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이부진·이서현 소용돌이치는 후계 구도
  • 이석 기자 (ls@sisapress.com)
  • 승인 2013.10.08 13:26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삼성 계열사 간 사업 조정 잇따라…지배구조 확 바뀔 수도

삼성그룹의 후계 구도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포스트 이건희’ 체제를 조심스럽게 점쳐왔다.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전자·금융,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화학·서비스, 차녀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소재·패션·광고를 맡을 것으로 전망됐다. 그런데 최근 잇따르고 있는 삼성 계열사 간 합병이나 사업 조정으로 이 예측이 깨졌다.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메가톤급’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검토 중이며, 조만간 구체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얘기까지 삼성 안팎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9월23일 오전 여의도 증권가가 크게 술렁이기 시작했다. 제일모직과 에버랜드의 ‘빅딜’이 발표되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이날 패션사업부를 1조500억원에 에버랜드에 넘긴다고 밝혔다. 주요 증권사는 두 계열사의 거래에 대한 셈법 계산으로 분주했다.

그동안 패션 부문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이 총괄해왔다. 이 부사장은 표면적으로 제일모직과 제일기획의 경영기획·경영전략 부사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는 패션 사업에 집중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출범한 SPA(제조·유통 일괄화) 브랜드 ‘에잇세컨즈’는 이 부사장이 공을 들인 사업이다. 글로벌 SPA 브랜드인 유니클로·자라·H&M 등과 경쟁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했다. 서울 강남에서도 요지에만 매장을 차렸다. 최근에는 중국 진출 계획도 밝혔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일가가 지난해 7월 2012 런던올림픽 남자 자유형 400m 결승을 현장에서 참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일모직-에버랜드 빅딜로 후계 구도 주목

하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지난 2분기 제일모직의 패션사업부가 적자로 전환됐다. “전자 부품을 팔아 패션 사업의 적자를 메우는 것이 아니냐”는 내부의 불만도 나왔다. 매출 부진으로 힙합 패션 브랜드 ‘후부’와 여성 브랜드 ‘데레쿠니’ 사업을 접었다. 그럼에도 이 부사장이 사업을 강행하자 충격 요법(사업부 양도)을 쓴 것 아니냐는 분석이 빅딜 발표 초기에 나왔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삼성전자의 재무통인 윤주화 사장을 올 초 제일모직 패션 사업 총괄사장으로 보냈다”며 “(이서현 부사장에 대한) 일종의 경고로 사업 정리를 위한 수순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모직 측은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다. 제일모직의 한 임원은 “SPA 브랜드는 대규모 투자가 수반된다. 글로벌 SPA 브랜드도 흑자를 내기까지 20년이 걸렸다”며 “1년 정도 지난 시점에서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가 업계 사정을 모르고 하는 얘기”라고 밝혔다. 제일모직의 핵심 사업은 오래전에 케미컬(소재)과 전자재료(부품)로 전환된 상태다. 사명에 ‘모직’이 들어 있지만 소재·부품 사업의 매출과 영업이익 비중이 70~80%로 패션 사업(20~30%)을 크게 앞서고 있다.

제일모직은 최근 중·장기 전략을 마련하면서 부품·소재 부문을 강화하기로 했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을 위해서는 조 단위의 투자가 불가피하다. 패션 부문의 경우 당장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마침 에버랜드가 신사업에 투자할 계획이었고, 이번 빅딜은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는 것이다.

삼성 관계자는 “IR(투자설명회) 때마다 ‘이질적인 사업을 언제까지 안고 갈 것이냐’는 투자자들의 지적이 적지 않았다”며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패션 사업을 양도한 것이 팩트”라고 강조했다.

재계에서는 삼성 계열사의 잇따른 사업 구조 변화를 후계 구도와 연결 지어 보는 시각이 많다. 패션 사업을 진두지휘해온 이서현 부사장의 거취는 일단 연말 인사에서 구체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사장과 윤주화 사장이 에버랜드로 옮겨 패션 부문을 맡을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삼성의 한 소식통은 “이 부사장은 에버랜드 지분 8.37%를 보유하고 있지만 제일모직 지분은 전무하다”며 “에버랜드에서 지금처럼 패션 사업을 맡고, 사명을 바꾼 제일모직은 이재용 부회장이 이끄는 전자 쪽으로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제일모직과 에버랜드의 계약이 발표된 지 10여 일이 흘렀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대주주인 삼성SDS와 삼성SNS(옛 서울통신기술)도 합병을 발표했다. 삼성SDS 측은 계열사 합병 및 사업 조정 이유로 사업 경쟁력 강화와 해외 시장 진출 확대를 들었다. 하지만 그룹 안팎에서는 제일모직과 에버랜드의 빅딜 연장선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보고 있다.

후계 구도 0순위인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삼성SDS와 삼성SNS의 지분 8.81%와 45.7%를 보유하고 있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이 부회장은 합병한 삼성SDS의 지분을 11.26%까지 끌어올리게 된다.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부사장도 현재 삼성SDS의 지분을 각각 4.18% 보유하고 있다. 삼성SNS의 지분이 없는 관계로 합병 회사의 지분율은 0.28% 정도 하락하겠지만 IPO(기업 공개) 과정에서 적지 않은 현금을 챙길 수 있다. 여기서 마련된 현금은 별도의 지분 매입에 쓸 ‘총알’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 시사저널 포토·연합뉴스
에버랜드-삼성생명 지분 맞교환 가능성 있어

삼성 안팎에서는 향후 비슷한 성격의 합병과 계열사 간 사업 조정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사장이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삼성물산이 우선 주목된다. 재계에서는 그동안 삼성 계열 건설사의 합병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삼성물산이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을 꾸준히 사들이기 시작했다. 상반기까지만 해도 삼성물산의 삼성엔지니어링 지분은 한 주도 없었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2% 가까이 지분율을 높이면서 향후 구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에버랜드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과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맞교환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다. 그동안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을 놓고 갖가지 추측이 나왔다. 이 중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이 에버랜드를 지주사로 두는 안이었다.

지난해 에버랜드의 매출은 3조300억원으로 삼성그룹 전체 자산의 1% 수준에 머물렀다. 하지만 에버랜드는 삼성 순환 출자 구조의 핵이다. 삼성생명 지분 19.34%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다시 삼성전자·호텔신라·삼성화재·삼성증권의 지분을 가지면서 나머지 계열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에버랜드는 이재용 부회장(25.1%), 이부진 사장(8.37%), 이서현 부사장(8.37%)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이부진 사장은 현재 에버랜드의 경영전략 사장을 겸하고 있다. 연말 인사에서 이서현 부사장이 에버랜드의 패션 부문을 맡게 되면 3세 모두가 에버랜드의 우산 안에 들어가게 된다. 에버랜드가 지주사로 전환되면 후계 구도 또한 급물살을 탈 것으로 재계에서는 보고 있다.

삼성생명은 2010년 상장했고, 2011년에는 삼성카드가 보유한 에버랜드 지분 20.64%를 매각했다. 이로 인해 삼성카드→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가 15년 만에 끊어지게 됐다. 딜레마도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비금융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지배할 수 없다. 에버랜드 중심의 지주회사 체제를 만들려면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 중심의 보험지주회사로 전환해도 상황은 비슷하다. 에버랜드와 삼성생명이 보유 지분을 맞교환할 경우 상당 부분 문제가 해결된다. 에버랜드가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이건희 회장이 최대 주주인 삼성생명은 지주회사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측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그런 얘기는 알지 못한다”고 짧게 답했다. 하지만 삼성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은 “그룹 미래전략실 차원에서 주식 맞교환 형식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부적으로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소식통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수십조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에버랜드와 삼성생명 간 빅딜은 가장 간단하면서도 자금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팀이 최근 언론에 공개한 삼성의 지주회사 전환 시뮬레이션 결과도 다르지 않다. 오너 일가 중에서 삼성생명 지분을 보유한 사람은 사실상 이건희 회장(20.76%)이 유일하다. 2008년 진행된 삼성 특검에서 차명 지분이 드러나면서 실명 전환된 물량이다. 이 지분 전량을 삼성홀딩스(가칭)에 현물 출자하고 신주를 받으면 38.48%의 지분을 갖게 된다. 삼성생명 자사주 9.12%를 더하면 총수의 지분율은 47.6%에 달한다. 삼성홀딩스는 삼성전자와 에버랜드 지주회사의 주식 전량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통합된 회사다.

이후 삼성홀딩스에서 삼성생명 등 금융회사를 거느린 삼성금융홀딩스(가칭)를 분할하는 것이 박 교수의 시나리오다. 박 교수는 언론에서 “인적 분할을 통해 삼성홀딩스와 삼성금융홀딩스를 분리해도 총수 일가의 지배력은 동일한 것으로 조사됐다”며 “이런 식으로 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돈으로 지주회사 체제를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시사저널과 정보공개센터가 주최하는 '제1회 정보공개청구 대회'에 좋은 자료를 보내주세요. 기사도 만들고 상금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