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풍성한 영화·공연·전시…골라 보는 재미 ‘쏠쏠’
  • 김진령 기자·김종철 영화 칼럼니스트 (jy@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5:37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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닷새나 되는 추석 연휴다. ‘좋은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은 9월14일부터 22일까지 장장 9일 동안 쉰다. 성묘하고 차례 지내고 친지를 만나도 시간이 넉넉할 것이다. 그렇다고 청명한 가을날 ‘집구석’에 처박혀 있을 수는 없는 법. ‘폼’ 나게 문화생활을 하는 것은 어떨지. 연휴가 끝나고 각자 일터나 학교로 돌아갔을 때 그래도 나는 추석에 이런 문화생활을 했다고 내세울 만한 게 하나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시사저널>이 추석 연휴에 볼만한 영화·공연·전시를 소개한다.

■ 극장 영화

추석 시즌 극장가는 흥행 전쟁터다. 애니메이션, 사극, 코믹 액션 등 장르와 타깃이 되는 관객층이 다양하다. 한재림 감독의 <관상>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른 수양대군의 난을 관상학과 결합했다. 제 아무리 족집게처럼 개개인의 운명을 점칠지라도, 도도하게 흐르는 역사의 흐름은 바꿀 수 없는 법이다. 유머와 캐릭터의 매력이 도드라지는 흡인력 있는 전반부에 비해 극적 흥미가 떨어지는 후반이 아쉽다. 하지만 송강호·조정석·이정재·백윤식·김혜수 등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특히 한동안 매너리즘에 빠졌던 송강호는 대배우다운 관록을 과시한다.

애니메이션 ⓒ 월트디즈니스튜디오스코리아 제공
픽사의 대히트작 <몬스터 주식회사>의 최강 멤버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번엔 대학교가 무대다. 물론 정상적인 대학은 아니다. 온갖 괴물들로 득실거리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몬스터 대학교>는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구성을 두루 섞었다. 열심히 공부를 해야 몬스터로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고, ‘몬스터 주식회사’라는 좋은 직장에 취업이 가능하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기술적 완성도와 사랑스러운 캐릭터, 유머와 볼거리가 넘치는 가족용 영화다. 전작만큼의 신선함은 덜해도 재미는 여전하다.

믿고 보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신작 <바람이 분다>는 태평양전쟁 당시 악명을 떨쳤던 전투기 ‘제로센’의 개발자인 호리코시 지로를 주인공으로, 그의 꿈과 사랑을 그린 이야기다. 실제 사건과 판타지가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바람이 분다>는 아름다운 배경 작화와 미야자키 하야오의 능숙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러나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남자의 도전과 집념을 감동적으로 지켜보기엔 뼈아픈 역사적 진실이 눈에 밟힌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이니만큼 극장에서 놓칠 수 없는 작품이다.

‘추석용 영화’란 연령대를 가리지 않고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성격의 영화를 뜻한다. <스파이>가 딱 그런 종류의 영화다. 남편은 비밀리에 스파이 활동을 하고, 아내는 스튜어디스로 일한다. 권태기에 접어든 부부의 일상에 테러리스트가 끼어들면서 해프닝이 벌어진다. <트루 라이즈>를 그대로 옮겨온 <스파이>의 미덕이 있다면 킬링 타임에 충실한 볼거리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코미디와 액션이 끊이지 않는데, 딱히 내세울 만한 장점이 없다는 게 단점이다. 자고로 영화란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오락이라고 생각하는 관객에게 적절하다.

영화 한 장면. 배우 문소리와 다니엘 헤니(뒤). ⓒ JK필름 제공
■ IPTV·VOD 영화

소규모 개봉, 혹은 개봉과 동시에 극장에서 내려지는 영화들이 적지 않다. 미처 극장에서 보지 못한 영화들은 IPTV, VOD를 통해서 만날 수 있다. 극장에선 가족용으로, 가정에선 취향에 맞게 선택해보자. 제목이 수상한 영화 <아티스트 봉만대>. 봉만대라는 이름은 에로영화 마니아들에게 친숙하다. 영화 제목처럼 봉만대는 에로 장르의 예술가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아티스트 봉만대>는 <해변의 광기>라는 에로 호러 영화 촬영장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영화 제작 현장의 희로애락을 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 성격의 극영화다. 봉만대·임필성·곽현화·성은·이파니 등 실명 그대로 출연한 감독과 배우들이 사사건건 충돌하며 영화를 만들어간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대중적 재미를 두루 갖췄지만 극장에서 외면받은 비운의 작품이다.

왕가위(왕자웨이)가 만드는 ‘엽문’의 이야기라면 특별해진다. 이소룡(리샤오룽)의 스승이자 영춘권의 달인 엽문의 삶을 그린 <일대종사>는 다른 무협영화와 거리를 둔다. 왕가위 특유의 집요한 인물 탐구와 예술적인 무술액션 연출은 견자단(전쯔단)의 <엽문> 시리즈와는 차별적이다. 격투의 쾌감이 아닌, 무술 본질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독특함이 매력적이다. 특히 부모의 원수를 갚는 눈 오는 밤의 기차역 무술 장면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또한 배우의 존재감이 대단한 영화다. 엽문과 궁이를 각각 연기한 양조위(량차오웨이)와 장쯔이의 품격 있는 연기는 영화를 한층 더 고급스럽게 만든다.

신카이 마코토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그는 인물의 감정 묘사를 세심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언어의 정원>은 제목 그대로 정원에서 만난 두 남녀의 애잔한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아름다운 작화와 애니메이션 특유의 환상적인 스타일이 결합해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잃어버린 젊은 날의 애잔한 사랑을 그리워하게 만든다. 여기에 찰나의 감정이 교차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은 신카이 마코토의 연출력이 빛을 발한다.

<투 마더스>는 소재가 파격적이다.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은 릴은 아들과 단둘이 살아간다. 이웃엔 그들의 아픔을 보듬어가는 친구 로즈와 그녀의 아들 톰이 살고 있다. 지나치게 가까운 네 사람은 결국 있어서는 안 될 사건을 만든다. 친구의 아들과 섹스를 하는 관계로 발전해버린 것. 막장 스토리 같은 이야기를 현실감 넘치게 만드는 힘은 배우들의 호연이다. 릴과 로즈를 연기한 나오미 와츠와 로빈 라이트는 훌륭한 연기뿐만 아니라, 젊은 남자들이 자연스럽게 빠져들 정도로 뛰어난 외모를 갖췄다. 배우가 가진 장점들을 훌륭하게 뽑아낸 앤 포테인 감독의 역량도 만만치 않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가 된 성폭행을 다룬 영화가 많아졌다. <컴플라이언스>는 실화를 기초로 만들어진 사회성 짙은 문제작이다. 패스트푸드점 매니저인 산드라가 경찰을 사칭한 장난 전화를 받는다. 조사라는 명목 아래 산드라는 같은 직원에게 성폭력을 당한다. <컴플라이언스>를 보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영화에서 묘사된 성폭력은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권력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기력하게 유린당하는 산드라의 처지는 영화가 만든 가공의 상황이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서 자행되는 현실이기에 두렵다.

■ 전시

늦여름을 상징하는 과일은 포도다. 포도 넝쿨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이는 국립중앙박물관 2층 회화실에 전시된 이계호(1574~?)의 8폭짜리 그림 <포도도>를 보면 휘몰아치는 포도 줄기의 기세와 섬세한 묘사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이다. 회화실은 철따라 전시물이 교체된다. 이번 전시물은 7월에 교체된 것으로 11월까지 공개된다. 오리나 기러기 그림에 능했던 홍세섭(1832?1884년)의 화조도 6점이 전시되고 있는데 눈여겨볼 만하다. 먹만으로 표현한 그의 새 그림은 현대 수묵화를 연상시킬 만큼 독특한 구도와 참신한 표현 방법을 선보이고 있다. 18세기에 활동했던 변상벽은 ‘고양이 화가’로 불릴 만큼 영모도(새나 짐승 그림)에 능했다. 특히 그의 고양이 그림 시리즈는 인기가 높다. 그의 대표작 <묘작도(猫雀圖)> <계도(鷄圖)>가 오랜만에 전시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는 추석 연휴에 진행되는 국립중앙박물관의 야외 공연 일정과 엮으면 눈과 귀가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될 수 있다.

대형 기획전 중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의 <데이비드 호크니 : 와터 부근의 더 큰 나무들>과 2013 올해의 작가상 전시를 함께 묶어서 둘러보는 것도 좋다. 캘리포니아 시절인 1960~70년대 작품이 인기가 있지만, 호크니는 1990년대 이후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가 대형 작품에 매달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50개의 캔버스에 이어 그린 가로 12m, 세로 4.5m의 작품이다.

움직이는 조각의 창시자 알렉산더 칼더의 작품을 전시하는 리움의 기획전은 아쉽게도 추석 연휴에 문을 닫는다.

■ 박물관

추석 연휴에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을 비롯해 경주·공주·광주·대구·부여·전주·제주·진주·청주·춘천 등 지역 박물관은 문을 닫지 않고 모두 한가위 잔치를 연다. 경주·광주·제주박물관에서는 가족영화도 상영한다. 전통 민속놀이 체험도 할 수 있고 전통문화 공연도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의 경우 9월20일 오후 3시에 김승일 무용단의 전통무용특집 <월야청청-풍류> 공연이 펼쳐진다(자세한 일정은 각 박물관 누리집 참조).

■ 공연

추석이 전통 명절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창극 <서편제>는 가장 잘 어울리는 공연이다. 지난 3월 초연에서 매진을 기록했고 이번에 두 번째 공연을 갖는다. 이청준의 소설에 윤호진의 연출이 가세하고 안숙선 명창의 판소리가 더해지면서 창극의 영역을 한 뼘 더 넓혔다. 게다가 극 내용상 판소리 다섯 바탕의 눈대목(가장 흥미 있는 대목)이 등장할 수밖에 없어 ‘판소리 주크박스 뮤지컬’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다. 그만큼 관객의 호응도가 높다. 예매를 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아이템이기도 하다. 가족의 의미를 되묻는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는 중견 연극인 신구와 손숙이 출연해 완성도를 높였다.

왁자지껄하고 즐거운 공연을 보고 싶다면 브로드웨이팀이 내한 공연을 펼치고 있는 <아메리칸 이디엇>이나 <애비뉴 Q>가 제격이다. 아동극 주인공으로만 알았던 인형들이 음란하고 기발한 성적 농담을 날리는 <애비뉴 Q>는 현실 비판과 소수자를 모욕하지 않는 균형 감각을 갖추고 있어 불편하지 않고 유쾌하다. 록 버전의 아메리칸 청춘가를 보고 싶다면 그린데이의 앨범을 뮤지컬로 만든 <아메리칸 이디엇>이 제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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