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경제인 / '경제 권력' 1위 이건희, 2위 정몽구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4:05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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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오석·구본무·최태원·정몽준 순…김중수 7위, 조원동 9위

지난 8월 중순 여의도 증권가가 술렁였다. 이건희 삼성회장의 건강 이상설 때문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이 회장은 일주일에 한 번씩 출근해서 그룹 현안을 챙겼다. 하지만 8월13일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시장에 빠르게 퍼졌다. 일부 언론은 “(이 회장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며 삼성그룹이 긴급 브리핑을 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인용 삼성 커뮤니케이션팀장까지 나서 “이 회장의 건강은 문제없다”고 해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삼성그룹의 대표 회사인 삼성전자 주가는 내리막으로 돌아섰다. 이전까지 상승 흐름을 보이던 삼성전자 주가는 8월14일 이후부터 5거래일 동안 3% 넘게 하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도 5거래일 연속 하락하면서 3.5%가 빠졌다.

이건희 지목률 90%대 첫 진입

이 회장은 감기 증상이 심해져 일주일간 입원 치료를 받은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8월23일 퇴원한 이후 대외 활동을 강화하면서 건강 이상설은 해프닝으로 끝났다. 삼성전자 주가와 코스피지수 역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증시 전문가들은 “이건희 회장이 한국 경제와 증시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는지 엿볼 수 있는 단적인 사례”라고 말했다.

이건희 ⓒ 시사저널 임준선
한국 경제에서 삼성의 영향력은 해마다 커지고 있다. 삼성그룹은 계열사 76개, 총자산 306조1000억원을 보유한 국내 최대 기업집단이다. 자산이 태국·말레이시아 등 웬만한 개발도상국의 한 해 국내총생산(GDP)과 맞먹는다. 증시에서도 삼성의 영향력은 독보적이다. 삼성그룹의 시가총액은 317조원대로 현대차그룹(117조2087억원), LG그룹(72조5365억원)을 멀찍이 따돌리고 있다. 코스피와 삼성전자 주가가 함께 오르락내리락하는 동조화 현상이 계속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가 기침을 하면 한국 증시는 몸살을 앓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래서일까. 이건희 회장은 올해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경제 관료 포함)’ 1위에 올랐다. 설문에 응한 전문가의 91.8%가 이 회장을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계 인사로 지목했다. <시사저널> 조사 사상 처음으로 지목률이 90%를 넘어섰다.

이 회장의 뒤를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2위를 차지했다. 응답자의 30.6%가 정 회장을 지목했다. 정 회장은 세계 5위 자동차그룹으로 떠오른 현대·기아차그룹을 이끌고 있다. 올 들어 국내 자동차업계는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기 침체에 따른 내수 부진과 엔저 현상, 수입차업계의 공세 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상반기에 각각 238만3800대, 144만5538대의 글로벌 판매량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9.4%, 3.5% 증가한 수치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현대·기아차가 프랑스 르노를 제치고 글로벌 4위로 도약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기아차의 글로벌 판매량이 사상 처음으로 프랑스 르노를 추월한 바 있어 기대감을 더했다. 특히 자동차 산업은 전후방 효과가 크다. 현대차그룹의 산하 계열사는 57곳이다. 자산 총액도 166조7000억원으로 삼성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협력업체가 5000여 개로 삼성의 다섯 배가 넘는다. 이런 점이 반영되면서 정 회장은 영향력 있는 경제인 순위에서 줄곧 2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올해 조사에서는 경제 관료가 여럿 상위권에 올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3위),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7위), 조원동 청와대 경제수석(9위) 등이 10위 안에 들었다. 특히 현 부총리의 경우 지목률이 12.4%로 꽤 높은 편이었다. 잦은 구설에도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가 식지 않은 점이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박근혜정부가 출범하면서 경제민주화 논의가 가속화하고 있다. CJ·롯데·효성 등 주요 그룹이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검찰에 구속되거나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재계 총수들의 힘이 상대적으로 약화됐다는 평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 영향력 여전

4위에는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올랐다. 구 회장은 지난해 6위에서 올해 4위로 두 계단 뛰었다. 그동안 부진을 보였던 LG그룹 핵심 계열사들의 실적이 호전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5위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6위는 정몽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 8위는 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는 허창수 GS그룹 회장, 10위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차지했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10위에 오른 점이 이채롭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정 명예회장의 탁월한 안목과 돌파력이 주목받은 것으로 해석된다.  

 

ⓒ 시사저널 포토
<시사저널>은 매년 각 분야 전문가 1000명을 대상으로 영향력 조사를 하고 있다. 대부분은 권력이나 인기도에 따라 희비가 엇갈렸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3년 첫 조사 이후 21년 동안 한 번도 1위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영향력은 시간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09년까지 이 회장을 지목하는 비율은 66.6%였다. 2010년에는 80%대로 올랐고, 올해는 처음으로 90%대를 돌파했다. 서슬 퍼런 사정 정국에서도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 회장의 영향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이 회장은 8월23일 퇴원한 이후에도 활발한 대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퇴원 직후인 8월26일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으로 다시 출근해 그룹의 현안을 챙겼다. 이틀 후 청와대에서 진행된 10대 그룹 총수 오찬 간담회에 참석했고, 9월에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 얼굴을 비쳤다.

삼성그룹의 힘이 막강한 만큼 ‘포스트 이건희’ 체제에 관심이 쏠린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부회장 승진 이후 눈에 띄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 회장을 대신해 그룹 현안을 꼼꼼히 챙길 뿐 아니라 삼성을 찾는 국내외 고위 인사들을 직접 맞고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 8월 말 삼성생명으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사업 및 실적 부진을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 부회장은 삼성생명 투자 포트폴리오에서 국내외 부동산 투자 비중이 높아진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었다”고 말했다. 계열사의 업무보고를 받는 기간 또한 점차 짧아지고 있다. 이대로 가면 연말에는 주례 보고가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 삼성 내부의 시각이다. 삼성전자 COO(최고운영책임자)로 과거 이건희 삼성 회장을 보필하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행보다. 사실상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선 게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는 이번 <시사저널> 조사에서도 드러났다. 올해 조사에서 영향력 순위 19위에 올랐다. 신제윤 금융위원장,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을 앞질렀다.

삼성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의 경영 수업이 끝난 것으로 보고 있다. 차기 대권을 승계할 후계자로 이 부회장을 지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포스트 이건희’ 체제가 임박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룹의 정통성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어가고, 이부진 사장은 레저 및 무역·화학 부문을, 이서현 부사장은 제일기획과 제일모직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포스트 이건희 체제에서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삼성전자 기흥공장. ⓒ 시사저널 최준필
대한민국 전문가 집단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를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으로 꼽았다. 응답자의 53.4%가 삼성전자를, 41.8%는 현대차를 꼽았다. 삼성그룹이 2위, 현대그룹이 4위에 올랐다.

삼성전자가 전체 상장사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9년 19%에서 올 상반기 41%로 높아졌다. 삼성전자 한 종목이 우리나라 전체 시가총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분기에도 57조4600억원의 매출과 9조5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려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이어갔다. 주요 증권사들은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처음으로 10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금융정보 제공 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증권사 3곳 이상이 추정한 삼성전자의 3분기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60조1999억원, 10조2836억원이다.

현대차 역시 2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23조1834억원, 2조406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던 지난해 동기보다 소폭 줄었지만, 증권사 평균 추정치를 웃도는 실적이다. 올 하반기 전망도 밝다. 상반기 실적에 악영향을 미쳤던 국내 공장 가동률이나 환율 문제 등이 상당 부분 해소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현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대차의 3분기, 4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에 비해 각각 13.0%, 23.5% 성장할 것”이라며 목표 주가를 24만5000원에서 27만5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5위와 6위는 LG그룹과 LG전자가 각각 차지했다. 2009년 이전까지만 해도 LG전자는 삼성전자와 함께 전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호령했다. 하지만 아이폰이 국내에 도입되고, 스마트폰 대응에 실패하면서 ‘휴대전화 명가’ 자리를 내줘야 했다. 회사 실적은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고, 주가 역시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출시한 옵티머스G가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 8월 내놓은 G2는 삼성의 갤럭시나 애플의 아이폰 못지않은 인기를 얻고 있다. 2분기에는 깜짝 실적을 발표했다. 회사 내에서 애물단지로 불렸던 휴대전화 사업 담당 MC사업본부는 2분기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런 점이 순위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SK그룹, 포스코, SK텔레콤, 현대중공업 등이 10위권 안에 포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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