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수급자 불이익 줘선 안 된다
  • 김원섭 |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
  • 승인 2013.10.02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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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노인연금 공약 후퇴 논란…노인 빈곤 문제 방치할 순 없어

영국에서 발행되는 <이코노미스트> 2013년 3월26일자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르게 경제 성장을 이뤄낸 나라다. 이런 찬란한 업적은 국민들, 그중에서 노인 세대와 조만간 노인이 될 세대들의 피와 땀으로 일군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후 보장 시스템은 아직 제대로 갖춰지지 않고 있다. 많은 노인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고, 받더라도 급여 수준이 매우 낮을 전망이다. 기초노령연금도 노후 생활에 도움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노인 소득 보장에 대한 지출은 매우 적다. 2010년 기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나라들이 노인 소득 보장을 위해 평균적으로 GDP(국내총생산)의 9.3% 정도를 지출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의 기초노령연금과 국민연금의 지출 수준은 GDP의 1% 내외에 불과하다.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었던 기초연금 도입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정상화하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당사자인 노인들뿐 아니라 많은 복지 전문가의 지지를 받았다. 이러한 지지가 부분적으로 선거 당일의 지지로 이어졌다. 하지만 공약을 이행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기초연금 급여를 1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인상하고, 70%인 수급자 범위를 전체로 확대하면서도, 기초연금 도입이 국민연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 없어야 했다. 또한 동원할 수 있는 재원 역시 제한돼 있는 게 현실이다.

9월27일 서울 탑골공원에 노인들이 모여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국민연금 가입 기간 길수록 감액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기초연금 대안은 이러한 요소들을 동시에 고려한 결과다. 인수위는 소득과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따라 차등하는 대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는 소득 하위 70% 이하인 경우 14만원에서 20만원을 받을 수 있고, 소득 상위 30% 이상인 경우는 4만원에서 10만원을 받게 된다. 차등의 기준은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었는데, 국민연금 가입 유인을 촉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면 기초연금 급여도 증가하게 한 것이다. 이러한 장치로 인해 국민연금 수급자에 대한 급여 삭감의 부정적 효과는 상당 부분 완화될 것으로 기대됐다. 국민연금 비수급자인 경우 소득 하위 70%는 20만원을 받고, 상위 30%는 4만원을 수급하게 돼 있다. 

인수위 대안은 발표되자마자 비판에 시달렸다. 비판은 양 방면에서 나왔다. 한편으로는 기초연금의 지나친 지출이 나라 살림을 어렵게 할 거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급여의 차등 지급이 대선 공약 위반이라는 것과 국민연금의 연계가 국민연금 제도 유지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양쪽의 공격에 직면하자 보건복지부는 일단 각계 대표자로 구성된 행복연금위원회에서 기초연금 대안을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9월26일 공식적으로 발표된 정부의 기초연금 대안은 행복연금위원회의 합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행복연금위원회에서 특정한 대안이 제시된 것은 아니고, 종결되기 전에 주요 참가자였던 노동단체들이 탈퇴했기 때문에 사실상 반쪽 합의라고 할 수 있다. 이 결과를 토대로 도출된 정부안은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수급자의 범위는 100%가 아니라 70%로 제한된다. 둘째, 급여 수준은 20만원으로 하되 국민연금 가입 기간에 연계해 10만원에서 20만원 사이의 금액이 지급된다. 인수위 안과는 달리 급여는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길수록 감액된다.

따라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11년 이하인 수급자는 20만원의 완전 기초연금을 수급하지만, 이후 급여 수준은 매년 약 1만원씩 인하돼 국민연금 20년 이상 가입자들은 10만원의 급여만 수급하게 된다. 재정적으로도 이 안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약 39조원을 필요로 해 당초 선거 공약으로 제시된 57조1000억원보다는 상당히 재원을 절감했다. 이 정도 재원은 인수위 안에서 예상했던 40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장기적으로 정부안의 재정 절감 효과는 더 커진다. 당초 선거 공약안의 소요 재원이 2040년에 157조원인 데 비해 정부안의 소요 재원은 99조원 정도로 예상된다.

정부 안 역시 공식적으로 발표되기 전에 상당한 논란을 야기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가 이 논란을 끝낼 수 있을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 안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일부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최악의 대책은 아니다. 이번 정부 안의 핵심은 기초연금 수급자의 범위를 65세 이상 노인의 70%나 그 이상으로 확정했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 안은 개선돼야 할 중대한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 첫째가 국민연금의 가입 유인을 저해한다는 점이다. 국가가 두 개의 공적연금을 관리하면서 이를 철저히 분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다수의 공적연금 제도를 운영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이들 제도를 서로 연계해 통합 운영하고 있다.

9월26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TV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기초연금 문제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기초연금 도입 미룰 수 없어

그러나 정부 안의 연계 방식은 방법과 정도에서 잘못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먼저 기초연금의 삭감 정도가 지나치다. 지난 인수위 안에서 가장 크게 논란을 부른 대목은 국민연금 수급자들의 상대적 불이익이었다. 인수위 기초연금 안에서 불이익의 정도, 즉 국민연금 비수급자와 국민연금 수급자들의 급여액 차이는 최대 6만원이었다.

국민들은 이 차이에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했다. 때문에 기초연금의 삭감 정도는 6만원보다 낮은 수준에서 결정돼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또 삭감 방법에서도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국민연금의 장기 가입 유인을 저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인수위 안처럼 가입 연수에 따라 이익을 주거나 아니면 가입 기간과 상관없이 감액을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두 번째 문제는 수급 범위를 70%로 제한하는 것이다. 이는 전자의 문제보다는 더 해결하기 쉬울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야당인 민주당도 80%의 수급자 범위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꼭 지적돼야 할 것은 여기에서도 국민연금 수급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노인들의 소득 중 다른 소득은 타인에 양도하거나 은폐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급여는 이게 불가능하다. 또한 국민연금 수급자들의 전체 소득에서 연금 소득이 차지하는 비중은 현재 약 30%로 낮지 않고, 향후에는 더욱 상승할 전망이다. 따라서 국민연금 수급자들이 연금 소득 때문에 기초연금을 수급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기초연금의 소득 산정에서 국민연금 소득의 일부나 전체를 공제하는 등의 조치들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정부 안이 안고 있는 이런 문제들에 대해 야당이나 시민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잘 조정된다면, 이번 정부 안의 시행은 우리나라 연금 제도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화되고 장기화되고 있는 노인 빈곤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기초연금 도입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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