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솔 피어나는 ‘반기문 대망론’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09.0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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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과 관련해 미묘한 태도 변화…여야 모두에서 러브콜 가능성

2017년 12월20일은 제19대 대통령 선거일이다. 1570여 일이 남았으니 먼 얘기이긴 하다. 그러나 생각하기에 따라선 미구에 닥칠 일이다. 1000여 일 지난 즈음에는 여야 각 정당의 예비후보들 면면이 부각될 터이다. 그리고 이들과 관련한 일련의 동정이 뉴스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단, 뚜렷한 대표 주자 없이 후보군(群)만 오락가락하는 상황이라면 얘기는 다르다. 정치권뿐 아니라 모든 부문이 혼미를 거듭하면서 나라 안에 잡음이 가득할지 모른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이 임박해서도 후보를 결정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18대 대선 당시의 야권과 같은 모습을 19대 대선 때도 반복하지 말란 보장은 없다.

새누리당의 김무성·정몽준 의원과 김문수 경기도지사·홍준표 경남도지사, 민주당의 문재인 의원과 박원순 서울시장, 손학규·정동영 전 의원·김두관 전 경남도지사, 무소속 안철수 의원 등 ‘잠룡’들이 거론되지만 아직은 고만고만하다. 대세를 휘어잡으려면 서둘러 기대주를 내세워야 하지만 여야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여의치 않을 게 분명하다. 현직 대통령은 레임덕을 재촉하게 마련인 후계자의 조기 등장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여권은 한동안 속으로만 끓을 게 빤하다. 견제라는 점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야권이지만 최종적으로 후보를 정하기까지의 난관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정황 때문에 등장하는 인물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차기 대권을 꿈꾸는 본인이나 측근들로서는 불편해할 일이지만, 중립적·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편한’ 인물이 반 총장이다. 당선 가능성이 다른 누구보다 큰 ‘무난한’ 인물이기도 하다.

8월26일 비공식 모임에서 새누리당 이인제 의원과 악수하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오른쪽). 이 자리에는 민주당 박병석 국회부의장·김영환 의원 등 여야 의원과 관·재·언론계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했다. ⓒ 시사저널 포토
19대 대선 참여 가능성 커지는 분위기

가정(假定)이지만 현직 대통령에게 가장 부담스런 존재가 후임 대통령이고 보면, ‘반기문 카드’는 청와대의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호재일 수 있다. 독자적인 세력을 거느리지 않은 ‘후임자’가 기꺼울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독자적 세가 없다는 점은 반 총장에게는 약점이자 강점이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18대 대선 당시 새누리당 내 ‘친이’ 그룹이 ‘박근혜 후보’의 대항마로 자신을 떠올리자 단호히 일축했다. 의구심을 갖고 그 여부를 타진하는 박 후보 측에 이런 의사를 분명히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22일 방한한 반 총장을 유난히 환대한 사실의 전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반 총장이 국가원수급 예우를 받는 VIP이고,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유엔의 지원이 절실한 만큼 당연할 듯싶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23일 청와대 예방을 마친 반 총장을 영빈관 밖까지 배웅했다. 관계자들은 당시를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후보 시절 상대방이 베푼 ‘호의’에 대한 감사와 당장의 현안 처리를 위한 협력 그 이상의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는 대목이다. 아닌 게 아니라 박 대통령으로서는 잠룡들의 ‘준동’을 견제하는 수단으로서도 반 총장을 요긴한 카드로 여길 법하다. 여기에 반 총장이 박 대통령의 숨은 실세로 알려진 최외출 영남대 부총장과 담소한 것도 관심을 고조시키는 대목이다. 대선 당시 박 후보 특보였던 최 부총장은 청와대 비서실장을 고사한 ‘측근 중의 측근’으로 꼽히는데 “두 사람이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논의했다”는 발표까지도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반기문 카드’는 야권으로서도 필승을 담보하는 인물로 탐낼 만하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노무현 대통령 당시 이뤄진 작품이기에 진보 진영 전체에 어필하는 데 무리가 적고, 야권의 취약점인 이념 시비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 3년 전 당 원내대표 시절 ‘반 총장 영입’ 안을 제기했던 박지원 의원이 8월26일 다시 반 총장 영입 문제를 거론한 데는 이런 속사정이 자리한다. “(반 총장) 본인이 원한다면 상당히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가 될 게 틀림없다”는 말은 비단 박 의원 개인 의견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민주당이 당면한 현실이 그렇고 많은 사람이 공감하기 때문이다.

여야 모두 눈길을 보내는 반 총장의 ‘대선 후보’로서 명세는 어떨까. 유엔 사무총장 임기가 걸림돌이 될 수 있는데, 대선 시기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2007년 1월 첫 유엔 사무총장 5년 임기를 시작한 그의 2차 임기 만료일은 2016년 12월31일이다. 19대 대선이 그 다음 해 12월20일이고 보면, 일정상 무리는 없어 보인다. 오히려 유엔 사무총장 의무를 게을리했다는 비난 여지를 최소화하면서, 세계 대통령이라는 유엔 총장의 권위가 식지 않은 가운데 한국의 대선을 맞게 되는 것이다.

8월2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맞이하고 있다. ⓒ 연합뉴스
‘흙탕물 감내’ 여부와 여야 ‘영입 수순’ 관건

이런 반 총장에게 약점으로 지적되는 게 ‘독자적 지지 세력 부재’다. 하지만 곱씹어보면 이는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여야 모두 그의 그런 한계 때문에 선호할 수 있는 것이다. 동시에 여야 모두 그를 탐내는 것은 얼핏 강점인 듯싶으나 되레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여야 어느 쪽이건 ‘가마’를 보내 모셔가는 모양새를 취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반 총장 스스로 선뜻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다. 선택을 망설일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런 상황이 독이 될 소지를 배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반 총장은 지난 18대 대선을 앞두고 자신이 계속 후보로 거명되자 “국내 정치에 뜻이 없다” “대선에 출마 안 한다”고 거듭 밝혔다. 기자는 반 총장이 유엔에 자리한 이래 수차례 그의 의중을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당시 반 총장이 공식적으로 천명한 ‘불출마’는 진심이었다. 다만 유엔 사무총장 연임이 확정된 이후 다소 달라진 감이 느껴진다. 여야의 뜨거운 러브콜을 마냥 뿌리치지는 않는 모양새다. “당신더러 정치 욕심을 내라는 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하라는 얘기”라는 집요한 요구가 정파·지역을 가리지 않고 실제 이어지고 있다.

이번 5박 6일의 방한 기간 중 반 총장은 ‘대선과 관련한’ 입장 정리가 됐는지, 훨씬 편한 인상을 주었다. 지난해 8월 유엔에서 만났을 때와는 달랐다. 또 이번 방한 중 비공식으로 가진 한 모임에서 반 총장은 정치적으로 확대 해석되는 것을 경계하면서도 대거 참석한 여야 의원과 각계 인사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뜻을 표시하는 등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그는 8월26일 서울 외교부에서의 기자회견 때 “총장 임기가 끝난 후 대선 출마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는 “대변인이 답변하세요”라고 했다. “출마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했던 예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정치 상황과 반 총장 개인의 특수한 위상이 그를 차기 대선 판에 끌어들이고 있다. 반 총장이 ‘흙탕물이 튀는 것까지를 감내할지 여부’와 여야 정당의 ‘수순(手順)’이 중요한 변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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