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적응 못 하면 명성·전통도 하루아침에…
  • 김창룡│인제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 승인 2013.08.1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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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양대 권위지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엇갈린 운명

신생 온라인 사업자가 미국 전통의 권위지 ‘워싱턴포스트’ 인수를 결정하자 세계 미디어업계가 술렁거리고 있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자사가 세계 최대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에게 매각됐다는 비보를 스스로 알렸다. 일각에서는 종이신문의 몰락을 워싱턴포스트 같은 유력 매체도 피해 갈 수 없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워싱턴포스트의 매각은 오프라인계의 전통적 미디어 강자가 온라인의 신흥 세력에 잡아먹힌 격이라는 점에서 시대 변화를 상징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과연 종이신문의 미래는 이처럼 국내외 전통의 미디어, 강·약자를 구분하지 않고 암울하게 다가오고 있는가.

미국의 한 시민이 워싱턴 D.C.에 위치한 언론박물관에서 워싱턴포스트를 보고 있다. ⓒ AP연합
“전설적 신문이 한 거부의 1% 자산에 팔려”

워싱턴포스트와 함께 미국에서 권위지로서 쌍벽을 이루는 뉴욕타임스의 자매지 보스턴글로브가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주에게 헐값에 매각되는 사건도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80년 역사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온라인 매체를 보유한 IBT미디어에 매각되는 등 최근 두드러지는 유력 종이매체의 매각 소식은 전통 미디어업계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1933년 파산한 신문을 경매에서 사들여 미국의 대표 신문으로 성장시킨 그레이엄 가문에게 워싱턴포스트는 각별한 의미를 갖고 있다. 고인이 된 캐서린 그레이엄 전 회장은 1970년대 워싱턴포스트가 정치권력의 협박에 맞서 그 유명한 ‘펜타곤 페이퍼’와 ‘워터게이트’ 보도를 적극 지지해 언론사 사주의 경영 철학을 전 세계에 알렸다. 이와 함께 워싱턴포스트의 용기와 정론직필은 세계 언론의 표상으로 자리를 굳혔다.

그러나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매각을 최종 결정한 캐서린 웨이마우스 워싱턴포스트 회장은 “소유주가 바뀌든 그렇지 않든 지금 요구되고 있는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워싱턴포스트 사원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외신은 전했다. 외신은 ‘136년 역사의 워싱턴포스트가 단돈 2억5000만 달러(약 2800억원)에 팔린다’는 소식을 전했으며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전설적인 신문이 1994년 아마존 창업으로 단숨에 220억 달러의 거부가 된 베조스의 1% 자산에 팔리는 신세가 됐다”고 충격을 표현했다.

워싱턴포스트도 그동안 사업의 다각화, 구조조정, 디지털 유료화 등 새로운 시도를 해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고 한다. 워싱턴포스트가 지난해 헬스케어업체를 인수하고, 올해에는 교회 신도 모집 및 모금 포털 사이트에 이어 산업용 고로 제조업체까지 인수했을 때 미국 언론계는 이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워싱턴포스트는 ‘사업 다각화 전략’이라고 포장했지만 본질적인 적자 행진을 멈출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 최대 유력지인 뉴욕타임스는 워싱턴포스트와는 또 다르게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 종이매체의 미래가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뉴욕타임스는 올해 2분기 201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해 지난해 같은 기간 순손실 8810만 달러를 만회했다고 한다. 특히 2분기까지의 구독료 매출이 전년 동기에 비해 5.1% 늘어난 2억4510만 달러를 기록했는데, 디지털 콘텐츠 유료화 성공이 구독료 매출 증가의 일등 공신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울신문은 최근 보도에서 “뉴욕타임스는 최고의 취재력과 문장력을 갖춘 기자들이 쏟아내는 양질의 기사로 워싱턴포스트에 비해 한 차원 높은 신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신 기자들 중에는 미문(美文)으로 포장된 뉴욕타임스 기사가 난해해 번역이 힘들다고 토로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결국 기사의 콘텐츠만 좋다면 온라인 시대에도 신문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훈을 뉴욕타임스가 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의 대표적인 두 권위지가 서로 상반된 모습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뉴미디어 시대에 전통은 그 자체로 더는 의미를 갖지 못하며, 발 빠른 변화와 디지털 융합만이 새로운 활로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변화는 전통의 미디어 강자에게도 필수다. 바뀌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면 과거의 명성도 전통도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음을 워싱턴포스트가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새롭게 변신하게 되면 종이매체도 더 한층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뉴욕타임스가 또한 입증하고 있다.

한국은 종편 출범과 포털 등으로 상황 더 심각

국내 종이신문의 쇠퇴는 2000년대 뉴미디어의 등장과 함께 급격한 하향 곡선을 형성했다. 신문 산업은 구독률 급감(2001년 51.3%→2011년 24.8%)이라는 악재에 직면했다. 이와 함께 열독률도 감소(2001년 69.0%→2011년 44.6%)했다. 주목되는 점은 신문 신뢰도조차 급감(1998년 40.8%→2011년 11.8%)했다는 점이다. 매체 광고 시장에서 신문 광고 시장의 매출액 감소(2004년 26.2%→2009년 20.7%) 등 전 방위적인 위기를 맞았다.

종이매체의 전반적인 쇠퇴 현상이 한국·미국 등 세계적인 추세라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과 달리 전통 미디어 시장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최소한 세 가지 정도 더 있다.

첫 번째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의 정치적 결정으로 한꺼번에 4개의 종합편성 채널을 모두 허가해준 사건이다. 미디어업계의 한정된 광고 시장에 4마리 호랑이를 풀어놓고 각자 생존하라는 무책임한 일을 벌인 결과, 현재 한국의 미디어 광고 시장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지상파와 케이블 방송 시장과의 경쟁 외에도 종이신문의 광고 시장까지 잠식하며 불법·탈법을 넘나들고 있어 광고 시장이 더욱 피폐화되고 있으며, 이런 현상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방통위가 차선책으로 들고 나온 것이 KBS 2TV를 광고 시장에서 빼주는 대신 수신료를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본질적 문제를 외면하고 파생된 문제를 편법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다. 내년에라도 4개의 종편 중 하나를 남기고 재승인을 취소하는 것이 한국 미디어업계 전체를 살리는 구조가 될 것으로 본다.

두 번째는 뉴스·정보의 유료화가 한국에선 쉽지 않다는 점이다. 국가 기간 뉴스통신사인 연합뉴스가 각종 포털에 정보를 제공하고 이를 일반 소비자가 쉽게 접할 수 있는데, 굳이 돈을 내고 뉴스를 봐야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또 한국 같은 작은 나라에 24시간 뉴스 전문 채널만 해도 2개나 존재하기 때문에 뉴스와 정보에 대한 대가 지불이라는 의식 자체가 생겨날 수 없어 뉴스 제공 유료화는 향후 풀어야 할 과제가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종이신문을 비롯한 언론사 사장, 방송사 사장 등 한국 사회에서 미디어는 일종의 권력 기구가 돼 있는 모습이다. 스스로 권력화됐든 권력에 종속됐든 사주의 고압적 자세가 언론사 전체 분위기에 투영돼 정보 서비스업체라는 인식이 부족하다. 사회는 빠르게 탈권위화하고 서비스 중심 체제로 바뀌지만 언론사는 이를 따르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은 신문이 망해도 사라지지 않는다. 언론사 사장이 구속되고 미디어 회장이 실형을 선고받고 회사가 자본 잠식을 넘어서는 적자 행진을 보여도 신문사는 여전히 발행을 계속하는 수수께끼 같은 괴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유 경쟁을 통해 시장의 원리가 작동되는 것이 원칙이지만, 한국의 미디어 시장은 그런 원칙·원리가 통용되지 않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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