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받는 국왕이 외려 민주주의의 ‘적’
  • 태국 방콕=김회권 기자 (khg@sisapress.com)
  • 승인 2013.08.1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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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민주주의 최대 장벽은 표현의 자유 막는 국왕 모독죄

태국 취재를 위해 기자가 현지 호텔에 도착한 첫날, 태국 국영 방송인 NBT WORLD에서는 푸미폰 아둔야뎃 태국 국왕의 모습을 담은 영상물이 나오고 있었다. <In deep trouble to the monarchy>라는 제목의 프로그램에서 국왕은 태국의 지방 농업을 살리기 위해 여러 곳을 방문하며 농작물을 살펴보고 있었다.

방문 첫날부터 호텔에서 만났던 국왕을 호텔 밖에서는 더 자주 볼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는 국왕과 왕비의 얼굴이 방콕을 방문한 여행객을 맞는다. 따지고 보면 이게 맞는 것이 태국의 정식 국명은 ‘Kingdom of Thailand’다. Kingdom이 붙었다는 것은 왕국이라는 뜻이다.

태국에서 국왕은 세 가지 의미를 갖는다. 방콕에 위치한 한 글로벌 기업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니브 라셀 박사는 “우선 푸미폰 국왕은 국민의 95%를 차지하는 불교의 최상위에 위치해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일종의 신(神)적인 존재로도 자리 잡는다. 역사적으로 태국은 크메르 문화의 영향을 받으면서 ‘왕은 신이다’라는 개념이 도입됐다. 세 번째로 국왕은 국민의 아버지이고, 왕비는 국민의 어머니다”라고 말했다.

국왕은 신적인 존재이자 국민의 아버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 태국 안팎에서는 왕실이 조명을 받는다. ‘왕=아버지’라는 등식을 만든 데는 푸미폰 국왕의 노력도 컸다. 지방 순례나 대학 졸업식 참석 등 대중 행사에 빈번하게 참가하면서 브라운관에 등장하는 협조를 아끼지 않는다. 라셀 박사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므앙(도시국가 또는 공국)은 태국인에게 이상적인 공동체다. 푸미폰 국왕의 존재가 그런 므앙을 지탱하며 태국을 정치적 위기에서 구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푸미폰 국왕의 활약은 놀라웠다. 1973년 군부의 집권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일어났을 때 반정부 시위로 수배를 받던 대학생들을 보호했던 이도 국왕이었고, 1992년 수친다 크라프라윤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수친다 장군의 총리직 사임과 해외 망명을 이끌어낸 것도 국왕이었다. 국왕이 신이 되고 아버지가 되어 군부와 맞설 수 있는 것은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태국 사회에서 쉽게 꿈꾸지 못할 일이었다.

7월14일 쇼핑몰 등이 운집한 방콕의 BTS 씨암 역 부근에는 갑자기 경찰 병력이 깔렸다. 씨암파라곤 등 쇼핑몰의 입구에도 경찰이 적지 않게 배치됐다. 경찰 추산으로 200~300명 정도의 ‘반(反)탁신파’ 시위자들이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룸피니 공원에서 이곳 씨암 역 부근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씨암 역 인근 대로변에 위치한 방콕아트센터 앞 공간에서 정리 집회를 가졌다. 이들이 외치는 내용은 딱 두 가지였는데 “잉락 친나왓(총리)은 퇴진하라”와 “탁신은 태국에 영향을 끼치지 마라”였다.

ⓒ EPA 연합
탁신, 국왕 권위에 도전하는 ‘상징적 존재’

6월2일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시작된 ‘반탁신’ 집회는 이날 7주 연속 진행되고 있었다. 첫 주만 빼고 매번 참가했다는 한 참가자는 가슴에 국왕 부부의 사진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탁신은 해외에서 태국 정부를 조정하고 있다. 지금 정부 사람들은 탁신을 만나려고 해외로 나간다. 그러고도 이제는 쫓겨난 탁신을 다시 사면해 귀국시키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정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국왕을 사랑한다던 그가 국왕보다 먼저 입에 올린 이름은 탁신이었다. 태국 현대사에서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존재, 그게 탁신 친나왓이라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다.

지식도 있고, 실행력도 갖췄다. 빈곤하지만 인구가 많은 태국 북동부의 이싼 출신이라는 배경 덕에 지역 기반도 다질 수 있었다. 게다가 태국의 금권 정치 체질에 어울리는 자수성가형 통신업계 재벌 출신이라는 이력도 매력적이었다. 이 모든 것을 갖춘 탁신은 2001년 총선에서 애국당을 이끌고 500석 중 294석을 획득하며 과반 의석이 넘는 압승을 거둔 후 총리가 되었다. 그리고 태국 정치 사상 처음으로 4년 임기를 마친 후 치러진 2005년 2월 총선에서 탁신의 정당은 500석 중 370석을 획득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1년 탁신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총리에 오른 뒤 겨우 진정된 것처럼 보이는 ‘레드셔츠’(친탁신파)와 ‘옐로셔츠’(반탁신파)의 갈등은 훨씬 전인 2006년 9월19일의 군부 쿠데타부터 시작된 싸움이다. 당시 군이 쿠데타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탁신의 국왕 모독’이었다. 탁신 지지자 중 일부는 ‘탁신 대통령’을 주장했는데, 이를 두고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공화국으로 전환하자는 의도로 해석했다. 왕을 없애자는 말이니 결국 국왕 모독에 해당했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쓴 채 반탁신 시위를 벌이고 있는 국왕 지지자. ⓒ 시사저널 김회권
“국왕은 좋아하지만, 입헌군주제는 싫다”

흥미로운 점은 친탁신파들 역시 국왕에 대해 물으면 모두들 “국왕을 존경한다”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레드셔츠 그룹이 대다수인 태국 북동부 이싼에서 만난 사람들은 국왕에 대해 전혀 비판적이지 않았다. 이들의 집이나 식당에 국왕 부부의 사진이 걸려 있는 모습은 방콕의 그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처럼 태국의 어지러운 정쟁에 대해 조정자 역할을 하는 국왕을 태국인들은 진심으로 찬양하고 있다. 이들은 국왕이 태국 정치를 좀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존재라고 칭송하며 절대적인 믿음을 보낸다. 태국 전역에서는 오전 8시와 오후 6시, ‘국왕 찬가’가 흘러나오면 행인들이 가던 길을 멈춘다. 기자와 함께한 통역은 “태국 국가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건 국왕 찬가”라고 말했다. 

“국왕은 좋은 사람이다. 그런데 국왕을 둘러싼 장벽이 문제다.” 취재를 위해 만났던 사람들은 열이면 열 모두 ‘국왕’에 대해 부정적인 단어조차 말하길 꺼렸다. 취재 준비 단계에서 도와줬던 사람들은 “질문지에서 국왕 부분은 빼는 게 좋겠다”고 충고했다. 국왕과 관련한 질문은 모두 금기시되는 곳, “국왕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문제가 생긴다”는 충고를 듣는 곳. 태국의 또 다른 모습이다.

“위우라고 불러주세요.” 본명이 아닌 별명으로 불러달라는 이 대학생의 은사는 탐마삿 대학의 솜사쿠 젬티라사클 교수다. 솜사쿠 교수는 태국 사회의 금기를 건드린 탓에 호된 곤욕을 치러야 했다. 2010년 12월 한 강연에서 태국 왕실을 보좌하는 최고 기구인 추밀원의 역할을 재검토하고 태국 사회를 지배하는 왕정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의견을 냈는데 이게 화근이 되었다. 추밀원은 태국 형법 112조에 관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 112조는 다름 아닌 국왕 모독죄다.

위우는 “교수님이 겪은 고통은 말도 못 할 정도였다. 세상이 변하니까 왕정도 변화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정도의 의견을 냈을 뿐이었는데도 왕정 전복 세력으로 몰려 협박 전화가 걸려오고 미행도 당했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우리에게도 자신의 근처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당시 솜사쿠 교수의 페이스북에는 ‘태국을 떠나라’ ‘너를 구속한다’와 같은 악성 댓글이 달렸다. 심지어 태국군의 유력한 사령관 중 한 명은 인터뷰에서 “솜사쿠 교수는 체제를 전복하려는 미친 학자”라고 비난했다.

위우에게 “대학 내에서 왕정에 관해 논의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왕정 자체에 대해 논의를 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은 분명히 늘어나고 있다. 국왕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군주제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 국왕이 부자이니까 좋아하지 않는 사람 등 부정적인 이유도 다양하다. 그러나 대놓고 말할 수 없다. 모두 위법이다. 스스로 검열하게 된다”고 답했다. 실제로 우리네 학원 사찰과 비슷한 일도 벌어진다고 했다. 위우는 “경찰에서 왕실 모독죄를 범할 우려가 있는 학생 모임을 감시해달라고 학교에 요청했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왕실 모독법 적용 대상에는 예외가 없다. 태국 극장에서 영화가 시작하기 전 흘러나오는 ‘국왕 찬가’ 시간에 기립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태국인 남성이 체포되기도 했고, 휴대전화로 왕실을 비판하는 단문 메시지 4통을 보낸 60대의 태국 남성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옥사하기도 했다.

외국인이라고 해서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 콜로라도에서 자동차 영업을 하는 한 미국인 남성은 2011년 5월 태국을 방문했다가 갑자기 체포됐다. 이 남성도 왕실 모독죄를 적용받았다. 2007~10년에 걸쳐 태국 내에서 발매가 금지돼 있는 책의 내용을 자신의 블로그에 게재했다는 이유에서다. 발췌한 책은 한 미국 언론인이 푸미폰 국왕에 대해 비판적으로 쓴 평전인 <The King never smile(왕은 결코 웃지 않는다)>였다.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이 미국인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지난해 7월 푸미폰 국왕의 사면을 받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태국의 진보적인 학자 그룹인 ‘니티랏토’는 민주 사회의 기본 원칙인 ‘표현의 자유’를 들어 지난해부터 왕실 모독죄를 규정한 형법 112조의 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 솜사쿠 교수가 고충을 겪었던 탐마삿 대학을 중심으로 이런 움직임이 거세다고 한다. 반면 112조를 지지하는 세력도 여전히 뿌리가 깊다. 이들은 왕실 모독죄를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만이 군주제를 보호할 수 있는 방파제라고 생각한다.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반탁신 시위를 펼치는 무리들이 대표적이다.

탁신의 여동생인 잉락이 이끄는 현 정권은 집권당의 입장에서 괜히 불필요한 갈등을 만들기 싫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잉락 총리는 일찌감치 “나는 형법 112조를 존중한다”고 말했다. 심지어는 개혁의 중심축인 탐마삿 대학 캠퍼스에 “112조 개정 운동을 하지 말라”고 통보해 학생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탁신 여동생 잉락 총리의 어정쩡한 태도 비판

그렇다면 막상 당사자인 푸미폰 국왕의 입장은 어떨까? 자세한 이야기는 들을 수 없었지만, 태국 현지 기자를 통해 ‘형법 112조의 개정을 우려’하는 편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왕실 모독죄 조항을 개정할 경우 입헌군주제와 공화제를 둘러싼 정치 투쟁으로 번질 우려가 국왕을 고민스럽게 한다는 얘기였다.

라셀 박사는 “지금 태국의 국민들은 드러내고 있진 않지만 분명 다음 시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존경받는 푸미폰 국왕이 살아 있을 때 왕실 모독죄 문제 등 태국민들의 고민을 정리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왜냐하면 국왕의 노쇠화 그리고 탁신 여동생의 집권, 탁신의 사면과 귀국 등 풀기 어려운 난제들이 한꺼번에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교통정리가 되지 않는다면? 태국 왕실과 민주주의라는 난제는 언제든 다시 충돌할 수 있다.

※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⑤ 그리스-경제 주권 잃은 나라에 민주주의는 없었다’가 연재됩니다.

 

푸미폰 국왕의 후계자들. 바치라롱콘 왕세자(왼쪽)와 시린톤 공주(오른쪽). ⓒ EPA 연합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지만 문제가 생기면 왕실의 위엄에 의지해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 ‘태국식 민주주의’의 독특함이다. 푸미폰 국왕이라는 존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그만큼 국왕 개인의 자질이 뛰어났다는 뜻도 된다.

태국 국민들은 그동안 후계 구도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시아누크 캄보디아 전 국왕이 사망하면서부터 자신들의 국왕이 85세에 병환 중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태국의 정·재계에서는 “지금부터라도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왜냐하면 왕위 계승 절차부터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전 라마 8세가 사망하고 푸미폰 국왕(라마 9세)이 왕위를 물려받은 것이 무려 67년 전의 일이다.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조차 극히 드물다. 승계 절차를 논의해야 하지만 왕실 모독죄가 존재하고 언론의 자유가 열악한 태국에서 이는 쉽게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현행 태국 헌법에 따르면 왕위를 잇는 후계자가 지명되면 국회에서 승인하는 절차를 거친다. 만약 선대의 특별한 지명이 없다면 추밀원이 추천하게 된다. 그런데 ‘지명’이라는 절차 자체가 아직 명확하지 않고 왕자뿐 아니라 공주도 지명받을 수 있기 때문에 왕위 계승 논란이 일 경우 생길 세력 간 알력 다툼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현재 왕위 계승에서 가장 유력한 사람은 푸미폰 국왕의 장자인 마하 바치라롱콘 왕세자(61)다. 최근에는 푸미콘 국왕의 옆에서 보좌하는 모습이 자주 노출되고 있다. 하지만 태국 국민들 중 상당수는 왕세자의 방탕한 생활을 기억하고 있어 인기가 높지 않다고 한다. 마하 차크리 시린톤 공주(57)도 왕위 계승권을 보유하고 있다. 시린톤 공주는 다른 나라 왕실과의 외교에 대신 파견될 정도로 국왕의 신뢰를 받고 있다. 6개 국어를 구사하는 그녀의 인기는 왕세자와 비교해 압도적으로 높다.

한 태국 기자는 “만약 왕세자가 계승할 경우 추밀원을 중심으로 반발이 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탁신 전 총리와 왕세자의 관계는 태국에서 암암리에 알려져 있다. 즉위 이후를 대비해 탁신이 왕세자의 스폰서 노릇을 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현재 잉랏 총리는 탁신의 여동생인 만큼 왕세자가 즉위한다면 추밀원과 군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반대로 시린톤 공주가 즉위할 경우에는 어떨까? 불투명한 절차 때문에라도 친탁신파 주변에서 소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왕위 계승에도 태국 정치의 진통은 그대로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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