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죽여도 이렇게 죽이다니…”
  • 김민신 인턴기자 ()
  • 승인 2013.10.16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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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로 나온 동양 사태 피해자 4인의 울분

10월9일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금감원) 앞에서 동양증권 피해자들의 집회가 열렸다. 공휴일로 한적한 여의도 금융가에 오후 1시쯤부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집회 장소로 향하는 기자에게 한 아주머니가 “집회 가세요?”라고 말을 걸어왔다. “그렇다”고 하자 아주머니는 내심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족들 몰래 혼자 오느라….”

금감원 앞에 도착하자 그 아주머니처럼 혼자 온 피해자가 많았다. 이들의 손에는 동양그룹과 금감원에 이번 사태의 책임을 묻는 내용이 적힌 플래카드가 들려 있었다. ‘살인자 현재현’이라는 굵은 글씨가 피해자들의 고통을 대변하듯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금감원 건물을 바라보는 피해자들의 눈에는 원통함과 분노가 가득했다.

‘동양채권자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한 이날 집회엔 3000여 명의 피해자가 참석했다. 한 할머니의 흐느낌이 썰렁한 여의도 금융가에 울려 퍼졌다. 내 집 마련, 노후 자금, 학비 등을 하루아침에 날린 억울함엔 지역도, 나이도, 성별도 따로 없었다. 차마 가족이나 지인에게 알리지도 못하고 집회에 나온 피해자 네 사람의 울분을 들어봤다.

10월9일 동양증권 피해자들이 금융감독원 앞에서 집회를 하는 도중 대전에서 올라온 피해자 황영순씨가 피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시사저널 이종현
황영순씨(대전시 둔산동)

“‘무슨 걱정이냐’ 큰소리치더니…”

대전시 둔산동에서 온 황영순씨(66)는 담당자의 상품 권유를 여러 번 거절했다. 채권이나 기업어음(CP) 등에 문외한이었기 때문에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서지 못했다. 그러다 올해 초 또 상품 권유를 받은 황씨는 “동양은 안전하다”는 담당자의 호언장담에 수천만 원어치의 채권을 구입했다. 곧 결혼할 아들에게 집을 마련해주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돈을 키우고 싶었다.

황씨는 담당자와 전화 통화로 구두 계약을 한 후 지점에서 하라는 대로 사인했다. 계약서와 같은 일체의 서류를 5월에 딱 한 번 봤을 뿐이다. 이때도 투자 위험이나 정보에 대해선 고지받은 사실이 없었다. 주식 투자의 위험성에 대해 거듭 물었으나, 그때마다 담당자는 “동양에 이렇게 계열사가 많은데 무슨 걱정이냐”는 말만 되풀이했다. 황씨는 “제가 다 관리해줄 테니 걱정마라”라는 담당자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동양그룹이 법정관리 신청을 한 뒤에도 담당자는 “절반은 현금, 절반은 주식으로 보상하겠다”며 “기다리라”고 했다. 가족에게 차마 알릴 수 없어 담당자의 소식만 애타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황씨는 억울하면서도,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계약을 입증할 방법이 없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아무개씨(서울 잠실동)

“유학비 1000만원 날아가 죽고 싶다”

서울 잠실동에 거주하는 이 아무개씨(22)는 고등학생 때부터 동양증권의 홈트레이딩시스템(HTS)으로 6년째 거래를 해왔다. 돈은 젊을 때부터 모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주식을 공부하고 투자를 시작했다. 이씨는 아침 여덟 시부터 오후 여섯 시까지 은행에서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저녁엔 공부를 해왔다. 또래 20대들이 여행도 가고 즐기는 시간을 꾹 참아가며 유학 자금을 모았다.

그렇게 유학 자금을 모아가던 중 동양그룹에 대한 불안한 정보를 듣고 담당자에게 연락을 했다. 담당자는 “동양그룹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기업은 아니다”라며 안심시켰다. 하지만 만기일인 지난 9월30일 이씨는 짤막한 문자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 ‘동양그룹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원리금 지급이 정지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이씨는 “동양그룹이 아예 처음부터 원리금을 돌려줄 생각이 없었던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이씨는 문자를 받는 순간 울컥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최 아무개씨(강원도 원주)

“동양증권 직원을 아직 믿고 싶다”

강원도 원주시에서 올라온 최 아무개씨(30)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래 7년 동안 동양증권 CMA를 통해 거래해왔다. 홀어머니를 모시는 장녀로서 동생들과 어머니의 노후를 위해 집을 마련할 계획이었다. 정기예금처럼 꼬박꼬박 월급을 저축해온 최씨는 10월7일에서야 모아온 돈이 전부 인출된 것을 알았다. 그가 만기에 받을 돈은 이자를 포함해 1억200만원이었다. 계약서가 있다는 사실도 이날 처음 알았다. 상품을 권유하는 전화가 왔을 때 전화로 계약하고, 지점에 들러 알려주는 대로 사인했다. 상품에 대한 설명이나 투자의 위험성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 자신이 투자한 회사 이름이 동양레저라는 사실도 동양그룹이 법정관리에 들어가기 이틀 전에야 알았다.

최씨의 자산을 관리해온 담당자는 그 업계에선 ‘판매의 여왕’으로 불렸다. 원주지점에서만 40억원을 팔았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3개월만 묶어놓으면 이자가 오르니 안심하라고 했던 담당자는 일주일째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최씨는 “그래도 아직 마음 한쪽으론 그 사람을 믿고 싶다”며 “설마 일부러 그랬을까 싶다. (나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에 연락이 안 되는 것이라 믿는다”면서도 허탈한 마음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 시사저널 이종현
70대 할머니(경기도 용인시)

“자식이 알게 될까 두렵다”

익명을 요구한 경기도 용인시의 한 할머니(78)는 “이 일을 자식들이 알게 되는 것이 가장 두렵다”고 밝혔다. 이 할머니는 35년 동안 동양증권의 종합자산관리계좌(CMA)를 보유하며 한 담당자와 10년 동안 거래했다. 그만큼 담당자를 신뢰했기 때문에 다른 금융회사와는 일절 거래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주식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 할 것 아니냐”는 담당자의 말에 계약 내용도 모른 채 도장을 찍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10월15일 만기를 앞둔 1억7500만원이 날아갔다는 사실을 10월1일이 돼서야 담당자에게 들을 수 있었다. 심지어 청각장애 3급인 할머니의 생계보장비마저도 돌려받지 못하게 됐다.

담당자는 그동안 아무런 통보도 없이 모든 예금을 동양그룹 계열사에 분산 투자해왔다. 할머니는 “사람을 죽여도 이렇게 죽일 순 없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최근엔 전셋집을 알아보던 딸에게 “10월에 좋은 일 있을 것이다”라고 귀띔도 해줬다. 은근히 기대하던 자식들에게, 할머니는 차마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다. 할머니가 동양과 오래 거래해온 것을 아는 아들은 “만약 엄마가 저 사람들(피해자) 중 한 명이라면 다신 보지 않겠다”고까지 말했단다. 할머니는 “엄마가 이렇게 바보 같다는 걸 자식들이 알면 얼마나 욕을 하겠냐”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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