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의 신대륙’ 위에 뜬 ‘크라우드 펀딩’
  • 정은호│금융투자연구원 대표 ()
  • 승인 2013.08.14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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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0만원 모집, 연 23%’ ‘1억원 모집, 18개월, 연 25%’.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어느 크라우드 펀딩 업체의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자금 조달 조건이다. 또 다른 대형 펀딩 업체의 홈페이지에서는 ‘투자자 복리수익률 평균 20.29%’라는 구체적인 숫자가 눈길을 끈다. 제시한 수익률이 맞기만 하다면 장기 저금리 상황에서 투자 대상이 마땅치 않은 개인투자자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소식이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 업체에 대한 관심이 급속히 높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은 말 그대로 불특정 다수(crowd)를 대상으로 자금 조달(funding)을 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방식은 1997년 영국의 록그룹인 ‘매릴리언(Marillion)’이 인터넷을 통해 부족한 미국 순회공연 자금을 모금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인터넷에서의 모금이라는 사상 초유의 방법을 통해 팬들과 시민으로부터 6만 달러라는 자금을 성공적으로 조달함으로써 인터넷이 펀딩의 주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창조경제 내세운 박근혜정부의 크라우드 펀딩

지난 7월 초 ‘페블(Pebble)’이라는 미국의 한 중소업체가 시계 형태로 착용해 스마트폰을 제어하는 ‘스마트워치’라는 제품을 출시하면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 제품의 혁신성보다 더 눈길을 끈 비하인드 스토리는 이 회사가 크라우드 펀딩을 중개해주는 사이트인 킥스타터를 통해 약 7만명의 후원자로부터 1000만 달러가 넘는 투자를 받아 제품을 생산할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에도 유사한 사례가 있다. 지난해에 개봉한 영화 <26년>은 잘 알려진 것처럼 1만5000명이 넘는 후원자가 7억원이 넘는 자금을 모아 완성될 수 있었다.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을 제공한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에 대한 대가의 지급 여부, 지급 방식 등에 따라 몇 가지로 구분된다.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 기부 방식, 일정한 보상(reward)을 지급하는 방식, 선주문 방식(pre-order), 사후에 원리금을 상환하는 대출(lending) 방식, 사업에 대한 지분을 제공하는 지분 참여 방식이 그것이다. 투자자의 입장에서 관심이 더 가는 것은 대출 혹은 지분 참여 방식의 펀딩이다.

최근 크라우드 펀딩이 주목받는 것은 지난 3월 정부가 제시한 ‘2013년 경제 정책 방향’에서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도입을 공식적으로 천명하면서부터다. 여기에는 지난해 4월에 제정된 신생 기업 육성법으로 일명 ‘잡스법(JOBS; 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으로 불리는 미국의 법안이 영향을 미쳤다. 잡스법에서는 신생 벤처기업의 자금 조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인터넷을 통한 크라우드 펀딩을 허용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올 연말까지 크라우드 펀딩 관련 법안을 만들고 내년부터 이 제도를 시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조경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정부의 안은 벤처기업이 아이디어를 인터넷에 공개하고,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에게 자금 조달 기업의 주식이나 채권을 제공하는 지분 참여형 크라우드 펀딩이다. 이 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된다면 구체적인 사업 실적이나 담보가 없는 창업 이전 단계에서도 아이디어만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국판 스티브 잡스나 래리 페이지(구글 창업자)가 쉽게 탄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소액 투자자도 성공할 가능성이 큰 사업 아이디어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향후 높은 원리금의 회수나 IPO(기업공개)를 통해 성공의 과실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면에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은 투자자 보호다. 실제로 오바마 정부에 의해 야심차게 출발했던 ‘잡스법’은 제정된 지 1년이 넘은 최근에서야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오고 있는 상태다. 크라우드 펀딩에서 투자자 보호에 관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개인투자자 1인당 투자 한도는 1건당 500만원, 기업의 투자 모금액 한도는 1건당 10억원 수준으로 규제함으로써 1차적인 투자자 보호 방안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양적 규제는 투자자 보호라는 측면도 있지만 결국 이 제도가 자금 조달 기업(혹은 개인)도 영세한 수준이고 투자자도 소액 개인을 대상으로 마련되는 제도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정보의 불균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아이디어나 기술을 통한 사업 비전을 제시하는 자금 조달자에 비해, 소액의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는 기술력이나 사업성을 평가하는 데서 열위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이 제도가 자칫 기존에 정부가 부담하던 벤처기업에 대한 지원과 이에 따른 투자 위험을 불특정 다수의, 그것도 소액밖에는 투자할 여력이 없는 국민에게 전가한다는 논란이 나올 수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우리나라 벤처기업의 성공률은 10% 미만이다. 전문적인 정부 관련 부서나 벤처 캐피털회사가 투자하는 경우에도 그렇다. 이런 전문 기관은 수십 개의 벤처기업에 투자하기 때문에 성공한 하나의 기업이 나머지 아홉 개의 손실을 커버할 수 있다. 그러나 크라우드 펀딩 투자자는 그럴 여력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지분형 크라우드 펀딩의 경우, 정보 면에서 취약한 국민들에게 당첨 구슬이 열 개 중에 하나밖에 없는 게임을 제시하는 것은 제도의 안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칫 집단 사기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금융 사기꾼의 온상 될 가능성도 상존

실제로 많은 펀딩을 성공시켜 가장 유력한 중개업체가 된 미국의 킥스타터의 경우 지난 6월 이런 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고급 쇠고기로 알려진 일본의 고베산 와규로 육포를 만들겠다며 ‘매그너스 펀(Magnus Fun)’이라는 회사가 2300달러를 모집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후 약 한 달간에 걸쳐 3300명의 투자자들이 이 프로젝트를 후원하기로 했고 목표액을 훨씬 넘은 12만 달러의 펀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비싼 쇠고기로 육포를 만들겠다는 아이디어의 실행에 필요한 자금이 2300달러(약 250만원)라고 제시한 이 어리숙하고 소심한 사기극은 펀딩 마감 직전에 실체가 들통 났고 자금 모집자는 잠적해버렸다. 이 사건은 역설적으로 펀딩을 중개하는 사이트 운영업체가 사업에 대한 최소한의 적정성 검토 능력도 없다는 것을 증명한 사건이 되고 말았다. 기술력에 대한 검토는 어렵다고 해도 자금 조달 규모가 적정한지에 대해서조차 판단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제공된 펀딩 요청 자료만을 투자자에게 제시한 것이다. 결국 크라우드 펀딩 투자에서 모든 적정성에 대한 판단은 투자자에게 맡겨져 있다.

이런 문제점을 감안해 우리나라도 펀딩 중개업체에 대한 투자자 보호 규정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회사의 내용에 대한 사실관계나 사업성에 대한 검토도 없이 사채업 수준의 수익률만을 강조해 투자자를 유인하거나, 부적절하고 과장된 표현으로 정보 면에서 열세에 있는 투자자를 기만하는 방식은, 스스로가 벤처기업인 크라우드 펀딩 중개업체 자신이나 새로운 산업의 발전에 저해가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앞으로 크라우드 펀딩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투자 유혹은 더욱 많아질 것이다. 그런 투자가 남들은 잘 모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나 혼자만 알고 있는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분간은 제도가 정비되지 않은 초기라는 점을 감안해 크라우드 펀딩 투자 때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사업 분야 이외에는 고려하지 않을 것을 권한다.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라도 내 돈은 소중하다. 그리고 투자에 관해 변하지 않는 진실, ‘공짜 점심은 없다’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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