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동욱 옷 누가 벗겼나
  • 윤길주 편집국장 ()
  • 승인 2013.09.16 13:29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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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검찰총장 ‘혼외 아들’ 있다는 거 맞아?” “유전자 검사까지 하자고 했는데 채 총장이 자신 있으니까 그런 것 아니겠어?” “뭔가 음모가 있는 것 같아” “이석기는 간첩 맞지? 하는 얘기 보니까 또라이가 분명해.” “아무래도 이상해. 국정원이 꾸민 것 같아.”

시중에 떠도는 이야기입니다. 한 사람은 현직 검찰총장이었고, 다른 이는 국회의원입니다. 그런데 ‘혼외 아들’에 ‘내란 음모’라니.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채동욱 총장은 결국 조선일보가 ‘혼외 아들’을 보도한 지 엿새 만에 사퇴했습니다.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채 총장에 대해 특별감찰을 지시하자 사의를 표명한 것입니다.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감찰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입니다. 이는 사실상 채 총장에게 물러나라고 종용한 거나 다름없다는 게 법조계 시각입니다.  

혼외 아들과 내란 음모의 ‘팩트’가 맞느냐 여부를 떠나 짐작되는 게 있습니다. 두 사건이 교묘하게 연결돼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이석기 의원의 발언을 볼 때 그가 철부지 ‘종북주의자’라는 건 분명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터뜨린 시점이 묘합니다. 지난 대선 개입 의혹으로 궁지에 몰리자 ‘종북 사냥’에 나섰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채동욱 총장 ‘혼외 아들’ 건에 대해서도 국정원에서 흘린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검찰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사건을 강도 높게 수사하자 ‘까불면 죽는다’고 묵혀둔 정보를 꺼냈다는 겁니다. 이런 말들이 인터넷을 배회하고, 신상 정보가 털리고 까발려지는 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이석기 내란 음모 혐의는 법정에서 가려질 것입니다. 채 총장은 진실이 가려지기도 전에 옷을 벗고 말았습니다. 채 총장은 자연인으로서, 검찰 총수로서 권위에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누군가 의도를 갖고 두 사람을 요격했다면 목적을 달성한 셈이지요. 

<시사저널>은 이번 추석 합병호에 ‘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특별기획을 담았습니다. 창간호부터 매년 해온 작업입니다. 대한민국 권력 지형 변화를 어느 언론보다 정확하게 짚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올랐습니다. 2위는 이건희 삼성 회장이 차지했습니다. 정치권력과 경제 권력의 정점에 있는 두 사람입니다. 손석희, 봉준호, 싸이, 류현진 등도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인물들입니다.

제가 주목한 이는 고 김수환 추기경입니다. 김 추기경은 2009년 2월 선종했지만 내리 4년 동안 종교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뽑혔습니다. 그분은 지금 세상에 없는데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나름의 결론은 ‘우리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거였습니다. 혼탁한 세상에 사랑과 웃음을 주고, 현대사 고비 때마다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그가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겁니다. 김 추기경이라면 지금 같은 ‘공안 정국’을 그냥 두고 보지만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고도 긴 여행은-‘머리’에서 ‘가슴’으로 가는 여행입니다.” “사랑은 결코 감정이나 느낌이 아닙니다. 사랑은 의지에 속하는 것입니다.” 김 추기경이 남긴 말입니다. 이번 추석 고향에 가시면서 음미해보면 어떨까요. 꽉 막힌 길과 마음에 여유가 생길 겁니다.

※<시사저널>은 9월13일 채동욱 총장의 갑작스런 사퇴에 따라 책을 새로 제작했습니다. 독자들에게 좀 더 생생한 뉴스를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에 따라 일부 지역 배송이 늦어졌습니다. 독자님들의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사저널>은 앞으로도 새롭고, 깊이 있는 보도를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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