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보다 주먹이 무서웠나
  • 조유빈 인턴기자 ()
  • 승인 2013.09.16 14:59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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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메가박스는 압력 배후 밝혀야

멀티플렉스(복합 상영관) 중 유일하게 영화 <천안함 프로젝트>에 24개관을 내줬던 메가박스가 9월7일 돌연 22개관의 상영을 중단했다. 개봉한 지 이틀 만이다. 상영 중단 이유는 ‘일부 단체의 항의 및 시위 예고 때문’이라고 했다. 메가박스에서 상영이 중단된 이후 영화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더 높아졌다. 영화를 보기 위해 제주도에서 서울까지 올라온 관객이 있을 정도다.

영화는 천안함 사태 이후 국민에게 알려진 내용과는 다른 증거들을 제시하는 기획 보도물 형태로 진행되다가 “소통은 합리적 의심을 받아들이면서 출발한다”는 의미심장한 내레이션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영화가 관객과 ‘소통’하기까지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화를 배급하겠다는 회사가 없어 제작사인 ‘아우라픽처스’가 직접 배급을 맡았다. 또 국방부와 희생자 유족들이 영화 내용이 부적절하다며 사법부에 상영 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법원의 기각 판결이 내려진 다음 날에야 개봉할 수 있었다.

9월9일 열린 상영 중단 관련 영화인 기자회견. ⓒ 아우라픽처스
배급사와 협의 없이 상영 중단 일방 통보

상영 첫날부터 <천안함 프로젝트>는 박스오피스 다양성 영화 부문 1위에 올랐다. 개봉 둘째 날인 9월6일 오후 아우라픽처스는 메가박스 측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아 상영관 수를 늘리는 방안을 생각해보자고 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뒤 메가박스 측은 다시 전화를 걸어와 관람객 간의 충돌이 예상된다며 상영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일방적인 통보였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에 제작사 측은 ‘그 단체가 어디냐’고 물었지만 “밝힐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고 한다.

메가박스 측으로부터 먼저 전화를 받은 곳은 배급사 ‘엣나인’이다. 아우라픽처스의 첫 배급이 원활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조력자로 계약에 참여했다가 ‘배후 배급사’라는 말까지 들은 회사다. 엣나인 역시 메가박스 측으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9월6일 전화를 걸어온 메가박스 측이 “죄송하다. 이유는 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메가박스 측은 “배급사와의 협의를 통해 상영 중단을 결정했다”고 했지만 배급사 어느 쪽도 협의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영화 상영을 중단하라고 요구한 곳은 보수 단체였을까. 메가박스 측은 “보수 단체라고 언급한 적 없다. 말실수와 언론 보도로 인해 와전된 것”이라며 ‘익명을 요구한 일부 단체’라고 정정했다. 이는 보수 단체 측이 발끈하고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보수 우파 매체 연합인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인미협)가 확인한 결과 어떤 보수 단체도 <천안함 프로젝트>와 관련해 시위를 예고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인미협은 메가박스에 해당 단체의 이름을 밝힐 것과 보수 단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를 요청했다. 일부 단체의 항의 외에도 메가박스 측이 상영 중단의 이유로 든 것은 또 있다. 상영 중단을 요구한 전화가 걸려온 점, 영화 상영 도중에 나온 관객이 항의를 한 점 등이다. 제작사 측에서는 통화 음성파일과 항의 장면이 찍힌 CCTV 등을 요청했다. 하지만 메가박스 측에서는 “알려줄 수 없다. 이해해달라”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한 영화 관계자는 “정말이라면 자료를 공개하면 된다. 자꾸 숨기려 하니까 의혹이 더 제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화 의 포스터.
상영 중단 강행한 메가박스에 의혹 불거져

메가박스 측이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고 이미지 손실까지 입으면서 상영 중단을 강행한 이유는 뭘까. 온갖 의혹이 천안함 사태 때처럼 불거져 나온다. ‘메가박스를 인수한 회사 뒤에 숨은 세력이 있다’ ‘영화 상영을 껄끄러워한 정부 측 입김이 작용했다’ 등이다.

메가박스의 지분 46%는 한 보수 언론사 계열사가 갖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가 저녁 식사를 함께한 정부 인사로부터 <천안함 프로젝트>와 관련해 부정적인 말을 듣고 메가박스 측에 압력을 넣었다는 얘기가 있다. 이에 대해 메가박스 측은 “정부도 주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만약 정부나 주주가 개입돼 있다면 처음부터 CGV나 롯데시네마처럼 영화를 상영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관객의 안전을 위해서 내린 결정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개봉 영화가 상영 이틀 만에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를 지켜본 영화인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한다. 이 영화를 제작한 정지영 감독은 “극장에 폭탄을 설치했다는 전화가 걸려온다고 해도 경찰을 투입해 폭탄을 제거하고 다시 상영해야 한다”며 “어떻게 항의 전화 한 통에 22개관의 상영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릴 수 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국민들이 영화를 볼 수 있는 권리를 차단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협박을 받았다고 상영을 중단하는 조치는 한국 영화계의 퇴보를 보여주는 것”이라며 이번 사태를 ‘영화를 관객과 만나지 못하게 하려는 세력과 만나게 하려는 세력의 싸움’이라고 표현했다.

영화인들은 9월9일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했다. 영화인회의·한국영화감독조합·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 12개 영화 관련 단체가 모였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보수 단체의 이름을 밝히고 수사 당국에 고발할 것, 해당 보수 단체를 수사해 검찰에 송치할 것, 문화체육관광부가 영화의 재상영에 최선의 행정력을 다 할 것’ 등을 요구했다.

<천안함 프로젝트>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통과하고, 법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인정받은 작품이다. 법적으로는 전혀 걸림돌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메가박스는 불필요한 논란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하고 자체 ‘상영 중단’ 결정을 내렸다. ‘법’과 ‘표현의 자유’를 내팽개친 나쁜 사례가 될 것이란 게 영화인들의 지적이다. 


‘을’이 ‘갑’에게 어떻게 계약서 요구하나 


이번 <천안함 프로젝트> 상영 중단 사태로 영화계의 고질병인 ‘갑을 관계’가 다시 부각되고 있다. 제작사 아우라픽처스는 메가박스와 상영 계약을 맺을 당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대형 멀티플렉스와 계약을 맺을 때 상영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고 했다. 아우라픽처스 관계자는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니까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고 해서 자연스럽게 구두로 계약이 이뤄졌다”며 “보통 영화관에 영화가 걸리는 것 자체를 계약 성사의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독립영화의 경우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멀티플렉스가 계약을 꺼리는 데다 관객이 많은 시간대에 영화를 배치하는 것도 힘든 실정이라 계약서 작성을 요구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주성충 영화진흥위원회 팀장은 “상영하기까지 어려움이 많은 독립영화일수록 계약 시 상영 계약서를 작성해 상영 기간과 수익 배분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영화인진상규명위원회의 정윤철 감독은 “한국영화동반성장이행협약에서 상영 계획서에 상영 기간, 계약사항 변경 시 서면으로 협의할 것 등을 명시하고 있지만 법적 강제성이 없다”며 “영화인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구두 계약으로 빈번하게 진행되는 영화 계약은 시정돼야 한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게 된 만큼 국회에서도 입법 시도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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