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권력은 ‘덤비는 자’ 반드시 도려낸다
  • 김현일 대기자 ()
  • 승인 2013.10.02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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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동욱 사태’로 본 역대 정권의 ‘손보기’

돈·여자.

권력에 빠지지 않고 따라붙는 ‘요물’이다. 이에 관한한 동서고금 예외가 없다. 권력을 가진 자를 주변에서 고이 내버려 두지 않는다. 마치 음식에 파리가 들끓듯이.

때문에 권력을 가진 본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하루 24시간 내내 경계하지 않는 한 검은 유혹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파리는 아무리 쫓아도 끊임없이 달려드니까. 그래서인지 많은, 아니 대다수 권력자가 검은 유혹에 넘어갔다. 하기야 현직 시절 청와대 내에서 모 여인과 ‘관계’를 가져 임신케 한 대통령도 없지 않으니 주변 탓만 할 계제는 아니지만.

아무튼 권력의 소멸이나 제거에 이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많지 않다. 검은 유혹에서 자유로운 권력자는 거의 없고, 대중은 부정한 돈·여자를 챙긴 이들을 결코 용납하지 않기에 그렇다. ‘허리 아래는 입에 올리지 않는다’는 관용 분위기는 옛날 얘기다. 소실의 빈소를 지키는 일본 어느 수상을 그저 그런 눈으로 바라보던 때는 지났다. 따라서 검은 유혹에 빠진 진상이 공개되면 누구도 헤어나기 어렵다. 최고 권력자, 존경받는 종교 지도자까지도.

권력과 존경의 크기가 클수록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깊이와 충격도 크다. 잘 알려진 어느 종교 지도자처럼 지지 세력을 총동원해 돈·여자 관련 추문을 가까스로 틀어막아 연명하는 예외적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으나 예전의 그가 아님은 분명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8월8일 비서실장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후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맨 오른쪽)과 환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작은 사진은 채동욱 총장과 조선일보 공방을 다룬 9월10일자 . ⓒ 연합뉴스
돈·여자에서 자유로운 권력자 별로 없다

채동욱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채 총장 소동은 이제 채 총장과 이를 처음 보도한 조선일보와의 전쟁을 넘어 정부·여당과 야당, 나아가 보수와 진보의 대결 양상을 띠고 있다. 여론 추이도 심상치 않다. 채 총장 ‘혼외 아들’을 둘러싼 싸움이 확전을 거듭한 것은 당초 예상 그대로다. 사안의 기본이 그런 불씨를 잉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채 총장은 보도 직후 혼외 아들의 존재를 부인하면서 보도의 저의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자신의 검찰 지휘에 불만을 품은 여권 내 다른 정치권력의 작용 가능성을 짙게 내비쳤다.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들 정도의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하는 한국 검찰의 수장이 지목하는 권력이라면 빤하다. 청와대와 국정원 정도로 보면 틀림없다. 실제 전직 국정원장 원세훈을 기소시킨 채 총장의 검찰이고, 청와대는 이로 인해 정국 소란이 가중되고 정통성이 훼손됐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던 즈음이다. 국정원의 반감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니 채 총장이 암시한 정치적 음모가 먹혀들게 돼 있다. 여기에 같은 편이라고 할 만한 법무장관의 채 총장에 대한 감찰 지시까지 이어졌다. 이런 마당에 야당인 민주당이 채 총장을 거들고 나서면서 더 복잡하게 진행되는 중이다. 가뜩이나 총장 청문회 당시부터 “캐면 캘수록 흠이 없는 사람”이라는 극찬을 보내 ‘채 총장의 우군’이라는 평가를 듣던 민주당의 거들기는 이 씁쓸한 싸움을 전면전으로 비화하게 만들었다.

어느 쪽 주장이 옳은지는 이 시점에서 단정할 일은 아니다. ‘혼외 아들 여부만 분명히 가리면 모든 게 끝날 것’이라며 채 총장의 개인 문제임을 강조하는 조선일보 측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가운데, “공작 냄새가 분명히 나지만, 그렇더라도 (채 총장) 본인에게 하자가 있다면 책임은 져야 하지 않겠나”라는 견해도 힘을 얻고 있다. “구린 구석이 없다면 우물쭈물할 게 아니라 빨리 유전자 감식을 받으라”는 촉구다. 그래서일까. 채 총장도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정면 대응하고 나서면서 다시 상황을 반전시키고 있다.

“깊은 산속에서 수도하는 승려도 잡아넣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주민등록법·예비군설치법·산림법 위반 등으로. 하물며 일반인도 아닌 한자리하는 인물쯤이야.” 법조 출신으로 총리를 지낸 ㅇ씨가 한창 활동 중에 자신 있게 하던 말이다. 여기에는 ‘털면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의식이 배어 있다.

거의 모든 이에게 허물은 있게 마련이고, 이를 들이대면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즉각 꼬리를 내린다는 것이다. ‘내가 입을 열면 세상이 시끄러울 것’이라는 장세동(전두환 정권 시절 안기부장)식 으름장으로 버티기를 시도하는 인사가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극소수이고, 그나마 저항도 잠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당사자를 침묵시키는 데 필요한 비위 자료들이 풍성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민정비서실을 비롯해 국정원·검찰·경찰·보안사·국세청 등 각급 기관에 ‘존안(存案)’의 이름으로 잘 정리돼 있다.

1990년대 여권 유력 인사인 ㄱ씨가 대통령 연루 자료들을 상당수 갖고 있음을 기화로 권력에 도전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승용차 안에서 부인이 아닌 어느 여성과 사랑 행위를 한 녹음테이프를 제시하자 이내 주저앉았다. 또 다른 실력자 ㅇ씨의 반발도 존안 자료를 내비치는 것으로 싱겁게 끝났다.

이런 식의 소소한 사례까지 열거하자면 한이 없는데, 다만 노태우 정권 당시 실세였던 정호용 전 국방장관이 권력자의 의중과 달리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려고 하자 서동권 당시 안기부장이 ‘고위층’의 의사를 직접 전하는 등 상대에 따라 ‘설득자’ 내지 ‘해결사’는 다르다.

‘자녀 구속’ 카드 꺼내면 누구건 손들어

물론 항상 자료가 완비된 것은 아니다. 그러면 곧바로 필요 자료 보완 내지 준비에 착수한다. 이 단계에서 갖가지 험한 수단이 동원된다. 특히 권력기관의 장이나 고위 장성 등 힘깨나 쓰거나 썼던 인사들의 경우는 우선 ‘힘 빼기’부터 한다는 게 정설이다. 각급 기관마다 방식은 약간 다르지만 기본은 같다. 예컨대 해당 기관의 가장 나이 어린 조사관이나 미화원 복장의 하급 직원이 뺨을 때리거나 걷어차는 등의 수법이 그것이다. 국방장관 ㅇ씨, 전 국정원장 ㄱ씨 등이 그런 수모를 겪었다. 이 단계를 거치면 체념 속에 순순히 조사에 응하더라는 관계자의 전언이다. 견디다 못한 ㄱ씨는 자살 소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예전처럼 ‘매달기’나 ‘주먹’을 쓰기가 여의치 않은 요즈음 애용되는 방법은 광범위한 주변 전면 조사이고 자녀 구속이다. 부인·자녀는 물론 가까운 친척과 사돈네, 친지들의 은행계좌를 까발리고 이들의 회사에 대한 세무조사 등이 실시되면 배겨나는 인사가 없다. 또 가까운 가족, 친지들의 비명과 원망을 무릅쓰다가도 자녀 구속 카드에 이르면 두 손을 든다. 현재 진행 중인 ‘전두환 비자금 환수’를 곱씹으면 이해가 될 것이다. 입 무겁기로 유명한 ㅂ씨가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 가족과 얽힌 돈 거래를 털어놓은 것도 본인의 자녀에 대한 ‘인신 처분 언질’ 때문인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검찰 권력’ 중심인 채 총장에게는 이런 식의 처리가 해당되지 않겠으나, 권력자나 유명인을 ‘손보는’ 방식이나 경로는 대략 이렇다. 권력의 속성이 원래 그러니까. 그런 맥락에서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 만한 채 총장의 행태는 궁금증을 더한다. 혼외 아들이 없어서, 원체 시비될 만한 꺼리가 없어서, 법의 맹점을 알아서, 검찰 일각의 지지와 민주당 등 야권의 지원이 거세서, 아니면 세간의 추론처럼 대통령에게 부담될 만한 자료를 확보해서 등등 가설만 난무하는 상태다.

막판에 누가 웃을지는 대충 읽혀진다. 조선일보의 보도 이면이나 절대 권력인 청와대의 행보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히 ‘조선과 채동욱 간 진실 게임’을 넘어 여야, 보수와 진보의 대결 형태로 전개되는 양상을 주목해야 한다. 역대 사례를 봐도 절대 권력의 ‘손보기’를 버텨낸 인사는 없었다.

이 싸움의 초기에 발간된 <시사저널>(9월10일자) 표제는 ‘채동욱 vs 조선일보, 하나는 죽는다’였다. 정확하다. 어느 한 편은 초주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긴 쪽도 상당한 내상을 입게 돼 있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정치권력 내부에 일대 파란이 따를 것이고, 여야의 세 균형도 달라진다.

어쨌거나 지금 청와대의 주인은 ‘독하다’는 박근혜 대통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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