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어깨가 자꾸 처진다
  • 이석·엄민우 기자·조혜지·조수영 인턴기자 ()
  • 승인 2013.08.2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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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의 세제 개편 ‘후폭풍’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8월8일 발표한 세법 개정안이 논란의 도화선이 됐다. 전세난과 가계 부채 증가, 물가 상승 등이 겹치면서 서민들의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있다. 정부의 세제 개편안은 서민·중산층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 “유리 지갑이 봉이냐”는 거친 목소리가 쏟아졌다. 논란이 확산되자 박근혜 대통령은 ‘원점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서민들의 팍팍한 삶은 달라진 것이 없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부랴부랴 수정안을 내놓은 정부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만 가중되고 있다. <시사저널>은 30~50대 샐러리맨 및 자영업자 사례를 통해 이 시대 서민의 자화상을 들여다봤다.

대기업 다니는 5년 차 직장인 이철호씨

직장 5년 차인 이철호씨(가명·31)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이씨는 그동안 정부 정책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회사와 연관이 있는 정책 발표에 가끔 귀를 기울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내놓은 세제 개편안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씨는 “증세 기준선이 3450만원이냐, 5500만원이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금 걷기 쉽다고 직장인 주머니만 노려 세수를 채우겠다는 발상 자체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씨가 이렇게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씨는 올해 소폭이지만 연봉이 올랐으나 실수령액은 지난해보다 감소했다. 지난해에 받은 성과급 때문이다. 이씨가 다니는 회사는 2011년 성과에 대한 성과급 450만원을 2012년에 지급했다. 하지만 이씨는 월급명세서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의료보험비가 기존에 내던 것보다 10만원가량 더 빠져나갔다. 성과급 450만원이 추가로 지급되자 이씨의 연봉이 늘어난 것으로 여겨져 의료보험비가 덩달아 껑충 뛴 것이다. 관련 세금이 늘어나면서 매달 수령하는 실지급액이 지난해보다 깎이게 됐다. 이씨는 당분간 계속 줄어든 액수를 수령해야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성과급 때문에 실제로 받는 월급이 준 셈이다.

걱정은 또 있다. 지난 5월에는 결혼도 했다. 주변에서는 연봉을 많이 받아 좋겠다면서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가 받는 실제 연봉은 3800만원 정도다. 월 3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그나마 통장에 들어오기도 전에 각종 세금과 의료보험료 등으로 뭉텅 잘려나간다. 세금을 제하고 나면 매달 손에 쥐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 중 상당액이 신혼집 마련 등을 위해 받은 대출의 이자와 원금으로 다시 빠져나간다. 한 달에 50만원 저축하는 것도 빠듯하다. 이씨는 “올해도 성과급 400만원을 받았는데 거기서도 세금을 70만원을 떼어갔다. 정부에서 자꾸 직장인 월급 갖고 어떻게 해보려는 세금 정책을 얘기하는데 속에서 불이 난다. 솔직히 (직장인들에게 세금을 걷는 게) 가장 쉬워서 그렇게 하는 건 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느냐”고 말했다.

이씨는 올해 여름휴가도 포기했다. 돈을 아끼기 위해서다. 휴가를 가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집과 한강을 오가며 시간을 보내다가 날씨가 너무 더워 그마저도 포기하고 그냥 ‘방콕’했다고 한다. 직장인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창구인 친구들과의 술자리도 요새는 부담이다.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위축된 생활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씨는 회사 입사와 동시에 꾸준히 저축을 해왔다. 나름으로 목돈을 모았지만 결혼하고 나니 오히려 마이너스가 됐다. 이제는 그것을 다시 플러스로 바꾸는 데 온 힘을 쏟고 있다. 그러다 보니 휴가는커녕 친구들과의 만남도 주저하게 됐다. 그는 “휴가 한 번 가면 30만~40만원은 써야 하는데 집에 있으면 그만큼 아낄 수 있다. 아직 아이가 없는데도 이러는데 나중에 어떻게 될지 걱정”이라며 “정부는 ‘16만원 정도 더 내는 건 감내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식으로 이야기한다. 정말 직장인들의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소리다”라고 꼬집었다. 그는 아직 자녀가 없다. 그럼에도 매달 생활비 걱정을 하고 있다.

 

두 명의 자녀 둔 직장인 김선우씨

직장인 김선우씨(가명·35)는 현재 두 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올해 9월이면 아내 배 속에 있는 셋째도 태어난다. 지금의 연봉으로 다섯 식구를 어떻게 먹여 살려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그는 현재 서울의 한 회사에 다니고 있다. 연봉은 4300만원대. 월 실수령액은 300만원이 조금 안 된다. 올해 과장으로 승진해 연봉이 조금 늘었다. 하지만 아이들 교육비와 보험료 60만원, 차량 할부 비용을 제하고 나면 한 달 생활비가 빠듯하다.

김씨는 지난해 큰맘 먹고 경기도 하남시의 아파트를 매입해 이사를 했다. 9월에 태어날 셋째를 위해서다. 전세금을 따로 올려주느니 은행에서 1억원을 대출받아 집을 샀다. 현재 매달 36만원의 이자를 내고 있다. 거치 기간이 지나는 내년부터는 68만원씩을 상환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소득공제를 세액공제로 바꾸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닐 것 같다. 셋째가 태어나면 출산 공제 200만원과 다자녀 공제 300만원, 자녀 양육비 공제 300만원 등 800만원을 연말에 공제받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정부의 세제 개편으로 홀랑 날아갈 ‘위기’에 처했다. 세법을 개정하면서 자녀 세액공제를 1인당 15만원, 3명부터 20만원으로 통합·축소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정부가 출산 장려책을 발표하면서 오히려 다자녀 가구의 혜택을 축소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는 그동안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자녀 가구에게 다양한 ‘당근 정책’을 썼다. 자동차 취득세뿐 아니라 전기료와 가스료를 지원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일고 있다. 김씨는 “도시가스의 경우 월 지원액이 1650원이다. 지원을 받으려면 서류를 준비해 신청해야 하는데 택시비가 더 많이 나와 신청조차 하지 않고 있다”고 푸념했다. 출산휴가 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현재 다니는 회사가 여성가족부 인증 기업이기 때문에 여성 근무자가 많다”며 “그럼에도 아이 때문에 그만두는 여직원이 많고, 남아 있어도 승진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의 복지 정책을 예로 들었다. 프랑스도 한때 심각한 저출산의 아픔을 겪으면서 유럽 내 출산율 꼴찌였다. 하지만 적극적인 출산·양육 정책에 힘입어 위기를 탈피했다. 할리우드 스타인 안젤리나 졸리 역시 프랑스에 저택을 사고 주민 신고를 하는 것만으로 240만원의 수당을 받았다. 김씨는 “프랑스처럼 다자녀 가구에 대한 지원을 더해달라는 것이 아니다”라며 “최소한 그동안 제공했던 것은 빼앗아가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식이면 누가 정부를 믿고 아이를 낳겠느냐”고 항변했다.

아이 셋을 두게 될 김씨가 고민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세 자녀이기 때문에 혜택을 많이 받을 것 아니냐”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 체감하는 것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자녀 수가 늘어나면서 부담만 커지고 있다. 월 50만원씩 900만원가량 부었던 연금저축도 올해 해약했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어들었다. 김씨는 “셋째를 임신하고부터 부담감이 크게 늘어났다”며 “요즘은 친구들과의 저녁 만남도 자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나마 현재는 아이들이 병설 유치원에 다니고 있어 별도의 육아 비용은 들어가지 않는다. 하지만 조만간 하남 미사강변도시가 완공되면 병설 유치원의 입학 경쟁률 또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담은 고스란히 김씨 몫이다. 그는 “3자녀 가구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도 혜택을 보기 어렵다. 유치원에 입학하기 위해선 필요한 점수를 얻어야 하는데, 그 점수가 안 되는 경우가 있어 위장 이혼을 하는 학부모까지 있다”며 정부의 현실적인 지원 정책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사장 서진우씨

팍팍한 삶을 토로하는 것은 샐러리맨뿐만이 아니다. 중소기업 사장인 서진우씨(가명·53)는 그동안 보수 중산층의 상징적인 삶을 살아왔다. 40대까지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대기업에서 근무했다. 서울 강북에 4억5000만원 상당의 아파트도 보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씨는 현재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명예퇴직으로 회사를 떠나면서 받은 퇴직금을 밑천으로 건설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화근이었다. 우선 5000만원을 들여 법인을 설립했다. 한동안은 사업이 괜찮았다. 하지만 2008년 터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회사가 급속하게 기울었다.

집에 돈을 가져가지 못한 지 벌써 몇 년이 지났다.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회사 운영비와 생활비를 보충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사업은 좀처럼 호전되지 않았다. 아파트를 팔아 빚을 처분하려고 했지만, 집은 나가지 않고 빚만 늘어났다. 은행 이자만 한 달에 수백만 원에 달했다. 결국 이씨는 제2금융권에까지 손을 내밀게 됐다. 최근 헐값에 아파트를 처분했지만 빚잔치를 벌이고 나니 남는 게 없다고 한다. 서씨는 현재 월세를 전전하고 있다. 그는 “대형 건설사가 따낸 공공 물량의 하도급이나 재하도급이라도 받으면 괜찮다. 올해는 이 물량조차도 나오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나마 물량이 나와도 치열한 경쟁 때문에 단가를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는 인건비라도 아껴볼 요량으로 직접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그렇다고 회사에 비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서씨의 회사는 현재 친환경 건설 자재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관련 시장 역시 계속 성장하면서 업계로부터 주목도 받고 있다. 하지만 사업비 마련을 위한 은행 대출은 꿈도 꾸지 못한다. 어쩔 수 없이 카드 돌려막기를 하다 연체가 돼서 신용이 9등급까지 떨어졌다. 은행 문을 두드렸지만 대표이사의 신용을 이유로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서씨는 “지난 10년간 사업을 하는 동안 받은 대출금은 신용보증기금이 저리로 2000만원을 대출해준 것이 전부였다”며 “매출이나 신용이 좋은 대기업이 아니면 중소기업이 대출을 받기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밝혔다. 자금난으로 사업은 더욱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서씨에 따르면, 주변에는 자금난을 못 이겨 사채까지 손댄 업주가 많다고 한다. 그는 “대출 한도가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은 담보를 걸어도 대출받기가 쉽지 않다”며 “직원보다 못한 사장들이 주변에 널려 있다”고 말했다.

서씨는 이번에 발표된 세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불만을 터뜨렸다. 오늘 벌었다고 해서 내일도 번다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영세 자영업자들의 실정이다. 오늘 하나를 벌면 내일은 둘을 내놓을 수도 있다. 겉으로 10억~20억원씩 수익을 내는 회사들도 안으로 곪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세법 개정안에는 이 부분이 간과돼 있다고 서씨는 지적한다. 일례로 정부는 그동안 환경 보전 시설이나 에너지 절약 시설에 대해 10%까지 투자 세액을 공제해줬다. 하지만 개정안에서 5%로 대폭 인하했다. 그는 “대기업의 경우 수익 감소만 걱정하면 되지만 중소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한다”며 “기업이나 업자의 수준과 형편을 감안해서 세율을 차등 적용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다”고 꼬집었다.

가계 부채 15년 만에 187조 →1000조 증가

서민·중산층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IMF 외환위기 당시 187조원에 불과하던 가계 부채는 현재 1000조원에 육박했다. 올해 말에는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으면서 전세 대출 역시 크게 늘어났다. 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 은행의 전세 자금 대출 잔액은 지난해 1월 4조9138억원에서 올 7월 9조2435억원으로 88.1%나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전세 대출의 급격한 증가가 가계 부채의 새로운 ‘뇌관’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7월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설문에 따르면 국민 3명 중 1명은 ‘올 들어 가계 형편이 더 악화됐다’고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생활수준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0.9%가 전과 ‘비슷하다’고 답했고, 31%는 ‘낮아졌다’고 했다. ‘좋아졌다’는 응답은 8.1%에 불과했다. 소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생활수준이 낮아졌다’는 부정적인 답변이 많았다. 하반기 살림살이에 대해서도 ‘비슷할 것’이라는 전망이 64.2%로 가장 많았다. ‘더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 역시 22.9%에 달했다.

특히 ‘경제 개미’로 불리는 자영업자의 부정적 답변 비율이 55.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최근 들어 자영업자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계속되는 경기 악화로 사업 기반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고, 마이너스 대출을 받아 생활비를 대체하는 ‘무늬만 사장’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KB금융 경영연구소는 “자영업자의 비중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만 대출 규모는 반대로 늘어나고 있다”며 “현재 대출 상환 부담을 다른 대출을 받아 일시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영업자도 12.7%에 달하는 만큼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연일 관련 대책을 발표하고 있지만, 시장에서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말 그대로 ‘백약이 무효’인 상태다. 덕분에 한국 경제의 허리인 중산층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장준영 민생경제연대 대표는 “돈이 돌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그는 “대기업들이 돈을 곳간에 쌓아놓고 풀지 않는다. 공공 예산 역시 대기업에 편중되다 보니 민생 경제 영역으로 돈이 흘러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업들의 유보금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국내 20대 기업의 유보금은 820조원을 돌파했다. 기업들이 곳간에 자금을 쌓아놓고 투자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최근 불거진 세제 개혁안에 대한 논란이 거센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가 세금 부담이 증가하는 연간 총급여 기준을 3450만원에서 5500만원으로 상향 조정했지만, 서민·중산층 입장에서는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고소득층이나 대기업은 가만히 둔 채 소득이 빤한 유리 지갑만 손대고 있다는 점에서 형평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장준영 대표는 “고소득자나 대기업의 세금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정부가 법인세나 재산세를 건드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이는 통계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의 ‘깃털론’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그는 세제 개편안에 대한 월급쟁이·영세상인 등의 반발이 폭발하자 “올해 세법 개정안의 정신은 거위가 고통을 느끼지 않도록 깃털을 살짝 빼내는 식으로 세금을 더 거두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장은 컸다. 새누리당에서조차 비난이 이어졌다. 민주당은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 해임을 요구하고 나섰다.

물론 정부나 재계에서는 억울함을 토로한다. 세법 개정안이 고소득자에게 혜택이 많이 가는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서민에게 이익이라고 주장한다. 박 대통령의 ‘원점 재검토’ 발언이 나온 지 나흘 만에 수정안을 발표한 것도 “합리적인 선에서 반영할 부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1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원동 경제수석 ‘깃털론’ 일파만파

재계 의견도 비슷했다. 대기업의 한 임원은 “한국의 GDP(국내총생산) 대비 개인소득세는 OECD 평균의 42.6%인 반면, 법인 소득세는 OECD 평균의 120%에 달한다”며 “이런 상황에서 덮어놓고 부자 감세 폐지를 요구하는 민주당의 주장은 어폐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의견은 달랐다. 전문가들은 우선 ‘세금 폭탄’이라는 표현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말한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우리나라의 세제는 소득이 많을수록 세금이 증가하는 누진 구조”라며 “복지 확대는 세금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연봉 4000만~7000만원 구간 계층의 부담 증가를 이유로 ‘세금 폭탄론’을 꺼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집행위원장은 “참여정부 후반기에 정부가 종합부동산세를 추진했는데 적용 대상은 전체의 1.3%에 불과했다”며 “당시 한나라당이 ‘세금 폭탄’이라는 자극적인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번에는 민주당이 이런 논리를 다시 꺼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과세 공평성 차원에서 이번 세제 개편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이상구 위원장은 “이번 세법 개정안은 근로소득세 부분만 건드렸고 법인세·금융거래세 등 전반적인 세제 개편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며 “월급쟁이나 영세 자영업자의 반발이 큰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세청 세수 실적 및 진도비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6월까지 세수 실적은 92조원을 조금 넘겨 지난해보다 9조4000억원이 줄어들었다. 우리 경제 성장률을 감안하면 세금이 약 10% 정도 덜 걷힌 것이다. 세수가 가장 많이 줄어든 부분은 법인세 부문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4조원 이상 줄었다. 법인세는 법인소득이 2억 이하면 10%, 2억원 이상 200억 이하면 20%, 200억 이상이면 22%를 부과한다. 200억 이상이면 법인소득이 2000억이든 2조원이든 상관없이 최고 세율 22%를 부과받기 때문에 기업들 중에서도 특히 대기업들에게 유리한 구조다. 최고 세율 22%는 지난 10년 동안 6% 낮아진 수치다. OECD 평균치에 비하면 그리 낮지 않아 보이지만 여기엔 함정이 있다. 우리는 정부에서 성장·육성 정책으로 기업들에게 각종 세금 공제 혜택을 주었기 때문에 대기업들의 실제 법인세율은 22%에 미치지 못하는 15% 수준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병구 인하대 교수는 “복지 제도를 확충하는 과정에서 중산층의 세 부담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며 “중산층에 대한 세 부담 경감보다는 소득 계층 간 세 부담의 공평성 강화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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