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다발 챙겨 튀는 ‘벌거벗은 관료’들
  • 모종혁│중국 전문 자유기고가 ()
  • 승인 2013.09.11 14:5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정부패 대명사 ‘뤄관’ 문제로 골치 썩는 중국

올여름 중국 광둥(廣東)성에서는 두 명의 ‘정치협상회의’(정협) 최고 책임자가 홀연히 외국으로 사라졌다. 한 명은 7월에 ‘실종 처리된’ 선전(深) 시 난산(南山) 구 원링(溫玲) 주석이고 다른 한 명은 6월부터 ‘연락이 끊긴’ 광저우(廣州) 시 화더우(花都) 구 왕옌웨이(王雁威) 주석이다. 정협은 정책 자문 기능과 통일전선 업무를 하는 정치기구다.

원 주석은 심각한 기율 위반 혐의로 지난해 4월 쌍규(雙規) 처분을 받았다. 쌍규 처분은 중국공산당 당규를 위반한 당원을 중앙이나 지방 기율검사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구금해 조사하는 행위다. 지정된 장소에 장기간 인신을 구속하기에 조사 대상자에게는 정치적인 파산 선고나 다름없다. 이미 당적을 박탈당하고 직위 해제 처분을 받은 원 주석은 감찰기관의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해외로 도주했다. 왕 주석도 광저우 기율검사위의 내사를 받는 과정에서 병가를 낸 뒤 외국으로 도피했다. 왕 주석은 이미 수년 전 가족을 해외로 내보내고 혼자 살고 있었다.

갑자기 외국으로 사라진 지방 고위 관료는 이 둘만이 아니다. 6월에만 후베이(湖北)성 궁안(公安) 현 수의국장 차이다오밍(蔡道明), 후난(湖南)성 리링(醴陵) 시 왕셴(王仙) 진 재정소장 덩위안화(鄧元華)가 돌연 자취를 감췄다. 이들은 모두 “병원에 간다” “가족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휴가를 낸 뒤, 석 달이 지나도록 행적이 묘연하다.

미국 뉴욕에서 쇼핑 중인 한 중국인 가족.(ⓒ REUTERS) 작은 사진은 대표적 ‘뤄관’으로 사법처리설이 나도는 저우융캉 전 서기. ⓒ AP 연합
가족들과 재산 미리 해외로 빼돌려

사라진 관료들은 공통점이 있다. 부정부패 혐의로 당국의 조사를 받거나 수사 선상에 올랐고 다른 나라의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다. 부인과 자녀들을 해외로 내보내고 홀로 생활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이런 관리를 ‘뤄관(裸官)’이라 부른다. ‘벌거벗은 관리’라는 뜻으로, 본인이나 배우자가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으면서 가족은 외국에 살고 혼자만 국내에 있는 공무원을 일컫는다. 뤄관 대부분은 가족과 재산을 모두 해외로 빼돌린 데다 외국 여권을 가지고 있어 자신에 대한 사찰 조짐이 포착되면 바로 출국해 버리는 것이다.

중국인 사이에 회자되는 대표적인 뤄관으로 랴오닝(遼寧)성 펑청(鳳城) 시 당서기였던 왕궈창(王國强)과 국가전력공사 사장을 지낸 가오옌(高嚴)을 들 수 있다. 왕 서기는 지난해 4월 공금 2억 위안(약 360억원)을 들고 미국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중국에서는 고위 공직자가 해외로 나갈 경우 상부의 허가가 필요한 공무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그럼에도 왕 서기는 부인과 함께 개인 여권만 제출한 뒤 출국심사대를 무사히 통과했다.

가오 사장은 2002년 10월 부정으로 축재한 재산 46억 위안(약 8280억원)을 빼돌리고 호주로 달아났다. 그는 지린(吉林)성 성장과 윈난(雲南)성 당서기를 역임해 뤄관 중 최고위직으로 꼽힌다. 2003년 발표된 기율검사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가오 사장의 가족은 이미 수년 전 해외로 나가 있었고 본인은 각기 다른 이름으로 된 신분증 3개와 여권 4개를 소지하고 있었다. ‘작정해서 먹고, 해외로 튄’ 뤄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동안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뤄관이 해외로 빠져나갔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지난해 말 미국에 본부를 둔 중국어 매체 보쉰(博訊)은 국가민항총국 베이징(北京) 보안국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2012년 베이징공항을 통해 외국으로 도피한 중앙부처 과장급 이상 관리가 354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보쉰은 이러한 해외 도피자 수가 연간 기준 최대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들이 빼돌린 검은돈은 무려 3000여 억 위안(약 54조원)으로 1인당 평균 8억5000만 위안(약 1530억원)을 가지고 달아난 셈이다.

이 숫자는 빙산의 일각이다. 베이징공항 이외 다른 도시의 국제공항과 항구를 통해 도피한 뤄관을 합치면 어마어마하다. 일각에서는 잠재적인 혐의자까지 통틀어 100만명이 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는 중국 전체 국가 공무원 708만명 가운데 7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여기에 공안부 변경관리국이 추적하는 해외로 도피한 주요 관리와 부자만 6000여 명에 달한다.

뤄관이 해외로 유출한 자금은 세계 암달러 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중국 관리와 부자들은 여러 경로와 다양한 방법을 통해 3조 달러(약 3333조원)에 달하는 거액을 해외로 빼돌렸다. 이들은 자금을 해외로 빼돌릴 때 환치기를 비롯한 첨단 금융기법을 동원해 손실을 최대한 줄이고 있다. 일부는 현금을 직접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지난 1월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미국과 캐나다 공항에서 규정 이상의 달러를 밀반입하다 적발되는 중국인이 급증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해외로 달아난 뤄관은 미국·캐나다·유럽·동남아 등지에서 막대한 부동산을 구입해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다. 뤄관의 주택 구입이 집중된 미국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는 기존의 차이나타운과는 전혀 다른 중국식 거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일명 ‘탐관 거리’라 불리는 이곳에서는 명품 브랜드를 차려입고 고급 승용차를 탄 뤄관과 그들의 가족이 회원제 식당과 술집을 드나들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한 채 현지 중국인 사회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2003년 상하이 푸동(浦東)공항을 통해 미국으로 도피했던 전 저장(浙江)성 건설청 부청장 양수주(楊秀珠·여)는 뉴욕에 가족과 친척 명의로 빌딩 여러 채를 가지고 있었다. 허난(河南)성 뤄허(河) 시 당서기였던 청산창(程三昌)은 뉴질랜드로 도피한 뒤 오클랜드에서 호화 빌라와 고급 자동차를 구입해 백만장자처럼 생활했다. 최근 사법처리설이 나돌고 있는 저우융캉(周永康) 전 정치국 상무위원 겸 정법위원회 서기도 해외에 엄청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뤄관이 부정부패의 대명사가 되자 중국 정부는 이들에 대한 강력한 단속에 나서고 있다.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해외 도피를 위해 허위 사실을 꾸며 여권 발급을 시도한 전·현직 관리와 국영기업 직원 등 184명을 적발했다. 인터폴과 외국 정부의 협조를 얻어 해외에서 체포한 정치·경제 사범도 600명에 달한다. 지난해 5월과 올 6월에는 캐나다 정부와 ‘재물 반환 및 몰수 자산 분배 협정’ 체결을 위한 협상을 가졌다. 캐나다는 미국과 더불어 뤄관이 가장 선호하는 국가다.

중국 정부 감독기관의 관리 소홀이 문제

그러나 이런 중국 정부의 노력은 적지 않은 중국인들로부터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지난 7월 중국정법대학 법치정부연구원 왕징보(王敬波) 교수는 “고위 관리가 휴가를 얻은 뒤 잠적하는 것은 감독기관의 관리가 소홀하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문제가 있는 공직자의 해외 도피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이를 집행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뤄관 대부분은 사정기관의 감찰 소식을 미리 입수한 뒤 남은 재산을 챙겨 공항을 통해 해외로 떠났다. 이런 대범한 도피 방식은 내부에 다수의 협력자가 있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중국 법제일보는 “감찰 당국은 ‘연락이 끊겼다’는 상투적인 발표만 내놓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일을 마무리한다”며 “해당 공직자의 행적을 적극적으로 추적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고 위법 사실이 발견되면 정식 조사를 벌여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과거부터 중국 정부는 해외로 도피한 고위 관리와 친한 인사를 외국에 보내 도피 자산을 반납하고 귀국하면 처벌을 대폭 경감하거나 사면하겠다며 설득했다. 2010년 2월부터는 가족이 해외에 있는 뤄관을 특별 관리해 승진에 불이익을 주는 조치도 취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한탕하고 해외로 튀는 뤄관 행렬은 끊이질 않고 있다. 뤄관 현상은 타락한 중국 관료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