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단일화’는 잊어라
  • 차윤주│<뉴스1> 정치부 기자 ()
  • 승인 2013.10.16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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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견제 나선 안철수, 차기 대권 ‘기 싸움’ 시작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방 먹었다. ‘우군’이라 믿었던 안철수 의원의 일격이었다. 박 시장으로선 예상치 못한, 그래서 더 치명적인 한 방이었다. 안 의원의 최측근인 무소속 송호창 의원은 10월2일 한 인터뷰에서 “서울시장에 후보를 내지 않으면서 전국적인 지방자치단체 선거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내년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서울시장 재선 도전을 기정사실화한 박 시장이 바로 하루 전 인터뷰에서 “사람은 상식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 제가 나름대로 잘해왔는데 (안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를) 아마 내기야 하겠느냐”고 말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에둘러 말하지도 않았다. 박 시장의 ‘상식’을 정면으로 받아쳤다.

송 의원의 공세는 계속됐다. 그는 10월8일 인터뷰에서도 “전국적인 선거에서 서울시를 빼고 한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모든 지역에 적합한 후보를 찾고 준비하겠다”고 안 의원 측의 서울시장 공천 방침을 재확인했다. 그러면서 특히 “아주 원칙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라는 단서를 달았다. 박 시장의 ‘상식’ 운운을 원칙론으로 차단한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안철수 무소속 의원은 2011년 9월6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단일화를 이뤄냈다. ⓒ 시사저널 포토
“상식” 말한 박원순에 안철수 “원칙론” 일격

정치권에서는 즉각 반응이 나왔다. 박 시장과 안 의원 양측이 내년 지방선거를 기점으로 그동안의 암묵적인 밀월 관계를 청산할 것이란 해석을 쏟아내고 있다. 야권의 대표적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박 시장과 안 의원 두 사람에게는 정치 운명이 걸린 한판 싸움이 시작된 셈이다. 일단 초반전에 임하는 박 시장은 계속 저자세다. 박 시장은 같은 날 “안 의원님과 협력하고 의논 드려야 한다. 서로 끝까지 협력해야 하는 관계”라고 아쉬운 소리를 했다.

박 시장의 당혹감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시계를 불과 두 달 전으로 돌려 박 시장과 안 의원의 대화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렇다. 지난 8월7일 열린 박 시장의 저서 <정치의 즐거움> 출판 행사에 안 의원은 특별 게스트로 출연했다. 두 사람의 각별한 인연을 과시하는 훈훈한 자리였다. 그러던 안 의원의 돌변에 가까운 기류 변화에 박 시장은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친구’의 바람을 가차 없이 저버린 안 의원의 생각도 궁금해진다. 원래 자기 자리였을 수 있던 ‘서울시장 수복’을 다짐한 듯한 안 의원 측의 속내를 해석하려면, 안 의원에게 주어진 상황을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가장 최근의 화두는 10·30 재보선이다. 독자 세력화의 첫발을 떼려던 이번 재보선에서 안 의원 측은 후보를 내는 데 ‘실패’했다. 안 의원은 애초 10곳 안팎을 예상했던 지역구가 경북 포항남·울릉, 경기 화성갑 두 개로 줄어들면서 전국 선거의 의미가 퇴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실상은 마땅한 인물이 없는 상황에서 무리하지는 않겠다는 ‘변명’이란 게 더 맞아 보인다. 두 선거구 모두 새누리당의 아성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 사이에서 제3의 안전지대를 찾아야 하는 안 의원으로서는 던지기 힘든 승부수다.

이번 재보선에서 독자 후보를 내지 못한 안 의원은 후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한다. 가뜩이나 국회 등원 후 ‘300분의 1’로 축소된 위상 때문에 이렇다 할 주목을 받지 못하는 안 의원 입장에서는 내년 6월 지방선거가 올 때까지 점점 희미해지는 존재감을 감내해야 할 처지다. 바로 이런 때 꺼내든 카드가 서울시장 공천이다. 새누리당 주도로 진행될 재보선의 흥미를 내년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로 미리 옮겨 안철수의 이름값을 지켜내겠다는 포석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박 시장의 한 측근은 “모범생의 한계”라고 규정했다. 그는 “안 의원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말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이번 재보선에 후보를 내야 했다”며 “화성갑이 보수적인 지역이긴 하지만 수도권 아닌가. 안 의원이 가진 지분이 어느 정도 있는 곳인데, 대통령이 되겠다는 정치인이 너무 신중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순수한 정치 공학적 고려만 감안한다면 안 의원에게 희소식도 있다. 화성갑에서 ‘서청원 대 손학규’ 빅매치가 무산되면서 안 의원이 움직일 공간이 극적으로 넓어진 것이다. 포항과 화성에서 새누리당이 완승할 것이란 전망도 안 의원에겐 나쁠 것이 없다. 지난 대선 이후 지리멸렬의 덫을 벗어내지 못하는 민주당이 재보선 참패의 수렁에 빠질 경우 대안 세력을 찾는 야권 지지층의 눈길은 안 의원에게 쏠릴 수밖에 없다.

‘정치판에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 실감

8개월을 앞둔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점치기는 이르지만, 정치권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재선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시각이 많다. 박 시장의 또 다른 측근은 “박 시장은 정치적 계산이 빠르다기보다 동물적 감각을 타고났다”고 전했다. 서울시 공무원들에게서도 “협동조합이나 마을공동체 사업같이 시대가 원하는 현안을 행정으로 풀어내는 데 천재적”이라는 극찬이 나온다.

이런 박 시장의 대항마로 새누리당에서는 ‘쇄신파’로 활약했던 홍정욱 전 의원을 비롯해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 이혜훈 최고위원 등이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체급이 낮다는 평을 듣는다. 이명박 정부 시절 마지막 총리를 지낸 호남 출신의 김황식 전 총리를 차출한다는 얘기도 나오지만, 현실성과 당선 가능성에 대해서는 여당 내에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오히려 안철수 의원 쪽에서 후보를 낼 경우 3파전에서 어부지리를 기대하는 눈치다. 안 의원 쪽에서 어떤 인물을 등장시킬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치밀한 기교와 정당성이 필요한 정치판에서 박 시장을 거꾸러뜨릴 거물급 인사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따라서 박 시장은 자신의 염원대로 서울시장 재선에 성공할 경우 단숨에 야권의 가장 유력한 대권 주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안 의원이 뜬금없이 서울시장을 걸고넘어지면서 호남 공략에 공을 들이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지난 9월29일 안 의원의 싱크탱크인 정책네트워크 내일은 호남 지역 실행위원 68명(광주·전남 43명, 전북 25명)을 발표하면서 호남이 정치 세력화의 첫 번째 기지가 될 것임을 공표했다. 안 의원 측 인사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광주광역시장과 경기도지사 정도는 반드시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호남과 경기를 거점으로 새누리당 강세 지역을 제외한 곳을 서서히 접수하겠다는 계산이다.

일각에선 박 시장과 안 의원의 밀월이 예상보다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일단 이번 ‘상식과 원칙의 싸움’에선 박 시장이 고개를 숙였지만, 안 의원 측도 결별 시기를 신중하게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이다. 안 의원 측 핵심 인사는 “송 의원은 그야말로 원칙을 얘기한 것이고 내부 의견은 갈린다”며 “서울시장의 상징성이 크지만 박 시장이 우리와 ‘특수관계’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벼르던 이번 재보선에도 사람을 못 냈는데 지방선거는 또 그때 가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장보다는 경기도지사 쪽에 더 집중할 것이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찌 됐든 박 시장과 안 의원이 야권의 유력한 차기 대권 주자로 거론되면서 두 사람의 ‘아름다운 단일화의 추억’은 서서히 지워지고 있다. ‘정치판에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다’는 말이 있다. 박 시장과 안 의원의 운명의 날을 향한 시계가 분주히 초침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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