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중 쉬어, 차렷, 똑바로 하란 말이야”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8.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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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코드 <진짜 사나이> 시청률 대박…상명하복 집단성 전파 우려

한동안 군대 코드를 예능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은 흔히 가장 듣기 싫은 이야기로 남자들의 군대 회고담을 꼽았다. 그랬던 군대 코드가 요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전혀 희망이 안 보이던 <일밤>을 <아빠! 어디 가?>와 더불어 군대의 <진짜 사나이>가 살리고 있는 것이다. <진짜 사나이>는 최근 시청률이 16%에 육박하며 대박을 터뜨렸다.

<1박2일> 전성기 시절에 이 프로그램에 조금만 안 좋은 평을 하면 악플이 줄줄이 달렸다. 그만큼 열성적인 팬덤이 형성됐다는 얘기다. <무한도전>에서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그런데 요즘 <진짜 사나이>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적대적인 반응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 정도로 강력한 팬덤이 형성됐다는 이야긴데, 불과 얼마 전까지 군대 코드가 예능에서 찬밥 신세였다는 점을 상기하면 놀라운 변화다. 케이블TV 쪽에서도 군대를 다룬 <푸른거탑>이 돌풍을 일으켰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MBC ⓒ MBC 제공
군대 코드는 이미 진작부터 사회에서 인기를 끌었다. 그런 사회 흐름이 결국 예능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 것이다. 요즘 사회에선 병영 체험이 인기다. 얼마 전에 미인가 해병대 캠프에서 학생들이 사고를 당해 큰 논란이 일었지만 그렇다고 병영 체험의 인기가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 사고가 터졌을 때 문제가 된 건 해당 캠프가 ‘짝퉁’이란 점이었다. 그건 진짜 해병대 캠프는 괜찮다는 이야기이고, 이 사건을 통해 ‘진퉁’ 해병대 캠프의 가치가 오히려 올라간 측면도 있다.

병영 체험 전성시대

2000년대 초반 2~3개였던 사설 해병대 캠프 업체 수가 현재 30여 개로 늘었다는 데서도 해병대의 인기, 혹은 병영 체험의 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충청남도교육청은 2010년 산하 교육청에 공문까지 보내 학생들의 병영 체험을 권장하기도 했다. 다른 시·도 교육청도 마찬가지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2년 한 해 동안 국방부가 시행한 병영 체험 훈련에 입소한 청소년만 74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여기에 각종 사설 시설까지 합치면 엄청난 규모가 될 것이다.

청소년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요즘에는 교사들에게도 병영 체험을 권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기업 신입사원들에게도 극기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병영과 비슷한 합숙 훈련이 요구된다. 언론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적극 동참한다. “나도 특전사…30℃ 웃도는 폭염 속 특전 캠프…한계 상황을 극복하는 극기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매력”(SBS <8뉴스>), “특전사 여름방학 극기 캠프…더위쯤이야”(MBC <뉴스데스크>), “한파 속 해병대 캠프…나도 할 수 있다”(KBS <뉴스12>) 등 수많은 매체에서 병영 체험의 매력을 전했다.

최근에는 밀리터리 마니아라는 이름으로 군사 문화를 일종의 취미로 즐기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통적으로 군사 문화의 대척점이었던 대학 캠퍼스에까지 군대 코드가 밀려들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 지방 대학에서 선후배 간에 군대식 인사가 이뤄진다는 보도가 나와 세상을 경악케 했다. 심지어 한 지방 국립대에서는 MT 때 군대 조교 모자를 쓴 선배가 나타나 군기를 잡기도 했다고 한다. 이것이 과연 21세기 민주공화국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지 얼떨떨하기만 하다.

ⓒ tvN 제공
군대를 그리워하도록 만든 사회

군대 코드 전성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전통적인 이유이고 또 하나는 새로 생긴 이유다. 전통적인 이유는 병영 체험을 해야만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사고방식이다. 한국은 국민을 개미처럼 일하는 몰개성의 순응적 산업 역군으로 만들어 고속 성장을 일궜다. 자유롭게 태어난 인간을 몰개성의 일꾼으로 탈바꿈시키는 곳이 바로 군대다. 그래서 군대를 다녀와야만 건설적인 사회인이요 경제인이 된다는 신화가 자리 잡았다.

한국 사회 주류 코드가 군사 문화이기 때문에 병영에서 그것을 체득해야만 향후 사회생활에 이로운 측면도 있다. ‘안 되면 되게 하라’라는 군인 정신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기 때문에 병영형 국민을 찍어내야 나라 경제에 돌파구가 열린다는 믿음도 있다. 제멋대로 커서 폭력 사건이나 일으키는 아이들에게 협동심·인내심 같은 인간적 덕목을 가르치려면 군대가 최고라는 믿음도 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전통적 사고방식에 입각한 이유라고 하겠다.

새로 생긴 이유란 21세기 들어서 발생한 무한 경쟁·양극화 피로 사회를 가리킨다. 모두가 낱낱의 원자가 돼 무한 경쟁으로 극심한 긴장 속에 있다 보니, 온 마음으로 안주할 수 있는 집단을 그리워하게 됐다. 거대한 집단의 일부가 되는 순간 불안감과 무력감이 사라지고 마음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래서 병영 체험이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유행하고, 군대 예능이 시청자의 호응을 받는 것이다. 군대에서 극단적인 체험을 함께하며 출연자 사이에 강한 전우애가 싹트고, 그런 우애가 현실의 각박함을 녹이며 시청자를 감동시킨다.

21세기 들어서 전개된 꽃미남 전성시대에 대한 반발 측면도 있다. 너무 고운 남자, 여성적인 남자, ‘초식남’들이 많아지다 보니 강하고 거친 매력에 대한 욕구가 생겨났다. 얼마 전부터 ‘남자다잉~’ ‘상남자’ 같은 대사가 유행했다. 이런 여러 가지 배경에서 군대 코드 전성시대가 찾아왔는데, 문제는 이것이 21세기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금은 한국에 민주공화국을 성숙시키고, 창조경제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때다. 지금 필요한 건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질 당시의 몰개성적이고 순응적인 ‘개미 떼’가 아니라, 창조적이고 당당한 개인으로서의 근대 시민이다. 순응적 산업 역군 집단으로는 시민사회를 발전시킬 수도, 창조경제를 꽃피울 수도 없다.

병영 체험을 통해 인간적 덕성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믿음에는 근거가 없다. 그렇다면 국민 상당수가 군대에 다녀온 한국 사회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모범 사회가 됐을 것이다. 병영 체험은 그저 복종하는 인간, 충성하는 인간, 집단적 인간을 만들 뿐이다. 이것이 윗사람들에겐 ‘좋은 교육’처럼 보일지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 진정한 시민적 덕성은 복종이나 집단성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자가 학생들에게 복종 훈련을 시키고, 대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복종 체계를 받아들이며, 예능에서까지 상명하복의 집단성이 인기를 얻는 현실이 우려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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