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급식으로 대권 전쟁 불붙이다
  • 감명국·이승욱·조해수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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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룡’ 박원순과 김문수의 서로 다른 길

2011년 8월21일. 서울시청 브리핑룸에 모인 기자들은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예상치 못한 돌발 행동에 놀랐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는 무상급식 찬반 주민투표에 자신의 서울시장직을 걸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당시 오 시장은 무상급식 전면 실시에 반대하며, 서울시의회와 정면충돌하고 있었다. 사흘 뒤 치러진 주민투표 결과 오 전 시장의 바람과는 달리 투표율이 33.3%에 미치지 못하면서 그의 정치적 승부수는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다른 해석도 나왔다. 오세훈의 향후 대권 가도를 위한 포석이라는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수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당시 ‘오세훈 학습 효과’의 후폭풍은 상당했다. 오 전 시장의 사퇴로 치러진 그해 10월2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는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야권의 박원순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다. 이제 무상급식은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신성 불가침’이 됐다. 이는 다음해 대선 정국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아예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라는 화두를 선점하며 대세에 편승했다. 박 후보를 당선으로 이끈 일등 공신 중에는 야당 못지않게 화려했던 복지 공약이 있었다. 이 모든 게 오세훈 학습 효과였다.

2010년부터 불거진 무상급식 논란은 경기도도 비켜갈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같은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소속이었던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오 전 시장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그는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경기도의회의 주장을 사실상 받아들였다. 당시 서울시의회나 경기도의회는 모두 민주당 등 야권이 과반 의석을 갖고 있는 ‘여소야대’ 구도였다. 물론 당시 김 지사 측은 “무상급식 수용이란 표현은 잘못됐다. 김 지사는 여전히 무상급식에 대해 반대 입장이다. 친환경 급식 예산을 편성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친환경 급식이란 명목으로 사실상 무상급식 전면 실시를 주장하는 의회의 요구를 수용한 것이었다.

(왼쪽)김문수 ⓒ 시사저널 임준선(오른쪽)박원순 ⓒ 시사저널 포토
“김문수, 내년 불출마 쪽으로 분위기 잡혀”

그랬던 김문수 지사가 8월16일 경기도의 내년 무상급식 예산 전액 삭감 방침을 발표하고 나서면서, 지난 2년여 동안 ‘신성 불가침’으로 여겨졌던 무상급식 논란에 다시 불이 지펴졌다. 이는 공교롭게도 사흘 전인 13일부터 게재되기 시작한 서울시의 무상보육 관련 광고와 대비되면서 논란을 더욱 촉발시켰다.

박원순 시장은 이 광고에서 ‘대통령님! 보육 사업과 같은 전국 단위 사업은 중앙정부가 책임지는 것이 맞다고 하셨던 그 약속, 꼭 지켜주십시오’라고 박근혜 대통령을 정면으로 거론했다. 새누리당이 이를 두고 23일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며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는 것”이라며 박 시장을 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하고 나서면서 논쟁은 무상급식에서 차기 대권을 향한 기 싸움으로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김문수 지사를 가리켜 “개인의 차기 행보를 위해 보수층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저의가 숨어 있다”고 공격했다. 박원순 시장이나 김문수 지사는 누가 뭐라 해도 현재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들이다(16쪽 상자 기사 참조). 역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들 가운데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실제 이들은 대부분 대권 도전에 나섰다(17쪽 상자 기사 참조).

‘집토끼’ 단속 나선 박원순·김문수

야권에서는 이번 김문수 지사의 ‘무상급식 예산 삭감’을 또 다른 ‘변절’로 몰아붙이며 그를 ‘변절의 아이콘’으로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민주당 내 전략가로 통하는 한 고위 당직자는 “공식화만 안 했을 뿐, 김 지사는 내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안다. 그러니까 이런 도발이 가능한 것이다. 내년 선거를 의식했다면 과연 경기도민을 상대로 무상급식을 못하겠다고 할 수 있겠나. 무상급식 정책을 포퓰리즘으로 몰아붙이는 김 지사 자신이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 지사가 내년 6월 지방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는 정치권에서 심심찮게 돌았다. 이에 대해 박상길 경기도지사 비서실장은 기자의 확인 요구에 “아직 공식적으로 불출마를 밝힌 바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김 지사는 현재 도정에 전념하고 계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김 지사의 최측근으로 통하는 한 인사는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불출마 쪽으로 분위기가 잡혀가는 것은 맞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불출마를 결심했기 때문에 무상급식 예산 삭감을 주장하고 나서는 것인가”라는 추가 질문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야당에서는) 마치 김 지사가 전면 무상급식 찬성론자였다가 이번에 반대론자로 돌아선 것처럼 얘기하는데, 원래 김 지사는 반대론자였다. (2010년) 당시도 마음에는 안 들지만, 도의회가 그렇게 주장하니까 이를 받아들이는 것도 민주주의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김 지사가 지난해 새누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캠프에 있었던 인사들의 결속력은 상당히 강했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주군인 김 지사에 대한 충성도도 높았다. 이들은 당시에도 김 지사가 경선에 뛰어들었을 때 “도지사를 사퇴하고 대권에 올인해야 한다”는 강경론과 “이번에 안 될 경우를 대비해야 하기 때문에 섣부른 사퇴는 금물이다”라는 신중론이 맞섰다. 결국은 당시 유력 대권 주자였던 박근혜 후보의 존재감 때문에 “차기를 도모하자”는 신중론이 더 힘을 얻었다. 당시 캠프에 참여했던 한 핵심 인사는 “이번 선거를 교훈 삼아서라도 다음(2017년) 대선 때는 무조건 대권에 올인해야 한다. 도지사에 다시 출마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다. 이들은 최근에도 가끔씩 모여 논의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서 “지난해처럼 경기도지사를 하다가 당내 경선에 나서는 것은 승산이 없다. 이제 당에서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는 것이다. 김무성 의원의 경우처럼 재보선을 통해 국회로 다시 들어오면 차기 대권 구도에서 선두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그것이다. 실제 한 핵심 측근은 “어차피 내년 경기도지사 선거에 현역 지역구 의원이 출마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면, (경기도에서) 재보선 지역이 나오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예산의 정부 지원 확대를 촉구하는 광고를 게재하자 청와대와 새누리당 등 여권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박 시장이 향후 대권 구도에서 무시하지 못할 인물이라는 점을 반영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만큼 그를 견제하는 심리가 강하다. 실제 새누리당 내에선 “박 시장이 만약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면,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로 부각되면서 여야 다른 잠룡들을 압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박 시장 주변에서는 그를 대권과 연계시키는 것에 대해 경계하고 있다. 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과의 인연으로 박 시장과 정치적인 친분을 형성하고 있는 민주평화국민연대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무상급식 지원에 대해 정부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점은 상당수 지방자치단체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 시장이 정치적인 이슈를 선점한다는 측면보다는 진정성 있게 일하려는 자세로 정부에 요구했다는 측면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 후보가 지난해 12월16일 여의도 당사에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박 시장, 최근 민주당 등과 스킨십 활발”

하지만 서울시장이 갖는 정치적 위상 탓에 대권과 선을 긋기는 어렵다. 김태일 영남대 교수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며 공세적인 모습을 취하는 것은 그동안 조용히 시정 과제를 챙겨왔던 박 시장의 스타일과는 다른 이색적인 모습”이라며 “박 시장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논쟁적이고 거시적인 담론까지를 포함하는 일종의 전선을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 교수는 “야권 차기 대선 주자인 문재인·안철수 의원이 주춤하고, 야권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박 시장이 지자체장에 그치지 않고 국가 지도자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박 시장이나 김 지사 모두) 무상급식을 각각 화두로 내세운 것은 내년 지방선거, 나아가 대선을 겨냥해 핵심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전략”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 사람은 보수를, 다른 한 사람은 진보 쪽 사람들을 (자기 지지 기반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확실히 한 것으로, 자신들의 핵심 지지층이 원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져준 것”이라며 “일단 핵심 지지층을 단단히 한 후 지지층 확장에 나서는 게 선거 전략의 기본이다. 당연히 대권 가도 위의 두 사람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 재선을 노리고 있는 박 시장의 최근 행보도 눈에 띈다. 민주당 내에서도 차기 서울시장을 노리는 ‘잠룡’이 많은 탓에 박 시장 측으로서는 이제 당내 기반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이 때문에 최근 박 시장과 민주당의 관계는 몰라 볼 정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된 박 시장은 민주당 입당 후에도 한동안은 당과 거리를 뒀지만 최근 서울시당과 당·정 협의를 하는 등 당과의 소통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기동민 서울시 정무부시장도 당내 인사들과 활발히 접촉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박 시장은 스킨십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최근 기 부시장이 당 사람들과 접촉하며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도 기 부시장이 서울시당 위원들과 점심을 함께했다고 하더라. 다양한 인사들과 전 방위로 만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안철수 무소속 의원 쪽과도 일정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대선이 끝난 직후 안철수 캠프에서 핵심 역할을 맡았던 한 인사를 서울시로 영입하기도 했다. 여기에도 기 부시장이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원순과 김문수. 한 사람은 민주당 소속 서울시장이고, 또 한 사람은 새누리당 소속 경기도지사라는 점에서 이미 두 사람은 여야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였던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지금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는 두 광역단체장의 행보는 상징적이다. “2017년 대권 경쟁의 전주곡이 울려퍼졌다”는 전망이 결코 섣부른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여야의 차기 대권 주자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선두권을 유지하며 1위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무상급식’을 화두로 현 정권과 각을 세우면서 지지 기반 확장을 노리는 두 단체장의 전략이 이후 여론조사 결과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김문수 지사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과 여권 내 차기 대선 후보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이다. 김 지사는 여론조사 전문 기관인 리얼미터의 지난 7월 넷째 주(7월22~26일) 정례 조사에서 여권 차기 대선 주자 지지도 1위로 올라섰다. 당시 조사에서 김 지사는 8.8%의 지지율을 얻어 김무성 의원(8.5%)을 0.3%포인트 차이로 근소하게 앞섰다. 이보다 한 주 앞선 7월 셋째 주(7월15~19일) 같은 기관의 조사에서는 김 지사가 8.4%의 지지율로 김 의원(9.4%)보다 뒤졌다.

하지만 8월 들어 김 지사는 1위 자리를 김 의원에게 내줬다. 8월 첫째 주(8월5~9일) 조사에서는 지지율 7.9%를 얻어 김 의원에 이은 2위로 다시 내려왔다. 가장 최근 조사인 8월 둘째 주 조사에서도 김 지사는 지지율 7.7%로 김무성 의원(9.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무상급식 철회’를 공언하며 보수층에 메시지를 던진 김 지사가 다시 정상을 탈환할 수 있을지 눈여겨볼 만한 시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야권의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에서 ‘빅2’로 꼽히는 안철수·문재인 의원을 뛰어넘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리얼미터의 8월 둘째 주 정례 조사에서 박 시장은 안철수 의원(24.9%)과 문재인 의원(15.0%)에 이어 3위(8.8%)를 차지했다. 이보다 한 주 앞선 8월 첫째 주 조사에서 박 시장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10.3%)에 이어 4위(8.4%)를 차지했지만, 7월 넷째 주 조사에서는 반대로 박 시장(10.0%)이 손 전 대표(9.0%)보다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었다.


 
 

서울시장·경기도지사는 청와대 가는 지름길 


1995년 광역단체장 선거가 부활된 이후 역대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거쳐간 이는 7명이다. 이 가운데 실제 대선에 출마했거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된 이는 6명이다.

민선 부활 첫 시장·도지사였던 조순 전 서울시장과 이인제 전 경기도지사는 1997년 15대 대선 당시 모두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이 전 지사는 국민신당을 창당해 대선에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다. 조 전 시장은 민주당 후보로 나섰으나,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당시 신한국당(새누리당의 전신) 이회창 후보와 막판 단일화에 합의해 후보를 사퇴했다.

민선 2기의 고건 전 서울시장도 2007년 17대 대선 구도에서 한때 30%가 넘는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며 ‘대세론’을 형성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특정 정당에 소속되지 않았던 고 전 시장은 여당과 야당 입당, 그리고 신당 창당이라는 세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다 끝내 지지율이 급락하면서 대선 불출마와 함께 정계 은퇴 선언을 하고 만다. 반면 민선 3기의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17대 대선에서 당선하며 대통령에 올랐다. 이 전 대통령과 더불어 ‘대권’ 경합을 벌였던 민선 3기의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는 17대와 18대 대선 때 연이어 출사표를 던졌지만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다.

민선 4, 5기의 오세훈 전 서울시장 역시 지난해 18대 대선에서 대권 후보로 계속 거론됐으나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자충수로 스텝이 꼬이면서 출마의 꿈을 접었다. 전직 시·도지사 7명 가운데 대권 주자로 거론되지 못한 인사는 민선 2기 경기도지사를 지낸 임창렬 전 지사뿐이다.

현직인 박원순 서울시장(민선 5기)과 김문수 경기도지사(민선 4, 5기)가 지금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것은 언뜻 당연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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