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실장’ 카드로 군기 잡힐까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8.1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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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강공 승부수…역대 정권 초기마다 휘두른 ‘전가의 보도’ 꺼내

박근혜정부의 검찰이 바쁘다. MB(이명박) 정권의 국정원장 원세훈을 뇌물 수수 혐의로 구속했다. 한국 재계 14위 CJ그룹 이재현 회장을 구속했고, CJ의 로비 자금을 받은 혐의로 전군표 전 국세청장을 다시 감옥에 보냈다. 4대강 사업 수주와 관련해 도화엔지니어링 회장을 구속하는 등 4대강 사업 전반에 걸친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이다. 원전 납품 비리와 관련한 대대적 수사가 전개되고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추징금 환수를 위해 매머드급 수사팀이 가동 중이다.

거의 연일 언론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게 검찰의 수사 관련이다. CJ그룹 건이나 4대강 사업 관련 건은 사안의 성격과 정도에 미루어 앞으로도 머리기사를 장식할 것이 뻔하다. MB 정권 때의 청와대와 국정원·국세청·경찰·공정위·방통위 등 당시의 핵심 관계자들이 줄줄이 불려올 태세다. 검찰 관계자가 포함될 여지도 배제하지 못한다. 파장이 노무현 정권 인사들에게 미칠 가능성도 다분하다. 전·현직 고위 간부가 엮인 국세청이나 원전 관련 부서 등 몇몇 기관은 초토화를 각오하는 모양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8일 김기춘 신임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왼쪽 사진). 8월6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장에 입장하는 박 대통령을 수행하는 김기춘 실장(맨 왼쪽)과 정홍원 국무총리. ‘왕실장’답게 정 총리보다 한 뼘 앞서 걷고 있다(오른쪽 사진). ⓒ 연합뉴스·뉴시스
사정 태풍, 연내에는 일단 잦아들 듯

여기에 정치 공방 대상이어서 ‘당분간 시끄럽다 말 것’이라고 여겨지던 NLL 관련 남북정상회담 자료 증발 시비도 박근혜 대통령이 “사초 증발은 국기를 흔들고 역사를 지우는 일”이라고 일갈하면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새로운 핵폭탄이 됐다. 지난해 해외 도피 중 자결한 ㄱ씨는 “사정기관들이 1년 전부터 나를 포함한 MB 정권 인사들의 뒤를 경쟁적으로 캐고 있다”며 권력의 허무함을 토로한 바 있다.

H그룹 계열사 임원 ㅂ씨가 정치권에 대한 로비 자금 제공과 관련한 검찰 조사를 피하기 위해 외국으로 피신하려고 하자, 교분이 있는 국세청 간부 서너 명이 여비에 쓰라며 미화 수천 달러를 가져왔다. 행여 검찰에 불려가더라도 자신만은 거명하지 말아주기를 바라는 무언의 당부가 담겨 있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음습한 구석과 검은 거래가 여전하고 필요한 자료 축적도 상당하기에 당국이 작심하고 나서면 성할 사람이 별로 없다.

요즘 검찰의 칼날이 연일 번득이는 것은 새 정부 초기의 군기 잡기 일환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정 드라이브는 정기국회가 지날 무렵이면 일단 잦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은 국민들이 박수를 보내지만, 마냥 지속할 경우 초래될 사정 피로감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나라 안팎을 흉흉하게 만드는 지나친 사정 일변도는 자칫 경제 활성화에도 부담이 될 수 있는 탓이다. 그리고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있는 것도 변수다.

이런 전망이 군기 잡기 전체가 이내 끝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여야 정치권과 기업 등을 겨냥한 전반적 군기 잡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라도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는 기강 세우기는 다르다. 정책 의지를 수행할 공무원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시도는 오히려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전격 단행된 청와대 비서실장과 일부 수석 진용 개편은 그 예고편이다. 앞으로 이런저런 개편 내지 자극을 주기 위한 조치가 이어질 게 예상된다. 이정현 홍보수석은 개각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지만 말이 그럴 뿐이라고 이해해도 무난하다는 얘기들도 들려온다.

어찌 보면 개각의 절대권자인 대통령 본인도 개각 여부를 장담하지 못한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듯싶다. 이는 박 대통령이 취임 162일 만에 청와대 진용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한 데서도 찾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과 청와대 핵심인 정무·민정 수석 그리고 새 정부의 역점 사업인 창조경제와 복지를 각각 담당하는 미래전략·고용복지 수석을 교체했다. 사실상 전면 개편으로 봐도 무방하다. 취임한 지 반년도 안 된 시점에서 청와대를 뜯어고친 것은 인사 실패를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 또, 대통령이 이처럼 딱한 사태를 예견하지 못했듯이 개각 시기·폭도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추론은 그래서 가능하다. 원치 않는, 불가피한 상황은 언제고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8·5 청와대 개편,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

그래도 여권 관계자들은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며 그 논거로 김기춘 비서실장을 든다. 치밀한 일 처리 이전에 나이·경륜 등 카리스마 넘치는 관록만으로도 김 실장이 당·정을 압도할 것이라 기대하는 눈치다. 여당 대표나 총리보다 여러모로 선배가 되는 ‘왕(王)실장’의 존재가 새로운 상황 도래를 담보할 테니 지켜보라는 것이다. 김 실장은 여권의 정치 개입 대명사처럼 불리는 1992년 대선 당시 ‘초원복국집 사건’의 장본인이다. 국정원의 대선 개입이 초미의 현안인 상황에서, 야당이 펄쩍 뛰는 ‘유사 경력자’를 내세우는 박 대통령의 셈법과 강단이 있기에 정국을 리드해나갈 수 있다는 ‘관측 아닌 관측’도 있다.

김 실장과 더불어 8·5 청와대 개편의 하이라이트는 박준우 정무수석이다. 야당은 물론 여당에서도 소통을 주문해왔는데 대통령은 국내 정정과 아무래도 무관할 듯싶은 외교관 출신을 정무수석에 앉혔다. 야당 인사들은 김 실장 임명이 불난 정국에 기름을 끼얹는 것이라면, 박 정무수석 기용은 ‘X 먹어라’는 대꾸나 진배없다고 입을 모은다. “까짓 여의도 정치는 누군들 못 하느냐는 경멸이 박 수석 임명에 담긴 뜻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 밖에 여기저기서 그토록 만류한 윤창중 전 대변인을 막판까지 끼고 가는 어깃장이 연상된다는 등의 소리가 이어지는 등 중립적 위치에 있는 평자들마저 정치를 백안시했던 역대 대통령의 행태가 지금 재연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시한다. 정치판에서 몸을 일으킨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조차 막상 집권 후에는 정치를 경원했지만, 그래선 곤란하다는 얘기다. 그토록 여론에 민감하고 여론을 존중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집권 후에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에 대해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는 비유를 서슴지 않은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집권 초기 임명한 유인태 수석이 물러나자 아예 정무수석 자리를 없애버렸다. 정치권과의 완충 내지 메신저 역할을 담당할 정무수석마저 없앤 노 전 대통령의 행보는 결과적으로 자충수였다. 야당에 ‘대연정’이라는 돌발 카드를 제안했다가 당시 야당을 이끌던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힐난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노 전 대통령의 행로는 파국으로 귀결됐다.

이런 부정적 사실들이 이번 청와대 개편에 즈음해 떠올려지는 까닭은 자명하다. 박 대통령의 조치가 걱정된다는 판단에서다. 박 대통령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운다고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정부가 강력한 리더십을 갖고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고 믿었던 국가주의자다. 상명하복의 군 리더십에 충실한 박 전 대통령은 치밀한 기획 참모 스타일이었다. 인재 등용도 마찬가지여서 발탁과 운용에도 능했다. 전문 분야에는 관료들을 대거 등용하고 직계 그룹에는 정치를 맡겼다. 필요에 따라서는 부하들에 대한 분리 통제를 서슴지 않은 모사·공격형이기도 했다. 실적 중시는 지금의 박 대통령에게서도 그대로 읽혀지는 부분이다.

박 전 대통령은 친서(親書) 통치로도 유명했다. 장·차관이나 의원, 측근에게는 일단 친서를 보내 경고한 뒤 개선이 안 되면 가차 없이 손봤다. 이번 8·5 청와대 개편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전격성’에 주목하지만 박 대통령이 그간 변화와 도전, 구체적 실적을 거듭 강조한 사실 등을 들어 일단 옐로우 카드 제시 후 취한 조치로 해석하는 게 대체적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많은 사람을 헷갈리게 만든 8·5 개편이었다. 박 대통령의 만기친람(萬機親覽 ; 모든 정사를 혼자 보살핌) 스타일이 김기춘 비서실장 등용 이후 얼마간이라도 바뀔지, 내각에 대한 청와대의 시어머니 역할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등도 여전한 의문거리다. 

 

사정은 정권 초기 권력 기반 다지는 당연 수순 
역대 대통령들의 군기 잡기 사례 보니…

대통령 5년 단임제가 정착되면서 새 정부의 ‘군기 잡기’는 정권 출범의 기본이 됐다. 정치권, 공직 사회, 기업 등 모든 부문에 ‘고분고분 말 잘 들어’라는 경고를 발하기 위함이었다. 그런 만큼 본때를 보이기 위한 위협 성격이 강했기에 서슬도 서슬이려니와 실제 이루어진 조치도 엄중했다. 새 집권 세력은 기존에 잘나가던 집단이나 개인이 부패 척결과 쇄신·변화의 이름 아래 단죄받는 장면에 환호하면서 지지를 보내는 국민들의 집단 심리를 꿰고 있었다. 이렇듯 ‘도랑 치고 가재 잡는’ 1석2조, 아니 3조·4조의 효험이 보장되는 통치 수단이 군기 잡기였다. 사실 임기 시작과 함께 레임덕이 개시되는 단임 권력의 한계와 냉정한 현실에 미루어 정권 초기의 군기 잡기는 필연이기도 했다.

때문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5공 정권에서 노태우 전 대통령의 6공 정권으로 권력 이양이 이뤄진 이래 역대 정권 교체기마다 예외는 없었다. 언제고 새 정부 출범 초기엔 사정 태풍이 휘몰아쳤고 그 약발은 상당 부분 먹혀들었다.

6공 정권은 5공 정권의 자금과 조직의 전폭적 지원하에 태동했지만 전임 전두환 전 대통령을 백담사에 유폐시키는 등 5공 핵심들을 철저하게 옭아맸다. 6공 정권은 당시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취약 상황마저 여권 내부 정리에 십분 활용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과 합당해 정권 쟁취에 성공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우선 여권 내부에 사정 칼끝을 들이댔다. 슬롯머신 비위와 관련해 6공 황태자 박철언 전 장관을 구속시키는 등으로 구여권의 도전을 차단하는 동시에 공직 사회의 충성을 이끌어냈다. 여권 내 걸림돌인 군부의 하나회는 파벌 척결을 명분으로 간단히 마무리 지었고, 나중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들도 감옥에 보냈다.

이른바 DJP연합으로 집권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종필 전 총리의 자민련 의석을 합해도 소수파의 위치를 못 벗어나자 야당인 한나라당에 대한 전 방위적 사정을 단행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양자(養子)’로 집권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우선 잡아들인 거물은 직전 정권에서 ‘소통령’ 소리를 듣던 박지원 의원이었다.

군기 잡기용 사정에선 대상 선정, 치밀함 등 운용 못지않게 시기가 중요하다. 실기하면 효과가 반감될뿐더러 심지어 부메랑이 될 소지도 충분하다. 그 대표적 사례가 MB다. MB는 임기 초 벌어진 촛불 시위 대처에서의 패착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가뜩이나 ‘인사 실패’까지 자초한 MB 정권은 친박계의 노골적 반발로 어지러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 이후 역풍을 맞았다. 잇단 인사 실패 등으로 가장 소중한 임기 초반을 흘려보낸 박근혜 대통령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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