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괴담’에 어부들 시름 깊어
  • 일본 도쿄=노무라 하타루 프리랜서 기자·정리│조현& ()
  • 승인 2013.09.04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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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원전 사고 악몽…먼 바다에서 잡은 생선도 안 팔려

일본 최대의 어시장인 도쿄(東京) 도 직영 ‘쓰키지 시장’은 하루 거래 금액으로 따져 세계 1위를 자랑한다. 시장의 아침이 이른 것은 전 세계 공통이지만, 이곳 츠키지는 새벽 3시부터 불을 밝힌다. 개장과 동시에 전국 산지에서 모인 트럭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것도 진풍경 중 하나다. 시장 지붕이 돔처럼 곡선을 그리고 있어 그 모습은 더욱 장관을 이룬다. 과거 바다에서 어획한 생선을 열차로 시장까지 운송했는데, 내부가 곡선 모양이면 좀 더 긴 열차를 정차시킬 수 있었다. 지붕 하나에서도 시장의 오랜 역사를 느낄 수 있다.

방사능 공포가 후쿠시마 제품 공포로

8월26일 모테기 도시미츠 일본경제산업성 장관 일행이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사고 현장을 시찰하고 있다. ⓒ AFP 연합
오전 7시 무렵은 츠키지 시장이 가장 붐비는 시간대다. 전국의 생선·초밥 가게와 고급 일식점 요리사 등 나름의 생선 전문가들이 시장에 속속 몰려들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넙치, 정어리, 털게, 범가자미, 흰볼락, 연어, 참가자미, 농어 등등 여름부터 가을까지 더욱 풍미가 깊어지는 생선을 대량으로 구입한다. 이들은 시장 내 식당에서 이른 아침부터 쌓인 피로를 푼다. 아침부터 맥주로 건배를 하는 모습도 이곳에선 익숙한 풍경이다.

츠키지 시장에 드디어 조금씩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이후 2011년 5월부터 일본 동북 해역 250km 이내에서는 어획이 금지됐고 츠키지 시장은 이내 ‘유령 시장’으로 변했다.

일본인 식생활에 빠질 수 없는 해산물 안전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특히 일본 동부 지역 소비자들은 식탁에 올라오는 생선에서 눈으로는 볼 수 없는 ‘방사능’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수산물뿐만이 아니었다.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은 특히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아이들이 마시는 유제품이나 채소 등을 구입할 땐 신중히 산지 라벨을 살폈다. 후쿠시마산 모든 제품이 외면받았다.

방사능 공포가 퍼져나가면서 후쿠시마 현과 지자체는 후쿠시마산 농산물의 방사능 피해가 기준치 범위 이내임을 필사적으로 홍보했다. 이들은 일본의 인기 아이돌 그룹인 토키오(TOKIO)를 홍보 모델로 활용해 ‘후쿠시마 채소, 꼭 드세요’라는 TV 광고를 제작하기도 했다.

후쿠시마에 대한 국민적인 온정을 빌려 마케팅에 성공한 경우도 있었다. 후쿠시마산 브랜드를 단 제품에 ‘피해 지역 지원, 후쿠시마 파이팅’ 등의 응원 문구를 달아 인터넷 판매에 성공한 것이다. 사고 직후 후쿠시마에 대한 동정의 열기가 만들어낸 산물이었기 때문에 이 역시 일시적인 현상에 그쳤다.

농산물의 경우 온정에 기대 잠시나마 소비 심리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수산물에 대한 소비자의 불신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일본 기상연구소의 발표에 의하면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로 흩어진 방사성 물질 중 특히 세슘은 70~80%가 바다로 흘러들어갔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오염도가 높았던 것은 넙치·가자미·농어 등 해저에 살며 이동 범위가 좁은 어류였다.

하지만 수산청이나 후쿠시마 현 모두 오염 데이터를 좀처럼 발표하지 않았다. 이런 행태가 소비자의 불안과 불신을 증폭시켰다. 자세한 조사 결과가 나온 것은 사고 이후 반년이 지난 2011년 11월이었다. 국민의 배신감은 극에 달했다. 정부의 ‘정보 은폐 체질’은 소비자의 불안감을 가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온갖 풍문이 생겨나게 된 원인이 됐다. “꼬리가 없어지고 등뼈가 휜 기형 어류가 출몰했다”는 식의 풍문이 인터넷을 떠돌았다.

많은 전문가는 “지느러미가 없거나 하는 기형 어류는 원전 사고 이전부터 일정 비율 존재하고 있었고, 원전 사고와의 인과관계 또한 증명되지 않았다”며 인터넷에 퍼진 내용을 부인했다. 하지만 소비자, 특히 아이를 기르는 여성들이 가진 불신을 지울 수는 없었다. 동북 지역에서 관동 지역에 걸쳐 전 지역 슈퍼마켓의 생선이 팔리지 않고 남아돌았다.

이런 불신과 풍문은 모두 사고 현장인 후쿠시마로부터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아서 생긴 것이다. 후쿠시마 현청 수산과의 와쿠이 구니히로 씨는 “오염 조사 결과를 은폐하려 한 것이 아니다. 어패류에 대한 오염 조사와 결과 발표가 늦춰진 것은 특히 쓰나미의 영향으로 조사 선박이 파손돼 조사할 수 있는 체제가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8월27일 일본 최대 수산시장으로 꼽히는 도쿄의 쓰키지 어시장 풍경.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령 시장’으로 불리던 곳이 조금은 활기를 되찾았다. ⓒ 노무라 하타루 제공
후쿠시마 수산물, 기피 대상 1순위

후쿠시마 앞바다 어민들은 원전 사고 영향으로 1년 이상이나 조업을 접어야 했다. 어부들은 어쩔 수 없이 먼 바다로 나가 가다랑어·꽁치·방어 등 회유성 어류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먼 바다에서 잡았다 해도 ‘후쿠시마 어협에서 출하됐다’고 하면 판매점에서는 기피 대상이 됐다.

특히 피해가 컸던 것이 가다랑어다. 후쿠시마의 오나하마 항은 일본에서 가다랑어 어획으로 가장 유명한 곳이다. 현청 수산과 와쿠이 구니히로 씨는 “지난해 5월 오나하마 항 어민들은 항구에서 500km나 떨어진 하치죠지마 앞바다에서 가다랑어를 잡았다. 그중 일부를 도쿄의 츠키지 시장에 보냈는데 구매자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비쌀 땐 1kg당 2000엔 이상 하던 가다랑어 가격이 지난해 5월에는 1kg당 105엔에 헐값에 처분됐다”고 덧붙였다.

후쿠시마 어협에서는 포획한 가다랑어에 대해 후쿠시마 현으로부터 제공받은 최신 검사기로 방사능 오염도를 측정했고, 그 결과 ‘전혀 문제없음’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시장은 이를 믿지 않았다. 후쿠시마 현청을 비롯해 현 내 어협이나 농협엔 ‘방사능을 타 지역까지 넓히지 마!’라는 등의 비방 글이 쏟아졌다.

현에서는 어협 중심으로 긴급 대책 협의회를 결성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협의회 멤버로 전국 최대 규모의 슈퍼마켓 체인을 확보하고 있는 유통업체 이온 그룹을 끌어들인 것이 주목할 점이었다. 협의회는 이온 그룹에, 시장에 출하한 가다랑어는 항에서 500km 떨어진 바다에서 어획한 것으로 안전성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을 설명했다. 그 결과 전국 이온 그룹 체인마켓이 오나하마 항의 가다랑어를 취급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소매업자들도 해당 가다랑어를 팔기 시작했다. 결국 오나하마 항의 가다랑어는 차츰 정상 가격을 되찾을 수 있었다.

후쿠시마 현 이와키 시의 노력도 눈물겹기는 마찬가지다. 이와키 시에서는 현재 가다랑어나 꽁치 등 회유 어류에 대해서는 어업이 재개된 상태다. 하지만 츠키지 시장에 출하되는 것은 다른 현과 비교할 때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져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이와키 시는 ‘보여드립니다! 이와키 정보국 시각화과’ 활동을 통해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 활동의 일환으로 지난 3월26일 츠키지 시장의 도매·중도매·중개 유통업자들을 직접 방문해 이와키 시의 수산업 상황을 설명했다. 또 수확한 어류에 대한 방사성 물질 검사를 직접 시행하고 그 결과를 특설 웹사이트인 ‘보여드립니다, 이와키 정보국’에서 상시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키 시 시각화과의 니시마루 다쿠미 과장은 “피해 지역에서 ‘안전’ ‘안심’을 입으로만 외치면 불신감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이와키 시는 현지 투어 프로그램이나 인터넷을 통한 정보 제공으로 소비자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지난해에 2억1500만 엔이 투입됐다. 처음에는 농산물 안전을 어필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지금은 수산물과 관광업에도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후쿠시마 현의 지자체들은 이제 ‘숨기지 말고 보여주자’는 전략으로 노선을 바꾸고 있다. 일본 시민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 또한 서서히 ‘안심’으로 변해가고 있다. 하지만 후쿠시마에 대한 풍문은 여전히 일본 열도를 떠돌고 있다. 이를 한꺼번에 지우기는 당분간 힘들 것 같다.           

 


후쿠시마는 아직도 통곡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또 다른 ‘풍문 피해자’는 다름 아닌 사고 직격탄을 맞은 지역민이다. 원전 사고 이후 1년이 지나자 인터넷에는 “후쿠시마 농민들이나 어민들은 도쿄전력에서 받은 보상금으로 아침부터 술판을 벌인다” “일은 하지 않고 파친코 게임만 하고 산다”는 등의 비방 글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농민과 어민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했다. 그 심경은 결코 편안할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술판을 벌인다는 비방 역시 이들의 속사정을 모르고 하는 말이다. 후쿠시마 지역의 한 의사는 “바다에 나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어부들이 정신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사고 이후 알코올 의존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어부들은 조업 재개를 위한 방법을 찾을 수 없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고 이것이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가까스로 후쿠시마 앞바다에서의 시험 조업이 시작됐지만 이마저도 8월부터 전면 중단됐다. 지난 3월 후쿠시마 제1원전 전용 항구에서 포획된 쥐노래미에서 1kg당 74만 베크렐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기 때문이다. 이 검출량은 일본 식품 기준치의 7400배로 원전 사고 이후 포획된 생선 중 가장 높은 수치다. 게다가 최근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의 오염수가 대거 바다로 흘러들어간 사실을 시인하면서 시험 조업은 영영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지난 2년 동안 후쿠시마 현, 시, 구, 촌 그리고 현 내 어협과 농협 등은 부흥을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올해 그 성과가 나면서 후쿠시마 어민이 포획한 수산물이 츠키지 시장 외에도 차츰 판매점을 늘려나갔다. 하지만 또 한 번의 방사능 파동으로 후쿠시마 어부들은 지금 회복하기 힘든 좌절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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