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여자’, 남자들에겐 나쁘지 않다?
  • 하재근│문화평론가 ()
  • 승인 2013.08.14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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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적 사회 거부하고 여성 욕망 과감히 드러내…상업성엔 눈총

올 상반기에 나쁜 여자 신드롬이 거세게 불었다. 포문을 연 것은 레이디스코드의 <나쁜 여자>였고, 이 흐름을 굳힌 것은 이효리의 <배드걸>

이었다. <배드걸>의 원래 제목은 <싸가지 없는 여자>였다고 한다. 이효리의 뒤를 이어 2NE1의 씨엘이 나쁜 여자 트렌드의 정점을 찍었다. 바로 솔로곡인 <나쁜 기집애>를 통해서였다. 씨엘은 그동안 사인할 때 ‘The baddest female’이라고 쓰며 나쁜 여자를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워왔다. 걸스데이도 <여자대통령>으로 나쁜 여자 대열에 합류했다.

이런 흐름은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 강화돼왔다. 이효리의 솔로 독립 이후의 행보가 바로 2000년대 나쁜 여자의 역사다. 이효리가 2003년에 발표한 솔로 데뷔곡은 <10 MINUTES>였는데, 바로 한국의 전통적인 청순가련 여성상에서 벗어난 신여성을 표현한 노래였다. 보통 섹시 스타는 남성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는 대신에 여성들에게선 적대적인 시선을 받는다. 하지만 이효리는 여성들의 환호를 받았는데, 그것은 바로 이효리가 나쁜 여자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이효리의 의 원래 제목은 였다. 위는 뮤직비디오 캡처 사진.
가부장적 전통을 거부하다

씨엘은 <나쁜 기집애>에서 ‘남자들은 허니라 불러요 / 여자들은 언니라 불러요’라고 노래했다. 나쁜 여자는 여성팬들에게 닮고 싶은 언니, 즉 롤 모델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혹은 동시대 여성들의 대변자가 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섹시 스타는 남성 잡지에서만 주목받게 마련인데, 이효리의 언행과 스타일이 여성 잡지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된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우리의 21세기는 나쁜 여자가 뜨는 시대라고 볼 수 있겠다.

나쁜 여자는 정말 나쁜 여자라는 뜻이 아니다. 가부장적 남성 지배 사회가 여성에게 강요해왔던 성 역할을 거부하는 여자라는 의미일 뿐이다. 한국은 이슬람 문화권 다음 수준으로 여성을 억압해왔던 나라다. 조선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을 완전히 봉쇄했다. 남편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뽐냈던 허난설헌을 자살하도록 만든 나라가 바로 조선이었다. 여성을 수동적이고 가정적인 존재로만 보는 시선은 오만원짜리 지폐에 현모양처의 상징인 신사임당이 담기면서 다시 한 번 확인됐다.

전통 사회에서 여성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서도, 몸을 드러내서도, 목소리를 크게 내서도 안 됐다. 여성의 목소리가 담을 넘으면 재수가 없다고들 했다. 여성은 어려선 아버지를, 혼인해선 남편을, 남편이 죽은 후엔 아들을 따라야 하는 삼종지도를 지켜야 했다. 여성에게 이런 시스템을 강요하는 억압 기구로 등장한 것이 바로 악명 높은 ‘시월드’다.

1950~60년대 정도까지만 해도 여성은 동년배 남성에게도 고분고분 존댓말을 해야 하는 풍습이 남아 있었다. 그런 억압적 분위기를 감내하며 여성의 가슴에 쌓인 것이 바로 ‘화’다. 화병이라는 한국의 독특한 정신병은 한국의 강고한 억압 구조가 만들어낸 업보였다.

여성은 큰소리를 내서도, 욕망을 드러내서도 안 되기 때문에 그 화를 풀 길은 조용히 흐느껴 우는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대중문화 속에서 여성은 많이 울었다. 그게 바로 신파 멜로의 전통이고, 청순가련 캐릭터의 전통이다.

이젠 흐느껴 울지 않고 당당히 소리를 내겠다는 것이 바로 나쁜 여자다. 몸이든 욕망이든 다 드러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 다리를 보라’며 치마를 풀어헤치기도 하고(달샤벳 <내 다리를 봐>), ‘니가 먼저 시작해’라며 적극적으로 남성에게 대시하라고 주문하고(걸스데이 <여자 대통령>), ‘욕심이 남보다 좀 많은 여자 / 지는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여자’라며 욕망과 경쟁심을 드러내기도 하고, ‘TV 속에 청순가련 여주인공 그 옆에 더 끌리는 나쁜 여자’가 되겠다며 청순가련 거부 선언을 하기도 한다(이효리 <배드걸>).

이런 흐름은 2000년대에 여성의 사회 참여가 극적으로 확대되는 시대상과 맞물렸다. 이젠 여성들이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로 나가 남성들과 투쟁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주의 심리학자 우테 에어하르트는 ‘착한 여자는 죽어서 천당에 가지만, 나쁜 여자는 살아서 어디든 간다’고 했다. 한국에서 전통적인 착한 여자는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살다가 죽은 후 신사임당처럼 칭송을 받지만, 이젠 그런 칭송을 거부하고 ‘어디든 가겠다. 무슨 일이든 하겠다’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이들의 심경을 대변한 것이 바로 나쁜 여자인 것이다. 요컨대, 나쁜 여자는 바로 당당한 여자다.

나쁜 여자는 정말 나쁜 여자일까?

사회생활 속에서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려면 보통의 결의를 가지고는 안 된다. 여성에겐 보이지 않는 차별, 즉 ‘유리 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벽을 넘으려면 독을 품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나쁜 여자다. 성공하려면 슈퍼우먼이 되라고 요구하는 사회의 장벽을 여성은 악으로 넘어야 했다. 가요계보다는 드라마에서 이런 악에 받친 악녀상이 잘 나타난다.

‘남성연대’도 나쁜 여자와 무관하지 않다. 가부장 사회에 비집고 들어가 영토를 넓히는 나쁜 여자들에 대한 반발로 태어난 것이 바로 이 남성연대라고 하겠다. 최근 인터넷에서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여성 혐오도, 사회적 자신감을 잃어가는 남성들의 반발인 측면이 크다. 여기까지만 보면 나쁜 여자 흐름이 마치 남성 권력을 위협하는 여권 신장의 표출인 것처럼 느껴진다. 많은 사람이 이런 관점으로 나쁜 여자 트렌드를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과연 이게 다일까?

최근 가요계에서 나쁜 여자 신드롬과 동시에 나타난 신조어가 바로 ‘팬티패션’이다. 당당한 여성이 되겠다며 옷을 벗은 결과 결국 선정성 논란이 일어났다. 가부장 권력의 전통적 억압은 여성의 몸을 가리고 욕망을 억누르라는 것이었는데, 그에 대한 반발로 몸을 보여주고 욕망을 표현했더니 남성들이 오히려 더 좋아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요즘 가요계의 나쁜 여자는 기실 나쁜 여자가 아니라, 남성 입장에서 고마운 여자처럼 느껴진다. 몸도 보여주고, 먼저 대시하고, 하룻밤을 보내자고 제안도 하겠다니 가히 남성을 위한 판타지 여성상이다. 남성은 ‘조신한 여자’와 ‘육감적인 여자’를 모두 좋아한다. 남성이 원하는 1번 여성상 대신 2번 여성상을 제시한 셈인데, 1번이든 2번이든 어차피 모두 남성의 욕망이다.

나쁜 여자는 원래 남성 위주의 억압적 질서를 거부하는 욕망의 주체로서의 여성 선언이었지만, 그것이 상업적 과정을 거치면서 남성을 위한 성적 자극으로 변질된 것이다. 그래서 허울만 나쁜 여자일 뿐 사실은 남성들의 ‘착한 여자’가 돼가고 있다. 봉건적 억압이 약화되자 상업주의라는 새로운 질곡이 여성을 가두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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