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공 쿠데타 세력 광주 5·18묘지 참배한다
  • 안성모 기자 (asm@sisapress.com)
  • 승인 2013.10.08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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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용 참석 약속, 전두환에게도 제안”

9월의 마지막 날인 30일 오후 3시. 광주에서 5·18기념재단과 5·18 관련 단체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날 서울에서 광주를 찾은 김충립 목사가 추진하는 행사에 대해 직접 설명을 듣고 참여 여부를 논의하기 위해서다. 김 목사는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을 때 특전사 보안반장을 맡고 있었다. 12·12 쿠데타 세력의 일원으로 보안사 소속이면서 특전사에서 근무했다. 당시 보안사령관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고 특전사령관이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이었다.

김 목사는 ‘국민 통합을 위한 동서 화합 전진대회’를 열어 제5공화국 군부 핵심 인사들이 5·18 광주 학살에 대해 사과하고 5·18 민주화 인사들이 이를 받아들이는 화해의 장을 마련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행사 다음 날에는 광주를 방문해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밤 9시까지 격론이 벌어졌다. 행사 취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대가 이뤄졌지만,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등에서 의견 차를 보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오른쪽)과 정호용 전 국방부장관. 배경은 국립5·18민주묘지. ⓒ 시사저널 이종현·최준필
고명승·이학봉 씨도 긍정적으로 검토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광주 학살에 책임 있는 핵심 관계자들이 진솔하게 사과를 해온다면 언제든 만날 수 있다. 그동안 우리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요구했고 촉구했으며 변함없이 지켜온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인 사과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국민이 볼 때 매우 형식적인 행사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목사가 가장 신경 쓰는 대목도 이 부분이다. 그는 “정호용 전 장관은 참석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김 목사에 따르면 지난 5월과 7월에 정 전 장관을 만나 의견을 묻자 “참 좋은 생각이다. 잘 한번 해보라”고 답변했다는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참여하겠느냐’는 질문에 “꼭 참석하겠다. 꼭 나가겠다”고 약속하고 수첩에 날짜까지 적었다고 한다.

기자는 정 전 장관에게 참석 여부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현재 해외에 나가 있어 연락이 닿지 않았다. 휴대전화는 꺼져 있고, 집에서는 “언제 돌아올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정 전 장관의 참석을 자신했다. 정 전 장관의 귀국이 늦어질 경우를 대비해 10월14일로 잡았던 행사 일정을 10월24일 오후 2시로 연기했다. 장소는 서울 프레스센터다.

김 목사는 또 5공화국 실세 중 한 명이었던 이학봉 전 의원과도 “충분히 교감해왔다”고 전했다. 5·18 당시 보안사 정보처장을 맡았던 이 전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한 명이다. 전두환 정권에서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과 안기부 제2차장을 지냈다. 12·12 쿠데타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 참모였던 고명승 성우회 회장에게도 참석을 요청했다. 육사 15기로 하나회 멤버인 고 회장 역시 전 전 대통령의 직계 후배로 알려져 있다. 전두환 정권 때 군에서 승승장구해 대장까지 진급했고, 노태우 정권이 들어서면서 군복을 벗었다. 고 회장도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김 목사는 “고 회장이 ‘아주 좋은 일이다. 소홀히 하지 않고 지원하겠다. 바람직하고 희망적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적극성을 띠었다”고 전했다.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행사에 참여할지 여부다. 전 전 대통령이 진심 어린 사과를 해야 화해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게 국민 여론이다. 하지만 그동안의 행태는 이와 동떨어져 있다. 전 전 대통령은 1996년 5월에 열린 5·18 관련 공판에서 ‘광주 사태의 진압은 불가피했고 정당했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 이후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지난 9월10일 장남 재국씨가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할 때도 추징금 문제만 거론했을 뿐 5·18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없었다. 당시 김 목사는 10여 차례 넘게 방송에 나가 전 전 대통령이 미납 추징금은 물론 광주 문제도 사과를 통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충립 목사(가운데)가 5·18 단체 관계자들에게 5공화국 군부 핵심 인사들이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는 제안을 하고 있다. ⓒ 5·18기념재단 제공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참석 압박’

김 목사는 “여러 방식으로 전 전 대통령에게 참석을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학봉 전 의원, 고명승 회장 등 전 전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을 통해 참여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했다. 조만간 전 전 대통령 자택을 직접 방문할 예정이며, 전 전 대통령을 만나지 못할 경우 공개서한을 보낼 계획도 갖고 있다. 김 목사는 “사과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은 전 전 대통령에게도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를 따랐던 5공화국 인사들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다”라고 강조했다.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도 행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 5공화국 핵심 인사들이 5·18 희생자들에게 사과하는 것은 처음으로 시도되는 일인 만큼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3년 동안 숙제로 남은 문제를 풀어나갈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자칫 정치적으로 오해를 살 경우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 내년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 광주를 또 한 번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아서는 안 된다는 게 5·18 단체에서 우려하는 대목 중 하나다. 김 목사는 이번 행사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우려가 생기지 않게끔 조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치적으로 오해 살 여지 차단해야

이번 행사 주최는 김 목사가 회장으로 있는 한반도프로세스포럼과 함께 개신교계 단체인 성시화운동 광주본부와 성시화운동 대구본부가 맡기로 했다. 이들 단체는 7년 전부터 영·호남 국민 화합 운동을 펼쳐왔다고 한다. 대회장은 박효순 (사)한국피해자지원협회 수석부회장이 맡기로 했다. 박 수석부회장은 “광주 5·18 희생자들은 범죄의 피해자이기 때문에 상처를 치유하는 마음으로 동참하게 됐다”고 밝혔다.

김 목사는 “국민대통합위원회에서 간담회를 갖자는 제안이 들어왔는데, 대통령 기구가 참여하면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겠다 싶어서 간담회를 취소했다. 순수하게 교계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행사 추진 초기에 참여한 지역의 한 유력 인사의 경우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논의 과정에서 빠졌다고 한다. 당초에 계획했던 기자회견도 갖지 않기로 하고, 논쟁을 불러올 수 있는 토론회 주제를 바꾼 것도 마찬가지 이유다.

김 목사는 “지난 33년 동안 가해자 측의 진정한 사과가 없어 동서 화합을 이루지 못했다. 갈등이 치유되지 않은 이유는 5공화국 핵심 인사들이 화해하고자 하는 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하면서 “이제 5공화국 핵심 인사들이 대부분 80세가 넘어 건강이 안 좋다. 몇 년이 지나면 화해하려고 해도 화해할 사람이 없어진다. 지금이라도 총체적으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것으로 과거사를 매듭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 시민들과 군인들이 대치하고 있다. ⓒ 뉴스뱅크이미지
올해 5월 일부 종편 방송에서 5·18민주화운동에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근거 없는 보도를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이에 대해 5·18 때 특전사 보안반장을 맡았던 김충립 목사는 “당시 북한 동향이 공론화된 적이 없다. 보고 자체가 없었다.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김 목사는 “5·18 정신을 왜곡하고 부정하려는 움직임에 5공화국 인사들이 합세하는 분위기가 지속돼왔다. 이는 아물어가는 광주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아주 나쁜 짓이다”라고 지적했다.

5·18민주화운동은 이미 법적·제도적으로 평가를 마쳤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5·18민주화운동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했고, 2년 뒤 대법원이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등 신군부 책임자들을 내란죄와 반란죄로 단죄했다. 이미 사법적 판단이 끝난 사안이다. 국방부 등 국가기관이 다섯 차례 이상 진상조사를 했다. 2011년에는 5·18민주화운동 기록물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군 개입설’이 제기되는 것은 터무니없다.

그런데도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흠집을 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송선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근본 성격부터 부정하고 왜곡하며 폄하하는 상황까지 왔다”며 “과거 청산을 통해 역사를 재정립하면서 금전적 보상과 정치적 해결에 주력한 결과 역사적 해결을 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송 상임이사는 “2008년부터 왜곡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며 ‘북한군 개입설’을 그중 하나로 꼽았다.

보수 정권이 5·18 정신을 외면하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푸대접이 노골적으로 진행됐다는 것이다. 실제 이명박 대통령은 임기 첫해에 광주를 방문한 후 4년 동안 5·18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2010년 행사 때는 <님을 위한 행진곡> 노래 대신 <방아타령>을 집어넣어 5·18 관련 단체들이 불참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박근혜정부도 마찬가지 상황에 놓였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대체할 공식 추모곡을 제작하겠다고 밝혀 반발을 산 보훈처는 올해 행사 때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않고 합창으로 대체함으로써 결국 5·18 관련 단체들이 참여하지 않아 반쪽짜리 행사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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