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후 1000만 달러 받겠다”
  • 박동희│스포츠춘추 기자 ()
  • 승인 2013.08.07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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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 입성 앞둔 임창용…불패 신화 이어갈까

시카고 컵스 임창용(38)은 미국에서도 ‘창용불패’ 신화를 이어갈 수 있을까. 최근 컵스는 마이너리그 트리플A 아이오와 컵스에서 활약 중인 사이드암 불펜 투수 임창용에게 “빅리그에서 뛸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창용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며 168세이브를 거뒀다. 일본 프로야구에선 128세이브를 수확해 한일 통산 296세이브를 기록했다. 만약 임창용이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4세이브만 더한다면 사상 초유의 한·미·일 통산 300세이브 주인공이 된다.

“운동선수에게 서른여덟 살은 확실히 제약이 많은 나이예요. 하지만 뭐든 시도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닐까 싶어요. 물론 이 나이에 미국 야구에 도전했다 실패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도전하지 않으면 성공도 실패도 맛볼 수 없어요. 도전하면 결과가 어떻든 최소한 후회는 남지 않습니다.”

ⓒ 연합뉴스
올 초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 입단을 확정지은 임창용은 “늦은 나이에 무리한 도전을 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는 몇 번이고 “도전이란 말은 너무 거창하다”며 “그저 오랜 꿈을 이루려고 미국으로 떠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도전은 임창용에겐 지나치게 거창한 표현이다. 사실 그에게 도전은 일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호흡처럼 빈번하게 불가능한 꿈들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고, 거짓말처럼 그 꿈들을 현실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순간은 2007년 말이었다. 당시 임창용은 쫓기듯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해 삼성에서 5승7패 3홀드 평균자책 4.90을 기록한 임창용은 ‘한물간 투수’로 불렸다. 그도 그럴 것이 2005년 이후 그의 평균자책은 줄곧 4.50 이상이었고, 2006년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 이후 속구는 시속 140km 중반대에 그쳤다.

여기다 복잡한 개인사가 겹치며 그의 이미지는 실추된 지 오래였다. 팀의 주력 불펜 투수인 임창용이 일본행을 추진하는데도 소속팀 삼성이 방관으로 일관한 건 그의 재기에 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야구계의 무관심 속에 임창용은 그해 3년간 최대 500만 달러(45억원)를 받는 조건으로 야쿠르트에 입단했다. 그러나 말이 500만 달러이지, 기본 계약 2년과 옵션 1년 등 총 3년 계약에 2008년 연봉 30만 달러,2009년 50만 달러, 2010년째는 2년간 성적 여하에 따라 계약 여부가 결정되는 매우 불리한 조건이었다.

특히 2008년 연봉 30만 달러는 외국인 선수 최저 연봉으로 야쿠르트가 임창용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내 야구계 인사들은 임창용에게 “그 돈을 받고 일본에서 뛰느니 한국에 남아 FA(자유계약선수)가 되길 기다리라”고 조언했다. 한술 더 떠 당시 삼성 사령탑이던 선동열 감독은 “임창용은 20억원을 주는 것도 아까운 선수”라며 “국내에서나 열심히 뛰라”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현재보다 미래 가치가 중요하다”

그러나 임창용은 “한국에선 더 이룰 게 없다. 헐값이라도 오랜 꿈이던 외국 프로야구에 도전해보겠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정작 뚜껑을 열자 한국 야구계는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임창용은 2008년 일본 진출 첫해에 33세이브를 올리며 단숨에 야쿠르트의 ‘수호신’으로 자리 잡았다. 2009년엔 28세이브를 기록하며 ‘1년 차 징크스’를 가뿐히 뛰어넘었다. 2010년엔 35세이브를 올리며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발돋움했고, 2011년엔 32세이브로 2년 연속 30세이브 달성에 성공했다.

화려한 기록은 엄청난 몸값으로 이어졌다. 야쿠르트와의 3년 계약이 끝나자 요미우리 자이언츠·한신 타이거스 등 명문 구단들이 임창용에게 추파를 던졌다. 요미우리는 “1년에 6억 엔을 주겠다”며 “원하면 장기 계약 요구도 들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임창용은 “불펜진이 불안한 요미우리에서 뛰면 혹사당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야쿠르트가 제시한 3년 15억 엔을 수용했다. 연봉 순위로 따지자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6위에 해당하는 몸값이자 외국인 선수로는 최고액이었다.

임창용은 2011시즌 중반 불의의 팔꿈치 부상을 당했다. 야쿠르트는 또 다른 외국인 투수 토니 바넷에게 마무리를 맡긴 터라 충격이 덜했다. 야쿠르트는 내심 고연봉자인 임창용이 팀을 떠나주길 바랐다. 임창용 역시 야쿠르트에 남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이때 임창용은 ‘제2의 대박’을 위해 승부수를 던진다. 바로 수술을 자청한 것이다.

임창용의 에이전트 박유현씨는 “팔꿈치 수술 전력이 있는 투수가 다시 같은 부위를 수술하려 수술대에 오르는 건 모험”이라고 말하고 “그러나 (임)창용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수술대에 올랐다”고 덧붙였다.

수술 이후 임창용은 재활에만 매달렸다. 야쿠르트는 기다렸다는 듯이 “임창용과의 재계약은 없다”고 공표했고, 일본 기자들에게 “임창용이 다시 시속 150km의 강속구를 던지긴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내놓았다. 소속팀으로부터 사형 선고를 받은 임창용으로선 다른 일본 팀에서 뛰기 어려워졌다. 여기다 원소속팀 삼성이 “임창용이 돌아와도 뛸 자리가 없다”고 난색을 표하며 임창용은 사면초가에 몰렸다. 그러나 임창용은 이때 이미 미국 진출을 결정한 터였다.

임창용은 “에이전트에게 ‘어떤 불리한 조건도 감수할 테니 미국행을 알아봐달라’고 요청했다”며 “일본에서 더 이룰 게 없는 이상 미국에서 마지막 남은 열정을 불태우고 싶다”고 밝혔다.

시카고 컵스와 연봉 10만 달러 계약

지난해 12월 임창용은 컵스와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조건은 형편없었다. 기본 계약 1년에 구단이 행사하는 옵션 1년을 합쳐 2년 계약이었다. 몸값은 더 형편없어 계약금이 고작 10만 달러(약 1억700만원)에 그쳤다. 연봉은 아예 마이너리그 수준이었다.

그러나 임창용은 “돈은 일본에서 벌 만큼 벌었다”며 묘한 다짐을 들려줬다. “두고 보십시오. 2년 후 지금 계약금의 100배를 받아낼 테니까요. 야구는 모르는 겁니다.”

컵스로부터 받은 계약금의 100배는 1000만 달러를 뜻한다. 과연 가능하기나 한 소리일까. “1995년 해태에 입단할 때 계약금과 연봉을 합쳐 5000만원을 받았다. 10년이 흐르고 삼성에서 5억원을 받았다. 일본 무대에 처음 도전했을 때도 첫해 연봉은 엔화로 치면 2000만 엔 수준이었다. 그러나 3년 후 연봉이 5억 엔으로 올랐다. 정확히 25배가 뛴 거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비록 10만 달러의 초라한 마이너리거이지만 2년 뒤엔 1000만 달러를 받는 마무리가 될 것이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연봉 1000만 달러를 받는 마무리 투수는 뉴욕 양키스의 마리아노 리베라다. 과감한 모험으로 대박을 이끌었던 임창용의 행운이 미국에서도 이어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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