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해’는 늘 국민에게 떠넘겼다
  • 이규대 기자 (bluesy@sisapress.com)
  • 승인 2013.10.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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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 부담 이유로 노후 보장 연금 지속적 축소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노후 보장 연금을 향해서는 으레 ‘재정 부담’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국민연금의 적용 범위가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다. 1988년 10인 이상 사업장 노동자를 대상으로 첫선을 보인 후 1999년 ‘전 국민 연금’이 되었다. 제도의 규모가 커질수록 이를 뒷받침할 재정 부담도 따라서 커졌다.

우리 사회는 점점 늙어간다. 이미 2000년에 노령 인구가 7.1%에 달해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사회가 부양해야 할 65세 이상 노령 인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이들의 기대 수명도 늘어난다. 반면 저출산 기조는 이어진다. 그 결과 2026년에는 노령 인구가 20%를 넘어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다. 이들의 생활을 책임져야 할 노후 보장 연금의 재정 부담은 더욱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최근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는 2060년경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당초의 예상을 재차 인정했다.

6월11일 서울역에서 열린 ‘국민연금 1045운동’ 선포식. 기초연금 10%와 국민연금 45%를 합해 기본적인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완비하자는 운동이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 재정에 대한 사회적 우려는 1990년대 후반 이후 지속적으로 나타났다. 그렇다고 국민연금이 든든한 노후 보장 수단인 것도 아니다. 여전히 많은 국민은 노후를 불안해한다.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만으로는 안정된 노후 생활이 어렵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미래 재정에 대한 부담과 여전히 불충분한 서비스 사이에서, 2000년대 초반 이후 집권한 역대 정권은 항상 딜레마에 처했다. 그리고 늘 연금 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을 택함으로써 국민의 노후 보장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국민연금 급여 축소 전제는 ‘기초노령연금’

2007년 12월 국회에서 ‘국민연금 축소 조정안’이 통과됐다. 국민연금 보험료는 현행 9% 유지, 국민연금 소득 대체율(국민연금 가입 기간 당시 평균 소득에 대한 실제 연금 수령액 비율)은 2028년까지 40%로 인하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국민이 납입하는 보험료는 올리지 않는 대신 지급받는 연금은 큰 폭으로 삭감했다. ‘재정 안정’과 ‘보장 확대’ 중 전자를 택한 셈이다.

중요한 전제가 있다. 바로 현재 논란이 되는 ‘기초연금’의 전신인 ‘기초노령연금’의 도입이다. 국민연금이 개혁되기 5개월 전인 2007년 7월 기초노령연금안이 국회에서 통과됐다.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급여의 획기적인 축소를 가능하게 한 명분은 2005년 퇴직연금 도입과 2007년 기초노령연금 제도 도입에 대한 합의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특히 기초노령연금이 공적 소득 보장 역할을 어느 정도 분담한다는 전제 아래 국민연금 급여 삭감이 이루어졌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연금의 지급액을 줄여 재정을 안정시키는 대신 기초노령연금으로 ‘사각지대’를 보완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이언주 민주당 의원은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현안 질의에서 “2007년 국회에서 국민연금법과 기초노령연금법이 통과되면서 이뤄진 사회적 합의는 2028년 기준으로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합한 공적 연금의 소득 대체율을 50%에 맞추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복지 현장에서는 월 10만원이 채 못 되는 기초노령연금 액수로는 실질적인 소득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됐다. 2007년 국민연금 개혁으로 인해 노후 대비 공적 연금의 규모가 지나치게 축소됐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정부는 2028년까지 두 배로 늘어나게 될 기초연금을 일정 부분 축소하겠다는 안을 내놓았다. 이유는 역시 ‘재정 부담’이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연계해 국민연금 장기 가입자의 기초연금 혜택을 줄이기로 했다. 기초연금을 줄일 수 있는 근거가 곧 국민연금인 셈이다. 2007년과는 완전히 반대다. 당시에는 기초연금에 의지해 국민연금을 깎았다. 이번에는 국민연금에 의지해 기초연금을 깎으려 한다. 잇따르는 ‘재정 부담’ 우려 속에서 축소되는 것은 항상 서민들의 연금이다.

“그렇게 재정이 걱정되면 기초연금은 뭐하러 하는가.” 김연명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말이다. 2000년 이후 정부 당국이 연금 삭감으로 재정 안정화를 시도해온 탓에, 복지 제도의 취지 자체가 무색할 만큼 노령 연금의 보장성이 허약해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은선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진단한다. “(2007년) 연금 개혁 이후 대다수 소득계층에서 국민연금 급여액은 공공 부조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기초노령연금과 사회보험 방식의 연금 모두 최소한의 보장만을 하게 되면서 두 제도의 기능이 모두 최저 수준 보장으로 수렴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정부는 공적 연금을 줄이려 시도하는 셈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보수 세력이 지출 관리를 통해 균형 재정을 달성하겠다는 ‘재정 건전성’ 프레임을 내건다면, 진보 쪽은 재원 확대를 통해 보편 복지를 구현하겠다는 ‘복지 확충’ 프레임으로 격돌한다고 말한다. 흔히 복지는 이념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타협의 문제로 불린다. 좌우 사회 갈등을 최소화하며 복지 체계 구축에 성공한 서구 사민주의 국가들의 사례 때문이다.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이 합리적으로 조율돼야 재정적으로 튼튼하고 국민의 삶의 질도 충분히 보장할 수 있는 복지 체계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다.

‘재정 건전성’ ‘복지 확충’ 사회적 합의는?

지금도 기초연금안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의는 엇갈린다. 재정 안정을 근거로 정부의 안을 지지하는 측이 있는 한편, 노인 복지를 좀 더 확충해야 한다는 입장도 있다.

여기서 양측이 공히 인정해야 할 분명한 ‘팩트’ 몇 가지가 있다. 2000년대 이후 공적 연금 제도의 설계에는 진보·보수 정권 가리지 않고 ‘재정 건전성’ 논리가 강하게 적용됐다. 그로 인한 손해는 고스란히 연금 가입자가 감수하게 됐다. 각종 지표들을 통해 볼 때 우리 사회의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점점 늘어나는 노령 인구는 지금보다 더 많은 복지 재원을 요구하게 된다.

‘초고령화 사회’로 나아가는 우리 사회에서 국민의 노후 보장 문제는 갈수록 중요성이 커질 것이다. 과연 재정 안정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연금 가입자의 혜택을 확대할 수 있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이미 증세, 조세 정의 확립, 보험료 인상 등 다양한 대안이 등장하는 중이다. 필요한 것은 사회적 합의다. 기초연금 논란은 대한민국 복지 논쟁의 시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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