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절의 암’에서 해방될 날 머지않아
  • 노진섭 기자 (no@sisapress.com)
  • 승인 2013.09.04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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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체계 조절 약으로 20~30% 완치…약값 비싸고 재발 우려 있는 게 흠

‘관절의 암’이라는 악명이 붙을 정도로 치료가 어려웠던 관절 류머티즘(류마티스)을 약으로 완치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이 질환에 대한 치료 방식은 고혈압의 그것과 유사했다. 평생 약을 먹으면서 혈압을 조절하는 고혈압처럼 관절 류머티즘도 약을 장기간 복용하면서 증상을 관리하는 차원에 머물렀다. 최근 이 질환을 일으키는 물질을 차단하는 약이 하나 둘 개발되고 있다. 치료에 희망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주부 김민자씨(60)는 지난해 몇 개월 동안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손가락 마디가 뻣뻣해지는 증상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손으로 주무르면 서서히 풀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간이 갈수록 여기저기 작은 뼈마디가 아프면서 열도 나고 점차 붓기 시작했다. 뒤늦게 병원을 찾아 진단한 결과 관절 류머티즘이었다.

관절 류머티즘은 인구의 1%인 50만명 내외가 앓고 있는 흔한 질환이다. 남자보다 여자에게서 3~5배 많이 발생한다. 이 질환에 걸리면 일상적인 활동이 힘들어진다. 2011년 대한류마티스학회가 환자 4700명을 대상으로 삶의 질을 조사한 결과, 최상의 건강 상태를 1로 봤을 때 0.68로 나타났다. 중한 질병으로 알려진 암(0.76), 뇌졸중(0.72), 고혈압(0.83)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서울대병원에서 만난 한 관절 류머티즘 환자는 “무엇보다 통증이 심해 일상생활에 많은 지장이 있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이 질환에 가장 흔히 사용하는 약은 소염·진통제다. 소염·진통제는 100여 종에 달해 각 약의 효과와 부작용을 고려해 환자에 맞는 것을 골라서 사용한다. 염증을 가라앉히고 통증을 줄일 수 있지만 질환 자체를 치료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오랜 기간 이 약을 먹으면 위장 장애 같은 부작용도 생긴다.

그 후에 개발한 약이 항류마티스제다.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추거나 증상을 거의 사라지게 한다. 특히 발병 초기에 사용하면 관절 손상을 막을 수 있다. 관절 류머티즘은 관절을 둘러싼 막(활막)에 염증이 생긴 병이다. 이를 방치하면 염증이 관절을 파괴한다. 한 번 손상된 관절을 정상으로 되돌리기란 쉽지 않다.

관절 류머티즘은 관절을 싸고 있는 활막에 염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 시사저널 전영기·일러스트 정현철
면역체계 조절하는 약으로 완치 기대

관절 류머티즘의 원인에 대한 학설은 수없이 많지만 딱 부러진 요인을 잡아내지는 못했다. 이 병의 원인을 찾는 연구가 깊이 진행됐고 그중에 면역체계 이상에 의한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외부에서 침입하는 세균을 막는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자신을 공격하는 것(자가 면역)이다. 이후 관절 류머티즘은 자가 면역 질환으로 분류됐다.

이후 면역체계를 조절하는 약이 등장했다. 대표적인 게 TNF(관절 류머티즘을 일으키는 물질) 차단제다. 통증 감소는 물론 관절 손상을 막는 효과가 입증돼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다. 기존 항류마티스제로도 효과를 얻지 못한 환자의 70% 이상이 이 약으로 효과를 본다. 약효도 기존 약보다 빨리 나타난다.

유빈 서울아산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TNF 차단제는 기존 약보다 월등한 효과를 낸다”며 “항류머티즘제를 6개월 사용해도 약효가 없는 환자를 이 약으로 치료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금까지 나온 약으로도 환자의 20~30%는 완치가 가능하다”며 “다만 재발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약값이 한 달에 100만원 이상이고, 약으로 인해 인체 면역력이 떨어지므로 결핵과 같은 질환에 걸릴 우려도 있다. 이런 이유로 모든 환자에게 TNF 차단제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면역 세포의 일종인 B세포를 제거하는 치료제도 나왔다. 약을 투여하면 B세포가 감소했다가 다시 증가할 때까지 수개월이 걸리므로 한 번 치료로 약효가 수개월 유지되는 장점이 있다. 이처럼 관절 류머티즘 치료제는 면역체계 이상을 조절해서 병을 완치하는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국내 관련 학회와 정부도 치료제에 대한 임상 연구를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는 대한류마티스학회 류마티스관절염 임상연구센터는 2008년부터 2015년 3월까지 관절 류머티즘에 대한 총체적인 임상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배상철 센터장은 최근 학술대회에서 “치료제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밝혀 안전한 치료 근거를 기반으로 표준화된 진료 지침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한 대학병원 연구팀은 암 발생을 제어하는 물질(P53)이 관절 류머티즘 치료에도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나 쥐를 이용한 동물시험 수준이어서 이 연구가 치료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국내 한 대학병원과 한의원이 협동으로 한약 치료제도 개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영국의 권위 있는 류머티즘 학술지에 실려 눈길을 끌었다. 한 대학병원 류마티스내과 교수는 “그 연구 논문을 봤는데, 연구 자체는 의미 있지만 그것으로 치료 효과가 뛰어나다고 보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생선을 섭취하는 여성이 생선을 먹지 않는 여성에 비해 관절 류머티즘에 걸릴 위험이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됐다. 스웨덴 연구팀은 매주 한 차례씩 7년 이상 생선을 먹은 여성은 관절 류머티즘 발생 위험이 29% 낮아진다고 밝혔다. 생선에 있는 오메가-3 지방산이 예방적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유빈 교수는 “특정 식품이 좋다고 하면 모든 환자가 그 식품에 의존해서 오히려 병 치료에 지장을 준다”며 “생선에 있는 성분이 관절염 치료나 예방에 도움을 주는 정도는 미미한 수준이어서 의사들은 환자에게 특정 생선을 권하지 않는다. 다만 기름지고 짠 음식을 피할 필요는 있다”고 강조했다.

관절 류머티즘을 방치해서 관절이 파괴된 후 변형이 생긴 환자의 손. ⓒ 서울 아산병원 제공
치료 시기 찾는 검사법 연구 활발

문제는 치료 시기다. 관절 류머티즘을 방치하면 수개월 이내에 관절이 파괴되기 시작하고 2~3년 안에 환자의 20~30%에서 영구 장애가 생긴다. 이 때문에 적절한 치료 시기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정확한 검사법을 찾고 있다.

류머티즘 인자 검사가 대표적이다. 혈액에서 류머티즘 인자가 있는지를 찾는 것인데 정확도가 다소 떨어진다. 관절 류머티즘 환자뿐만 아니라 건강한 사람 일부(약 5%)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다른 검사(항 CCP항체 검사)를 같이 실시해 보완한다.

최근에는 자가 항체 검사(ACPA 검사)법이 나왔다. 지금까지 나온 진단법 중 가장 정확해서 관절 류머티즘의 70%를 이 검사로 확인한다. 유 교수는 “이 검사를 능가할 검사법이 당분간은 나오기 힘들 것”이라며 “관절 류머티즘에 걸렸는데도 음성으로 나오는 30%를 잡아내는 개선이 필요하고, 그런 연구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진단 기준도 바꿨다. 1987년 미국류마티스학회는 7가지 주요 증상 중 4가지에 해당하고 증상이 6주 이상 계속되면 관절 류머티즘으로 진단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그러나 조기 진단이 어려워 치료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문제가 제기돼 2010년 미국과 유럽 류마티스학회는 진단 기준을 수정했다. 관절의 크기와 수, 혈액 내 인자 유무, 염증 지표, 증상 기간 등을 점수(항목별 1~5점)로 표기해 각 항목의 합이 6점 이상이면 관절 류머티즘으로 진단하기로 정했다.

관절 류머티즘은 면역체계의 이상 외에 유전, 흡연, 치주염균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족 중에 이 질환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자신도 류머티즘 잠재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유전인자가 있는 사람이 흡연하면 정상인에 비해 이 질환에 걸릴 가능성이 30~40배 높다. 또 이런 사람이 치주염을 앓을 때도 관절 류머티즘에 걸릴 확률이 커진다. 따라서 유전적 소인이 있는 사람은 관절 류머티즘 검사를 정기적으로 받을 필요가 있다.

유전적 소인이 없는 정상인이 관절 류머티즘을 예방할 방법은 명확하지 않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손가락 관절 등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1시간 이상 지속되면 병원 찾아야 한다. 특히 통증과 함께 관절이 붓는 증상이 생기면 관절 류머티즘을 의심하고 전문의에게 진료를 받아야 한다.

관절 류머티즘에 걸렸다면 병원 치료 외에 환자 스스로 노력할 부분이 있다. 염증이 있는 관절을 쉬게 하면 염증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증상이 악화되었을 때는 쉬는 시간을 늘리고, 염증이 가라앉을수록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좋다.

관절염이 심한 활동기에는 약한 정도의 운동만 하는 것이 좋으며, 염증이 가라앉을수록 근력을 강화하는 적극적인 운동을 시행한다. 운동의 종류에 따라서 관절의 손상이 증가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다음 호에는 위·식도 역류 질환 편이 이어집니다.

 

관절 류머티즘을 의심할 증상은? 


다음 7개의 항목 중 4개 이상에 해당하고, 1~4번 항목의 증상이 6주 이상 지속될 때 관절 류머티즘을 의심할 수 있다. 환자가 스스로 판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전문의의 진료를 통해 정확한 진단을 받아야 한다.

① 조조강직

주로 아침에 관절이나 관절 주변의 뻣뻣함이 1시간 이상 지속됨

② 세 부위 이상에 나타나는 관절염

의사의 진찰로 3개 이상의 관절에서 동시에 붓기 등이 관찰됨

③ 손 관절의 관절염

손목, 손가락 중간 마디 관절, 손바닥 관절 중 한 관절 이상의 붓기

④ 대칭성 관절염

좌우의 같은 관절에 증상이 나타남

⑤ 류머티즘 결절

뼈가 튀어나오거나 관절의 한쪽에 만져지는 멍울

⑥ 혈액검사에서 류머티즘 인자 양성

⑦ X-선 검사에서 발견되는 뼈의 침식 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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