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잠룡’ 각개약진 시작됐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press.com)
  • 승인 2013.10.16 14:19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야권 유력 대권 주자 4인의 ‘야권 재편’ 노림수

10월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동아시아미래재단 산하 동아시아미래연구소 창립 행사가 열렸다. 동아시아미래재단은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싱크탱크다. 이 자리에서 손 전 대표는 “새로운 정치는 통합의 정치다. 자기 정치 세력과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외연을 넓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참석했다. 안 의원은 “손 전 대표에 기대하는 바가 크다”고 화답했다. 두 사람이 이날 악수하는 순간, 전에 없이 뜨거운 사진기자들의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손학규 “더 기다려야 한다”

바로 전날인 7일 손 전 대표는 경기 화성갑 보궐선거 불출마 입장을 최종 확정해 발표했다. 그의 출마를 잔뜩 기대했던 민주당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거듭된 출마 요청에 대해 “심사숙고해보겠다”며 출마 여지를 남겨둔 손 전 대표였기에, 7일 오전만 해도 출마 쪽으로 무게중심이 기울어 보였던 게 사실이다. 각 언론사 정치부 기자들도 ‘서청원 대 손학규, 재보선 빅카드 성사’ 기사를 준비해놓고 있었다. 손 전 대표 역시 한때 출마 쪽으로 기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주변 참모들의 강력한 만류가 있었다고 한다. 그들의 만류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손 전 대표 측이 노리는 ‘때’란 언제일까.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오른쪽)와 안철수 무소속 의원이 10월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동아시아미래재단 창립 7주년 기념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 전 대표가 최종 불출마 통고를 하자 그 이유를 놓고 여러 추측이 나돌았다. 가장 유력했던 것은 화성갑이 워낙 새누리당 강세 지역이어서 손 전 대표가 나와도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내부 조사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자체적으로 화성갑 지역 민심을 파악한 결과, 손 전 대표가 나갈 경우 새누리당의 서청원 후보와 박빙이거나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시사저널> 취재진이 10월9일 화성갑 지역 민심 취재에 나선 중에도 이런 분위기는 엿보였다. 화성 조암시장 상인들은 본지 기자에게 “도지사까지 했던 손학규씨가 나왔으면 아마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42쪽 기사 참조).

손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가 패하자 올해 1월 짐을 싸 독일로 떠났다. 문 후보와 경쟁했던 야권의 다른 대선 후보들도 마찬가지였다.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도 독일로 갔고, 안철수 전 후보는 미국으로 건너갔다. 이는 다시 말해 차기 대선을 준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가운데 가장 먼저 귀국한 이는 안철수 의원이었다. 4월 재보선을 한 달 앞두고 귀국한 그는 설왕설래 속에 결국 재보선 출마를 결심했고 결국 국회에 입성했다. 손 전 대표 역시 10월 재보선을 한 달 앞두고 9월 귀국 길에 오르자, 정치권에서는 모두 그의 재보선 출마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여권의 한 유력 정치인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손 전 대표는 100% 재보선에 출마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이 시점에 귀국을 택했겠는가’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낙관적인 분위기는 민주당 지도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때마침 ‘청와대 공천설’ 등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원조 친박’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서청원 전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 대표가 화성갑 지역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되자 모처럼 민주당에는 활기가 돌았다. ‘손학규 카드’로 서청원 후보를 꺾으면, 수세에 몰린 정국에서 대반전을 꾀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만약 화성갑 선거에서 민주당이 서 후보를 이기면 내년 6월 지방선거 전망도 밝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권의 헤게모니를 민주당이 쥘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하지만 재보선에 패하고, 그래서 정국이 계속 여당 주도로 가면 야권에 패배의식이 퍼지면서 내년 지방선거 역시 새누리당은 제쳐둔 채 민주당이나 안철수 측이나 ‘2등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죽지는 말자는 심리로 야권끼리 피 터지게 2등 싸움을 해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내년 지방선거 직후 야권 재편 지각변동

손 전 대표의 최종 불출마 입장이 확정된 10월10일, 이 관계자는 “지금으로서는 화성갑 선거에서 오일용 후보를 총력전으로 밀어 대이변을 연출하든가, 아니면 패하더라도 최소한의 표 차이로 석패하면서 박근혜정부에 흠집을 내는 수밖에 없다.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정국을 잘 관리해서 민주당 중심의 야권 재편이 이뤄지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쨌거나 앞으로 판이 헝클어져 안철수 의원 등 제3세력과 더불어 뭔가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가능성이 있는 것이지, 지금 판으로는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의 입에서 나온 ‘야권 재편’은 향후 정국에 큰 태풍을 몰고 올 전망이다. 지금 어느 누구도 나서서 말을 하지 않을 뿐, 언젠가는 올 것임을 모두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시기로 가장 유력한 게 바로 내년 6월 지방선거 직후다. 때마침 내년 상반기 재보선도 6월이나 7월쯤으로 잡혀 있어 양대 선거의 파장은 클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새누리당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실종’ 사태에 대해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을 향한 책임 공세를 늦추지 않는 것도 실제로는 이런 분위기를 내년 선거까지 이어가기 위한 선거 전략이라는 게 정설이다.

결국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 간의 야권 주도권 다툼이 내년 지방선거와 재보선을 앞두고 극에 달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에 따라서 민주당 중심이든, 안철수 중심이든 야권 재편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전략통으로 통하는 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그동안의 학습 효과를 통해 제3당이 독자적으로 (대선에) 출마할 경우, 절대 이길 수도 없을뿐더러 대선 이후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게 됐다. 정주영의 국민당도 그랬고, 이인제의 국민신당도 역시 그랬다. 안철수 의원이라고 해서 그것을 모르겠는가. 안 의원이 대권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독자 출마가 아니라 결국 자기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의 헤쳐 모여 식 이합집산인 것이다. 아마 안 의원 측은 밖에서 끊임없이 자기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민주당을 흔들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민주당에서도 내심 바라는 것이라는 점이 아이러니다. 안철수 측의 세력 확대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점을 공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 사정에 밝은 한 정치평론가는 익명을 요구한 채 다음과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지금의 민주당으로는 정권 교체가 쉽지 않다는 점을 민주당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다. 중간 지대인 제3세력이 필요하고, 그 세력과 연대와 통합을 해야만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입장에서도 안철수 세력은 지금 싹을 밟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어느 정도 키워줘야 할 우군인 셈이다. 다만 너무 키운 나머지 고양이가 아닌 호랑이가 되어 자신이 잡아먹힐 정도만 아니면 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최소한 지금 일부 ‘친노’ 핵심만 빼놓고는 다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문재인 민주당 의원이 9월8일 재한조선족연합회 가을맞이 문화 공연에 참석했다. ⓒ 연합뉴스
‘친노’와 ‘비노’ 모두에서 러브콜 받는 박원순

공감의 대상은 바로 김한길 대표를 비롯해 차기 ‘잠룡’으로 꼽히는 손학규 전 대표, 박원순 서울시장 등이다. 손 전 대표가 화성갑 불출마 입장을 확정 지은 직후 안 의원 앞에서 ‘통합’과 ‘외연 확대’를 강조한 것 또한 “때를 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 참모들의 주문 때문이다. 그 대상에 안철수 의원이 있음은 물론이다. 실제 손 전 대표의 한 측근이 “지금 재보선에 나가서 의원 배지 한 번 더 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2년 프로그램’을 준비해야지, ‘3·4년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을 한데 아울러서 정권 교체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전략이고, 이럴 경우 통합의 정치인으로 손학규의 경쟁력이 가장 돋보일 것이라는 전략을 깔고 있는 셈이다. 물론 안철수 의원 측의 거부감이 문재인 의원 쪽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할 것이라는 기대감도 포함돼 있다.

민주당과 안철수 세력 간 연대설이 나올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친노’와의 결별설이다. 지난해 대선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서로 깊은 상처를 입은 안 의원 측과 친노 간에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앙금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친노 진영에서는 내년 지방선거가 야권 재편과 대권 구도에서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란 점에는 동의하면서도 방법론에서는 큰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든, 안희정 충남도지사든 만약 재선에 성공한다면, 차기 대권 주자로 급속히 부상할 것”이란 얘기가 부쩍 자주 들린다. 설령 문재인 의원이 아니더라도 당내의 손학규 그리고 당 밖의 안철수를 뛰어넘을 대항마들이 얼마든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연대보다는 힘으로 안철수 측을 눌러야 한다는 의지가 읽히는 대목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이는 박원순 시장이다. ‘친노’와 ‘비노’, 양측 진영 모두에서 거론되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장 공천 논란을 둘러싸고 안철수 의원과 박원순 시장 간에 나타난 신경전 양상은 차기 대권 구도의 서막으로 읽힌다. 안 의원의 측근인 송호창 무소속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안철수 신당은) 서울시장 후보를 낼 것”이라고 재차 확인하자, 박 시장과 민주당 측에선 “안 의원 측의 선 긋기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반응이 나왔다. 10·30 재보선에서 관전자 입장으로 전락한 안 의원 측이 느닷없이 박 시장을 겨냥하고 나선 것도 “안 의원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결국 박 시장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을 곱씹어보면 박 시장 쪽에서도 안 의원과의 결전을 이미 상정하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리얼미터’를 비롯한 여론조사 기관의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야권의 대권 구도에서는 ‘빅4’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박원순 시장과 안철수 의원 그리고 문재인 의원과 손학규 전 대표까지. 네 마리의 ‘잠룡’이 마구 뒤엉켜 치열한 수 싸움을 펼치는 양상이 내년 지방선거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 시사저널과 정보공개센터가 주최하는 '제1회 정보공개청구 대회'에 좋은 자료를 보내주세요. 기사도 만들고 상금도 드립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