 정신에 큰 해를 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섭취한 카페인이 몸에서 완전히 빠져나가기까지는 12~24시간이 걸린다. 하루 한 차례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는 것만으로도 1년 365일 인체에 항상 카페인이 쌓여 있는 셈이다. 카페인이 몸에서 거의 빠져나갈 무렵부터 금단 현상이 생긴다. 두통, 화, 집중력 저하, 노곤함, 불면증, 위장·관절 통증이 대표적이다. 제대로 쉬지 않고 고카페인 음료에 의존하면 불면증, 신경과민, 메스꺼움, 위산 과다, 두근거림, 심장 이상 등의 증상도 나타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자료에 따르면 중·고등학생 200명 중 58%가 매일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고, 이 중 70%는 무심코 또는 습관적으로 고카페인 음료를 찾는다. 시험 기간에는 고카페인 음료를 달고 사는 청소년이 더 많다. 한 고등학생은 “잠을 자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를 하루에 몇 캔씩 마신다”며 “그런 생활을 며칠씩 하면 어지럽고 구토가 나온다”고 말했다.

10대는 주로 잠을 쫓기 위해 고카페인 음료를 마시지만, 결과는 오히려 그 반대로 나타나고 있다.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등이 지난해 전국 중·고생 54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카페인 음료를 마신 학생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부작용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든 점(60.5%)이었다. 항상 피로하다는 청소년도 46%나 됐다. 

중독성 강한 고카페인 음료 공동 구매도

최근 미국, 캐나다 등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 10대 청소년이 사망 직전에 고카페인 음료를 마신 것으로 알려지면서 논란이 됐다. 카페인은 심장 박동을 증가시키면서 불규칙하게 만든다. 유준현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흡연을 하거나 비만인 학생의 심장 혈관은 성인처럼 좁아질 수 있다”며 “며칠씩 잠을 자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은 데다 고카페인을 섭취하면 심장 혈관이 터져 심장마비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고카페인 음료를 즐기는 청소년은 성인이 된 후 골다공증에 걸릴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정완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고카페인 음료를 자주 마시면 유제품 섭취량이 그만큼 줄어드는데, 골 형성이 중요한 청소년기에 칼슘 부족인 채로 성인이 되면 골다공증이 유발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음료업체들은 “고카페인 음료의 카페인 함량은 커피보다 적다”고 항변한다. 카페인 함유량은 레드불 62.5㎎, 핫식스 60㎎으로 커피믹스(69㎎)보다 적다. 그러나 일부 고카페인 음료에는 200㎎이 넘는 카페인이 들어 있다.

미국이 정한 하루 카페인 적정량은 성인 기준 400㎎이고, 임산부는 300㎎이다. 15~19세 청소년은 남자 160㎎, 여자 133㎎이다. 그 이하는 몸무게 1㎏당 2.5㎎인데, 30㎏인 아이는 하루에 75㎎ 이하가 기준이다. 고카페인 음료 한 캔으로도 하루 적정량을 넘기기 십상인 셈이다. 청소년은 아이스크림, 초콜릿, 탄산음료를 더 즐기기 때문에 실제 카페인 섭취량은 성인보다 많다. 게다가 청소년들이 편의점·문방구·자판기 등에서 고카페인 음료를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각성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음료에 커피나 각종 음료를 섞어 마시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청소년 사이에 잠이 안 오는 묘약으로 꼽히는 ‘붕붕 드링크’다. 고카페인 음료에 비타민, 이온음료, 숙취 해소 음료 따위를 섞은 것이다. 외국 쇼핑몰에서 더 농도가 짙은 고카페인 음료를 공동으로 구매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는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미국 미시건 주 등은 18세 이하에게 고카페인 음료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했다. 캐나다 뉴브런스윅 주는 모든 상점에서 판매하는 고카페인 음료에 경고문을 부착하는 법안을 주 의회에 상정했다. 노바스코샤 주에서는 의사협회가 19세 이하 청소년에게 고카페인 음료를 팔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주 정부에 요청했다. 호주는 고카페인 음료를 의약품으로 분류해서 판매하고 있으며, 노르웨이는 약국에서만 팔도록 하고 있다. 스웨덴은 15세 이하에게 고카페인 음료를 판매하는 행위를 금지했다.

무엇보다 사회적 스트레스를 줄여 고카페인 음료가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들려는 근본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카페인 함량이 일정량 이상이면 약국에서 판매해야 한다는 제안도 있다. 카페인은 피로감을 임시로 감소시킬 뿐이지 그 자체가 수면을 줄여주지는 못한다는 점을 청소년도 알아야 한다. 졸음을 쫓기 위해서는 환기를 자주 하고, 스트레칭을 하거나 신선한 과일을 먹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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