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가 치료 대상이라고?
  • 김원식│뉴욕 통신원 ()
  • 승인 2013.09.11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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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청소년 ‘성전환 치료 금지법’ 둘러싸고 찬반 팽팽

“1997년, 제가 14세 때였습니다. 저는 남자로 태어났지만 성적 정체성은 여자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제가 다니는 교회 관계자들은 남자라는 정체성을 되찾아야 한다며 저를 치료센터로 보냈습니다. 거기서 야한 동영상을 보며 자위행위를 강요받았고 여성들이 나를 유혹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치료가 안 되자 그들은 저의 성기에 전기적 충격을 가했고, 많은 약물 주사를 놓아 토하기도 했습니다. (중략) 정말 죽고 싶어 여러 번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3월18일 미국 뉴저지 주의 하원 인권위원회 청문회장에 등장한 브리엘 골다니가 자신의 과거 경험을 털어놓는 순간, 청문회장은 경악과 함께 숙연해졌다. 골다니 이외에도 여러 명의 증인이 등장해 3시간 넘도록 어린 시절 강압적으로 받아야만 했던 성전환 치료의 악몽들을 진술했다.

지난해 11월27일 뉴욕에서 동성애 지지 그룹과 인권단체들이 ‘성전환 치료 금지법’ 추진을 지지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P연합
법안 무효 소송 줄이어

‘성전환 치료’(conversion therapy)는 성적 정체성을 되찾게(gay-to-straight) 해준다는 의미의 회복(reparative) 치료 행위를 말한다. 지금은 미국 여러 주에서 동성 간의 결혼도 합법화되는 등 동성애에 관한 인식이 바뀌어 가고 있지만, 이러한 인식 전환은 불과 20여 년도 되지 않은 최근의 일이다. 과거에는 미국에서도 이른바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들은 받아들일 수 없는 존재들이었고 이단시됐다. 이러한 기질을 보이는 자녀를 둔 부모들에게는 그 사실이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이었고, 자녀들의 성적 정체성을 되찾아준다는 명분으로 치료센터에 보내 이른바 ‘성전환 치료’를 시행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를 받는 청소년들의 부작용은 심각하게 나타났다. 성적 정체성을 되찾는다는 명분으로 시작된 치료는 결과적으로 자녀들의 사생활과 성적 취향이 공개돼 주변 친구들로부터 놀림감이 됐다. 이러한 수치심과 치료에서 오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 일부 청소년은 자살을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는 등 보이지 않는 문제점이 쌓여갔다. 이미 미국 심리학회(APA)에서도 1998년 이러한 성 회복 치료가 치유보다는 심각한 약물 남용으로 인한 자기 상실감 등 부작용이 심각하다고 경고했다. 또한 청소년들은 자신의 성적 정체성이 사회의 규범과 다르다고 느끼는데서 오는 우울증으로 인해 상실감과 자살 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

이에 동성애 지지 그룹 등 여러 인권단체가 18세 미만의 청소년을 상대로 하는 이러한 치료를 금지해야 한다고 청원하고 나섰다. 지난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가 역사상 처음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성전환 치료를 금지하는 법률을 발효시켰다. 그리고 올 6월에는 뉴저지 주 의회에서도 70%가 넘는 찬성률로 이러한 법률이 통과돼 지난 8월21일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서명해 발효시켰다.

크리스티 주지사는 법안을 발효하면서 “사람이 동성애자로 태어난 것은 죄가 아니다”라며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이러한 치료는 성과와 부작용 두 측면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 성과에 대한 분명한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청소년들을 정신적·신체적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며 성전환 치료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효한 배경을 설명했다. 법안이 발효되자 그동안 성전환 치료 금지를 위해 노력해온 동성애 지지 단체 등은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하지만 보수 단체들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미 캘리포니아 주에서 발효된 법안에 대해서도 무효 소송을 낸 바 있는 보수 단체 ‘리버티 카운셀러(Liberty Counsel)’ 등은 “이러한 법률은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들의 권리를 박탈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나 치료사가 환자의 자기 결정으로 인한 치료 요구에 응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사항마저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이러한 법률의 발효로 인해 치료사들이 헌법에서 보장된 치료 의무 및 권리와 상충돼 큰 혼란에 빠졌다”며 “이 법률은 수정 헌법을 위반했을 뿐만 아니라 자녀들의 원하지 않는 동성애 취향 등을 치료할 수 있는 가족의 권리마저 침해했다”는 이유로 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덧붙여 이들은 “지난 청문회에서도 여러 의사가 나와 비록 청소년이라 할지라도 성전환 치료를 원하는 환자는 치료해주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고 말했다.

‘가든 스테이트 평등(Garden State Equality)’ 등 동성애 지지 단체들은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그들은 “반동성애 단체들은 위험한 성전환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왔기 때문에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며 “그들이 무효 소송을 제기해도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우리는 법률에 대한 확신뿐만 아니라 동성애 취향을 가진 청소년들이 더는 잘못된 치료 행위로 인해 고통당하지 말아야 하기에 이 법률을 지켜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 법은 성년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다”라며 “18세 미만 청소년들이 주로 그들 부모의 강요 등으로 성전환 치료를 받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뉴욕 등 금지 법안 추진 주 확산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성전환 치료 금지에 관한 법률 제정은 다른 주로 확산돼 가고 있다. 뉴욕 주 의회에서도 지난 8월21일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뉴욕 주 상원의원 브래드 홀먼(맨해튼)을 포함한 3명의 의원이 이를 금지하는 법안을 제안하고 나섰다. 매사추세츠 주와 워싱턴 주 의회에서도 관련 금지 법률안이 논의되고 있는 등 여러 주에서 동성애 지지 단체들을 중심으로 성전환 치료를 금지해야 한다는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특히 지난해 동성 결혼 합법화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이번에는 동성애자들의 입장에 서서 이러한 성전환 치료를 금지한 법률을 발효시키고 나선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시각이 많다. USA투데이는 “보수적인 공화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선두권을 달리는 크리스티 주지사가 해당 법률을 발효시킨 것은 이례적인 일로 국가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신문은 “공화당 내부의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된다면, 크리스티는 자신의 행동과 동성애에 관한 입장 표명 요구 등 여러 비난과 곤혹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전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성전환 치료나 성 회복 치료를 하는 여러 기관이 있고 일부는 아예 캠프를 차려 장기간 청소년들을 묵게 하면서 치료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는 거의 개인의 사생활에 속해 실제로 얼마나 많은 청소년이 치료를 받고 있으며, 이에 따른 부작용으로 고생하고 있는지에 대한 공식적인 자료는 없다. 그동안 속으로만 앓고 있던 청소년들의 ‘성전환 치료’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란 대열에 합류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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