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여인 술집, 부산 유력 인사들이 단골
  • 엄민우·조해수 기자 (mw@sisapress.com)
  • 승인 2013.10.08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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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이 아무개씨와 친분”…채동욱 전 총장과 사이 틀어졌다는 설도

의외로 사태 해결 방법은 간단할 수 있다. 유전자 검사만 하면 된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씨의 가정부로 일했던 여인의 인터뷰가 <조선일보>에 보도됐고, 이보다 앞서 법무부 감찰 결과가 발표됐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되는 형국이다. 이 지저분한 공방을 지켜보는 국민은 ‘정황상 아들’이라는 말보다 ‘과학적 검증’이 이뤄질 수 있을지 여부에 주목한다. 그런 면에서 ‘채 전 총장 혼외 아들’ 논란의 진실을 가려낼 열쇠는 <조선일보>도 검찰도 아닌 임 여인 손에 있다.

이미 채 전 총장은 적극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임 여인이 아들의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고 결정만 하면 “친자냐, 아니냐” 하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그러나 임 여인은 두문불출하고 있다. 그녀는 언론에 보낸 편지에서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다만 채 총장을 존경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이 자신으로 인해 곤경에 처해 있음에도 그녀가 유전자 검사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 아들 어머니로 지목된 임모씨가 경기도 가평에 소재한 외삼촌의 집에 머물고 있는 가운데, 취재진이 진을 치고 있다. ⓒ 시사저널 구윤성
도 넘은 취재 경쟁 속 원색적인 기사 난무

지난 9월10일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각각 동일한 내용의 편지 한 통이 전해졌다. 채 전 총장의 내연녀로 지목된 임 여인이 보낸 편지였다. A4용지 두 장 분량으로 편지 하단에는 주민번호가 적혀 있었고 지장도 찍혀 있었다. ‘먼저 밝힐 것은 제 아이는 현재 검찰총장인 채동욱씨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아이라는 것입니다. 아이가 채동욱씨와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가게를 하면서 주변으로부터의 보호, 가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시받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이름을 함부로 빌려 썼습니다.’

요약하면 채 전 총장의 혼외 아들 관련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그녀는 ‘아이와 함께 조용히 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녀가 침묵할수록 언론들은 더욱 거칠게 이들 모자의 주위를 파고들었다. 임 여인이 현재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친척집 앞은 이미 기자들로 북적이고 있다. 현관문 앞은 물론, 아파트 밖에도 캠핑 의자를 펴놓고 상시 대기 중이다. 마치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 성추행 사태’ 당시 그의 집 앞 풍경을 떠오르게 한다. 취재 경쟁도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한 언론사는 현관문에 귀를 대고 들은 내용으로 기사를 쓰는, 일명 ‘귀대기’까지 했다. 다른 한 언론사는 ‘임씨의 차를 사고 내서 경찰이 오게 하면 그녀를 불러낼 수 있다’는 식의 상식 밖의 보도를 했다. ‘조용히 살고 싶다’는 임 여인의 애초 바람 자체가 전혀 실현 불가능한 희망사항이었던 셈이다.

임 여인은 1993년경부터 부산에서 주점을 운영하다 채 전 총장을 처음 만난 것으로 전해진다. 1999년 채 전 총장은 부산지검 동부지청 부장검사로 재직했다. 이때 그는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 임 여인의 가게를 자주 방문했다고 한다. ‘윤초희’라는 가명을 사용하기도 했던 그녀는 부산 지역 검사들 사이에서 꽤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운영하던 주점은 채 전 총장뿐 아니라, 정·재계 인사들도 자주 드나들 정도로 지역에서는 꽤 알아주는 곳이었다. 지역사회 인사들에게는 이처럼 ‘오픈’된 주점이었기에 당시 부산지검에 근무했던 몇몇 인사들은 “(채 전 총장이) 그럴(임씨와 내연 관계일) 가능성은 희박하다”란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월30일 국회 본회의에서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 논란 관련 긴급 현안 질문’을 처리하고 있다. ⓒ 시사저널 박은숙
채 전 총장과 임 여인, 꽤 오랜 기간 인연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임 여인은 2001년 가을경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채 전 총장이 2000년 의정부지청으로 자리를 옮긴 직후다. 아들인 채 아무개군이 2002년 7월에 태어난 것으로 봐서는 상경 즈음 그녀가 임신한 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임 여인은 서울로 이사한 뒤 강남구 청담동에서 레스토랑 사업을 시작했지만 어머니가 사망한 후 문을 닫았고, 이후 서초동 근처에서 주점을 운영하다가 얼마 뒤 그것마저 접은 것으로 알려졌다. 채 전 총장은 서울로 발령이 난 후 그녀의 가게를 자주 찾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채 전 총장이 상당 기간 동안 임 여인과 인연을 맺어온 것은 어느 정도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 채 전 총장과 혼외 아들로 지목된 채군의 관계에 대한 주변 진술은 엇갈린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서 나오는 얘기들을 살펴보면 극명하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채군이 다녔던 ㄱ초등학교는 여간해서는 들어가기 힘든 학교라고 하더라. 채 전 총장이 이사장과 교장 등을 모두 만난 후에야 채군이 입학할 수 있었다고 들었다. 입학식 당시 채 전 총장이 직접 학교를 방문했다는 주변 얘기도 나왔다”며 혼외 아들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습이다. 반면 민주당의 한 의원은 “채 전 총장이 한부모가정인 채군을 딱하게 여겨 양아버지, 또는 대부식으로 후원자를 자처했다고 하더라. 채 전 총장은 딸만 있어 사내아이인 채군을 각별히 예뻐했고, 이 때문에 채군에게 자신을 아버지라고 부르라고 했던 것이라고 들었다”며 채 전 총장을 감쌌다.

임 여인이 입을 닫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한때 임 여인으로 알려진 사진이 SNS에서 돌았으나 당사자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도 왜 그녀가 유전자 검사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을까 궁금증이 제기되지 않을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해서도 역시 시각차가 극명하다. 여당과 일부 언론에서는 “임씨가 유전자 검사를 거부하면 결국 강제할 방법이 없다. 채 전 총장은 특수수사에 도가 튼 사람이다. 이를 몰랐을 리 없다. (채 전 총장이) 임씨와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것으로) 입을 맞춰 놓고, 겉으로만 유전자 검사를 원하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대쪽에서는 “임씨가 채 전 총장과 오래전부터 사이가 틀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채 전 총장을 난처하게 만들기 위해 시간을 끌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임씨에게 모종의 압력을 행사하는 세력이 있다는 의심도 든다”고 말했다.

“아이가 입을 상처 생각하면 검사하겠나”

아이의 ‘어머니’인 임 여인의 입장에서는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는 시각도 있다. 국회 법사위 소속의 한 관계자는 “애초부터 이 문제 자체가 아버지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억울해서 폭로한 것이 아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임씨는 아이에게 상처를 줄 것이 두려워서라도 유전자 검사에 응하지 않을 것이다. 채 전 총장을 끌어내리고자 하는 사람들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법조계 관계자 역시 “유전자 검사는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아이의 모근까지 있는 모발이 있어야 가능한 것인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4년 전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의 혼외 자식 논란과 비교하는 시각도 있지만, 두 사례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는 지적이다. 2009년 당시 <시사저널>은 이만의 전 장관이 자신의 친아버지라고 주장한 한 여성의 친어머니 진 아무개씨를 단독 인터뷰하며 관련 내용을 특종 보도했다. 당시에는 이 전 장관의 과거 내연녀였던 해당 여성이 직접 억울함을 호소하며 유전자 검사를 받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결국 이 전 장관은 친자 확인 소송을 벌여 패소했는데, 끝까지 유전자 검사는 받지 않았다.

채 전 총장의 경우는 정반대다. 임 여인은 꼭꼭 숨은 채 오히려 채 전 총장이 나서서 유전자 검사를 원하는 양상이다. 이러한 상황은 일반적인 친자 확인 소송 건과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친자 확인 소송 관련 상담 업무를 해왔던 서초동의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보통 여성이 유전자 검사에 적극적으로 임하고자 할 때는 거의 90%가 돈 문제 때문이다.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이번 건과 같은 경우 임씨가 굳이 검사에 나서려고 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채 전 총장과 임 여인 그리고 채군에 대해 매일 새로운 ‘설’이 난무하고 있다. 심지어 법무부 진상조사 결과 발표도 이 수준을 넘지 못했다. 결국 유전자 검사만이 모든 의혹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남아 있는 이 시점에서 모든 시선은 임 여인 쪽으로 향하고 있다.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9월30일 퇴임식장에 들어서고 있다. ⓒ 시사저널 포토
“채동욱 전 총장 혼외 아들 논란은 채동욱 제거 프로젝트의 서막에 불과하다.”

혼외 아들 보도가 나온 후 여의도를 중심으로 채 전 총장의 비리가 연이어 터질 것이라는 얘기가 심심찮게 돌았다. 혼외 아들 논란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최근 검찰 안팎에서는 채 전 총장과 연루된 괴문서가 돌고 있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문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채 전 총장과 내연녀로 지목된 임 아무개씨를 연결시켜준 이 아무개씨가 있는데, 이 인물이 임씨를 배후 조종하며 채 전 총장으로부터 유·무형의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씨는 임씨가 부산에서 주점을 운영할 당시 임씨의 가게가 입점한 건물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알아주는 자산가로 전해진다. 그러나 재산을 늘리는 과정에서 석연찮은 이유로 검찰을 들락거린 전력이 있다. 일반적인 사업가라기보다 브로커에 가깝다는 것이 지역사회의 평이다. 이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활발한 사업을 펼쳐왔는데, 2000년대 초 세금 포탈 등으로 처벌을 받기도 했다. 문서에 따르면 이씨가 부산에서 활동했던 시기와 채 전 총장의 동부지청 근무 기간이 겹친다. 이씨는 정계 인사는 물론 검찰 쪽 인물과도 광범위하게 친분을 쌓아왔는데, 여기에 채 전 총장도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이 문서의 내용은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채 정치권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퍼뜨렸다는 설도 있다.

채 전 총장 측 인물로 분류되는 한 검찰 관계자는 “허무맹랑한 괴문서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그러나 특정 세력이 악의적인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흘리는 것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채 전 총장은 이미 공직에서 물러났다. 국민적 관심을 해결하기 위해 유전자 검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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