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때 만든 게 차세대 전투기?
  • 김종대│<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
  • 승인 2013.08.27 15:2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구형 ‘F-15SE’ 단독 후보 발표 F-X 사업이 경제 논리에 밀렸다는 지적 나와

총 60대를 도입하는 공군의 차세대 전투기(F-X) 사업에서 이변이 일어나고 있다. 선정이 유력시되었던 미국 록히드마틴 사의 스텔스 전투기 ‘F-35A’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가 탈락하고, 가장 구형이고 성능이 낮은 미국 보잉 사의 ‘F-15SE’가 입찰을 통과해 9월에 종합평가를 거쳐 차세대 전투기로 선정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방위사업청(방사청)은 8월16일 F-35A가 확정가를 제시하지 못해 사업 범위 내에 들어오지 않아 사실상 탈락했다고 발표했다. 이틀 후인 18일에는 추가로 “1개 기종이 입찰 서류에 하자가 있어 사업 예산을 초과했다”며 유로파이터도 사실상 탈락했음을 밝혔다.

1970년대에 개발·배치된 할아버지 비행기인 F-15SE가 가격 입찰에서 단독으로 통과했다는 점은 이제껏 고성능 첨단 전투기 구매를 희망해온 국민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박근혜정부 들어 ‘가격’이 절대 조건 부상

그동안 복잡하게 소개된 차세대 전투기 기종 결정 상황을 강아지 구매에 비유하자면 이렇다. 어떤 가장이 강아지를 입양하려고 한다. 입양할 돈 83만원을 갖고 시장에 나가 보니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 번째는 대략 가격은 맞을 것 같은데 강아지라고 보기에는 너무 늙었다. 게다가 이미 집에 있는 강아지와 같은 종이라서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두 번째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강아지다. 새로운 종이라서 가장 마음에 들지만 100만원이란 비싼 가격을 치르고 언제 태어날지도 모를 강아지를 선입양하려니 왠지 꺼림칙하다. 세 번째는 가격은 90만원 수준으로 약간 비싸고 나이도 적당하지만 아메리칸 혈통이 아닌 유로피언 혈통이다. 이제껏 이 가장은 햄버거와 강아지는 아메리칸 스타일이어야만 한다고 믿어왔다. 자, 그렇다면 셋 중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할까?

여기서 첫 번째가 바로 F-15SE, 두 번째가 F-35A, 세 번째가 유로파이터라고 보면 된다. F-15SE로 좁혀진 F-X 사업은 애초 이 사업을 시작했던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정부의 관점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을 보여준다. 전임 정권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기지를 선제공격할 수 있는 ‘적극적 억제 전략’을 표방하면서 전투기 사업을 출발시켰다. 북한의 조밀한 방공망을 돌파해 정밀 타격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고성능 전투기를 도입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한 사업이기에 스텔스 성능을 자랑하는 F-35A가 유력시됐다.

그런데 박근혜정부의 경우는 전임 정부의 적극적인 군사 전략 실현 가능성을 의심하며 이제껏 평가와 달리 가격 요인을 우선시했다. 박근혜정부에 들어와서 김관진 국방부장관은 적극적 억제 전략이나 선제공격과 같은 강압적인 군사 전략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임 정권의 전투기 평가에는 종합평가 점수의 15%만이 가격 요인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성능이 우수하다면 이를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 그런데 8월16일 입찰 결과 발표에서 방사청은 ‘가격이 초과하는 기종과는 본 계약을 체결할 수 없다’는 국가계약법 조항까지 제시하는 등 일차적인 기준이 가격임을 분명히 했다. 이렇게 되면 가격 요인은 평가의 15%를 차지하는 평가 요인 중 하나가 아니라 ‘전제 조건’으로 둔갑하는 셈이다. 여기에 F-35A가 걸려들었다.

방사청은 유로파이터에 대해서는 “전체 60대 중에서 ‘(2인승의) 복좌기 15대를 포함시키라’는 요구와 달리 6대만 공급하는 것을 전제로 입찰에 응해 계약 조건을 위반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복좌기 15대를 납품하라는 방사청의 요구는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없었다. 3월에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고 나서 갑자기 추가된 사항이다. 현대의 전투기는 첨단 컴퓨터 장비를 탑재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조종사 2명이 탑승할 이유가 없고 복좌기를 개발하지도 않는다. 이 점은 F-35A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애초 6대를 복좌기로 달라는 방사청 요구에 맞춰 가격을 써낸 유로파이터는 방사청의 나중 요구를 맞추지 않은 채 입찰에 응했다가 낭패를 당한 것이다. 복좌기를 15대 공급하면 입찰가에서 3000억원 정도가 더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F-35A와 유로파이터의 추락은 한국에서 미래 기술에 대한 맹신이 붕괴되는 현상으로 해석될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심혈을 기울인 F-35A는 최근 개발 성공 여부가 불투명해지면서 ‘미래 전장을 지배하는 절대 강자는 스텔스기’라는 세간의 믿음까지 흔들고 있다. 미래 전장의 양상을 기술 발전 추세로만 예측하기 어렵다면 미국이 천문학적 재정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스텔스기 개발을 강행할 것인지도 불투명하다. 한국에서 F-35A의 추락은 이런 우려를 더욱 부채질할 것으로 보인다.

F-15SE가 확정됐다고 보긴 어려워

석연찮은 이유로 최신 전투기 두 후보를 날리고 가장 오래된 F-15SE를 선정한 것이라면, 현 정부가 안보보다는 경제를 중시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경제 불황으로 재정 형편이 악화될 전망인 데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을 실현하려면 한 푼이 아쉬운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지난 6~7월에 이용걸 방사청장이 수차례 청와대에 전투기 도입 예산을 늘려줄 것을 건의했으나 청와대는 일절 응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예산 증액은 불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해진 이때가 바로 가격 요인이 전투기 기종 결정의 전제 조건으로 둔갑한 시기로 보여진다.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로 F-15SE 선정이 확정적인 것일까. 꼭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다. F-15SE 자체의 문제점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스텔스 기능을 보완한 이 기종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 전투기다. 때문에 지난해 공군의 시험평가도 실제 F-15를 탑승한 게 아니고, 훈련기에 비슷한 운용 조건을 부여해 평가한 ‘유사 기종 평가’ 방식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무기 획득 절차에 없는 평가 방식이기 때문에 종합평가에서 이 점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관심사다. 게다가 우리가 이 기종을 도입하면 2030년경에는 미군도 사용하지 않는 구형 기종이 되는 데다가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일본·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이스라엘 5개국만 F-15 계열 전투기를 운용하게 된다. 그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마지막까지 운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F-15에 대한 대규모 후속 군수 지원의 사슬이 없어지는 희귀한 전투기를 우리가 운용하게 됨으로써 운용비가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F-15SE를 운용하게 되는 마지막 시기인 2060년경은 F-15 개발이 시작된 지 100년이 되는 시점이다. 고조할아버지 시절의 비행기를 우리 조종사들이 모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는 셈이다. 이런 문제점들이 종합평가 과정에서 다시 불거진다면 평가를 백지화하고 원점부터 재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할 수도 있다. F-15SE를 그냥 선정할지, 재검토하게 될지, 현재 그 가능성은 반반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탈락한 두 기종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