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들 옭아매는 북한의 은밀한 공작
  • 정락인 기자 (freedom@sisapress.com)
  • 승인 2013.10.08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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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앞세워 재입북 협박…행방불명 탈북자도 많아

남한에 정착한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들 재입북자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가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뚜렷한 대책이 없다. 탈북자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비밀공작도 더욱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이다. 목숨을 걸고 북한을 탈출한 탈북자들은 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는 것일까.

탈북자들의 재입북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도 중국에 잠시 다녀온다고 떠났던 탈북자들 중 상당수는 행방이 오리무중이다. 이 중 적지 않은 수가 북한으로 재입북했을 가능성이 크다. 한 탈북단체장은 “중국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장기간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은 북한으로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게 누구인지, 몇 명인지 정확히 파악이 안 되는 실정이다. 지난해에만 100여 명이 중국 등을 거쳐 재입북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을 뿐이다.

북한은 지난 1월부터 10월1일까지 네 번에 걸쳐 재입북자 공개 좌담회를 열었다. 1월 김광호씨 부부 일행, 5월 리혁철·김경옥·강경숙 씨, 6월 라오스 탈북 청소년에 이어 10월1일에는 재입북자인 박진근·장광철 씨가 등장했다. 북한 당국은 이들로 하여금 남한 사회를 비난하도록 해 체제 선전용으로 이용한다.

 

지난해 1월 재입북한 박인숙씨가 좌담회가 끝난 후 만세를 외치고 있다(위). 중국으로 넘어간 탈북자들이 해외 공관으로 탈출하고 있다(아래). ⓒ 연합뉴스

탈북자 재입북 러시, 대책이 없다

 

탈북자들이 재입북하는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다 넘어가는 경우다. 1996년 7월11일 탈북한 최승찬씨는 자전거 고무 튜브를 몸에 둘둘 말고 예성강을 따라 남한으로 귀순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씨는 북한에서 결혼해 딸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하나원을 나와 농협에 취업했다. 번듯한 직장을 둔 중산층의 삶을 누리며 비교적 순탄하게 살았다.

하지만 최씨에게는 근심이 있었다. 남한 생활에 적응할수록 북한에 있는 딸이 그리워졌다. 그는 북한에 있는 딸을 찾아 떠나기로 결심하고 2005년 북한으로 넘어갔다. 퇴직금과 저축한 돈 1억원가량을 챙겨갔다. 그는 가지고 간 돈의 일부를 북한 당국에 바쳤고, 탈북을 용서받아 가족들과 재회해서 살고 있다고 한다.

둘째는 북한 당국이 남아 있는 가족을 볼모로 협박해 재입북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북한에 가족을 두고 온 탈북자들은 남한에서도 수시로 연락을 취한다. 전화 통화는 물론, 편지를 전하거나 사진 또는 돈도 전달할 수 있다. 이를 알아챈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 등에서 가족의 안전을 볼모로 협박해 재입북을 강요한다.

지난해 5월 말 입북한 박인숙씨의 경우가 여기에 속한다. 박씨는 2006년 한국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탈북했다. 북한에는 평양음대 교원인 외아들이 남아 있었다. 박씨의 아들은 어머니가 탈출한 후 탄광으로 추방되었다가 국가안전보위부에 체포됐다. 박씨가 재입북하기 한 달 전쯤 박씨는 아들을 통해 국가보위부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는 그들이 “당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아들은 죽는다”고 협박하자 아들을 살리기 위해 재입북을 선택했다.

셋째는 북한의 ‘입북 공작’에 의한 재입북이다. 중국에는 북한의 탈북자 ‘유인조’와 ‘체포조’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탈북자를 포섭해 이중간첩으로 활용하거나, 북한으로 재입북시켜 체제 선전용으로 이용한다. 재입북자 중 90% 이상이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측 요원들의 올가미에 걸려들었을 확률이 높다.

탈북자가 북한에 있는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중국으로 들어가면 북한 공작조가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북한의 공작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남한에 있는 탈북자를 중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가족이나 친인척 등을 동원하기도 한다.

넷째는 북한에 있는 가족을 탈북시키기 위해 스스로 입북하는 경우다. 북한 특수부대 출신인 탈북자 남수씨는 북한에 두고 온 부인을 탈출시키기로 마음먹는다. 남씨는 식당 운영 자금과 대출금 등 7000만원을 갖고 2000년 6월 중국을 거쳐 재입북했다.

그는 주중 북한 대사관을 찾아가 입북을 요청했고, 북한의 라디오 방송에서는 “남수 동지가 당비를 가지고 들어온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했다. 북한 당국은 남씨에게 온성에 있는 고급 사우나의 지배인 자리를 줬다. 남씨는 3년 후인 2003년 10월 가족을 데리고 두 번째 탈북을 감행해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왔지만,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돼 2년간 옥고를 치렀다.

2009년 남한에 정착한 김광호씨 부부는 북한에 남아 있던 장모와 처제·처남을 한국에 데려오기로 마음먹는다. 하지만 없는 살림에 1인당 1000여 만원에 달하는 브로커 비용이 부담이 됐다. 그래서 김씨는 브로커를 통하지 않고, 직접 북한에 들어가 남은 가족들을 탈출시키기로 한다. 지난해 중순 중국 선양에 있는 북한 영사관을 찾아가 재입북 의사를 전한 후 고려항공 편으로 북한에 들어갔다. 김씨가 올해 1월 북한 측이 마련한 공개 좌담회에 나오면서 재입북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는 입북한 지 7개월 만인 지난 6월 아내와 한 살배기 딸을 데리고 중국으로 두 번째 탈출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처남과 처제도 동행했다. 이 과정에서 옌볜에서 중국 공안에 체포됐지만 김씨 부부와 딸은 한국 국적을 갖고 있어 남한으로 송환됐다. 김씨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다. 북한 국적의 처남과 처제의 생사는 불투명하다.

다섯째는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재입북하는 경우다. 함경남도 출신인 허 아무개씨는 2010년 7월 탈북했다. 그는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올해 6월12일 일본을 거쳐 북한으로 재입북하려다 부산항에서 체포됐다. 그의 몸에서는 탈북자 34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수첩이 나왔다.

 

이혼한 탈북 여성이 집과 정착금을 지원받지 못해 딸과 거리를 떠돌며 도움을 호소한 글. ⓒ 시사저널 구윤성

중국 등 제3국은 보호 사각지대

탈북자의 ‘재입북’은 계속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막을 방법은 없다. 현재 탈북자가 입국하면 하나원에서 3개월간 초기 정착 교육을 시킨 후 하나센터에서 3주간의 지역 적응 교육과 1년간의 사후 지원을 하고 있다. 또 5년간은 탈북자가 정착한 지역의 관할 경찰서에서 신변을 보호하거나 동향을 파악한다.

문제는 국내를 벗어나 해외로 나갈 경우에는 보호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외여행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여행 제한 조치를 할 경우 인권침해 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가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넘어가면 속수무책이다. 정부 당국자도 “해외에 간 탈북자를 일일이 따라다닐 수는 없는 일”이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뒷짐을 지고 있을 수도 없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탈북자 재입북을 막기 위한 4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먼저 하나원 교육의 문제점을 꼽았다. “지금의 하나원은 열심히 일하면 한 달에 300만~500만원 벌 수 있다는 교육만 시켜왔다. 그러다 보니 탈북자들은 2~3개월만 돈을 벌면 북한에 있는 가족을 다 데려올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탈북자 교육 프로그램을 전면 수정할 필요가 있다.”

 

북한을 탈출했다가 재입북한 김광호씨 부부가 지난 1월 북한이 마련한 공개 좌담회에 나왔다(왼쪽, ⓒ 조선중앙통신 연합). 김씨 부부는 처남·처제와 재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체포된 후 국내로 송환됐다. 처남·처제는 생사가 불투명하다(오른쪽, ⓒ 조선중앙통신 연합).

북한에 가족이 있는 탈북자들의 최우선 과제는 ‘가족 탈출’이다. 탈북해서 남한에 입국해 하나원 교육을 거치기까지는 최소 7~8개월이 걸린다. 탈북자들은 취업해서 브로커 비용을 벌면 탈북 브로커와 접촉해 가족 탈북 작업에 착수한다. 김 회장은 “탈북자들은 가족을 탈북시키는 것에만 신경을 쓴다. 북한 내부의 소식이나 중국 국경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체계적으로 알려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 북한과 중국 국경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알려줄 곳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자의 재입북에는 사전 징후가 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재입북자들은 재산을 정리해서 현금화한다. 갑자기 냉장고나 세탁기 등 세간을 처분하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김 회장은 “북한에서 어렵게 살던 사람이 고가의 세간을 반값도 안 되게 파는 것은 월북을 염두에 둔 것이다. 이런 것을 경찰에 알려도 개인 물건을 파는 데 관여할 수 없다고만 한다. 목적이 뚜렷하지 않은 탈북자의 해외 출국은 비자 발급에 제한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4월 남한에 정착해 살던 탈북자 이혁철씨는 연평도에서 어선(8t급)을 절취해 NLL을 넘어 월북했다. 이씨는 이보다 두 달 앞선 2월에 꽃게잡이 선원으로 일하기 위해 연평도에 들어갔다. 이씨의 월북도 얼마든지 막을 수 있었다.

김 회장에 따르면 이씨는 형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씨의 형은 결혼했지만 가족은 세대 분리가 안 돼 동생과 함께 살 수밖에 없었다. 좁은 집에서 결혼한 형과 동생이 함께 살다 보니 형제간 갈등은 더욱 심해졌다. 동생 이씨는 집을 나와 밖으로 떠돌다 결국 월북을 선택했던 것이다. 김용화 회장은 “결혼한 탈북자는 세대 분리를 시켜줘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씨와 같은 탈북자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입북자들, 선전 도구로 쓰이다 ‘팽’당한다 

 

북한은 탈북자들에게 채찍과 당근 정책을 쓰고 있다. 탈북하다 걸리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거나 공개 처형당하는 것까지 각오해야 한다. 하지만 재입북자에 대해서는 ‘돌아와 자수하면 용서하고 환영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5만 달러(약 6000만원) 정도를 당에 바치면 탈북을 용서받을 수 있다고 한다. 만약 돈이 없으면 대신 남한의 ‘고급 정보’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북한 정권에서는 몇몇 재입북자의 탈북을 용서하고 일자리까지 마련해준 적이 있다.

돈에 여유가 없는 탈북자는 ‘정보’를 노린다. 탈북자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다. 군사기밀을 빼낼 수도 없고, 얻기도 힘들다. 인터넷에 공개돼 있는 정보는 가치가 없다. 그러다 보니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탈북자 명단’이다.

한 탈북단체장은 “어느 날 한 탈북자가 회원으로 등록한 후 수시로 사무실을 찾아왔다. 내가 자리에 없으면 책상이나 책꽂이 등 사무실에 있는 자료들을 뒤적거리는 것이 목격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사람은 중국으로 간 후 행방이 묘연하다. 아마 북한으로 넘어갔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때 우리 사무실에 들락거린 것은 회원 명부를 노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고 말했다.

재입북자들은 북한에서 환영받고 있을까. 북한은 재입북자들을 체제 선전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재입북자들을 앞세워 공개 좌담회나 기자회견을 열어 남한 체제를 비난하고 있다. 물론 재입북자가 생길 때마다 환영대회를 열고, 기자회견을 하는 것은 아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 회장은 “재입북하면 3개월까지는 내·외신에 선전용으로 공개한다. 언론에서 찾으면 교도소에 있다고 할 수 없으니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남한에서 지냈던 사람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게 금방 확산되기 때문에 그대로 두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한창권 탈북인단체총연합 회장도 ‘시한부 호사’라며 “겉으론 잘해주는 척하지만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언제든지 버린다. 평생 감시받으면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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