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 컴퍼니를 찾아서1: 베어베터] 착한 척하려다 진짜 착해졌다
  • 김진령 기자 (jy@sisapress.com)
  • 승인 2013.08.2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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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80명 고용해 희망 키워…NHN 출신 김정호·이진희 대표가 세워

<시사저널> 굿 컴퍼니 프로젝트  

<시사저널>은 지난 5월28일 ‘2013 굿 컴퍼니 컨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서울 콘래드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행사는 1000명이 넘는 참가자가 몰릴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고, 내용도 알찼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시사저널>은 컨퍼런스에서 굿 컴퍼니 관련 기사를 연재하는 것은 물론, 굿 컴퍼니 지수를 개발해 한국형 굿 컴퍼니 발굴에 앞장설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사저널>은 인사 조직 컨설팅회사인 인사이트그룹과 함께 ‘굿 컴퍼니 지수’ 개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올해 안에 지수를 개발하고 실행 평가를 거쳐 ‘2014 굿 컴퍼니 컨퍼런스’에서 선보일 예정입니다.
아울러 이번 호부터 한국형 굿 컴퍼니를 탐구하는 기사를 격주로 연재합니다. 그 첫 번째 기업은 베어베터입니다.



베어베터라는 회사가 있다. 지난해 5월 출범한 자본금 5000만원의 주식회사로 발달장애인 71명(일반 관리직 11명)이 일하고 올해 월 매출은 1억5000만원, 연 매출 20억원을 바라본다. 발달장애인이란, 지적장애아와 자폐아를 아우르는 표현이다. 발달장애인들은 베어베터에서 명함과 케이크를 만들고 커피를 볶는다. 이렇게 일한 직원들은 한 달에 105만원을 받는다. 장애인 일터의 일반적인 임금에 비하면 월급이 엄청 세다. 이 회사 김정호·이진희 공동대표는 “올해 손익분기점을 맞출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이 일하는 회사가 어떻게 이런 성과를 일궈낼 수 있었을까.

이 회사의 시작점에는 이진희 대표가 있다. NHN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김 대표는 2010년 NHN 글로벌게임사업 총괄을 끝으로 NHN을 나왔고, 이진희 대표도 NHN 인사담당 임원직을 2010년에 그만뒀다. 이 대표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더 늦어지면 장애인 관련 일을 못 할 것 같아서”였다. 그의 고3 아들이 자폐아다.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김정호·이진희 공동대표. ⓒ 시사저널 임준선
“애가 30개월쯤 됐을 때 자폐아 판정이 나왔다. 슬프다기보다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5년 동안 육아에 전념했다. 남편도 처음에는 둘째가 자폐아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한다. 자폐는 그만큼 낯선 세계였다. “지금은 많이 좋아졌고, 일반 학교에 다닌다”고 말하지만 가슴앓이를 한 적이 여러 번이다. 고1 때 ‘괴물이 아니라면 4층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급우의 시달림에 아이가 교실 창틀에 섰을 때는 아찔했다.

이 대표는 “이런 상황을 맞이한 대다수 가족은 문제를 스스로 풀 수가 없다. 사회 시스템이 받쳐줘야 한다. 아이를 키우고 나면 이런 아이들을 돕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명확하다. “이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것을 만들어주고 싶다. 우리 회사는 모든 것을 보장할 수 없다. 다만 회사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할 것이다. 최저 임금과 장애인연금, 사회적 지원 장치가 결합되면 이들이 의미 있는 경제활동을 통해 수입을 얻고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8월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사회적 기업 베어베터 컴퍼니 작업장 모습. ⓒ 시사저널 임준선
장애인이 만들어도 품질은 ‘최고’

자식이 스스로 앞가림을 하고 밥벌이를 하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목소리를 내는 것. 이건 자식을 가진 모든 부모의 꿈이기도 하고, 자폐아 아들을 둔 엄마 이진희의 소망이기도 하다. 이 ‘사업’에 돈을 투자하고 영업을 뛰고 있는 김정호 대표가 함께한 이유는, NHN에도 자신이 삼성에 다닐 때도 주위에 발달장애아를 둔 부모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착한 척하려고 했다가 진짜로 착해지고 있다”는 그는 “우리 사회가 장애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감정 컨트롤이 안 되는 스무 살 넘은 남자애가 집에만 있으면 집안이 풍비박산 난다는 것도 알게 됐다”고 밝혔다.

NHN 창업에 참여하면서 주식을 받아 부자가 된 김 대표는 회사에서 퇴직한 후에도 벤처 투자나 장학 사업 같은 ‘착한 일’을 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자폐아를 위한 일을 구상하던 이진희 대표를 돕는 것.

이 대표는 “NHN을 그만두고 자폐인사랑협회에서 재능기부로 2년 동안 일했다. 자폐인에게 생애 주기별로 뭐가 진짜로 필요한 것인지를 배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때 단기보호센터를 만들었는데 들어간 돈의 반 이상을 김 대표가 기부했다. 그가 장학금을 줘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하더라. 하지만 ‘발달장애아는 대학 가는 게 큰 의미가 없다. 성인이 됐을 때 가장 필요한 게 일자리’라고 했더니 김 대표가 사회적 기업을 해보자고 하더라. 그래서 시작하게 됐다.”

장애인이 일하면서 망하지 않을 사업, 장애인을 꺼림칙하게 여기는 선입견을 없애줄 수 있는 사업. 그런 일을 찾기 시작했고 사업가 출신인 김 대표가 길을 열었다.

‘연계 고용’.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주는 직원의 2.5%를 장애인으로 고용할 의무가 있다. 이를 지키지 못할 경우 벌금(장애인 고용 분담금)을 내야 한다. 벌금을 안 내려면 직접 고용을 하거나 장애인을 10명 이상 고용한 자회사를 만들거나 아니면 장애인이 일하는 회사와 거래를 하면 된다. 장애인 회사와 거래한 금액만큼을 간접 고용으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웬만한 대기업은 장애인 고용 분담금만 수십억 원씩 내고 있다. 대기업 콜센터에서는 하반신이 부자유스러운 장애인을 고용하며 쿼터를 채우는 통에 장애 콜센터 직원은 없어서 못 구할 정도다. 발달장애인은 대부분 중증 장애인이어서 한 명을 고용하면 두 명을 고용하는 것으로 쳐주는데도 기업은 고용 대신 부담금을 택한다. 심지어 하루 3시간만 일하게 해도 되는데도 사고 등 관리의 어려움과 위험성을 들어 벌금을 내고 만다.

김 대표는 연계 고용으로 발달장애인 회사의 판로를 뚫었다. 그는 “베어베터가 2만원에 납품하면 납품받은 업체에선 5000원만 지불하면 된다. 부족한 1만5000원은 장애인 고용 분담금에서 지급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가격에만 매달린다고 사업이 성공할 수 있을까. “장애인 회사의 핸디캡을 이용해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품질은 그 자체로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업 품목으로 개인의 생산 능력에 따른 영향을 가장 덜 받는 분야를 골랐다. 명함 인쇄의 경우 장애인이 출력기 버튼을 눌렀다고 출력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 장애인이 만든 제품의 품질이 다르다고 생떼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이른바 ‘갑질’을 하려는 것일 뿐이다.” 김 대표의 설명이다. 그는 이를 위해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기계를 들여왔다. 코팅기도 열이 안 나는 제품으로 구입했다. 커터는 센서가 들어 있어 커버를 내리지 않으면 작동이 안 되는 독일제다.

사업장은 보안회사가 설치한 24개의 폐쇄회로 카메라가 상시 녹화하고 있다. 기계화·표준화·조직화, 핸디캡의 제도적 인정, 그에 맞는 비즈니스 발굴. 이게 바로 베어베터가 이른 시간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비결이다.

김 대표는 “우리 같은 사업체가 목포에도, 통영에도 생겨서 전국의 발달장애인이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실제로 효성그룹과 고려대 등에서 베어베터의 사업 모델을 벤치마킹해 장애인 회사를 출범시킬 준비를 하고 있고, SK그룹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 회사에 김 대표가 들인 돈은 서울 성수동의 사업장 확보에 들어간 15억원과 기계값 10억원 등 25억원이다. 정부 지원은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사업 품목이 명함과 카탈로그 인쇄, 커피, 제빵으로 ‘비관련 다각화’ 형태를 보이게 된 이유에 대해 이진희 대표는 “연계 고용 제도를 활용하려면 기업이 총무적 구매 비용을 쓰는 분야를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말했다. 베어베터의 공동 대표가 모두 NHN 출신이라 IT회사와 거래를 트기는 비교적 쉬웠지만 명함 수요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대신 IT기업은 사내 카페가 활성화돼 있어 커피나 쿠키 수요가 많다. 그래서 제빵과 커피 사업에도 손을 댄 것.

이 산 넘고 나서 올라야 할 또 다른 산

‘발달장애인이 사람대접 받고 제 밥벌이를 하는 직장’이라면 소문이 나기 마련이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에게 베어베터는 ‘장애인계의 삼성’으로 통한다. 이 회사에 다니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다. ‘혼자서 출퇴근이 가능할 것.’

이 대표는 “발달장애 1급이라도 혼자서 출퇴근이 가능한 친구가 있다. 3급인데도 혼자서 출퇴근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다. 두부 자르듯 등급으로만 판단할 순 없다”고 말했다. “첫 번째 목표는 지방 확산이다. 그 다음 목표는 상태가 중한 보호 대상 친구도 최저임금 수준으로 보호하는 시설 겸 직장을 만드는 것이다.”

베어베터에는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이 2 대 1 비율로 있다. 2012년 기준으로 한국 인구는 5073만4000명이고 장애인은 251만9000명이다. 이 중 지적장애인은 16만7500명, 자폐성 장애인은 1만5900명. 지적장애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15.9%이고, 자폐성 장애인은 0.7%에 불과하다. 일하는 자폐성 장애인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자폐성 장애인을 처음 대면한 비장애인은 당황한다. 감정의 블랙홀이자 무반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대표와 이 대표는 이들을 충분히 일터로 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건 자식을 세상에 남겨둬야 하는 발달장애인 부모에게 복음과도 같은 소식이다.

이 대표가 기자에게 꼭 써달라고 부탁한 게 있다. “일반 직장에서 장애인이 다른 직원과 섞여 일하는 직접 고용이 좋은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일반 직장에서 발달장애인에게 줄 직무가 없다. 중증 장애인이 최저임금 이상의 직장에 고용이 안 되는 이유다. 맡길 직무도 없고, 관리비가 더 든다. 꼭 같이 일해야 한다는 원칙이 형벌이 될 수 있다. 일자리를 그냥 배제해버리는 결과를 낳는다. 장애 유형별로 세분화해서 직접 고용과 간접 고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중증 장애인은 일할 능력이 있어도 어디 갈 데가 없다. 지금 학교에서 배우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에게 갈 데가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한다.”

베어베터의 당면 과제는 ‘헬스 프로젝트’다. 뭔가 트렌디한 기업 분위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회사의 인턴을 포함한 82명 직원 중 비장애인이 11명이다. 건강검진을 했더니 직원의 60%가 비만에 고지혈증, 당뇨로 나왔다. 발달장애인은 대개 식욕 관리가 안 된다. 뷔페에 가도 한 가지만 계속 먹는 식이다. 베어베터의 ‘베어’는 이런 외형적 특성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것은 발달장애인의 행동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프로젝트다. 회사에서는 포스터를 작업장 곳곳에 붙이고 여자 직원은 댄스를, 남자 직원은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회사의 직원 엄마들도 일주일에 한 번씩 모임을 가질 정도로 연대의식이 강하다.

베어베터는 ‘Bear makes world better’의 줄임말이다. 이 말대로 이들의 노동과 성과가 제 몫을 인정받는 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 전보다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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