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군 임원이 새누리당 선대위 명함 소지
  • 이승욱 기자 (gun@sisapress.com)
  • 승인 2013.09.11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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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군법 제3조 정치 활동 금지 위반 논란 당사자 “명함 가졌지만 사용한 적 없다”

대한민국재향군인회(향군)의 현직 간부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지역 책임자(지역장)를 선정하도록 지역 향군에 지시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런 가운데 향군 내 최대 지역 조직인 향군 경기도회(경기향군)의 현직 회장(향군본부 임원)이 새누리당 선대위 명함을 갖고,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지지 모임 활동을 지원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는 향군 임원의 정당 당직 금지 등 향군의 정치 활동을 금지한 향군법 제3조를 위반한 것으로, 파문이 예상된다.

<시사저널>은 향군의 대선 개입 의혹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경기향군 신 아무개 회장(예비역 육군 소장)이 18대 대선을 앞둔 지난해 8월경 새누리당의 공식 직함을 갖고 활동했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명함을 입수했다. 이 명함 왼쪽 하단엔 새누리당 로고와 당명이 찍혀 있고, 상단에는 ‘박근혜 대통령 후보 중앙선대위’라고 명기돼 있다. 신 회장의 직함은 ‘직능총괄본부, 미래행복위원회’의 상임위원장으로 돼 있다. 미래행복위원회가 새누리당의 공식 선대위 기구인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해당 명함이 새누리당 측에서 제작한 것이라면 향군법 위반에 해당된다. 향군법 제3조(정치 활동의 금지)는 제1항(향군은 정치 활동을 할 수 없다) 규정 이외에도 제2항에서 ‘향군의 각급 회(會)의 임원은 ‘정당법’에 따른 정당의 대표자, 간부 및 회계 책임자가 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임원이 제2항을 위반한 경우 해당 임원은 해임된다.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이에 대해 신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명함의 존재는 인정했지만, 실제로 명함을 사용했거나 그 직함으로 활동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누가 (새누리당 선대위 직함이 찍힌) 명함을 가져다주기에 받긴 했지만, 한 장도 쓰지 않고 보관해두고 있었다. 지금도 그대로 보관하고 있으니 (명함을) 가져가라”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 직함을 가진 적은 결코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향군 임원으로서) 그것(대선)과 관련해 한 일도 없고, 또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거듭 부인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명함을 제작해 건네준 인물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신 회장의 정치 활동과 관련한 또 다른 의혹도 제기됐다. 신 회장이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당시 대선 후보의 지지 모임인 특정 단체의 입회 신청서를 경기향군 직원을 동원해 접수했다는 것이다. 경기향군 전 직원인 ㄱ씨는 “지난해 8월 신 회장의 지시를 받고 경기향군 산하 30개 시·군회에서 ‘한누리포럼’ 회원 신청자를 한 곳당 수십 명씩 받아 경기향군으로 보고하도록 했다”며 “시·군회를 통해 전달받은 신청자와 도회 자체 추천자 등  총 600명가량을 신 회장과 한누리포럼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경기향군 산하 시·군회 한 관계자도 “2012년 8월 초순경 ㄱ씨의 지시로 한누리포럼 입회 신청서를 작성해 경기향군에 보냈다”며 ㄱ씨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위쪽 사진은 본지가 입수한 한누리포럼 입회 신청서와 추천자 명단. 오른쪽 사진은 경기향군 회장의 이름이 찍힌 새누리당 선대위 명함.
신 회장 “박근혜 후보 지지 모임과 관계 끊어”

한누리포럼은 ‘희망찬 미래! 선진 복지국가 건설!’을 모토로 내건 모임이다. 한누리포럼을 기사화한 일부 언론에 따르면, 이 모임은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를 공식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선 직후인 지난해 12월26일 서울 용산구 용사의집에서 열린 한누리포럼의 12월 정기회의에는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한누리포럼의 대표 정 아무개씨는 예비역 중장 출신이다.

<시사저널>은 이와 관련해 경기향군 측에서 취합한 명단과 입회 신청서 사본 자료를 입수했다. 엑셀 프로그램으로 작성된 ‘추천자 명단’이라는 제목의 명단에는 경기향군 소속 전·현직 임직원으로서 경력 사항이 표기된 사람과 경력이 표기되지 않은 인물이 섞여 있다. 본지가 입수한 50여 명 분량의 입회 신청서에는 ‘한누리포럼 입회 신청서’라는 제목 아래 신청자 이름과 주소, 경력, 학력 등이 나와 있다. 일부 입회 신청서에는 추천인으로 경기향군 회장의 이름이 표기돼 있었다.

기자가 일부 입회 신청서 작성자를 무작위로 뽑아 통화를 시도한 결과, 본인은 맞지만 상당수가 “한누리포럼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거나 “한누리포럼에 가입 신청을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신청자는 기자가 입회 신청서를 직접 제시하자 “내 글씨와 사인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지역 시·군회 차원에서 지역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지 않은 채 임의로 입회 신청서를 작성해 경기향군에 제출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에 대해 신 회장은 “한누리포럼을 알고는 있지만 입회 신청서를 대신 받아주거나 이를 지시한 적은 없다”며 “한누리포럼 차원에서 (신경을 써달라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서 이후 (한누리포럼과의) 관계를 일체 끊었다”고 주장했다.

신 회장은 특히 “일부 언론에 비슷한 제보가 들어간 것으로 알지만 제보자의 신뢰성이 떨어져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며 “그런 사람(제보자)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를 대단한 것처럼 취재하는 것 자체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한누리포럼은 향군 측으로부터 다량의 입회 신청서를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사실 무근’이라고 주장했다. 한누리포럼 권 아무개 기조실장은 기자의 확인 요청에 대해 “절대 (사실이) 아니다. 지금 바빠서 통화를 할 수 없다”면서 전화를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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