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또 다른 도발 “교과서로 공격하라”
  • 이신철│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연구 교수 ()
  • 승인 2013.08.1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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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가 진단하는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실례

2001년 일본에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이 만든 중학교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새역모는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일본의 아시아 패권을 추구하는 우익단체다. 이들은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 지배나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한 역사적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나아가 그런 역사를 미화하고, 다시 한 번 아시아의 패권을 잡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만든 교과서에 이런 철학을 담은 주장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평화헌법 개정 국민투표에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일본의 중학생부터 우익 사관으로 무장시키려고 했다.

우익 교과서는 이전에도 있었다. 1985년 쇼와 천황의 탄생 60년을 기념해 ‘일본을 지키는 국민회의’라는 단체에서 고등학교 교과서를 만들었고 1987년부터 교육 현장에서 사용되었다. 그렇지만 이 교과서는 일부 사립학교에서만 쓰였고 그 영향력도 미미했다. 그런데 새역모가 만든 교과서는 중학교 학생의 필수과목인 일본사의 교재였다. 게다가 자민당을 중심으로 헌법 개정에 찬성하는 국회의원 등 우익 정치 세력들의 강력한 지원과 지지를 받아 채택률이 점차 높아졌다. 이 부분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2002년 채택률 0.039%에 불과했던 문제의 교과서는 2005년 0.39%로 뛰어오르더니 2011년에는 4%대에 이르면서 급상승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새역모는 내부 분쟁으로 둘로 쪼개졌는데, 문제의 교과서 역시 두 개로 늘어나는 효과가 발생했다. 이들은 공민교과서(일종의 사회·도덕 과목)도 제작하면서 그 영향력을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과거와 달리 이들 교과서는 그 내용이 점점 교묘해지고 있어서 얼핏 보면 상당히 좋아지고 있고, 큰 무리도 없어 보일 정도다. 따라서 이들 교과서가 실제 어떤 문제점을 가지고 있는지 대표적인 사례를 통해 점검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정부가 2011년 3월30일 독도 영유권 기술을 노골적으로 강화한 중학 교과서 검정 결과를 발표할 당시 일본 중학교의 사회와 역사교과서 등의 겉표지와 내용. ⓒ 연합뉴스
‘독도에는 대나무가 무성하다’고?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독도 문제다. 당초 독도에 대한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일부 교과서에서만 다루던 문제였다. 하지만 2008년 일본 정부가 새로운 집필 기준을 마련하면서 점차 영유권을 주장하는 기술이 늘어났고, 지금은 모든 지리교과서와 공민교과서에 이런 내용이 실리게 됐다. 일부 역사교과서도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다루고 있다. 이들 교과서는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에도 시대부터 독도가 일본의 영토였다’ ‘1905년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 현에 편입되었다’ ‘전후에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따라 일본의 영토로 확정되었다’ 그리고 ‘한국이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 등등이다.

문제의 새역모가 만든 ‘지유사’판 공민교과서는 이런 내용을 모두 담고 있다. 게다가 ‘한국은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문제를 해결하자는 일본의 합리적인 요구조차 거부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교과서의 지도는 독도 주변 수역을 일본의 배타적 경제수역으로 표시하고 있다. 사진과 함께 특집면까지 마련해 독도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 교과서는 ‘다케시마는 대나무가 무성하던 섬’이라는 엉터리 설명을 덧붙이고 있다. 독도에 대나무가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문제의 지유사판 교과서는 다케시마(竹島)라는 명칭만 보고 대나무가 많을 것이라고 상상했던 내용을 그대로 싣고 있는 것이다.

다른 주장들도 근거 없기는 마찬가지다. 17세기에 에도 막부는 대나무가 무성한 울릉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한 적이 있는데 곧 잘못을 바로잡고 공식적으로 울릉도와 독도가 한국 땅임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혼동하거나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1905년 국제법에 따라 시마네 현에 편입되었다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다. 당시는 러일전쟁이 한창이던 때였고 한반도는 전장으로 변해 있는 상황이었다. 이미 무력으로 한반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시기에 시마네 현으로 편입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무시한 채 국제법을 운운하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인정한 적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다. 당시 조약의 여러 초안에는 오히려 독도가 한국의 영토로 표시되기도 했다. 이런 사실들에 비춰볼 때 한국이 독도를 불법으로 점거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과 어긋나며 국제적으로도 설득력이 없다.

이쿠호샤판 교과서는 한복 입은 이토 히로부미를 내세워 마치 한국을 이해했던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왼쪽). 지유사판 교과서는 일시적인 한글 병행 교육을 마치 식민 지배 전체 기간 동안 시행한 것처럼 왜곡했다(오른쪽). ⓒ 이신철 교수 제공
교과서에 등장한 ‘한복 입은 이토 히로부미 ’

독도뿐만이 아니다. 문제의 교과서들은 일제의 식민 지배 과정과 지배 정책을 교묘하게 미화하고 있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하면서 생긴 대규모 학살과 3·1운동 시기의 학살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게다가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한 이유로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위해서 한국의 안정이 필요했다(지유사판)’고 설명한다. 한국에 대한 보호국화와 식민지화가 일본의 안전과 발전을 위해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러시아, 영국, 미국 등이 북만주·몽고, 인도, 필리핀을 식민지로 각각 승인받는 대신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를 승인했다’고 소개해 마치 한국의 식민 지배에 국제적인 용인이 있었다는 뉘앙스를 드러낸다. 그러면서 그 과정의 불법성과 폭력성은 감춘다.

지유사판 교과서는 식민 지배 정책과 관련해서도 잘못된 선전을 일삼는다. 식민지 조선에서 사용됐던 교과서 중에 한글과 일어가 병기되어 있는 사진을 싣고 ‘학교도 개설하고, 일본어 교육과 함께 한글 문자를 도입한 교육을 실시했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당시 3·1운동에 놀라 일시적으로 한글 교육을 실시했을 뿐이었다. 1938년부터 조선어 교육은 아예 폐지하고 일어를 ‘국어’로 가르쳤던 게 진실이다. 식민지 시기의 일시적인 정책을 마치 식민지 전체 기간에 걸쳐 진행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일본의 역사교과서들은 이토 히로부미가 군복을 입고 기모노를 입은 한국의 황태자를 데리고 찍은 사진을 싣고 있다. 사진 설명에서도 ‘초대 통감으로 부임했다가 하얼빈에서 암살되었다’는 것만 기록해 안중근의 존재조차 알 수 없게 한다. 안중근의 의거 이유나 그의 동양평화론 등을 소개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다. 새역모에서 떨어져 나온 그룹이 만든 또 다른 교과서인 이쿠호샤(育鵬社)판 교과서에는 다른 교과서에서 찾아볼 수 없는 이토 히로부미의 독특한 사진이 실려 있다. 이 사진에는 한복을 입은 두 조선 여인 사이에 한복을 입은 이토 히로부미가 서 있다. 이토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사랑했던 모습을 상상하게끔 유도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제가 되는 역사교과서들은 한인 수십만 명이 강제 동원되었고, 아직까지 미해결의 과제로 남았다는 사실을 기술하지 않는다. 중학교의 모든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조차 언급하지 않는다. 이미 명백한 사실로 확인되었고 국제적인 비난이 일고 있는 문제를 교과서가 다루지 않는 것은 최근 잇달아 등장한 우익 정권의 영향을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들 교과서는 아시아·태평양 전쟁기의 역사를 노골적으로 왜곡하고 있다. 교과서는 아시아 민중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아시아 여러 국가가 식민지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아시아 해방 전쟁을 수행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일본이 무력으로 개입했기 때문에 이들 국가가 해방되거나, 또는 각국의 독립운동가들을 각성시키며 이들의 독립 전쟁을 지원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이 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주장하면서 ‘서구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대아시아, 즉 하나의 아시아를 건설하려고 했다’고 강변한다.

“우리가 서구 식민지에서 해방시켜줬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 하지만 전쟁의 마지막 순간까지 항복의 조건으로 조선을 일본의 영토로 두려고 했던 일본의 과거를 고려한다면, 일본이 전쟁에서 이겼을 경우 아시아 국가들이 처할 상황은 차마 상상조차 하기 싫을 정도다. 한국의 해방도 물론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의 교과서들이 식민지 피해와 전쟁 피해를 왜곡하는 대상은 한국의 역사만이 아니다. 중국의 난징 대학살은 ‘전쟁의 와중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희생자 숫자 등에서 논란이 있다’는 식으로 기술해 진실을 왜곡하고 있다. 당시 사건 현장인 난징에서는 지금 현재까지도 유골이 발굴되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만든 중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도 수십만의 희생자가 있었던 사실을 인정한다. 하지만 일본 교과서들은 그런 진실을 모두 무시한다.

일본의 교과서들이 식민지와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미화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헌법을 개정하고 군대를 보유할 수 있는 ‘보통 국가’를 만들어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는 게 그 욕심의 본모습이다. 탈냉전의 영향으로 중국의 역할이 강화되고 미국의 전략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을 틈타 일본은 군사대국과 아시아의 패권국으로의 복귀를 노리고 있다. 일본의 정치권과 우익 시민운동 세력이 왜곡된 공세를 강하게 펼치고 있는 지금, 한국의 대응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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