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뭉치 들고 몰려오는 ‘베이징 아줌마’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 기고가 ()
  • 승인 2013.08.2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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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증권·채권 등 차이나머니 습격에 대한 우려와 기대

#1. 6월19일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올해 말부터 양적 완화 규모를 줄인다고 발표했다. 그 후 수 주 동안 전 세계 채권 금리가 상승해 수많은 투자자가 손실을 입었다. 한국 채권 시장에 투자한 외국인들도 손해가 나자 자금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미국의 출구 전략 여파 속에서도 국내 채권 보유 비중을 늘린 나라가 있었다. 중국이다. 중국은 6월20일 이후 10여 일 동안 한국 상장 채권을 수백억 원어치나 매입했다. 이 때문에 중국의 한국 채권 보유 잔액은 지난 4월 말 11조9000억원에서 6월 말 12조5060억원으로 증가했다. 미국(21조4860억원), 룩셈부르크(17조7630억원)에 이어 3위의 규모다.

#2. 8월8일 중국청년보는 “중국 부자들이 제주도를 찾아 부동산 사들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들의 주축은 중국의 복부인 군단인 ‘중국 아줌마(中國大?)’들이다.

1980~90년대 세계 각국의 부동산을 싹쓸이했던 일본의 ‘와타나베 부인’처럼 중국 아줌마는 지난 수년간 해외 부동산 시장에서 큰손 노릇을 하고 있다. 올해 초 중국 부동산개발업체 뤼디(綠地) 그룹이 내놓은 한국 투자 상품에 따라 베이징 아줌마들은 제주도를 찾았다. 이들 대다수는 직접 차량을 렌트해 시공 현장을 돌며 공사 현황을 확인한 뒤 10여 채의 별장을 사들였다. 지난 7월 말 뤼디 그룹이 중국 대도시를 돌며 판촉 행사를 벌인 제주도 타운하우스형 별장은 순식간에 예약 상품이 동났다.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온 부동산 투자자들이 제주도의 한 모델하우스에서 모형을 둘러보고 있다. ⓒ 연합뉴스
“내 집과 땅 남기는 것은 모든 중국인의 꿈”

최근 들어 차이나머니가 한국으로 밀려들고 있다. 채권, 주식, 부동산에 투자한 중국계 자금은 지난 6월 말을 기준으로 21조원을 넘어섰다. 2008년 말 차이나머니의 한국 투자는 4711억원에 불과했는데, 불과 4년 만에 44배나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말 18조2540억원에서 6개월 만에 3조원(16%)이나 불어났다.

지난 수년간 차이나머니가 가장 눈독을 들인 대상은 채권이었다. 중국의 한국 채권 투자는 2008~11년에 해마다 2조7000억원씩 꾸준히 증가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이전보다 투자 성장률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꾸준히 한국 상장 채권을 사들이고 있다. 중국의 한국 채권 보유 비중은 전체 외국인 투자액의 12.4%에 달한다. 중국이 한국 채권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는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과 안정성 때문이다.

한국의 국채 금리는 3%로 멕시코(4.5%)·말레이시아(3.2%)보다는 낮지만 미국(1%)·독일(0.5%)·일본(0.3%)보다는 높다. 한국은 여타 개발도상국에 비해 경제 규모도 크고 자본 시장 개방도가 높다. 미국 국채 비중이 너무 큰 중국 입장에서 외환보유액을 다변화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올해 들어 한국에서 중국의 투자액이 급증하는 부문은 주식과 부동산이다. 지난 수년간 중국의 한국 주식 투자 증가세는 더뎠다. 2012년 말 국내 주식시장에 유입된 차이나머니는 6조1520억원이었다. 올 1월부터 중국계 자금의 상장 주식 보유 잔액이 늘어나더니 6월 말에는 7조3540억원으로 증가했다.

차이나머니의 주식 투자가 늘었다곤 해도 전체 외국인 주식 보유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1%에 불과하다. 하지만 올해 상반기 미국이 6조5660억원, 영국이 4조9630억원을 순매도할 때 중국은 거꾸로 1조8610억원을 순매수했다. 홍콩의 투자액도 상당한데 이 역시도 중국 대륙에서 유입된 자금으로 추정된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부장은 “외국인 자금이 북핵 문제, 엔저 등 악재에 민감하게 반응해 순매도 규모가 단기간에 증가했지만 중국계 자금은 채권에서 주식으로 전환해 투자를 늘렸다”고 밝혔다.

부동산에 대한 투자는 훨씬 공격적이다. 지난 3월을 기준으로 중국계 자금이 보유한 국내 토지는 570만1370㎡, 투자금은 1조3243억원에 달한다. 특히 올해 1분기에만 40만755㎡를 사들였다. 2012년 한 해 동안 108만295㎡(공시지가 3558억원)를 매입한 점에 비춰볼 때 놀라운 증가세다.

중국 내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는 제주도 부동산 투자는 2011년부터 시작됐다. 2010년 우리 정부가 제주에 5억원 이상의 휴양형 시설을 구매하는 외국인에게 5년 후 영구 영주권을 부여하는 정책을 실시한 게 결정적이었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로 토지 사용권만 살 수 있을 뿐 소유권은 계속 국가가 갖는다. 해외에 부동산을 사서 자기 땅과 집을 영원히 남겨두는 것은 모든 중국인의 꿈이다.

중국인에게 제주도는 하이난다오(海南島)를 연상케 하는 아름다운 섬으로 인지도가 높다. 베이징이나 상하이에서 비행기로 2시간 거리에 불과해 하이난다오보다 접근하기도 용이하다. 게다가 영주권을 통해 얻는 손쉬운 해외여행은 또 다른 매력이다. 중국의 국력이 성장하고 있지만 중국과 비자 면제 협정을 맺은 나라는 고작 10여 개국에 불과하다. 중국청년보는 “한국 영주권을 획득하면 전 세계 180개국으로부터 비자 면제 혜택을 누릴 수 있다”며 “이것은 세계로 나가는 통행증이나 다름없다”고 보도했다.

이런 이점 때문에 조선족이 몰려 사는 동북 3성뿐만 아니라 베이징·상하이·난징 등 연해 지방 사람들까지 제주도 부동산 구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휴양지의 별장 마련, 노후 대비, 영주권 취득을 통한 이민 등 다양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12년 말 현재 중국인은 공시지가 1241억원에 상당하는 제주도 땅을 보유하고 있으며, 누적 취득 건수도 1548건으로 미국(1298건)을 넘어섰다.

중국의 공습으로 호주 부동산 시장 혼란

그렇다고 해서 몰려드는 차이나머니를 우리가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 올 상반기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자금의 이탈로 어려움을 겪었을 때 중국계 자금은 증시의 침체를 막는 흑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별다른 산업 기반 시설이 없는 제주도의 입장에서 차이나머니의 유입은 지역 경제 활성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된다. 투자와 맞물리면서 올해 제주도를 찾은 중국 관광객은 지난 8월4일을 기준으로 100만명을 넘었다. 지난해보다 102일이나 빠른 기록이다.

물론 마냥 환영할 일만은 아니다. 중국계 자금은 수익만 거두고 빠져나가는 해외 투기 자본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2011년부터 중국인의 부동산 투자를 적극 받아들인 호주는 연평균 1~2%의 안정세를 보이던 부동산 가격 상승률이 지난 2년간 5~10%로 급등했다. 지난 한 해 동안만 무려 42억 호주 달러(약 4조2420억원)가 쏟아져 들어온 중국계 자금이 호주 부동산 시장을 교란시킨 원흉이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과 대외 투자 추이를 고려할 때 차이나머니의 유입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외국인 투자 자금의 다각화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각 산업과 지역 경제에 효율적인 투자가 이뤄지도록 중국계 자금에 대해 고민해야 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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