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벗어던지고 문화를 보다
  • 조철 기자 (2001jch@sisapress.com)
  • 승인 2013.08.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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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 출간한 유홍준 교수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64)가 이번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 가서 우리 문화를 봤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반성할 것도 많았다. 그래서 펴낸 책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이다. 유 교수가 일본 답사를 떠난 이유는 하루 약 1만명이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데도 서로를 잘 모른다는 현실과 올해 들어 한일 관계에 바람직하지 않은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한일 간의 불편한 관계는 그릇된 역사 인식과 역사 왜곡에서 비롯된다. 한일 양국의 역사서들은 곳곳에서 편협한 역사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고대사 서술은 말할 것도 없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한일 양국 모두의 극단적인 역사 왜곡을 지적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인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유 교수는 “한일 양국은 모두 이 콤플렉스의 색안경을 벗어던져야 한다. 한일 문제와 한일 교류사를 일방적 시각이 아니라 쌍방적 시각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을 뿐 아니라 틈만 나면 역사 왜곡을 시도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유 교수는 그들이 고대국가 형성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고 벼농사와 한자 문화를 전해준 한반도 ‘도래인(渡來人)’들의 역할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고, 중국 문화가 한국을 ‘거쳐’ 들어왔노라고 설명하는 것에 개탄했다.

한국은 과연 일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은 최근의 경제 불황 전까지만 해도 미국과 함께 세계적인 경제대국이었다. 한국은 일제강점기 등 역사의 고통 때문에 일본을 제대로 보려고 하기보다 외면하고 증오하는 감정을 앞세웠다.

7월24일 유홍준 명지대 교수가 출간기념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 창작과비평사 제공
일본 문화의 정점에서 만난 한국 문화

이를테면 고대사에서 백제와 왜의 혈맹 관계도 잘 알지 못했고, 조선시대에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의 삶과 예술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래서 유 교수는 일본의 문화유산을 돌아보면서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이 어떤 관계였고, 고대 일본 문화에 우리 조상들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규슈 지역을 답사하던 유 교수는 백제의 도기와 조선 도공의 영향을 받아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 일본의 도자기 문화를 확인하면서 그에 비해 쇠퇴의 길을 걸었던 우리의 도자기 문화를 안타까워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도자기에 대해 거의 무관심하다. 고려청자, 조선백자, 조선 분청사기가 뛰어나다는 주장만 했지 생활 속에서 그것을 즐기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조선 도자의 가치를 일찍이 알아챘고 그것을 생활 속에서 즐기고 있다. 우리는 고유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그것을 활용할 줄 몰랐고, 일본은 그 고유 기술을 통째로 가져가 자신들의 위대한 도자기 문화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반성할 대상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나라 지역에서는 일본 고대 문화의 정점이었던 유적들을 찾았다. 약사사, 흥복사, 동대사, 당초제사를 돌아보면서 조선 도공 기술 집단과 스님들의 흔적을 쫓았다. 그 현장에서 유 교수는 민족주의적 편협성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그는 일본이 나라 시대를 거치면서 한반도의 영향을 뛰어넘어 고유의 독자적인 문화를 꽃피우고, 더 나아가 국제적인 문화 감각까지 키우기에 이르렀다고 봤다. 그렇게 성장한 일본의 역량에 찬사를 보내는 그는 “우리는 동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이웃 나라 일본의 이런 문화적 성취를 평가하는 데 인색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공존·공생 관계 회복의 길은?

각종 미디어와 인터넷 확산으로 인류 모두가 세계 어디서든 교류하는 세상이다. 각국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으로 대립해도 각국 사람들은 문화 교류만큼은 놓치지 않는다. 인류의 갈등을 허무는 데 문화의 역할은 지대하다. 유 교수는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오는 뼛조각과 돌, 도기와 불상으로 남아 있는 문화 교류의 흔적을 통해 한일 관계의 건설적인 회복을 꿈꿨다.

“과거사에 별로 갈등을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는 벌써 색안경을 벗어던지고 가까운 이웃으로 넘나들고 있다. 일본 여성들이 한류 스타에 열광해 드라마 <겨울연가>의 현장을 보겠노라고 남이섬으로 관광 오고, 우리 젊은이들은 일본 스타들의 공연을 보러 도쿄돔으로 달려간다. 기성세대가 개인적 정략을 위해 구태의연함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미래의 주인공들은 그 장벽을 허물고 있다는 희망을 보면서 나는 그들을 향해 이 책을 썼다.”

유 교수는 서로의 근본에 대한 인정과 올바른 역사 인식이 아시아의 문화적 발전에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중국과 함께 동아시아 문화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갖고 있는 동등한 문화적 주주 국가로서 서로를 인식하는 것이 국제사회에서 공생하는 길이라고 했다.

“국내 편을 냈을 때와는 달리 걱정과 두려움이 다가온다. 요즘의 한일 관계와 국민 정서를 생각할 때 나는 두 나라 국민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할 이야기를 많이 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특히 한일 양국의 국수주의자들은 나에게 많은 화살을 퍼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가 이 책을 펴내는 것은 이제는 있는 사실 그대로를 만천하에 드러내 한일 양국이 공유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 교수는 한일 양국의 공존과 공생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누군가는 쌍방의 비난에 당당히 맞서지 않고서는 한일 고대사의 유대를 성공적으로 복원할 수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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