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대학언론상] 명동 한복판에 울려 퍼지는 외로운 외침
  • 석민혁·정재홍(단국대 저널리즘 전공 3학년) ()
  • 승인 2013.10.02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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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국의 파룬궁 탄압 알리려 투쟁하는 두 한국인

<시사저널>은 2013년 ‘제2회 시사저널 대학언론상’ 수상작 6편을 매주 한 편씩 연재합니다. 예비 언론인들의 풋풋한 열정이 담긴 작품들입니다. 이번 호에는 장려상을 받은 “파룬따파 하오(파룬궁 좋아요), 하오 하오!”를 싣습니다.

서울시 중구 명동 눈스퀘어 앞. 이곳에서는 9년째 익숙한 풍경이 펼쳐진다. 노란 천막 사이로 갖가지 피켓을 걸어놓은 부스가 그것이다. 하정숙씨(57)와 서영희씨(58) 모습도 보였다. 이들은 매일 아침 10시쯤 집회에 필요한 도구를 챙겨 명동에 온다. 밤 8~9시까지 집회를 하는데, 거리에 사람이 많으면 11시까지 자리를 지키기도 한다. 두 사람 다 인상이 서글서글해 ‘집회’와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무엇이 그들을 ‘직업 시위꾼’으로 만들었을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다. 경제 대국 10위라는 대한민국이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인권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외면한다는 것이 부끄럽다.” 그들이 알리려는 것은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한 중국 공안의 탄압과 박해’다.

‘파룬궁’은 중국에서 리훙쯔가 창시한 연공 수련법의 일종이다. 중국 정부의 압력을 피해 창시자가 1996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전 세계 60여 개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파룬궁 수련자는 1억명에 달해 중국 공산당원 6000만명보다 많다. 중국 정부는 수련생들이 체제를 전복할 염려가 있다며 사교로 규정해 탄압하고 있다. 수련생들을 강제 노동수용소에 보내 고문한 사실도 드러났다. 2001년 중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탄압으로 인한 사망자가 1600명이었으나, 전문가들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산한다.

하씨와 서씨가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홍콩에서 열린 파룬궁 퍼레이드에서다. 나이도 비슷하고 둘 다 미혼이라 의기투합했고 지금은 함께 산다. 두 여성은 무직이다. 자비를 들여 시위를 하는데도 일부 중국인은 “특정 기관에서 월급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심한다고 했다. ‘봉사’라는 개념이 생소해서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다.

 

서울 명동에서 매일 열리는 파룬궁 관련 시위. 올해로 벌써 9년째를 맞고 있다. ⓒ 시사저널 임준선

‘예수천국 불신지옥’과 불편한 동거도

이들은 9년째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무관심하다. 명동 파룬궁 집회 현장 근처 의류 매장의 보안 요원은 이들의 집회를 인근에서 열리는 기독교 포교 활동과 구분하지 못했다. 부스 바로 앞 통신회사 대리점 직원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잔혹하게 학대받는 사진과 중국어로 쓰인 피켓’이라고 설명하니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파룬궁 탄압을 알리는 시위는 조용하면서 평화적이다. 중국인 관광객들이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관심을 보이면 두 사람은 일부러 자리를 피한다. ‘감시’와 ‘통제’가 익숙한 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바로 옆에서 ‘예수천국 불신지옥’ 캠페인을 펼치는 한 선교회 소속 시위자들과는 대조적이다. 선교단체는 확성기를 크게 틀어놓은 채 성경을 읽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억지로 붙잡고 얘기하는 등 공격적인 포교 활동을 펼친다. 하씨는 “그들과 갈등이 심했다. 초기에 어떤 목사는 주변을 십자가로 그으며 ‘예수 피, 예수 피’ 하며 돌기도 했다”며 “예수를 안 믿기 때문에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 수련생을 죽이는 것은 잘하는 것이라고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이 선교단체는 근처의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겼지만 불편한 동거는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파룬궁 사이비 종교 대책위원회(antifalungong.com)’라는 파룬궁을 반대하는 단체도 생겼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국내에서 파룬궁을 몰아내자는 취지의 책자를 발간했다. 중국 공산당이 파룬궁을 모함하는 말과 이들의 비방은 유사하다. 하씨는 “일단 사람이 죽어가는데 어떻게든 살릴 길을 찾아야지, 설령 사이비 종교라고 할지라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도 무심하기는 마찬가지다. 두 사람은 “왜 (연락을) 안 해봤겠나. 국회의원 사무실을 부지런히 돌아다녀보았지만 별 관심이 없었다. 회피한다는 인상이 들었다”고 밝혔다. 2006년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박재완 의원이 관심을 갖고 이 문제 해결에 나섰다. 국내 수련생들도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박 의원이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면서 유야무야됐다. 오히려 이명박 정권 때는 10명의 중국 국적 파룬궁 수련생이 중국으로 송환되기도 했다.

서방 국가 지도자들이 파룬궁 문제에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는 것과는 대비된다. 스티븐 하퍼 캐나다 총리는 2008년 5월13일 ‘파룬궁의 날’을 맞아 축사를 보내 베이징올림픽을 앞둔 중국을 당황하게 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이 문제에 단호하다. 메르켈 총리는 올림픽이 열린 직후 방중 기간에 “경제와 인권을 맞바꿀 순 없다. 우리 국민이 그것을 원치 않는다”며 “우리는 나치와 같은 부끄러운 역사를 갖고 있는 나라다. 앞으로 지구상에 이러한 참극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인권을 개선하라”고 촉구했다.

“살아 있는 언론 되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언론에서도 취재를 나온 적이 있으나 보도된 적은 없다. 5~6년 전 한 중앙 일간지 기자가 취재를 하고 데스크에 전화해보더니 미안하다며 돌아간 적이 있다고 했다. 한 방송 기자는 크리스마스 특집을 위해 취재를 나왔다가 “이렇게 중요한 인권 문제를 왜 보도하지 않느냐”는 물음에 “어휴, 너무 끔찍해서…”라며 자리를 떴다고 한다. 하씨는 “우리가 거리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은 매일 신문을 배달하는 것과 같다. 언론사에서 이 문제를 안 다뤄주기 때문에 살아 있는 언론이 되기 위해 거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두 사람을 더욱 좌절시키는 것은 시민들의 반응이다. 요즘은 하루에 한 명의 서명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외국인들은 이곳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자료를 읽게 하고 아이에게 직접 설명해보라고 한다. 살아 있는 인권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반면 한국의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잔인한 사진에 노출될까 싶어 아이의 눈을 가리고 발걸음을 재촉하기 일쑤다. 자기 아이가 놀랄 것을 먼저 걱정한다. “기분 좋게 쇼핑하러 명동에 나왔는데 눈 버렸다”며 중구청에 민원을 넣는 사람도 꽤 있었다.

집회 자체에 부정적인 사람도 있다. 이곳을 지나가던 김환근씨(23)는 “중국 문제로 왜 한국에서 시위하는지 모르겠다. 통행에 방해만 된다”고 말했다. 단국대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한 중국인 교환학생 짱하오(張浩·24)는 파룬궁에 대해 묻자 반감부터 드러냈다. “중국에서 파룬궁은 명백한 범죄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중국인은 절대로 가입하면 안 된다. 한국인들도 믿지 마라”고 했다. 그 이유는 중국의 사상 교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각각 14년, 11년을 거주했던 김형은씨(연세대 중어중문·24)와 권지연씨(연세대 중어중문·23)는 “중국 학교에서 파룬궁은 귀신에 홀려서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는 단체라고 배웠다. 대다수 중국인이 파룬궁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변화하는 중국인들, 야유에서 호응으로

하씨와 서씨는 이곳에서 희망도 보았다. 후원금을 내고 자료를 나눠주겠다며 거드는 시민들 때문이다. 그들은 “여길 지나갈 때마다 자부심을 느낀다”고 밝힌 한 대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명동 같은 관광특구에서 다른 나라의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존심을 세우는 일이라는 것이다.

한국을 찾는 중국인들의 태도가 차츰 변하는 것도 느껴진다. 몇 년 전만 해도 맹목적인 애국주의에 세뇌된 일부 중국인이 지나가며 야유를 했지만 요즘은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수고한다고 격려해주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일행이 있어 눈치가 보이면 눈짓으로라도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실제로 취재 도중 수학여행을 온 한 무리의 중국 학생들이 ‘파룬따파 하오(파룬궁 좋아요)’라고 쓰인 피켓을 보고 “하오, 하오!” 하면서 호응을 하기도 했다. 주한 중국대사관에서는 공식적으로 항의는 하지 않지만 신분을 감추고 찾아와 이름 등을 묻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두 사람은 못 들은 척하고 설명을 계속한다. 서씨는 “오래 하다 보니 대사관 직원을 알아볼 수 있다. 이들은 명동에 새 대사관이 옮겨 오면 (지금 자리에서) 시위를 계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언질을 간접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10년 가까이 이곳에서 인권 문제로 시위를 하고 있는데, 대사관이 온다고 해서 옮길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관할 남대문경찰서는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에 의해 중국대사관을 직접 대상으로 하는 집회나 반경 100m 이내가 아니면 막을 근거가 없다. 집회는 신고제이기 때문에 제한 사항에 걸리지 않으면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외사계의 한 직원은 “명동 대사관 입주는 예정보다 늦어지는 걸로 안다”고 밝혔다. 기자는 중국대사관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십 차례 전화를 했으나 받지 않았다. 중국대사관은 공식적인 이메일 주소도 없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저널리즘)는 “중국에는 종교의 자유,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가 없다. 인권 탄압도 심하다. 파룬궁 자체도 불법이라 탄압받지만 이를 보도하는 언론도 없다”며 “중국이 경제적으로는 대국으로 성장했지만,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는 선진국이 되려면 멀었다”고 말했다.

※ 다음 호에는 마지막으로 장려상 ‘봉산리 옹기 가마, 개발과 보존의 갈림길’이 이어집니다.

 

 

ⓒ 시사저널 최준필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면서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같은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다. ‘부분적 언론 자유국’(프리덤하우스 선정)이라는 우리보다 ‘표현의 자유’가 박한 나라가 중국이다. 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며 적지 않은 중국인이 권위주의 체제에 길들여진 모습을 봤다. 그들은 여타 나라의 국민들처럼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나 티벳 영토 분쟁 등 민감한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하기 일쑤였다.

그런 와중에 떠오르는 곳이 있었다. 수년째 명동을 지나다니면서 봐온 파룬궁 탄압 반대 집회가 그것.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그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이들이 집회를 하는 데 외부의 압력이나 애로는 없는지, 그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무관심과 편견은 없는지 궁금했다. 의외로 시위를 하는 사람들은 한국인이었고, 우리도 이제 이웃 나라의 인권 문제에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에 내심 뿌듯했다. 정치인들도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서방 국가의 지도자들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진보 정당 정치인들조차 중국 공산당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것에 인색하다.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기 때문에 내 편, 네 편이 따로 없다고 믿는다.

올해 말 중국대사관이 명동으로 터를 옮긴다. 명동의 ‘인권 터줏대감’들이 계속 그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시사저널>, 기자의 꿈을 갖게 해주신 손태규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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