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전쟁, ‘밥그릇 싸움’으로 막 내리나
  • 조해수 기자 (chs900@sisapress.com)
  • 승인 2013.08.2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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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전쟁’ 치닫던 ‘윤우진 전 세무서장 의혹’ 사건, 흐지부지될 듯

현직 세무서장인 형과 촉망받는 특수부 검사인 동생. 그런 형이 세무조사 무마 대가로 한 사업자에게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았다는 의혹을 샀고, 경찰이 이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추적 과정에서 세무서장이 몇몇 검사들과도 유착된 정황을 포착한다. 경찰은 이 사건이야말로 검찰을 공격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보고 집중적으로 매달린다. 하지만 검찰은 번번이 경찰의 수사영장을 기각한다. 경찰은 세무서장의 동생이 현직 검사라는 점 등을 들어 ‘검찰이 비리를 비호하고 있다’고 공격한다. 검찰은 ‘경찰이 과도하게 표적 수사를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검찰과 경찰의 진흙탕 싸움은 점입가경 양상으로 치닫고, 그 와중에 세무서장은 해외로 도피한다.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영화 시나리오 같다. 대한민국의 3대 사정 권력기관인 검찰·경찰·국세청이 모두 등장하는 이 사건은 실제 지난해 9월 세상에 알려지며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시사저널> 2012년 9월25일자(제1197호) ‘국세청 앞에서 난타전 빠진 검·경’ 기사 참조). 워낙 대선 정국이 가열된 때여서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지만,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 여부는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과 맞물려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실제 검찰과 경찰은 조직의 사활을 걸다시피 하며 정면으로 맞붙기도 했다. 이른바 ‘윤우진 용산세무서장 뇌물 수수 의혹’ 사건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결말은 지금 맥이 빠진 상태다. 지난 7월29일 서울중앙지법은 “범죄 혐의에 관한 소명이 충분치 않고 수사 진행 상황 등에 비춰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윤우진 전 서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정황만 있을 뿐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경찰의 태도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사활을 걸다시피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한때 그렇게 떠들썩했던 사건이 지금은 마치 ‘계륵’ 신세처럼 돼버린 것이다.

태국에 불법 체류하다 지난 4월19일 검거된 윤우진 전 서울 용산세무서장이 4월25일 인천공항에서 서울 마포 광역수사대로 압송되고 있다. ⓒ 연합뉴스
경찰, 윤 전 서장과 검찰 유착 집요하게 수사

지난해 4월 한 대학의 입시 비리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이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윤우진 전 세무서장에게 금품과 향응, 골프 접대 등을 제공한 육류 수입업자 김 아무개씨의 수첩에서 ‘라운딩-○○○, △△△’라는 메모를 발견했다. ○○○과 △△△은 현직 검사의 실명이었다. 이에 따라 경찰은 골프 접대 장소로 지목된 인천의 S골프장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윤 전 서장 명의로 된 골프장 예약 부분을 제외하고는 영장을 모두 기각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싸기 위해 수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에다 현직 검찰 고위 간부인 윤 전 서장의 친동생이 압력을 행사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반면 검찰은 “거론되고 있는 검사 두 명은 경찰과 척을 진 대표적인 인물이다. 경찰이 이들을 노리고 표적으로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경찰 수사는 집요했다. 윤 전 서장의 대포폰 통화 내역을 입수하기도 했다. 윤 전 서장이 대포폰을 통해 10여 명의 검사와 수시로 통화한 흔적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윤 전 서장의 인맥이 검찰을 넘어 언론계, 관계 등에도 문어발처럼 뻗어 있는 정황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이 국세청·검찰·언론계·관계 고위 인사들에게도 로비를 한 것으로 봤다. 이때만 해도 이번 사건은 단순한 개인 비리 차원을 넘어 대형 게이트로 확산될 것처럼 보였다.

이후 수사는 예상치 못한 암초를 만났다. 경찰 수사가 한창이던 지난해 8월30일, 윤 전 서장이 경찰 수사를 피해 해외로 도피한 것이다. 그의 도피 탓에 수사는 기소 중지 상태로 기약 없이 중단됐다. 경찰은 그가 체포되기만 하면 엄청난 의혹들이 줄줄이 드러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4월19일 윤 전 서장은 태국에서 불법 체류 혐의로 체포됐다. 경찰이 여권을 무효화하면서 불법 체류자 신세가 된 윤 전 서장이 태국 이민청에 적발된 것이다. 경찰은 윤 전 서장이 한국에 송환되자마자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금품을 건넨 정황과 대가성 여부가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며 영장을 반려하고 보강 수사를 지휘했다. 경찰은 즉시 반발했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도중 해외로 도피해 8개월간 잠적했던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은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새 경찰 수뇌부, 검찰과의 마찰 원치 않아

이때만 해도 경찰 측은 검찰의 ‘방해’만 없으면, 윤 전 서장 구속영장은 ‘떼 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경찰의 기대와 달리 서울중앙지법 역시 7월29일 영장을 기각했다. 경찰의 입장이 궁색해졌다. 검찰을 향해 ‘제 식구 감싸기’라고 반발해왔던 경찰이었지만, 법원이 증거 부족을 이유로 영장을 기각하면서 오히려 경찰의 무능력만 입증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은 ‘별장 성접대 사건’의 판박이 같다. 거창하게 출발했지만, 결국 입증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번 사건을 처음 수사하기 시작한 곳 역시 별장 성접대 사건과 마찬가지로 경찰청 범죄정보과였다. 범죄정보과는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검·경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2011년 12월,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실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이 야심 차게 신설한 부서다. 고위 공직자의 비리 수집을 전담하고 있는데,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검사 잡는 경찰’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0억원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광준 전 부장검사에 대한 수사 역시 범죄정보과 작품이다. 그러나 대전고검장 출신인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을 집중 타깃으로 삼았던 별장 성접대 사건이 흐지부지되면서 이곳 실무자들이 대거 교체되는 수모를 겪었다.

이번 윤우진 전 서장 사건은 별장 성접대 사건에 대한 문책성으로 물러난 김기용 전 경찰청장을 대신해 경찰 수장에 오른 이성한 청장에게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현직 검찰 간부의 이름까지 거론해놓고 결실을 맺지 못할 경우 또 다른 후폭풍에 시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찰 수뇌부가 이 사건을 서둘러 검찰에 송치하고 마무리하려고 한다는 얘기도 들린다. 경찰 관계자는 “이 청장 자체가 검찰과의 일전을 벌일 만한 전사형 타입이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이번 사건 역시 검찰에 넘겨 책임을 피하려고 한 듯하다. (이 사건은)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은 검·경을 비롯해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갈등과 치부를 살짝 보여주고 해프닝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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