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이 재정 갉아먹어 나라 망가졌다”
  • 그리스=엄민우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08.27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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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치 바람 일으키는 그리스재창조당 타노스 치메로스 대표 인터뷰

<시사저널>이 그리스재창조당의 타노스 치메로스 대표와 가진 인터뷰에는 당의 부대표와 대변인이 동석했다. 명함 교환 과정에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세 명의 명함이 모두 달랐던 것이다. 당 대표만 공식 정당 이름이 적힌 명함을 가졌을 뿐, 나머지 두 명은 각각 특정 재단과 IT기업 대표로 적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을 ‘일하는 정치인’이라고 소개했다. 그리스 정치를 변혁시키기 위해 창당했다는 그리스재창조당은 지난해 총선에서 본격 정치 행보를 펼친 지 두 달 만에 2.2%의 지지율을 얻어 그리스 정치권을 긴장시켰다. 타노스 치메로스 대표는 “그리스 민주주의는 이미 재정 위기 전부터 망가졌고 ‘정치판의 재창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리스 재창조당의 타노스 치메로스 대표는 그리스 민주주의 붕괴는 공공 부문을 향한 포퓰리즘 정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 엄민우
생업에 종사하면서 정치 활동이 가능한가.

가능하다. 우리는 누구도 하지 않았던 것을 하고 있다. 자기 일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최소한 부정부패로 찌든 정치인들과 영합하지 않는다. 일하는 사람들은 돈이 그냥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땀의 대가로 생긴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다양한 직업인으로 구성돼 있다. 지금 나를 제외한 당 부대표와 대변인은 용무가 있어 인터뷰 중간에 먼저 일어설 것이다. 모두 일을 하다 보니 돈 때문에 지저분하게 얽히지도 않는다.

당의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

주로 우리 주머니에서 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파격적으로 정치 행보를 시작하니 비방이나 공격도 많이 받았다. 예를 들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자’고 주장하면 ‘이교도’로 몰아붙이는 식이다.

‘재정 위기와 함께 그리스 민주주의가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시민이 많다.

그리스는 경제 위기 전부터 민주주의가 망가져 있었다. 정치인들은 선거 때 표를 받기 위해 공공 부문에 무분별하게 사람을 넣어주는 행태를 이어갔다. 말 그대로 정치인과 국민의 관계는 ‘장사꾼과 고객’처럼 되어버렸고 그 우수 고객은 공무원이다. 정치인들은 공무원을 무분별하게 특혜 채용했다. 그러다 보니 공공 분야가 엄청나게 비대해졌다. 1980년대에 18만5000명이던 공무원 수가 지금은 100만명에 달한다. 이들은 각종 혜택을 챙기며 그리스 재정을 갉아먹고 있다. 현재 그리스 상황을 보면 소수의 국민이 공공 부문을 떠받치다시피 하며 부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체제가 약 40년간 이어져왔다. 정당들은 경쟁하듯 공무원 챙기기 정책을 실시했고 공무원들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세력화되어 표로 정치인들을 협박했다. “혜택을 안 주면 낙선시킨다”는 식이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람들의 희생으로도 재정이 충당되지 않으니까 나중엔 외국에서 대출을 받는 상황이 됐다. 1981년부터 2009년까지 그리스가 대출받은 것과 보조금 등을 합하면 6290억 유로에 달한다. 외국에서는 투자해서 성장하라고 빌려준 건데 이걸 공무원 챙겨주는 데 썼다.

그리스 민주주의 붕괴는 재정 위기와 무관하다는 것인가.

무관하진 않다. 재정 위기가 민주주의 붕괴를 더욱 심화시켰다. 재정이 기울면서 ‘트로이카’(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유럽연합)가 들어왔다. 그들은 병든 그리스에게 의사가 돼주겠다고 했다. 그리스에 약을 주겠다며 ‘대출’을 해줬다. 그 약은 독약이었다. 하지만 트로이카만 비난할 순 없다. 약을 잘못 복용한 그리스도 문제가 있다. 공공 분야를 축소하고 불필요하게 나가는 돈을 줄였어야 하는데 그리스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공공 부문에서 새는 돈이 그렇게 많은가.

극단적인 사례로 이런 경우가 있다. 한 공무원이 국가 돈을 착복했고 이것을 다른 사람이 고발했다. 그러자 이 공무원은 신고한 이를 살해했다. 결국 감옥에 가게 됐는데 여전히 나라에서는 이 공무원에게 돈을 지급하고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사실이다. 또 다른 극단적 경우를 들자면, 국회에서 사무 일을 하는 한 여직원은 월급이 3000유로다. 참고로 육군참모총장이 수당까지 합쳐서 2000유로 정도의 월급을 받는다. 이것이 무슨 말인지 아는가. 정치인들과 친한 공무원들에게 이렇게 보이지 않게 돈이 뿌려진다는 것이다. 같은 공무원이라도 일반 교사들의 월급은 900유로 수준이다. 그리스 정치는 공무원을 위한 포퓰리즘 정치다. 국민은 그 대상이 아니다.

왜 정치인들은 국민보다 공무원 눈치를 더 보는가.

한 사람의 공무원에겐 3~4명의 가족이 있다. 그래서 100만명의 공무원은 400만표라는 잠재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친척들까지 따지면 더 어마어마하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공무원 위주의 정치가 펼쳐지게 된다. 어떤 당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공산당도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치를 한다면서 뒤로는 신민당 및 사회당과 손잡고 있다. 신민당과 사회당은 공산당에 돈을 대준 적도 있다. 다소 급진적이고 과격한 공산당의 존재가 자신들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트로이카’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큰 것 같다.

현재 제2당인 시리자(민주좌파연합당)는 원래 지지율 3%에 불과한 당이었다. 사마라스는 총리가 되기 전 ‘트로이카가 문제다’라고 외치고 다니며 지지 세력을 모았는데, 총리가 되고 나선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 보니 국민들이 시리자에 지지를 몰아줘서 이렇게 된 것이다. 트로이카에 대한 비판은 있을 수 있지만, 모든 책임을 트로이카에만 떠넘기는 건 잘못된 것이다. 트로이카가 요구하는 재정 적자 감소 수치를 정부가 최대한 현명한 수단을 통해 맞춰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는 게 문제다. 일반 국민들을 괴롭히지 말고 공공 부문의 비효율적 부분들을 고쳐야 한다. 기업들이 자꾸 외국으로 나가는 실정이다. 기업들에게 내년 세금의 일부분을 미리 내라고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세금이 1만 유로라면 그중 80%를 더한 1만8000유로를 요구한다. 또 실업자가 돼 수입이 없는 사람에게도 차와 집이 있으면 어떻게든 세금을 뜯어간다. 먹고살려고 배를 사서 무언가 비즈니스를 하려고 하면 ‘요트’가 있다며 세금을 걷는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나 배를 그냥 처분해버리기도 한다. 이런 행태가 성장을 저해한다. 대학교 1학년생도 이런 식의 재정 적자 감소책은 펼치지 않을 것이다.

공공 부문이 촉발시킨 문제를 일반 시민이 감당하고 있다는 말인가.

바로 그거다. 현재의 정치적·경제적 위기를 불러온 공공 분야에 손을 대기보다는 민간 부문을 더 힘들게 하고 있다. 한국 기업이 여기서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절차를 간소화하고 규제를 줄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는 정치인들이 뒷문으로 공무원을 너무 많이 채용하는 바람에 시스템이 망가졌다. 다른 나라에서 공무원 한 명에게 도장 하나 받으면 될 일이 공무원 4명에게 도장을 받아야 처리된다. 그래서 기업들이 잘 안 들어오려고 하거나 떠난다. 이로 인해 실업률이 더 오르는 것이다. 기업뿐 아니라 학생, 과학자, 기술자들도 그리스를 떠난다.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그리스 대학생들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고 있다. ⓒ 시사저널 엄민우
3대 정치 가문(미초타키스·파판드레우·카라만리스) 출신이 아닌 사마라스가 총리가 됐는데 왜 변화가 없나.

북한의 김정일이 김정은에게 세습하듯 그리스도 3대 정치 가문에서 대물림 정치를 하고 있었다. 정치 가문 집안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직업도 갖지 않고 정치 세계부터 배운다. 그리고 곧바로 정당이나 국회에 등장해 정치가가 된다. 사마라스도 3대 가문은 아니지만 로열패밀리나 다름없다. 파판드레우와 사마라스는 미국에서 함께 공부했던 친구다. 결국 한통속이다.

그리스재창조당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리스재창조당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우리 당은 지난해 3월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 그로부터 불과 두 달 후 선거가 있었는데 그때 2.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수많은 정당이 있는 그리스에서 불과 2개월 만에 그만큼의 지지를 받은 것은 그리스 정치에 한 역사를 쓴 것이다. 우리는 다른 정당들처럼 홍보에 별로 돈을 쓰지 않았다. 언론을 동원해 선전하지도 않았다. 처음엔 친구가 사이트를 만들어줬다. 우리 당을 알리고 정치적 사안에 대해 철학과 입장을 밝히는 사이트였다.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우리 당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국민들이 지지를 보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자원봉사자들도 생겨나고 그들이 선거 유세를 도왔다. 학생부터 직장인까지 다양했다. 우린 인터넷 전략을 선점해 당원을 늘려나갈 것이다. 외국에 있는 그리스인도 인터넷을 통해 투표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그리스재창조당도 표를 얻으려면 공공 부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공공 부문에서도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뜻이 맞는 사람들 위주로 점차 외연을 넓혀가고 있다. 민간 부문에선 함께할 사람을 찾기가 더욱 쉽다. 실업률이 올라가고 현 그리스 상황에 문제점을 느끼는 사람이 증가하면 함께할 사람이 더 많아질 것이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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