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치꾼’ 아닌 보통의 시민”
  • 강성운│독일 통신원 ()
  • 승인 2013.09.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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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트 슐로머 독일 해적당 대표 인터뷰

유럽 전역에 뻗쳐 있는 해적당은 한때 직접민주주의의 모델로 각광받았다. 인터넷과 투명성이 바탕이었다. 그중 독일 해적당은 가시적인 성과를 냈다. 2011년 주의회 진출에 성공하고 두 자릿수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2년이 흘렀다. 오는 9월22일 열리는 독일 총선에서 해적당은 참패가 예상되고 있다. 두 해 동안의 성공과 추락에 대해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해적당 당사에서 베른트 슐로머 독일 해적당 대표를 만났다.

ⓒ 강성운 제공
처음 해적당에 들어왔을 때 이렇게 전국적인 정당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나.

아니다. 나는 2009년 전국당 지도부에 선출됐고 재무 담당자로 뽑혔다. 그렇다 보니 4년째 당 지도부의 시각에서 해적당을 지켜보고 있다. 2009년 총선 이후 당원 수가 1만2000명으로 늘어났다. 2011년 베를린 지방선거에서는 어마어마한 관심을 끌었다. 다른 정당은 “별로 섹시하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고 있을 때 해적당이 나타난 것이다.

너무 빨리 성장한 것일까.

아니다. 우리는 항상 ‘함께하는 정당’이라고 말했다. 물론 갑자기 당원이 늘어나고 정치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생기면서 벅차기도 했다.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에 당신이 무급으로 일한다는 것도 논쟁거리 중 하나였다. 여전히 무급으로 일하고 있는가.

그렇다. 해적당 일은 자원 활동으로 하고 있다. 매주 40~50시간 해적당 일을 하고, 직장 일은 매주 41시간 한다. 매주 80~100시간 일하고 있다.

그런데도 돈을 받지 않는 이유가 있나.

어쩌겠나.(웃음) 나는 행정 사무를 보는 사람들이 우선 월급을 받아야 한다고 늘 말한다. 중앙당 대표 정도가 되면 다른 혜택도 있다. 무료로 행사에 초청돼 뷔페를 먹을 수도 있다. 그래서 괜찮다. 이런 걸 보고 정치를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일에는 돈을 받지 않고 정당을 창당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을 ‘정치꾼’이 아닌 보통의 시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늘 정치적 의사 결정에 참여하고 민주주의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1년의 해적당은 월가 점령 시위 등 어떤 흐름에 따라 부각된 것 같다.

가치관의 변화와 일맥상통한다. 자기와 직접 관련된 일에 수만 명이 거리로 나섰다. 베를린의 소음 문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의 수도 민영화 문제 등 사람들이 자기 일이라고 생각되면 나선다. 자신이 사는 곳의 사회적 환경을 직접 구성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해적당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반영할 수 있었다. 가치관의 변화가 이런 참여로 드러난 것이 아닐까.

2011년 4월 13%였던 지지율이 올해 7월에는 3%로 추락했다.

심각하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몰리면서 상승세를 너무 탔다. 그런 기대를 4개 주 지방의회를 통해 현실 정치에서도 증명해야 했는데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회의적이진 않다. 극히 평범한 상승과 추락이다. 다른 정당들도 겪는 일이다.

“해적당은 확고한 정체성이 없다”는 비판을 계속 접하게 된다.

자주 듣는다. 왜냐하면 구식 정치학자들이 정당의 총체적인 상과 이데올로기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해적당은 그런 것이 없다. 시민권 운동이며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함께 사회적 난제를 토론하는 곳이다.

그것이 오히려 유권자들을 쫓아낼 수도 있지 않나.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그 누구도 억압하고 싶지 않다. 우리가 다양한 의견을 대변하지만 헌법 정신, 반(反)인종주의, 반(反)성차별주의 틀 안에 있는 한 괜찮다. 그러면 소수 의견도 허용할 수 있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를 위해 개발한 ‘리퀴드 피드백’은 지금 해적당 내부에서만 사용되고 있다.

(강조하듯 목소리를 높이며) 테스트 중이다. 우리는 인터넷을 통한 새로운 의사 결정 및 참여 모델을 실험하는 중이다. 그중 하나의 모델이 리퀴드 피드백이다. 리퀴드 피드백은 참여자들이 ‘결정’하는 데 중점을 둔 게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에 긍정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도구다. 어떤 제안을 보충하거나 다른 의견을 내기 위해 14일간 온라인상에서 토론을 벌이고 입장을 계속 발전시키고 다듬는 것이다. 그냥 클릭 한 번으로 ‘찬성’ ‘반대’ 표를 던지는 게 아니다.

한국에서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여론이 상이하다. 온라인에서는 젊은 층이 활발하지만 오프라인에서는 여전히 신문 등 올드미디어가 지배적이다.

마찬가지다. 독일 트위터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보면 광범위한 대중과 별 상관없는 경우가 많다. 트윗을 올린다고 지구가 반대 방향으로 돌지 않는다. 우리가 온라인에서 분노하고 공격을 해도 보통의 시민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그럼에도 인터넷이 완전히 새로운 정치를 만들 수 있을까.

그렇다. 인터넷은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를 강화할 수 있는 기회다. 낮은 투표율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적당의 갈등이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쉽게 외부로 노출된다는 인상을 받았다.

토론이나 논쟁이 ‘해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서로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늘 잘되지는 않는다.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해적당은 지지층이 비슷한 녹색당에 비해 신생 정당이라는 점에서 큰 이득을 봤다. 하지만 그런 이점은 시간이 가면 자연히 없어진다.

녹색당은 수년째 늘 똑같은 인물 4~5명이 수뇌부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 대한 불만이 많다. 늘 궁금증을 가지고, 개방적이고,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 점을 유의하면 잘될 것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당 안팎에서 당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

당으로부터 충분한 뒷받침을 얻는 것이 어려웠다. 서로 의견이 달라 동원하기가 어려웠다. 독일 사회에서 광범위한 다수를 해적당 쪽으로 끌어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독일은 인구 구조 변화를 겪고 있다. 고령화되고 있고 이들은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회의적이다.

“해적당은 변화를 추구했지만 아직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당장 지속 가능한 성과를 크게 낼 수는 없다. 독일에서 정치적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호흡이 길어야 한다. 몇 년에 걸쳐 정치적 논의에 참여할 각오를 하면 돌아오는 게 있을 것이다. “해적당, 한때는 쿨했는데 이제는 별로네”라는 식의 시대 급변에 굴복하면 안 된다.

의회 진입을 위한 득표율 5% 벽을 넘을 수 있을까.

우리 당은 전국적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누구나 해적당이 있다는 걸 안다. 앞으로 몇 주간이 중요하다. 유권자들은 9월에서야 결심을 굳힐 것이다. 아직 어느 당을 뽑을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현재의 여론조사 결과는 휴지 조각이나 마찬가지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⑧ 세계적인 미래학자 짐 데이토 교수가 전망하는 민주주의 2.0의 모습은?’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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