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 자동차 ‘펑크’ 났다
  • 김지영 기자 (young@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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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내수·수출 감소 등 3중고…하반기도 고전 예상

현대차가 ‘또’ 파업 국면에 들어갔다.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을 둘러싸고 노사가 정면충돌했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 8월20·21일 이틀간 하루 4시간 부분파업을 벌였다. 23일부터는 하루 8시간 파업으로 그 강도를 높였다. 24일 주말 특근도 거부했다. 올해 노사 협상이 언제 끝날지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고질적인 현대차의 노사 갈등. 그 여파는 국내 자동차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 자동차 산업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자동차업계에선 “자동차 산업이 올해 들어 심하게 휘청거리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노사 갈등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요인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의 금융 위기에 이어 유럽의 재정 위기 등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계 경기의 영향이 크다. 여기에 인도·브라질 등 신흥국에서는 외환위기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그야말로 총체적 위기다.

현대차 노조에 이어 기아차 노조의 부분파업으로 8월21일 경기도 소하리공장 1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 ⓒ 연합뉴스
<시사저널>은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의 현주소를 심층 취재했다. 올해 들어 1월부터 7월까지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실적을 집계한 결과, 생산과 판매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생산과 판매 모두 지난 2월부터 6개월 연속 전년 동월과 비교해 마이너스 성장이다. 감소 폭도 컸다. 생산은 지난해의 두 배, 판매는 다섯 배나 대폭 줄어들었다. 지난 7월 한 달 동안 생산 대수는 33만4139대로 올해 들어 최저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현대·기아차, 한국GM, 르노삼성, 쌍용차 등 국내 완성차업체의 누계 생산 대수는 261만8023대였다. 전년 동기(273만7965대)에 비해 4.4%가 감소했다.

올 7월까지의 판매는 261만5392대로 지난해 275만9060대에 비해 5.2% 감소했다. 내수 판매는 80만2596대로 전년 동기 81만7245대보다 1.8% 줄어들었다. 업체별로는 현대차가 38만4389대를 판매해 전년 동기 대비 -0.9%, 기아차 26만7904대로 -4.1%, 한국GM 7만8507대로 -6.0%, 르노삼성 3만1398대로 -11.9%를 각각 기록했다. 반면 쌍용차는 코란도·투리스모 등 신차들의 선방으로 3만5054대를 판매해 34.8%가 증가했다.

지난해 우리나라 수출은 전년보다 1.3% 감소했다. 그럼에도 자동차 수출은 전년 대비 4.1% 증가한 471억8000만 달러를 기록해 한국 수출을 주도했다. 하지만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수출 실적을 보면 전년 동기(194만1815대) 대비 -6.6%로 181만2796대(281억3600만 달러)에 그쳤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자동차 산업이 위기에 처했던 2009년(-19.9%) 이후 처음 감소했다. 1990년 이후 세 번째로 높은 감소율이다.

ⓒ 연합뉴스
세계 자동차 시장 하반기 성장률 급락 전망

올해 들어 생산과 판매 실적이 저조한 까닭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글로벌 시장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세계 자동차 판매 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5% 증가한 4077만대로 집계됐다. 하반기에는 3943만대로 지난해보다 2.6%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전망대로라면 올해는 지난해보다 3.1% 증가한 8020만대 판매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 때인 2009년 3.8%가 줄어든 이후 4년 만에 최저치다. 지난해(5.5% 증가)와 비교해도 절반 가까이 줄었다.

더 큰 문제는 하반기에도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계 경기 부진이 하반기에 더욱 심화되면서 글로벌 자동차 시장 신장률도 급락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의 양적 완화 축소와 중국의 성장 둔화 등이 유럽과 신흥국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에선 상반기에 지난해 대비 13.4% 증가한 838만대가 팔렸다. 하지만 하반기엔 823만대로 상반기보다 1.8% 줄어들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중국 정부의 신차 구매 제한 정책이 확대될 경우 자동차 판매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상반기엔 7.6% 증가한 783만대에 달했으나, 하반기엔 774만대로 1.1%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2007년 이후 6년째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 유럽 시장도 하반기에 고전할 것으로 보인다. 상반기에 715만대가 판매된 유럽 시장은 하반기에 638만대로 상반기보다 10.8%나 줄어들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차량 대수로는 77만대나 줄어든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 러시아 등 신흥국은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엔 다소 회복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올해 연간 판매로 따지면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예측이다.

서울 신사동에 위치한 수입차 매장. ⓒ 시사저널 포토
수입차 국내 판매 상반기에 19.7% 급증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자동차 시장 전체가 꽁꽁 얼어붙은 건 아니다. ‘파란불’이 켜진 곳도 있다. 바로 수입차업체들이다. 신차 출시와 한·EU, 한·미 FTA 발효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상반기에만 무려 19.7%나 판매가 급증했다. 수입차업계 관계자는 “수입차업체들은 하반기에도 신모델을 출시할 예정이어서 국내 시장 점유율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수입차들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1월부터 7월까지 수입차 신규 등록 대수는 8만9440대로 전년 동기 7만3007대보다 22.5%나 증가했다. 7월에만 전년 동월 대비 38.9% 증가한 1만4953대가 등록됐다.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점유율도 12.3%로 높아졌다.

수입차업체 관계자는 “지난 7월 한·EU FTA의 3차 관세 인하(3.2%→1.6%)에 따라 BMW·폭스바겐 등 유럽 브랜드가 가격을 1%씩 낮췄다”며 “일본·미국 브랜드들도 경쟁적으로 할인 판매를 하면서 수입차들이 하반기에도 판매를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이런 추세라면 지난해 연간 판매량 13만858대를 훌쩍 뛰어넘은 15만대 이상을 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국내 메이커들의 판매 대수와 점유율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내 자동차 메이커들의 노사 갈등 문제도 생산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 지난 1월만 해도 전년 동월 대비 23.3% 증가로 시작한 생산이 2월부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특히 3월로 접어들며 현대·기아차의 생산량이 주간 연속 2교대제 실시를 둘러싼 노조의 특근 거부로 인해 급격하게 감소하기 시작했다. 현대차는 3월 한 달 동안만 무려 21%나 생산이 줄었다.

현대차 노조는 3월부터 6월 초까지 13주간 특근을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8만3000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기아차 노조는 아직도 특근을 거부하고 있다. 최근 임금 단체 협상(임단협)을 마무리한 르노삼성과 한국GM도 협상 과정에서 여러 차례 부분파업이 벌어져 생산이 줄었다. 한국GM은 7월에 13차례 124시간 부분파업으로 2만3000여 대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그렇다고 하반기 생산량이 증가할 것 같지도 않다. 현대차와 기아차의 노사 협상이 아직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양사 노조는 8월6일 교섭 결렬을 선언하고 13일 파업 찬반 투표를 통해 파업을 결의했다. 20일부터는 부분파업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만약 파업이 장기화할 경우 국내 자동차 메이커의 생산 감소율은 금융 위기 수준으로까지 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생산량 감소가 내수와 수출 부진으로 연결된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생산이 받쳐주지 못해 수출 ‘백 오더’(밀려 있는 주문 물량)만 13만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7월 말 현재 내수 미출고 차량도 4만5000여 대에 달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17만여 명이 현대차를 주문한 후 차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 차질이 계속될 경우 고객 불만이 속출하게 되고 결국 브랜드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파업이 있을 때마다 마치 파업 때문에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이 몰락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한다”고 비난했다.

자동차업계가 생산도 줄고, 내수도 줄고, 수출도 줄어든 3중고를 겪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8월11일 로이터 등 외신은 “GM이 인건비 상승과 강성 노조를 이유로 한국에서 점진적으로 철수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실제 업계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한국GM·르노삼성·쌍용차 등은 모기업이 해외 업체이기 때문에 전략적 판단에 따라 생산량이 변동된다. 최악의 경우 생산 거점을 옮길 수도 있다는 우울한 얘기가 흘러나온다. 국내 자동차 산업으로선 큰 위협이 아닐 수 없다. 해외에 공장을 두고 있는 현대·기아차도 비슷한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의 생산 거부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경우 해외 공장 가동률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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