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사냥’으로 지방 권력 물갈이한다
  • 안성모·이규대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02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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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안 정국 조성해 보수층 결집…공세 지나치면 역풍 맞을 수도

‘공안’은 언제나 보수의 편이다. 역풍을 맞지 않는 한 그렇다. 북한·안보 관련 이슈가 불거지면 정치적 이익은 늘 보수 세력의 몫이었다. 각종 선거를 앞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국가 안보에 대한 불안감은 보수층을 결집시키고 중도 성향 부동층의 표를 보수 쪽으로 끌어오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이자 국회 다수당인 새누리당은 행정 권력과 의회 권력에서 모두 야당을 압도한다. 다만 지방 권력만은 야권이 우세하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덕이다. 당시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에 대한 유권자의 반감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 새로 지방 권력을 재편할 선거는 내년에 치러진다. 7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치르는 전국 단위 선거다. 이미 정치권의 시선은 내년 6월로 향해 있다.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 음모 혐의가 불거지면서 초래된 ‘공안 정국’이 어떤 후폭풍을 낳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현재 예정된 가장 큰 정치적 이벤트라 할 수 있는 내년 지방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심이 높다. 우선 통합진보당이 치명적 타격을 입으면서 2010년 선거의 화두였던 야권 연대 환경이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이에 맞서는 여권은 어떨까. 우선 현재까지 보면 ‘공안’이라는 매력적인 카드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양새다.

보수 단체 회원들이 9월26일 성남시 분당구 야탑역 광장에서 ‘종북 척결 국민 행동 2차 성남시민대회’를 열고 있다. ⓒ 시사저널 최준필
사태 초기부터 ‘종북 사냥’ 적극적

새누리당의 대응은 단호했다. 해당 이슈가 불거진 이후 공안 정국을 지속할 강수를 이어가고 있다. 수사 중인 혐의를 기정사실인 듯 받아들이고 이를 정치 공세로 이어갔다. 혐의가 제기되고 불과 며칠 만에 이석기 의원 국회 제명안을 제출한 것이 대표적이다. 새누리당은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9월4일 낸 논평에서 “‘새누리당이 아니면 무조건 내 편’이라는 민주당의 극단적인 진영 논리와 무분별한 선거 연대가 불러온 대한민국 정치의 대참사”라는 표현을 써가며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 전체를 맹공했다.

지방에서도 새누리당의 종북 사냥은 거침이 없었다. 각 시·도 당은 일제히 성명을 발표해 사태의 책임을 야권 연대에 돌렸다. 2010년 지방선거와 2011년 보궐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강원도를 보자. 새누리당 강원도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느슨했던 대북 정책과 선거 승리에 눈이 멀어 정체성을 내팽개친 야권 연대, 공동 정부 구성에 몰두한 것이 종북 세력을 활개 치게 만든 것”이라며 강도 높은 공세를 펼쳤다.

수도권 지역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새누리당 소속 시의원들이 잇따라 특위를 구성해 지방정부와 통합진보당 세력의 ‘커넥션’ 의혹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지방 정계의 여권 인사들이 ‘종북 척결’을 주장하는 강경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들과 인식을 공유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새누리당 소속의 이영희 성남시의원은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종북 좌파 세력이 곳곳에 침투하고 있다. 특히 요즘 성남시가 종북 세력의 중심지로 거론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9월26일 열린 보수 단체의 ‘종북 척결 2차 성남대회’에는 성남시의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이 다수 참석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약 1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당초 강도 높았던 종북 몰이는 숨을 고르는 듯한 분위기다. <시사저널>이 접촉한 지방 정치권의 여권 관계자들은 “당분간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통합진보당 지지세가 가장 강한 지역인 울산시의 새누리당 관계자는 “초기에는 원론적인 수준의 논평을 낸 것이다. (내란 음모 세력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수사와 재판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공세가 지나칠 경우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인상이 강했다.

하지만 지방선거를 겨냥한 여당의 종북 사냥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관측이 많다. 검찰이 이석기 의원 등을 기소하면서 사건이 법정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내란 음모 혐의 등에 대해 공판이 이어지고 재판부의 판결이 내려지는 과정에서 ‘공안’이 끊임없이 이슈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새누리당이 9월6일 이석기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국회 의안과에 제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야권 패배’ 예상은 아직 일러

전문가들은 현재의 공안 정국을 놓고 야권 참패를 예단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공안 이슈가 기본적으로 ‘네거티브 전략’이기 때문이다. 여권이 유권자에게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한다면 언제든 역풍을 맞을 수 있다.

황인상 P&C네트워크 대표는 “공안 정국은 물론 여권에 이롭지만 정권의 콘텐츠로서는 무의미하다. 지방선거의 본질은 결국 국정 운영에 대한 중간 평가다.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위한 콘텐츠를 확립하고 국민 공감대를 얻는 것이 전략적으로 더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0년 지방선거 당시에도 ‘천안함 사건’이라는 안보 이슈가 있었으나 당시 정권에 대한 실망감이 오히려 반감을 불러왔다.

현재의 공안 정국은 야권에게 큰 부담이다. 현행 선거 제도상 거대 보수 여당과 승부하기 위해 야권 연대는 필수적이다. 하지만 연대의 한 축이었던 통합진보당이 내란 음모 혐의의 중심에 서면서 상황이 매우 어려워졌다.

황 대표는 “기존의 야권 연대는 ‘전술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 전술을 폐기해야 할 상황이다. 야권의 힘을 결집시킬 수 있을 만한 다른 전술을 찾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선거 승리만을 위한 물리적 연대가 아닌, 콘텐츠 중심의 화학적 연대로 현재의 위기를 돌파해야 한다는 뜻이다.

여권의 정책적 실패에 대립각을 세우며 야권 전체가 대안 세력으로의 믿음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야권이 대안 세력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박근혜정부와 집권 세력의 구조적 문제를 적시해서 ‘구조 교체’와 관련된 미래 지향적 어젠다를 제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향후 지방선거 레이스 도중 또 다른 대형 공안 사건이 발생하면 ‘공안 정국’이 선거판 전체를 지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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