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의 힘
  • 김재태 편집위원 ()
  • 승인 2013.09.11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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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대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강렬하다는 점입니다. 아무리 스토리가 그럴싸해도 캐릭터가 약하거나, 주연을 맡은 배우가 그 캐릭터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주목받지 못합니다. ‘막장’ 소리를 듣는 드라마가 오히려 더 인기를 얻는 이유도 그와 크게 다를 게 없습니다. 주인공의 캐릭터가 극단적일수록 시청자들의 눈길이 더 많이 쏠립니다. 독하든, 아주 순하든 특별한 인상을 주어야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반대로 이도 저도 아닌, 물에 물 탄 듯한 캐릭터는 존재감이 없어 외면당하기 십상입니다. 강력하지 않다면 새롭기라도 해야 합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근육질 몸과 육중한 화기를 앞세운 ‘하드 보디’ 액션의 흐름을 바꾸면서 새로운 영웅상을 선보인 배우 맷 데이먼이 좋은 예입니다(<시사저널> 제1246호 ‘무식하게 무조건 박살 내지 않아’ 기사 참조).

정치도 이와 비슷합니다. 안타깝게도 요즘 민주당을 한마디로 말하면 ‘캐릭터 실종’ 상태입니다. 영락없이 풀 죽은 모습입니다. 확실하게 이목을 끌 만한 강렬한 인상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장외투쟁이라는 강력한 카드를 꺼내들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의 야당에서 드러났던 뚜렷한 색깔이 보이지 않습니다. 끌어가는 힘도, 버티는 힘도 약합니다. 물론 시대 상황이 많이 바뀌기도 했지만, 예전 야당들은 야당성이라는 색깔을 지키기 위해 오랫동안 절치부심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이른바 선명성 경쟁을 벌이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당에서는 색깔도, 경쟁도 거의 죽어 있다시피 합니다.

지금은 상황이 더 좋지 않습니다. 정치 자체가 온통 ‘이석기’라는 블랙홀에 빠져들어 허우적대고 있습니다. NLL 정국에서 최근 이석기 의원 사태까지 국가정보원이 핸들을 잡은 ‘안보 드라이브’라는 폭주 기관차 안으로 여야가 모두 끌려들어가 있는 모양새입니다. 새누리당은 여당이니 속으로 쾌재를 부를 수 있다 쳐도 민주당은 달라야 합니다. 어정쩡한 태도로 여론의 눈치만 살피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야당으로서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가다듬고 독해져야 합니다. 뜨뜻미지근한 캐릭터로 이 국면을 돌파해낼 수 없습니다. 정치를 무력화시키는 모든 공격에 당차게 맞서는 결기를 보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민주당은 새누리당이 쳐놓은 울타리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민주당의 약점만 정확하게 조준해 공격해 들어오는 새누리당의 전략 앞에서 무력함만 드러냈습니다.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이라는 호재를 만나고도 ‘대선 불복은 안 된다’는 새누리당

의 잘 계산된 역공 전술 앞에서 비틀거렸습니다. 이석기 의원 사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선 긋기에만 바쁜 채 효과적인 정국 주도 전략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장외로 나갔지만 새누리당이 만들어놓은 울타리까지 걷어내지는 못했습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정치란 열정과 균형적 판단을 겸비하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이다.’ 지금은 민주당이 이 어이없고 이상한 정국을 뚫어낼, 열정과 균형적 판단으로 합금된 강철 송곳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자문해볼 때입니다. 단언컨대, 뚜렷한 캐릭터야말로 민심을 얻고 난국을 뚫어낼 가장 완전한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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