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로에 서 있는 게 내 운명”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09.16 15:39
  • 호수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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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소설집 <도자기 박물관> 펴낸 소설가 윤대녕

윤대녕은 ‘시간’의 소설가다. 윤대녕의 소설에서 시간의 의미는 각별하다. 윤대녕의 작품 속 주인공은 흔히 과거를 반추한다. 추억으로 뒤덮인 기억의 패총을 서성거린다. 긴 시간이 흘러간 뒤에도, 흔적으로 남은 과거가 현재를 지배한다. 한번 악기의 현이 울리면 그 여운이 오래 남는 것과 비슷하다.

윤대녕이 새 책 <도자기 박물관>을 발표했다. 3년 5개월 만에 7편의 단편소설을 묶었다. 그의 일곱 번째 소설집이다. 여섯 번째 소설집과 일곱 번째 소설집 사이에, 작가는 오십 줄에 접어들었다. ‘50’이라는 숫자는 작가에게 젊음과 늙음의 경계와도 같다. ‘시간’의 소설가답다. 윤대녕은 ‘작가의 말’에 이렇게 적었다.

‘그 젊음과 늙음의 경계에서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공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뚜렷이 떠오르는 바가 없다. 다만 고통에 대한 사유와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잦았던 것 같다. 여기에 수록된 소설들은 그러한 시간의 집적이자 흔적이 되겠다.’

ⓒ 시사저널 전영기
추억으로부터 ‘망명’당한 인물들

이번 <도자기 박물관>에서도 ‘기억의 습작’이 많았다. ‘비가 오고 꽃이 피고 눈이 내립니다’의 주인공 여성은 과거 대학 동아리에서 만난 선배와의 하룻밤 기억을 말한다. 불행했던 결혼 생활을 이야기한다. 과거는 인물의 현재를 아프게 구속한다. ‘쓰다 보니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내가 여전히 누군가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과거에 받은 상처나 아픔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어쩌면 이 사태 그대로 앞으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 같아 지레 겁이 납니다.’

표제작 ‘도자기 박물관’에서는 도자기에 집착하는 주인공 남성의 인생을 그린다. 그가 훌륭한 도자기를 발견해 아내를 내팽개치고 달려간 사이, 아내는 강간당하고 다음 날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그는 아내가 죽은 이후에도 평생을 길 위에서 유랑하며 도자기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다. 숨을 거두기 직전, “누구에게나 삶은 결국 꿈같은 것 아니냐”는 물음에 “하지만 사나운 꿈도 있었지”라며 한(恨)을 내비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윤대녕 소설의 주인공들이 ‘자신의 추억으로부터 망명당한 이들’이라고 설명한다. 흘러간 시간, 달라진 공간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아파하고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그 추억은 인물에게 소중한 보물과도 같다. ‘그들은 자신의 추억으로부터 스스로 소외되어 있으며, 뼈아픈 트라우마나 죄책감 때문에 추억을 향한 발걸음을 쉽게 옮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추억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이들이다.’

추억으로부터 망명당한 작중 인물들에는 작가 윤대녕이 글을 쓰고 삶을 사는 방식이 반영됐다. “나의 몸과 정신을 통과하지 않으면 쓰지 않는다.” 중학생 때부터 견지해온 그의 문학 윤리다. 투철한 자기반성과 끈질긴 사유에서 윤대녕의 소설은 시작된다. “삶은 고통을 통해서야 이해된다. 행복했던 경험보다는 괴로웠던 경험이 몸과 마음에 각인된다. 그 기억을 반추하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타자의 고통을 감지하는 감수성을 가질 수 있다.”

윤대녕은 ‘길 위의 소설가’이기도 하다. “여로(旅路)에 서 있음이 나의 운명”이라고 말한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일곱 작품 중 다섯 작품이 여행 혹은 방랑을 통해 겪은 이야기를 소재로 한다. ‘시간’의 소설가인 윤대녕에게 “인생은 곧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일”이다. 방랑의 정체성이 자연스레 작품 속에 스몄다. 길 위에서 과거를 반추하는 인물들을 통해, 윤대녕은 구도(求道)의 가능성과 삶의 의미를 탐색한다.

“‘아날로그’ 감수성의 가치를 믿는다”

여섯 번째 소설집과 일곱 번째 소설집 사이에, 작가는 처음으로 머리를 검게 염색했다. 평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중시하는 탓에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일이다. 하지만 거울을 바라보며 부쩍 느끼는 바가 있었다. 나날이 늘어가는 흰머리가 “젊음은 끝났다”고 선고하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 늙어간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의미에서 흰 머리에 검은 물을 들였다.

오십 줄에 접어들고도 윤대녕은 변하지 않았다. 탐미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문장으로 인간 밖의 풍경을 묘사한다. 그 가운데 선 인간 삶의 본질과 의미를 집요하게 묻는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했다. 어느새 흰 머리가 신경 쓰이는 중년의 작가가 됐다. 디지털 세대인 독자들에게 아날로그에 가까운 자신의 감수성이 얼마나 호소력이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물론 그 가치에 대한 확신은 있다. “내 작품에는 생명에 대한 존중, 유기적인 세계를 향한 갈망이 있다. 이것이 인간과 자연의 본질을 통찰하는 유연한 사고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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